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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 필요한 시간 (주요섭, 2014.4)
2014-03-20 20:29:00

 

고백이 필요한 시간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1.

 

칠흑의 바다 속 천만근 쇳덩어리에 갇혀 사경을 헤매는 아들딸들이 아픕니다.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은 채 나란히 서있는 학생들이 아픕니다.

엄마 사랑해” 소녀의 마지막 휴대폰 문자가 아픕니다.

아내와 부모를 남겨두고 홀로 구조된 남편과 아이가 아픕니다.

퇴선 안내를 하며 구조의 책임을 홀로 감당한 22살 여성승무원이 아픕니다.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제자들에게로 다시 돌아간 교감선생님이 아픕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오빠의 생환을 기도하는 여동생의 여린 어깨가 아픕니다.

끊어지듯 이어지는 어머니들의 절규가 아픕니다.

소리 없이 두 뺨에 흐르는 아버지들의 눈물이 아픕니다.

 

하릴없이 눈물이 맺히고 또 흐릅니다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하루 종일 우울하고 때로 분노가 치밉니다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단원고 학생들과 가 이미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 아프면 가 아프기 때문입니다세월호의 승객들과 ’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이 있어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전해오기 때문입니다지금 진도 앞바다는 유가족은 물론 우리 모두의 가슴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을 전해주고 있습니다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윤리 이전생명의 본성입니다그래서 아픕니다.

 

2.

 

제 시간에 응답하지 못해 어찌 할 말이 없습니다미안하고 죄송하고 무기력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과 승객들은 이미 유무형의 구조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TV와 스마트폰을 통해 세월호 사태를 인지하기 전부터 이미 보이지 않는 생명신호를 발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제때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어린 생명의 간절한 목소리에 예민하지 못했습니다무기력했습니다제 때 응답하지 못했습니다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기적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이제라도 응답을 보내야 할 시간입니다기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마지막 문자로 사랑을 전한 아이들을 위하여혹여 생명의 끈을 붙들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3.

 

476명의 생명을 버려둔 채 구조되어 5만원권 지폐를 말리는 69세의 선장이 슬픕니다.

15명 선박직 직원 중 선장을 포함해 9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소식이 슬픕니다.

여기저기 눈치 보며 우왕좌왕 고위관료들이 슬픕니다.

꾸짖기만 하는 대통령의 고성이 슬픕니다.

신뢰를 잃고 유가족과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우리의 언론이 슬픕니다.

초유의 사태에 명쾌한 분석과 해결책을 못내놓는 전문가와 지식인이 슬픕니다.

좌파’, ‘선동’ 운운하는 여당 정치인이 슬픕니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만 따지는 야당 정치인이 슬픕니다.

 

선장이든 정부당국자든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 누군가는 응당 책임을 져야 합니다단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모든 책임을 그 누군가로 돌리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어른들의 거짓세상에서 우리의 남은 아이들마저 구해낼 수가 없습니다이미 세대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우리 곁으로 데려올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생명신호와 이웃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온 우리는 무감각 환자일지도 모릅니다아이들의 호소에 답하지 못하고 이웃의 손길을 외면하는 무책임 환자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어쩌면 마음껏 분노하되 서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고나 외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믿고 쫓기듯이 살아왔습니다. ‘이웃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려 했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년 계약직 선장에게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책임을 밝히고 단죄를 하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하지만 또 다시 이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아이들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와 우리들의 마음과 삶의 방식들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성찰이라는 말조차도 사치스럽습니다아이들 앞에서, ‘세월(歲月)’ 앞에서 고백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아이들이 보내는 생명신호에 응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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