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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지 않은 삶 (구도완, 2014)
2014-02-17 20:36:00

 

살아보지 않은 삶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

 

 

얼마 전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갈수록 주식투자하기가 어려워주식이 힘있게 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왔다갔다하니 이제 옛날 생각을 버려야 하나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값싼 석유를 펑펑 쓰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경제성장만을 외치던 시대는 확실히 저물고 있다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뉴스가치를 잃어버렸고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도 잦아지고 있다이런 시대에 식량과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지금과 같은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경제성장으로 인류의 부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 성장은 잠재적인 전쟁상태로 남의 돈과 자원을 빼앗아 자기 배를 채우며 살아가는 구조 위에서 이루어졌다기술발전으로 모두가 일을 좀 더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어도 잘살 수 있을 만큼 생산력이 커졌지만 한쪽에서는 과로로 죽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배가 고파 죽어가고 있다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영원히 승리할 것 같아 보이던 자본주의는 속으로 병이 나서 그 목숨이 어찌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일찍이 한살림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내다본 것 같다그들은 한살림선언이라는 비장한 선언문을 만들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자고 외쳤다기계가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생명을 살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공산당선언이 계급지배가 사라진 자리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면 한살림선언은 새로운 생명의 이념과 활동인 한살림 세상이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살림선언이 태어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살림은 40만 이상의 조합원이 먹을거리를 나누며 밥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먹을거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믿을 만한 먹을거리를 찾다가 한살림이라는 공동체를 만나 불안을 달래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다이런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살리는 농민들의 삶도 활기를 얻고 있다한살림 세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한살림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워서 약육강식의 시장경제 바깥에 느슨한 살림의 공동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그런데 밖을 보면 세상은 20여 년 전보다 더 춥고 살벌하다나라 안팎에서 생명과 평화를 죽이는 말의 폭탄이 날아다니고 경쟁과로실업권위주의의 덫에 걸려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전쟁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살림의 성장은 사실 자본주의의 성장경제성장 덕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한살림의 오랜 신뢰의 힘이 성장의 주체적인 자원이었다면 중간층의 확대와 소득증대라는 구조적인 변화가 성장의 구조적 조건이었다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즉 성장은 멈추고자원과 돈을 얻기 위해 만인 또는 만국이 지금보다 더 극심한 전쟁상태로 빠져드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세상은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도 있고더 평화적이고 민주적일 수도 있다미래는 열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일제강점과 전쟁폭력의 참화 속에서도 우리의 어버이들은 생명을 돌보며 공동체를 가꾸어왔다국가와 자본제국에 주눅들지 않으면서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것은 씨앗을 뿌리고 키우며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한살림은 지금 그럴 힘이 있을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완전고용이나 국가를 통한 복지가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한살림선언이나 생명운동의 관점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지구의 모든 생명들이 평등하게 서로 교류하며스스로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더욱 절실한 때가 왔다어떻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자립의 경제자립의 정치를 키울 것인가시장경제와 국가제국을 협동과 호혜의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일 방안은 무엇인가이제 생명과 평화가 위태로운 시대에 우리는 협동의 망으로 생존을 지키며 생명을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문명전환이라는 큰 이야기를 넘어서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부족했던 점은 무엇인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국가나 기업시민운동단체가 못하는 일을 협동조합과 생명평화운동 그리고 한살림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우리 모두의 삶이 위태로운 시대에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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