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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장사회에서 질적 성숙사회로
2016-01-28 17:31:00

 

* 동향분석보고서 <모심의 눈 살림의 길> 1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경쟁과 이윤을 앞세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한계와 부작용이 세계적으로 확인되면서 성장시대의 신화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 이익은 사유화 한 채 부담과 책임은 다른 곳으로 떠넘겨버리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 생존의 토대인 자연생태계와 공동체적 이웃 관계를 빠른 속도로 파괴해 왔다.

 

・ 생존을 위해 빈곤과 결핍을 해결하고자 생산력 증대에 힘써온 그동안의 노력과 관성들이 성장의 한계와 부작용들로 인해 지금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 몇 십만 년의 인류 역사 중 불과 한 세기 동안에 총량적인 성장 규모는 수십, 수백 배로 커졌지만 지구상에 빈곤은 사라지지 않았고, 불균형과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으며,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생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전쟁 후 60년의 기간 동안 국내총생산(GDP)은 3만 배 이상, 1인당 국민소득은 4백 배 이상 증가해, 수출규모 세계 7위, 국내총생산은 세계 15위 수준의 성과를 이뤘지만, 성장 규모와 실제 삶과의 괴리 현상은 더욱 커지고 있다.

 

・ 1인당 석유소비량 세계 5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수입명품 시장규모 세계 2위 등 우리나라 소비 규모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오랜 세월 동안 일하면서 더 많이 피로해하고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 또래 청소년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쓰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빈약한 복지기반에 노후 대비가 부족한 우리의 노년세대 삶에서도 확인된다.

・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에다 낮은 행복도는 오늘날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삶의 현 주소다. 작년 3월,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행복순위는 118위였다. 우리나라 성인 36%가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답한 조사도 나왔다.

 

・ 그런데 성장경제에 기반한 성장사회의 문제점들이 더욱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것을 ‘더 많은 성장’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 지금의 사회를 지배하는 관성이자 주류의 논리다. 복지서비스,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삶의 질 향상, 생태계 보존 등 제반 영역들은 ‘성장’을 전제로 한 후속 과제들로 이해되고 다뤄지고 있다.

 

・ 현실 인식과 접근 방식에서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이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영역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성장이 되어야 분배나 복지도 실현가능하다는 입장과 균형적 분배나 안정적 복지가 결국 성장을 촉발하는 동력이 된다는 입장 모두 ‘더 많은 성장’을 전제하거나 목표로 하고 있다.

 

・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계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고 저성장이 장기화, 고착화 되는 가운데 성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시스템과 지식, 경험들이 빠르게 효력을 잃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양적 성장의 시대를 넘어서 질적 전환을 통해 성숙사회로 나아갈 준비가 필요하다.

 

・ 예전과 같은 고속성장, 고도성장, 지속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대변하듯, 지금 상황을 ‘저성장 시대’로 진단하면서 다양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저성장 상황을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로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장시대의 위기를 ‘재성장’, ‘신성장’ 전략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의 저성장 시대는 그동안의 고정관념, 삶의 방식, 의존해온 시스템 자체에 거대한 도전이 일어날 것을 말해준다. 벌써부터 사상 최대의 부채와 청년실업 속에서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갈등과 불신, 불안과 공포로 점점 극단화 되고 있는 현실을 ‘지옥’(헬조선)으로 규정하고, 포기하고(이생망) 떠나려 하고 있다.

 

・ 결국 정부나 기업, 시민사회 할 것 없이 사회 전체가 생존의 차원에서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고, ‘성장시대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비단 경제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장과 행복이 연결되지 않는 사회적 위기에다, 작년 지구 기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만큼 생태위기 문제도 심각해서, 기존과 같은 방식의 성장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지속시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한 상황이다.

 

・ 기존과 같은 방식과 수준의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양적 성장사회에서 질적 성숙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전환의 가능성들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가 저임금, 저소득,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저출산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현상과, 수도권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격한 팽창을 거듭해오던 기존의 성장 패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도시화와 귀농귀촌 인구가 증가하고, 서울과 같은 대도시 속에서 ‘마을’, ‘동네’, ‘이웃’이 강조되고, ‘재생’과 ‘협동’, ‘농업’, ‘공동체’가 새로운 가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 하지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환경의 변화가 곧 바람직한 변화를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득권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상력과 변화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읽어내는 안목,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움을 선택하는 용기가 전환을 꿈꾸는 모두에게 필요한 때다.

 

성숙사회를 향한 탈성장 전략을 협동운동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해 나갈 때다.

 

・ 당면한 성장사회의 위기는 기존 상태로의 복원이나 복구가 아니라 낡은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장사회에 대한 대안 역시 기존의 사고방식과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 즉 ‘탈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 탈성장을 위해서는 생활양식과 구조, 시스템의 동시적인 전환을 통해 자립과 공생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성장경제에 의존해 온 국가와 시장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서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 돌보고 발전시켜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자신이 당면한 삶의 문제들을 외부의 능력 있는 해결자나 대리인에게 더 이상 맡기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해결해나가는 힘을 길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소득을 가지고 시장의 교환경제에 참여하거나 정부의 재분배 체계에 의존해서 살아가기에는 다가올 시대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 따라서 필요한 생활재를 손기술을 익혀 직접 만들고, 장터를 열어 함께 나누고, 지역의 이웃들과 서로 돌봄 체계를 만들고, 협동노동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일 등 삶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영역들을 적극 만들어나가야 한다. 결국 자율과 자립, 자치는 성숙사회로 가는 핵심 가치일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운동이 오랜 세월 중요하게 지켜온 원칙이기도 하다.

 

・ 성장사회의 위기는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생활 영역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업적 지속가능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최근의 저성장, 저물가 상황이 생활협동조합의 사업을 위축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이 사업적 위기를 성장시대의 논리로 접근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양적 성장사회에서 질적 성숙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협동조합운동의 시대적 역할을 적극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먹거리, 교육, 의료, 보육, 복지, 일자리, 안전 등 국가와 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삶의 과제들을 민간의 자발적인 힘으로 상호부조의 관계망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협동조합운동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적극 살려내야 한다.

 

・ 마침 올해는 ‘한살림’이라는 이름으로 생명협동운동을 시작한지 30년이 되는 해다. 일찍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관통하는 현대 산업문명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한살림운동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양적 성장사회를 질적 성숙사회로 전환시켜내고자 하는 시대적 과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성숙사회에 대한 전망은 사회전체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자 새로운 30년을 향한 한살림운동의 비전이자 과제이기도 하다.

 

・ 세상을 정화시키고 생명의 터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3% 소금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전체 2천만 가구의 3%에 가까운 한살림의 조합원 조직이 사회 속 소금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내적 결속과 역량을 길러내야 한다. 그 성숙된 힘을 바탕으로 성장시대 이후의 새로운 환경에서 요구되는 조합원의 삶의 필요들을 협동의 힘으로 해결하고, 깊은 소통과 따뜻한 연대로 살림의 그물망을 다양하게 엮어서 한살림운동을 확장해나갈 때 성숙사회도 한층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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