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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협동공동체’를 꿈꾸다
2013-08-26 16:09:00

 

한살림, ‘협동공동체’를 꿈꾸다

- ‘쌍호공동체’와 ‘흙공동체’를 통해 본 ‘농민’ 생산자의 꿈 -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2013년 7월 한반도 서해 바닷가에 2,000여 명의 ‘꿈’들이 모였습니다. 하늘색 상의에 새겨진 꿈, 바닷가 백사장에 세워진 솟대의 꿈, 그리고 이틀간 한살림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연출한 가설무대에서 꿈들이 춤을 추었습니다.

 

생산자대회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19~20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위치한 상록해수욕장에서 <2013 한살림생산자대회>가 열렸습니다. 2005년 경북 울진에서의 대회 이후 8년 만입니다. 전국의 농민생산자, 가공생산자, 그리고 각 지역 한살림생협의 활동가와 실무자 등 한살림 역사상 가장 많은 2,000여 명의 한살림 사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몸빼 입고 선글라스 쓴 선남선녀들이 뽕짝과 디스코 춤사위를 즐기고, 한판 대동놀이로 한 여름밤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먼 하늘과 바다에 뜬 두 개의 달 사이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한살림과 인생을 논하고 나비의 비상을 꿈꾸었습니다.

 

“다시 새롭게, 함께 하는 농업살림!” 한살림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불어 한살림을 이루는 꿈.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그냥 생산자가 아니라 ‘농민’ 생산자의 꿈입니다. “함께 하는 농업살림”의 그 주인공들 말입니다. 1년 만에 사라지긴 했지만, 1990년 당시 농민생산자들과 농민운동가들을 설레게 한 음성 협동농장의 꿈, 장장 35년간 415회의 월례회의로 이어온 의성 쌍호공동체의 꿈이 있습니다. 로버트 오웬의 뉴 하모니(new harmony)보다 높고, 협동조합 열풍보다 뜨거운 한살림 생산공동체의 꿈이 있습니다.

 

 

1990년 협동농장 ‘흙공동체’의 스러진 꿈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0년 5월, 한겨레신문에 음성 협동농장 기사가 나왔습니다. 15쪽 사회면에 제법 큰 기사로 소개되었습니다.

 

“무농약 영농 20년 ‘열매’”

“충북 음성 협동농장 ‘흙 공동체’”

“4가구 분업... 소비자와 직거래”

“수익 배당 땅보다 노동력 비중”

 

1986년 12월 한살림이 문을 열던 때부터 유기농 쌀을 공급해온 음성 성미마을의 최재명, 최재영 형제를 중심으로 공동노동/공동분배의 협동농장이 태어났습니다. 이미 1970년부터 농약 없는 농사를 지어 무공해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얻은 사회적 관심과 한살림과의 직거래를 물적 토대로 새로운 꿈을 펼치고자 한 것입니다. 논 2만 1천 평과 밭 5천 평의 농장이 마련되고 공동기금으로 퇴비장도 만들었습니다. 외부의 품을 사지 않고 전적으로 공동체의 협동적 힘으로만 농사를 지으려 했습니다. 2.5톤 트럭을 마련해 서울 등 소비지로의 직송체제도 갖추었습니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공동식당과 창고, 탁아소 등도 구상하였습니다. 특히 토지 출자에 따른 배당보다 품, 즉 일의 양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점이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4월부터는 흙공동체에서 생산된 배추, 무, 파, 상추, 쑥갓 등의 채소와 쌀을 한살림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흙공동체와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단오행사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해 11월에는 경향신문에 무공해농사 붐의 대표적인 사례로 흙공동체가 소개되었습니다. “오염 식품으로부터 생명을 살려보자는 게 우리 농민들이 무공해농산물을 생산한 첫 번째 이유” 라고 말하는 생산자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널리 알려져 있듯이 흙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안팎에서의 역할분담과 노동량에 대한 획정과 결산과정에서 불신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만, 간단치 않습니다. 쉽게 공동노동/공동분배의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 그 이면과 속내는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기농업에 기초한 생산공동체의 꿈은 부질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흙공동체의 경험은 한살림 최초의 본격적인 생산공동체 시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후배들의 입장에선 ‘협동’의 의미, ‘관계’의 의미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한살림 생산자 협동조직의 모델은 무엇일까? 한살림 생산자 조직의 꿈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흙공동체의 짧은 실험이 무겁게 되묻습니다.

 

 

415번째 월례회의, 의성 쌍호공동체 35년의 꿈

 

오늘은 8월 5일, 양파 수매 후 출하비용 정산을 위해 모인 김에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고 조금 일찍 시작했습니다. 그 유명한 경북 의성 쌍호공동체의 월례회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허춘학 회장님의 개회와 함께 성호를 긋고 ‘농민을 위한 기도’를 낭송합니다. 아래는 기도의 일부입니다.

 

“날이 갈수록 생명이 죽어 가고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1978년 3월 가톨릭농민회 쌍호분회 월례회의로 시작하여, 1년에 11차례의 월례회의와 연간 1차례의 정기총회를 이어왔습니다. 월례회의 역사는 곧 쌍호공동체의 역사입니다. 올해 8월 5일로 무려 415번째 월례회의가 열렸습니다. 올해가 2013년이니까 35년이 넘는 세월입니다.

 

쌍호공동체는 유명합니다. 부부가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월례회의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35년간 가톨릭 신앙공동체이자 생산공동체로써의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한때는 수세(水稅) 싸움과 농지세(農地稅) 싸움으로 농민운동사의 전설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90년대 초부터 생명농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부터는 소농이 중심이 되는 다품종소량생산, 유기(자급사료)축산과 생태순환농업, 도농협력방식의 송아지 입식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한살림 사람들에게는 대표적인 양파 생산지로 유명하고, 『살림이야기』 독자들에게는 김정상‧조옥희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어여쁜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우원식 님, 진상국 님과 같은 초기 공동체를 이끌었던 선배들로부터 김정상 님, 허춘학 현 회장님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역사가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35년을 이어온 월례회의는 이구동성 쌍호공동체의 힘이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1권이 사라져서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쌍호공동체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군가 연구 목적으로 가져갔다가 분실했다고 합니다), 두툼한 공책에 100회, 200회, 300회, 400회, 월례회의의 기록을 또박또박 새겨 넣었습니다. 202회 월례회의록에는 어느 회의에서나 보게 되는 ‘시간 엄수’라는 말이 나와 미소를 짓게 합니다. 또 어느 회의에선 시위를 위한 현수막과 전단 배포의 역할분담을 토론합니다.

 

‘존경’이란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생산공동체의 힘이 느껴집니다. 한살림의 뿌리가 눈에 보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쌍호공동체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故박재일 회장님의 쌍호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생각납니다. 1985년에 간행된 『공동체문화』라는 잡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쌍호공동체는 생활공동체운동으로 상당히 성공을 했고.... 실제로 그 공동체가 잘 유지되는 이유를 자체 내에서 이렇게 원인 분석을 하더군요. 첫째는 그 마을에서 모든 사람이 원칙적으로 농민회 교육을 받는다는 점...”

 

쌍호공동체의 미덕은 생산출하 조직을 넘어서 스스로 삶의 대안이 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삶의 주체가 되어, 생산과정뿐 아니라 대외적인 활동과 학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른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쌍호공동체는 ‘소농’ 공동체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마을과 따로 놀지 않습니다. 공장식 농업, 장사꾼 농업을 지금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과의 관계를 살리는 ‘유기’농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영성으로 하나가 됩니다.

 

 

새로운 한살림 협동공동체를 향하여

 

쌍호공동체뿐만이 아닙니다. 「살림의 농사꾼 땀과 삶의 기록」을 읽으며 한살림 농민 생산자의 땀과 삶, 그리고 꿈을 생각합니다. 강수옥 님이 19살부터 35살까지 썼다는 일기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정광영 님의 농사일지에는 쌍호공동체의 월례회의록에 버금가는 절절한 삶의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록은 사라지고 없지만, 흙공동체에서 우렁이농법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농업과 한살림 마음을 지켜온 최재명 님의 올곧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쌍호공동체의 ‘양파’가 그렇듯이, 강수옥 님의 ‘딸기’와 제주도 이영민 님의 ‘감귤’과 최재명님의 ‘쌀’ 안에 한살림 생산자 공동체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열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했고 사람도 많이 바뀌었으니 공동체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협동농장을 넘어서는 한살림의 철학이 잘 살아나는 ‘새로운 공동체상’이 정립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살림의 선배님들의 꿈은 분명 ‘봉건적’ 공동체와 ‘근대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수직적 위계로부터 자유롭고 여성이 주인공이 되며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새로운 협동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3-40여 년 전 한살림운동의 선배님들이 제안한 ‘협동적 생존’과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협동’농장과 ‘협업’농장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제 숙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두레와 품앗이는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한살림, 혹은 공생(共生)의 참뜻을 깊이깊이 생각할 때입니다.

 

새로운 방식의 협동공동체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까요? 415번째 월례회의의 깊은 뿌리에서 자라난 새로운 공동체의 가지와 잎사귀와 열매는 어떤 모양일까요? 가톨릭농민회의 지도신부이셨던 故정호경 신부님의 말씀처럼 농촌과 도시에서 “겨자씨처럼 작게 누룩처럼 확산되게” 생활/생산 공동체를 만들고 또 연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도시의 소비자들은 공동체공급이 사라진 이후 마을모임과 지역살림운동을 통해 생활공동체를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촌 생산지에서도 협동공동체에 대한 오래된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 한살림 생산자들의 기초조직인 생산공동체가 있습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에서는 ‘생산공동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살림 생산공동체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운영을 통해 농산물의 생산과 출하를 책임지고, 지역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한살림운동을 실천합니다.

 

・한살림 생산공동체는 매월 월례회의를 통해 이웃과 마을을 돌아보고, 생명농업과 한살림운동의 실천을 다짐합니다.

 

・한살림 생산공동체는 생산의 기회를 고루 나누어 갖습니다. 또한 전통농업을 지키고,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살림 생산공동체는 농업을 지키고 식량자급을 추구합니다. 이웃과 마을을 살려 공동체성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월례회의를 통해 나와 우리, 한살림과 농업살림을 성찰합니다. 그리고 한살림운동의 실천적 중심이 되고자 합니다.

 

꼭 같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소속으로 이미 98개의 생산공동체가 있습니다. 올해도 평창 선애골 공동체, 무안 생기찬 공동체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회장을 지낸 故최재두 님이 어느 소식지에 쓴 글이 생각납니다. “벌레 우리 논으로 다 날아온다.” 거기 한살림 생산공동체가 있습니다. 온 세상을 살리는 겨자씨와 누룩 같은 생명공동체가 있습니다.

 

 

 

※사족1: 이번에는 한살림운동 초기 생산공동체의 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아산, 홍천, 괴산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순환)농업 모델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사족2: 「한살림 20년, 햇살과 바람 정직한 땀의 기록」에도 원주의 지역사회개발운동과 더불어 가톨릭농민회가 한살림운동의 뿌리라는 점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한살림의 탄생과 성장에 가톨릭이 그만큼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생산자조직의 경우에는 지금도 그 자취가 뚜렷합니다. 기억하고 감사하고, 또 형제‧자매애로써 연대하고 교류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정세와 동향 <모심의 눈 살림의 길> 제 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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