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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영혼이 있는 협동조합
2012-10-15 16:46:00

한살림, 영혼이 있는 협동조합

- ‘생명의 눈’으로 본 한살림 협동운동의 특징 -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협동조합이 뜨고 있습니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만큼은 아니지만 방방곡곡 요란합니다. 현대 한국협동운동의 선구자인 한살림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살림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가 던져지기도 합니다. “왜 ‘한살림생협’ 아니라 그냥 ‘한살림’이라고만 부르나요? 생협이 아니었던가요?” 협동조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하게 묻습니다. “한살림은 ‘협동’운동을 하는 건가요? ‘협동조합’운동을 하는 건가요?” 이런 질문도 들립니다. “한살림은 생명운동을 표방하고 있는데 협동조합과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한살림 협동운동의 성격과 특징, 즉 ‘한살림스타일‘을 묻고 있는 셈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한살림운동은 곧 협동운동입니다. ‘한살림’이라는 말 자체가 협동을 의미합니다. “함께 하는 살림살이.” 그리고 전국 20개 지역조직의 법인격은 협동조합법인입니다(생산자공동체의 조직형태는 다양합니다만.).

 

그런데 한살림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공동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보통의 협동조합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 ‘경제적 편익’의 관점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특별한 어떤 것이 있습니다.

 

 

한살림스타일 ? !

 

한살림스타일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질문과 답변을 거듭하며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오늘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해야 할까?

왜 직거래를 유난히 앞세울까?

왜 처음부터 유기농이었을까?

왜 협동조합을 강조하지 않을까?

왜 거창하게 문명을 이야기할까?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한살림의 전사(前史)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한살림의 모습 아래 깊은 땅 속 굵고 단단한 뿌리가 있을 터이니까요.

 

널리 알려져 있듯이 1985년에 원주의 소비자협동조합이, 1986년 서울에 한살림농산이 설립되기 훨씬 전, 1970년대 강원도에서는 다양한 협동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故장일순 선생님과 故박재일 회장님, 그리고 무위당만인회 김영주 회장님을 비롯한 한살림운동의 대선배님들은 광산지역과 농촌지역에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이용협동, 생산협동, 구매협동 등 여러 가지 협동사업을 실험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신용협동조합을 빼놓고는 실패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주요 원인은 탄광산업의 쇠퇴, 이농현상, 정치적 탄압 등이었지만, 경제적 편익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 협동운동의 한계도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새로운 탐색의 결과로 나온 문건이 1982년에 발표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었습니다. ‘원주보고서’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이 문건에서 선배님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유물론적 세계관, 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영성을 지닌 살아있는 한 생명임을 천명합니다. 그리고 전통적 사회운동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을 선언합니다.

 

‘하나로 연결된 생명세계’라는 깨달음은 ‘협동적 생존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끼리끼리 협동’에서 ‘서로서로 협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요새 말하는 협동조합 간 협동을 넘어서는 협동운동의 차원변화가 시작됩니다. 농민은 농민끼리 광부는 광부끼리, 소비자운동 따로 생산자운동 따로, 각 조합의 경제적 편익을 위해 경쟁하는 협동운동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살리는 협동운동의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의 협동은 전 세계 모든 협동운동가들의 오랜 이상(理想)이었습니다. 그 이상이 30여 년 전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실현된 것입니다.(최근의 협동조합 언어로 말하면 사회적 협동조합, 연대협동조합, 다중이해자 협동조합인 셈입니다.)

 

 

한살림, 새로운 협동을 말하다

 

이렇듯 이 세상과 사회운동과 협동조합을 생명의 눈으로 성찰하게 되면서 협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한살림스타일’의 협동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생산·소비 협동의 새로운 길을 엽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살림운동은 끼리끼리 협동에서 서로서로 협동으로, 협동의 확장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한살림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생산·소비 공동참여형 협동조합’인 셈입니다.

 

둘째, 호혜적 도농직거래로 상품시장의 논리를 넘어섭니다.

“도농직거래와 협동조합을 통해서 시장경쟁원리를 극복한다.” 초대 한살림생산자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故김영원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직거래의 심화입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생활용품을 값싸게 가져와 탄광지역에 파는 것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관점으로 본 직거래의 진정한 의미는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교환’을 넘어서 마음을 주고받는 인격적 ‘호혜’의 관계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사고팔기(교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라면 주고받기(호혜)는 공동체의 원리입니다. 비록 화폐를 매개로 하기는 하지만,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마음으로 ‘밥/쌀’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중간마진의 배제를 통한 가격인하라는 경제효과를 넘어서, 기존 쌀 가격의 두 배를 주고서라도 밥상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고 농민의 목숨과 땅을 살리겠다는 여성 소비자의 깊은 마음이 도농직거래의 차원을 바꾸었습니다.

 

셋째, 유기농업, 생명의 먹을거리입니다.

생명의 눈, 모심의 눈을 뜨게 되면서 ‘밥/쌀’ 안에 들어있는 농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농약중독으로 죽어가는 농민들을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먹을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도시소비자에게 줄 쌀에도 절대 농약을 칠 수가 없습니다. 한살림의 무농약·유기 생산정책은 필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생명의 먹을거리는 비료와 농약을 고리로 한국 농업을 장악한 지구식량시스템을 넘어서는 변혁의 무기가 됩니다.

 

넷째, 다양한 협동조직을 넘나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와 두레와 같은 전통적인 협동조직과 품앗이와 같은 협동시스템이 있었습니다만, 서유럽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생활을 함께 하는 협동공동체 코뮨,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공제(共濟, mutual aid)조직, 노동자자주관리조직 등등. 협동조합(cooperative)도 여러 가지 협동조직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생명세계의 그것처럼 협동조직도 시대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살림의 입장에선 경제적 편익 중심의 전통적 협동조직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형을 탐색해야 했습니다. 한살림 협동운동 과정에서 크게 세 번에 걸친 조직형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직거래를 시작할 때에는 <한살림농산>이라는 조그만 가게로 문을 열었다가, 1988년 서울지역에서는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과 활동을 하게 됩니다(하지만 관련법이 없어 공식적인 협동조합 법인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단법인 소협중앙회 지회로써 매우 기형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1994년 <사단법인 한살림>으로 조직형태를 전환하게 됩니다. 이때의 롤 모델은 일본의 도농직거래 비영리법인인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비영리법인 안에 주식회사 형태의 물류회사를 두어 회원제 직거래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협동조합 법인이 아닌 협동운동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999년 생협법이 제정된 후 2002년 <한살림고양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면서 생협 법인 시대가 시작됩니다.

 

요컨대 한살림 협동운동은 안팎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여러 조직형태를 넘나들었던 것입니다. 향후 한국 협동운동의 전망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직/법인 형태는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오히려 몸과 같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때문에 한번 조직형태가 만들어지면 환골탈태 없이는 바뀌기 어렵습니다. 조직형태를 바꾸는 것이 새로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는 게 사회운동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다섯째, 문명사적 관점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과거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모순의 근본원인이 경제체제에 있다고 보았고,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정권교체를 통해 삶과 사회의 변화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는 산업·자본주의 문명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태계를 비롯한 인간 이외의 존재를 약탈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문명, 기후붕괴와 핵기술로 지구생명공동체의 절멸을 재촉하는 문명, 삶의 중심가치가 화폐·물질로 내면화된 문명에서는 절망뿐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 즉 전면적인 전환만이 희망입니다. 문명사적 전환기 변혁적 협동운동을 탐색해야 할 일입니다. 그 변혁의 동력은 더 이상 생산력이나 계급투쟁이 아닙니다. 변혁적 협동운동의 새로운 동력은 호혜의 마음, 생명의 마음, 모심의 마음 아닐까요?

 

 

영혼이 있는 협동조합을 위하여

 

한살림 협동운동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 혹은 특징을 관통하는 열쇠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살아있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세계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권력자나 백성이나,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나아가 풀과 나무와 돌멩이마저도 하늘같은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밥 한 그릇 안에 생명세계가 보이고 단호박 한 알에서 농민들의 시름을 느낍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여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 안에 생명과 생명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이끌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윤리적 소비’도 훌륭합니다만, 한살림은 진정 ‘영혼이 있는 협동조합’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물론 한살림에도 아쉬운 점도 있고 바꿔야 할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은 한살림 협동운동에 대한 평가보다는 ‘생명’의 눈으로 한살림 협동운동이 가진 의미를 성찰하고 확인해 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정세와동향 <모심의 눈 살림의 길> 제4호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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