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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놀이가 밥이다 (편해문)
2014-11-07 14:44:00

 

* <모심과 살림> 0호(2012)에 실린 글입니다. 

 

놀이가 밥이다

어린이에게 ‘놀이밥’ 먹이기 운동을 제안하며

 

글 편해문 (놀이운동가)

 

 

아이들은 왜 돌아다닐까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약을 팔고 그 약을 받아 먹이는 일이 성찰 없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소리 질러야 한다. 지르고 싶은 만큼 질러야 한다. 울어야 한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뛰어야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녀야 그게 아이다. 나아가 구르고 뒹굴고 물어뜯고 때로 비명을 지르며 이 시기를 오래도록 보내야 한다.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땅바닥을 박박 기고 굴러다녀야 한다. 이 어린아이들 아직 사람 아니다. 짐승에 가깝다. 짐승이 울부짖고 뛰고 물어뜯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짐승이 사람 되려면 놀아야 한다.

하루를 이렇게 보낸 아이들은 밤 9시를 넘기지 못하고 졸음에 겨워 퍽퍽 나가떨어진다. 밤 9시 전에 곯아떨어져야 아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끄럽다며 소리도 못 지르게 하고, 뛰지도 못하게 하고, 울지도 못하게 하고, 뛰어내리거나 구르지도 못하게 한다. 얌전히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란다. 그래서 세상에 놀지 못해, 놀 수 없어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마음 한구석에 놀지 못해 답답하기만 한 심정을 애써 꾹꾹 눌러보지만,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고 아이들 마음속에 응어리로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이렇듯 어려서 마음껏 놀지 못한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은 가만히 좀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가 끝나고 이런저런 학원에 가거라 그러면 잘 간다. 그러나 새겨들으시라.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때 누구나 가지고 나오는 100이라는 소리 지르기, 달음박질, 뛰어내리기, 구르기, 울기, 물어뜯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그대로 꾹꾹 눌러 감추는 것임을 말이다. 소리도 못 지르고 울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초등 고학년이 되도록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아이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아이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조용히 앉아 책도 잠시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좀 들을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는데 오래도록 꾹꾹 눌러놓았던 것들이 마구 저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와 아이는 가만히 앉아 견딜 수 없다. 아나스타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틀로 아이를 몰아넣으면서 어찌 그 애가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부모들은 모두 자기 아이들이 커서 행복하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커서 다 다른 사람과 똑같아져. 그리 행복하지 않아.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어……. . 블라지미르, 주변을 더 주의 깊게 살펴봐. 풀, 나무, 꽃들이 자라지. 여기에 물 주는 시간을 미리 날짜 별로 시간 별로 정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누군가가 물 주는 날짜와 시간을 지혜롭게 미리 처방했다 해서, 당신은 꽃에 물을 주지는 않겠지……. 그런데, 실상은, 실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시스템이 어떤 것이든 그건 단지 시스템일 뿐이야, 그건 아직 어린 사람한테서 가슴, 마음을 빼앗아 항상 자기한테 복종시키려고 할 뿐이야. 아이를 다른 사람들처럼 조정하기 편한 사람으로 성장토록 하는 거야. 사람의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못하도록, 하느님이 내리신 마음을 가진 사람이 활짝 피지 못하도록, 그렇게 오랜 세월 지속되고 있어, 온 우주를 호령할 그가!”

 

아이들은 마침내 돌아다닌다. 소리 지른다. 운다. 마구 뛰어다닌다. 아니면 생기라고는 없는 아주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간다. 그러니까 마구 뛰는 아이와 무기력한 아이는 사실 같은 모습이다. 마구 뛰거나 무기력한 아이들 사이에 있어야 할 명랑한 아이를 만나는 일이 참 어렵다. 아이들은 얼굴에 명랑이라는 두 글자가 딱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이렇게 뒤늦게나마 오래도록 속으로 억눌렀던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세상에 꺼내 보이면 바로 약을 권하고 마침내 먹인다.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마치 아토피에 바르는 연고처럼 한때 상처를 덮을 뿐이다. 그리고 이 약에 끊임없이 기대게 하여 남은 삶을 약에 붙잡혀 살도록 이끈다. 이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무서운 상술에 아이들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이 무슨 몹쓸 짓들인가.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같은 각종 장애 이름표가 남발되고 있다. 여러 가지 까닭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아이들 심리 연구의 영역 확대와 제약회사의 상술 그리고 부모들의 동조에 힘입어 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말 하기, 듣기, 읽기, 쓰기, 셈, 학습, 감각, 운동, 주의력장애의 직접 원인과 맞닥뜨리는 것에는 매우 불편해하고 서로 쉬쉬하는 것 같다. 이런 장애의 종류는 새롭게 개발되어 가짓수를 늘려갈 것이며 그에 따른 비용 또한 늘어갈 것이다. 많은 아이가 병원을 들락거리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누가 고통 속에서 해맬 것이며 이득을 볼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왜 아이들이 ADHD로 가는 것일까. 많은 원인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아이들 처지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기 어렵다. ADHD, 한마디로 아이들도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려니 죽을 것 같아 마구 돌아다니고 던지고 욕하는 거다. 주의력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극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주의력이 이토록 떨어진 것일까. 아이들의 주의력이 떨어지게 되는 데는 오랜 내력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이 오랫동안 제 마음대로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과 아이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주의력은 놀이에 흠뻑 빠져 놀아야 생긴다는 상식을 거부하니 답답하다. 다시 말해 아이가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놀 수 없었다는 한 증거라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진정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다. 의사들아! 부모들아! 교사들아! 병 주고 약을 주는 어른들아! 아이들에게 약을 주기에 앞서 제발 아이들을 놀게 놔둬라.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보지 않고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까닭만으로 그 어린 생명의 기운을 한순간에 꺾는 약을 먹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따져보아야 한다. 왜 다 큰 아이들이 교실과 집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소리 지르고 울고 기운 없어 하는지 말이다. 오로지 할 일이라고는 노는 일밖에 없었던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고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문 앞에서부터 빼돌려 이상한 곳에 꼼짝 못하게 가두는 일을 도대체 몇 년씩이나 공모했는지 말이다. ADHD 아이를 둔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기려고 이런 험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ADHD 아이를 둔 부모들이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했고, 학습을 지나치게 강요한 결과가 ADHD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엇나간 이야기로 지금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부모 가슴에 돌을 하나 더 얹으려고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지금 무엇엔가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 증세와 처방에 빠지기보다는 아이의 살아온 내력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는 데 다름 아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그간 내가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놀이 결핍이 주의력 결핍과 매우 관련이 크다는 사실이다. 오늘 고통받고 있는 아이의 살아온 내력을 살펴볼 때 가장 크게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은 놀이와 자유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을 나도 잘 안다. 놀 동무와 놀 틈과 놀 터가 허락되어도 쉽게 놀이에 끼지 못해 힘겨워하는 아이가 있으며 지나친 충동으로 동무들이 피하기만 해 놀이 속에서 온통 상처뿐인 아이도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더욱 앞선 아이의 놀이 내력을 살펴야 오늘 아이를 읽고 진정 도울 수 있다.

 

 

아이들은 공격받고 있다

 

다행히 약을 먹지 않는 아이들은 어떤가. 이런저런 곳을 옮겨 다니며 아이들은 요령을 익히고 눈치를 보고 결국 자기만 아는 아이들이 되어간다. 주변에 다 자란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아이들을 웃자라게 해서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또한 좋지 않다. 환경호르몬, 중금속, 식품첨가물, 설탕, 유전자조작 식품, 방사선을 쬔 식품 등등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들이 온통 아이들의 신경계통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어 아이들은 더욱 가만히 있지 못한다. 소아암과 당뇨가 아이들에게서 심심찮게 발견되고 아토피, 중이염, 천식, 비염을 돌아가며 달고 산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도 한창 어울려 놀 때는 가려움을 덜 느낀다. 놀아야 이런 것들을 이겨낼 힘을 기를 수 있는데, 약물에 기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어떤 상황에도 약물은 아이들과 멀리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어 생긴다는 소아비만 또한 놀이를 아이들 가까이에서 내몰아 생긴 것이라면 지나친 주장일까? 그렇지 않다. 더욱 기막힌 것은 우리 사회 빈곤층 아이들 또한 비만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빈곤층 아이들이 이런저런 놀이의 접근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한 시간에 1,000원을 들고 놀 수 있는 시설이 PC방 말고 어디 있다는 말인가. 있는 집 아이들은 수영도 하고 유소년 스포츠클럽에 가서 몸이라도 움직이지만, 빈곤층 아이들한테는 어림없는 일이다. 또한, 빈곤층 아이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매우 걱정할 수준이다.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전은 빈곤층 아이들을 더욱 모질게 파고든다. 참 기막힌 현실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놀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가꿔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모두 다 뇌에 미쳐 머리가 좋아진다면 뭐든지 하는 어른들을 볼 때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왜들 모를까. 뇌가 아이들 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몸이 바르게 만들어져야 뇌 또한 건강해진다는 것을 왜 모를까. 감히 말하건대,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이들을 진단하고 약을 먹이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이 기막힌 이름은 아이들이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이 아니라 세상이 아이들의 타고난 생명의 기운을 학대해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보여주는 마지막 판결의 죄목으로 읽혀야 마땅하다.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다.

 

 

오늘 한 그릇의 ‘놀이밥’을 먹이자

 

어른이고 아이고 많이 놀고 바르게 먹고 더 자야 낫는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잘 놀고 더 자고 바르게 먹이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못 놀고 엉망으로 먹고 잠도 자지 않는 것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 말자. 나라와 교육과 피리 부는 어른들이 모두 나서 아이들을 멸종시키겠다는 것이 분명한 현실을 보자. 그리고 멸종하는 아이들에게 오늘 따듯한 한 그릇의 ‘놀이밥’을 퍼주자. 그래서 아이가 밖에서 노는 것도 재미있고 게임도 재미있다는 것을 몸으로 균형 잡게 해주자. 게임과 놀이의 균형을 아이 스스로 잡을 수 있도록 돕자. 게임에 관해 어떠한 강제도 아이들에게는 무용하다. 아이들은 이제 들고다니며 게임을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밖에서 놀면서 ‘놀이밥’을 꼬박꼬박 하루에 서너 시간씩 놀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2시간 이상을 못 넘긴다. 왜? 좀이 쑤셔 못한다. 그렇지만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문 앞에서부터 빼돌렸던 아이들은 이틀을 컴퓨터 앞에 앉혀놔도 아무런 불편을 모른다. 몸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좀비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좀이 쑤셔 친구를 불러내 인라인스케이트라도 타는 아이들을 만들 것인지는 우리한테 달려있다. 아이들을 산 몸으로 만들 것인지 살아도 죽은 몸을 만들 것인지 우리한테 달려있다. 부모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쥐가 나면 움직이고 좀이 쑤시면 벌떡 일어나는 살아있는 몸 말이다.

 

 

게임은 중독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아빠와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오르는 것을 즐거워하던 아이가 있었다. 엄마 방, 동생과 누나 방을 돌아다니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거워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가 게임을 만나고부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더니 문을 열지 않는다. 게임을 만나고 난 뒤로 이런저런 일에 시큰둥해지더니 곧 사람살이의 이런저런 것에 관심을 끊는다.

컴퓨터 게임이 지닌 선정성, 폭력성을 따져 아이들에게 해로움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소용이 없다. 선정성과 폭력성을 앞세우는 일은 게임의 해악이 무엇인지 모르게 물을 타는 것이다. 게임이 무엇이 무서운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정말 무서운 것은 게임에 가까워질수록 동무와 형제와 부모 같은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 삶이라는 것, 사랑한다는 것, 가슴 아프다는 것, 힘들다는 것, 눈물겹다는 것, 관계라는 것에서 멀어지고 그것이 무엇인지 점점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무엇으로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간 아이를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야 할 아이들을 온갖 중독으로 물들게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아이들에게 게임은 술과 담배 그리고 약물보다 해로움이 결코 적지 않다. 차라리 게임보다 술과 담배와 약물이 덜 해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술과 담배와 약물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 말릴 수 있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이들이 하는 게임 대부분은 무언가를 죽여야 점수가 올라가는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다. 좋지 않은 일을 하면 할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이 극악한 게임의 원리가 아이들에게 해가 없다고 한다면 그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게임은 점점 많은 생명을 무작위로 죽이는 대량 살상으로 옮아간다. 마침내 게임은 학살로 치닫는다. 이른바 ‘멀티 샷’이다. 게임은 미군들의 모병에 적극 활용되고 있고 이것은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 본토 벙커에서 옆 전우와 커피를 마시며 무인 전투기에 실린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미사일을 화면에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게임을 하듯 퍼붓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옛날에는 전쟁 무기들이 아이들 장난감 개발의 원천으로 쓰였지만, 이제는 거꾸로 뒤집혀 아이들 게임에서 출발한 기술이 전쟁의 도구로 옮아가고 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과 같은 ‘중독’에 빠지지 않는 길은 없을까. 있다. 어려서부터 밖에서 몸으로 놀았던 아이들은 게임중독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밖에서 땀 흘리며 노는 재미를 한껏 몸에 새겼던 아이들은 그 이후에 만난 게임과 같은 것들을 이 세상의 많은 놀이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그러니 만약 아이가 게임에 깊이 빠졌다면 그 아이는 평소에 놀지 못했거나 부모들이 놀지 못하게 하였던 아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 유난히 게임중독 증세를 많이 보이는 우리나라 현실은 거꾸로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놀이를 막고 있는지 반증한다.

게임중독의 치료와 예방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왜냐하면, 게임이라는 것은 본디 만들어질 때부터 중독을 전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게임으로 말미암은 천문학적인 이득은 누구에게로 가며 또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해 쏟아 붓는 비용은 누가 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이중으로 돈을 빼앗기고 있다. 게임을 하느라 돈 쓰고 치료받느라 또 돈을 쓴다. 목소리를 높여 게임중독과 예방과 재활의 모든 비용을 아이들의 영혼을 부수는 돈벌이에 몰두하고 있는 천박한 게임업자들에게 물려야 마땅하다. 이것이 상식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한민국은 문화관광부와 대통령이 게임을 성장산업의 핵심으로 낙점하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몰아준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이름으로 우수게임을 뽑아 상을 주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나라와 대통령이 미치지 않고야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은 미디어와 게임에 푹 삶긴다. 그러나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에 대한 어떤 대책도 문화관광부와 대통령은 내놓지 않는다. 이건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아이들을 중독에 빠트려 돈을 벌려는 게임 개발업자들을 장려하고 대통령이 상까지 주지만 그 피해자인 아이들에 관한 관심은 전혀 없는 나라를 어떻게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아이들의 영혼을 게임에 팔아먹고 게임 산업 진흥에 자축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이다. 문화산업은 우아한 사기이다.

 

 

어린이 생명운동은 놀이로부터

 

지금은 아이들이 멸종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때이며 그렇게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해 무자비한 비판과 싸움을 해야 할 때이다. 어린이 목숨을 살릴 어린이 생명운동을 시작하며 이 땅의 아이 가진 부모와 교사들에게 10가지를 제안한다. 오늘을 사는 부모님들이 아이가 무언가로 힘들어할 때 아래 써놓은 10가지를 속으로 하나씩 천천히 읽었으면 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폭포처럼 맞고 자라야 한다. 아이들한테 놀이는 생명의 밥이다. 밥 먹이자. 아이들한테 생명의 놀이밥을 먹이자는 것이 바로 어린이 생명운동의 씨앗이고 줄기고 꽃이고 열매이다. 놀이를 살려 아이를 살리는 어린이 생명놀이운동을 감히 제안하며 여러 해 고민한 10가지 실천 강령을 내놓는다. 늘 아이들 가까이 두고 마음을 다잡는 데 쓰였으면 한다. 아이들은 놀아야 자고 놀아야 먹는다. 아이들 문제는 놀아야 풀린다. 이게 순리다.

 

1. 아이들이 나가 놀 수 있도록 돕습니다.

2. 아이들이 놀 때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3. 함께 놀 수 있는 이웃 동무를 찾습니다.

4. 장난감을 사주기보다는 놀잇감을 만날 수 있도록 합니다.

5. 하루에 서너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입니다.

6. 놀아주기보다는 놉니다.

7. 공부나 학습, 창의력 따위를 놀이와 연관 짓지 않습니다.

8.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곳을 함께 가꿉니다.

9. 아이들에게 한가한 시간을 줍니다.

10. 해방된 부모라야 아이들 자유놀이를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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