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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협동조합 붐이 끝난 뒤 (하만조)
2014-11-07 14:51:00

 

협동조합 붐이 끝난 뒤

: 베네수엘라의 경험을 중심으로

 

글 하만조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만에 약 3천 개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곳곳에서 급속한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높다. 우리보다 10년 앞서 협동조합 붐을 경험한 베네수엘라에서는 약 30만 개 협동조합이 설립된 바 있다. 조건은 다르지만, 앞선 경험을 돌아봄으로써 현재 일고 있는 협동조합 붐에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은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건너온 예수회 사제들에 의해 극빈자를 구제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1950년대 히메네스 독재 시대에 대부분 사라졌다가, 1958년 히메네스 퇴진과 함께 협동조합운동이 다시 시작되어 1966년에는 새로운 협동조합법이 통과되었다. 원로 협동조합 운동가인 루이 델가도Luis Delgado Bello에 따르면, 당시 협동조합 운동의 동력은 미국으로부터 왔다. 미국은 쿠바 혁명의 승리가 남미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게릴라나 혁명적 운동 말고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협동조합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펴나갔다. 이때 설립된 협동조합은 ‘전통적 협동조합’이라 불리는데, 직업이나 연합체로 조직된 과거 협동조합과 달리 지역을 중심으로 하며 주로 소비, 저축, 대부, 장례, 운송, 건강 분야에서 설립됐다. 당시에는 협동조합을 등록하려면 1년을 대기해야 했고, 85%가량의 협동조합이 포함되어 있는 CECONAVE(National Venezuelan Cooperative Central)의 구성원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자율성이 적었다.

 

 

협동조합 전성시대

 

1998년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듬해 협동조합을 “촉진하고 보호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년 뒤인 2001년에는 협동조합연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노동자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고, 국가 차원에서 자금, 제도, 교육, 구매 등 협동조합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차베스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협동조합 설립을 장려했고, 인민경제부는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자금 대출을 용이하게 했다. “새로운 협동조합은 사회 통합을 위해 국가에 고용된 도구”이자 사회주의 이행의 징검다리가 되었고, 전통적 협동조합들은 새로운 협동조합들이 정치적 아젠다에 이용되고 준비 부족과 온정적 지원으로 부패하여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1999년 헌법 개정 당시 762개였던 협동조합은 2010년에 306,792개로 40배가량 늘었고, 특히 관광, 사무, 청소, 산업 유지 등 서비스 분야(61.3%)와 농업, 축산, 어업, 수공업 등 생산 분야(27.0%)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협동조합 붐’의 배경에는 20여 년에 걸친 경기 침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극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1979년과 1999년 사이 1인당 소득수준은 27% 하락했고, 빈곤층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증가해 국민 절반가량(47%)이 빈곤층이었다. 1980년과 1999년 사이 비공식부문의 고용은 34.5%에서 53%로, 실업률은 5.9%에서 14.5%로 크게 늘었다. 따라서 불안정한 삶에 놓인 대다수 빈곤층에게 정부의 협동조합 설립 지원 정책은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되었다.

정부는 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은행법을 개정, 모든 은행이 신용 자산의 최소 3%를 소액 금융 프로젝트에 할당하게 했다. 그리고 ‘인민은행’, ‘여성은행’, ‘소액 금융 발전을 위한 기금’ 등 빈민을 위한 다양한 소액 금융 프로그램을 만들어, 2005년에는 총 5억 달러의 미시 금융을 제공했다. 또 2001년에 개정된 토지법은 라티푼디오와 같은 대토지 소유제를 개혁하고 “쓰지 않는” 땅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했다. 2009년까지 정부는 660만 에이커의 땅을 매입해 협동조합에 속한 18만 세대에게 저리나 무이자 대출로 분배했다. 2004년부터는 다양한 미션 프로그램이 시행됐는데, 그 중 하나인 ‘Vuelvan Caras’를 통해 학생들에게 기술과 농업, 관광, 건설 교육을 시행하고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67만 명이 이곳을 졸업했고, 1만 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농업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협동조합 설립으로 2007년 농업생산량은 1998년 대비 24% 증가했고, 곡물 자급률도 30% 미만에서 57%로 상승했다. 협동조합은 사회의 다양한 지표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를 넘어 ‘집단주의’ 정신을 널리 퍼뜨림으로서 의식을 바꾸는 데에도 기여했다. 나아가 사적 부문의 집단적 소유 형태인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처럼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생산기업’으로 이행하도록 장려함으로써 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유령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이기주의

 

제도적 지원에 힘입어 급속하게 팽창한 협동조합은 2006년경 등록 건수가 14만에 달했다. 그러나 인민경제부는 오직 7만4천 개만이 실제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고, 2007년에는 4만 8천 곳만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엘르너Steve Ellner는 “많은 협동조합들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일부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며 조합원들이 자금을 대부 받거나 계약 선급금을 받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유령 협동조합이 늘어나는 데 대한 정부의 대응은 극단적이었다. 협동조합들은 분기별로 책임 이행 증서와 회계 감사 자료를 보고해야 했고, 문서 업무에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 동시에 정부는 조합원의 ‘사회의식 부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문화적 전환’을 요청하는 등 협동조합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지만, 규정을 이행하지 못한 협동조합 구성원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협동조합의 숫자는 2배 이상 늘었지만, 유령 협동조합 또한 늘어났다. 엘비 몬싼트는 2001년 법률 개정 당시 1045개였던 협동조합 수가 2008년 약 26만8천 개로 늘어났는데 이 중 23%인 약 6만8천 곳만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고, 오스카 바스티타는 2010년에 등록된 협동조합이 306,792곳이지만, 실제 운영하는 곳은 단 10%인 3만여 개 수준이라며, “베네수엘라가 협동조합의 무덤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유령 협동조합을 비롯한 협동조합의 실패에 대해서 엘비 몬싼트는 첫째, 조합원 참여가 없고 이사장이나 부이사장 등 소수의 이익만 반영하는 수직적 구조를 갖춘 협동조합에 정부의 재정 지원이 주어졌다. 둘째, 협동조합 설립 시 협동조합적 교육과 문화적 소양을 가진 협동조합주의자가 부재하여, 이들 사업체는 자본주의 사업체와 다름없었다며, 이들이 협동조합에 제공되는 세금 면제 혜택, 저이자 또는 무이자 자금 대출, 정부 우선 구매를 활용하기 위해 ‘유사 협동조합’을 차렸다고 지적했다. 국가협동조합감독원(SUNACOOP)의 전 감독관 카를로스 몰리나Carlos Molina는 감사와 견제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협동조합을 감사하는 기구와 협동조합인을 위한 지원 및 교육훈련 기구가 통합되어 있어서 온정적인 정책”이 시행됐고, “SUNACOOP이 감독과 감사를 했어야 했지만, 조직이 열악한 상황이었고, 급속히 늘어난 수십만 개의 협동조합을 모두 실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개별 협동조합들에도 책임이 있었다. 2005년 SUNACOOP은 3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비정기적인 감사를 실시했는데, 50%가 회계 처리와 행정상의 오류를 범했다. 인민경제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프로그램과 교육을 조직했지만 참여자는 소수였다. 몰리나는 “개별 협동조합들이 대부분 지역, 지방, 국가, 국제 수준의 어떤 연합체에도 소속되지 않고 운영되어 견제 장치가 부재했다”고 평가하며, 근본적으로 “정부의 급속한 협동조합 촉진 정책”을 문제로 꼽았다.

차베스 정부의 협동조합 지원의 주요 목적은 협동조합이 집단의 사적 이익에서 머물지 않고, 공동체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네이로 하네커에 따르면, 다수의 협동조합이 주변 공동체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순수입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기업과 같이 행동했고, 일부 협동조합은 생산물이 필요한 지역시장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에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다른 나라로 수출했다. 또 빈곤층을 대상으로 20~50% 저렴하게 식료품을 판매하는 ‘메르칼(Mercal)’을 통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자본주의 배급업자와 중개상에게 판매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다수의 협동조합은 소득 감소를 우려해 새로운 조합원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거나, 조합원이 되는 최소한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도록 6개월 미만으로 고용했다. 그에 따라 대다수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증가하기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일부 협동조합들은 모든 조세를 면제받고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대부를 받았음에도, 소속 조합원들 스스로에게 고용을 제공함으로써 충분히 지역공동체에 기여했다는 이유를 들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이후에도 납세를 거부했다.

 

 

남겨진 협동조합의 과제

 

SUNACOOP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등록된 협동조합 약 30만 곳 중 실제 운영 중인 협동조합은 약 7만 개다. 혹자는 이의 절반 정도만이 운영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남미의 그 어떤 나라들보다 많은 수의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이는 자본주의 경제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대안적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엘비 몬싼트는 2008년 당시 실제로 운영되는 약 6만8천 개의 협동조합을 여섯 가지로 구분했는데, 정부나 외부의 지원 없이 설립된 ‘자발적 협동조합’(44%), ‘지역 은행’(34%), ‘정부의 직접 지원에 의해 설립된 협동조합’.(14%), ‘공동 경영 및 연합회’(5%), ‘신협’(1%), ‘전통 협동조합’(1%)이 그것이다. 이들 협동조합에 속한 조합원을 보면, ‘전통 협동조합’(68만 명), ‘자발적 협동조합’(6만2천 명), ‘정부의 직접 지원에 의해 설립된 협동조합’(5만2천 명), ‘공동 경영 및 연합회’(4만8천 명), ‘혁신적 협동조합’.(3만1천 명) 순이었다. 결국, 협동조합 붐이 지나간 뒤에는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전통적 협동조합과 자발적 협동조합이 규모를 확대했다. 새로운 형태인 공동 경영과 연합체, 혁신적 협동조합 등 대안적 협동조합도 널리 확산됐다. 정부 투자는 직접 목적보다는 간접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2007년, 협동조합 붐이 서서히 걷혀가는 시기에, 알베르토 가르시아는 기고를 통해 베네수엘라 협동조합의 여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대부분 협동조합은 규모가 작고 경영 및 자금 동원에 취약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통로가 부재하다. 둘째, ‘진정한’ 협동조합이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은 소수 관리자의 이익에 복무하며 노동 조건을 저하시켰다. 많은 경우에 협동조합은 정부 대리인으로 역할 했고, 공적 재원은 이들 취약한 협동조합에 낭비됐다. 셋째, 협동조합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른바 협동조합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많은 협동조합이 실패한 것은 경제적 능력 부족뿐 아니라, 사회적 결속과 노동조합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넷째, 협동조합의 자립심을 고취해야 한다. 정부의 공적 자금 지원은 협동조합의 정부 의존성을 높임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 기여와 주인의식을 감소시켰다. 반면 정책의 계획이나 프로그램 기획에서 협동조합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 다섯째, 협동조합의 자치권을 향상시켜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협동조합의 규모, 지역 분포, 정체성의 차이 때문에 정부가 효율적으로 협동조합을 감사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섯째, 사회적 경제 혹은 연대경제 섹터의 추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최소한의 개념 정립과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한국, 협동조합 붐이 끝난 뒤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협동조합 설립 붐이 일고 있다. 서울시 협동조합 상담센터에는 2012년 11월부터 10개월간 1만2천 건의 상담이 접수됐고, 2013년 11월 30일 현재 3,057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하루 평균 8.5개, 월 평균 255개씩 만들어진 것이다. 곳곳에서 토론회와 강좌가 개최되고 신문지상에 협동조합 관련 기사가 수두룩하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협동조합의 세력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협동조합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설립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 실태조사 결과, 협동조합 설립 준비 기간은 평균 2.6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일반 주식회사와 달리, 최소 다섯 명의 협의와 동의를 얻어 진행해야 하는 사업에 2.6개월은 지나치게 짧은 감이 있다. 설립에 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컨설팅 받는다고 해도 그렇다. 협동조합 생존에 대한 우려도 높다. 등록된 협동조합 중 절반가량인 54.4%만이 실제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도 전화 연결 불가나 근로자가 없는 경우 등으로 응답하지 않은 곳을 고려하면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운영 중인 곳 가운데 24%가량은 판로 미확보 등 ‘준비 부족’으로 목표 매출액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사실상 등록 협동조합의 최소 60% 이상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거나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던 사람들에게 문턱을 크게 낮추었다는 평가도 있다. 대부분 설립된 지 1년 미만으로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꿈과 활력을 가진 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제까지고 준비될 때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설립하고 부딪치면서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거기에서 또 다른 질적인 도약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해 무수한 협동조합들의 역사도 그러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기대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미 어떤 곳에서는 사업비를 지원한다는 소문에 협동조합 설립 신청이 쇄도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국가의 협동조합 지원을 높여달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간섭 없는 지원, 목적 없는 지원은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국가 주도 협동조합 붐을 이끌어낸 베네수엘라의 경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즉 정부가 수많은 재원을 투자한 협동조합보다 지원을 받지 않은 자발적 협동조합의 생존율이 높았고, 많은 협동조합은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쉽게 관료주의의 덫에 빠져들고 문화적 위계구조를 재생산함으로써 협동조합의 길에서 멀어졌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이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자율과 자치, 자립, 민주주의가 어떻게 협동조합의 경쟁력과 연관되는 것일까? 함께 풀어봐야 할 문제다.

 

 

*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모심과 살림> 2호(201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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