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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농지에 자유를!
2014-11-10 16:46:00

 

 

* <모심과 살림> 0호(2012년)에 실린 글입니다.

 

 

농지에 자유를!

 

박용범 (前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한 사람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땅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현재와 수확 조건이 같다면 최소한 1,400제곱미터의 비옥한 땅이 있어야 합니다식량농업기구에 있는 학자들의 계산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필요한 땅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남한 땅 1천만 헥타르 중 농사지을 수 있는 면적은 현재 168만 헥타르로 추정됩니다셈을 해보면 남한 인구 5천만 명 가운데 12백만 명, 24%의 사람들만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묘하게도 식량자급률과 비슷한 수치네요비상시에 국민이 모두 합심해 하루 한 끼로 연명한다고 하더라도 1,400만 명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자급률을 앞세워 위기론을 끄집어내려는 식상한 의도가 아닙니다문제는 겨우 24%의 사람들만 먹여 살릴 땅마저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해마다 2만 헥타르 이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이 말은 3만 개가 넘는 학교운동장 넓이만큼의 농지가 해마다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게 단지 우리만의 사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부족한 식량을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값싼 노동력으로 먹거리를 그나마 풍족하게 들여올 수 있는 중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기름진 동북지역의 땅은 급격한 도시화로서남지역은 대규 모 단작으로 표토가 고갈되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이제 막 눈을 뜬 신흥공업국들의 도시화와 산업화의 확대는 더욱 빠르게 토양을 콘크리트 밑으로 파묻어버리고 있습니다도시근교를 건물과 도로가 잠식하면서 밀려난 공장과 시설은 값싼 농지로 자꾸만 뻗어나갑니다대규모 단작과 비료의 과용쟁기질로 착취당해 온 토양은 물과 바람으로 침식되어 농지가 아닌 농지가 되고 있습니다작물은 주로 30센티미터 내의 겉흙에서 뿌리내리며 자랍니다. 1센티미터의 겉흙을 만드는 데 적어도 200년이 넘게 걸리지만 날려버리는 데는 몇 년을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지력 상실로 인한 농지 감소도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육식의 증가로 사람과 가축이 식량을 놓고 경쟁하면서 식량위기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바이오디젤로 자동차와 경쟁하기도 하지요그렇더라도 극한 상황에서는 사료 작물을 사람이 먹으면 됩니다그러나 땅이 없이 식량을 만들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농지 감소는 한 나라의 현상이 아닌 세계적인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기후변화보다도 핵 위험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일입니다그러나 이 세계적인 절망에서 벗어날 방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인구에 대응하는 경작지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용 가능한 경작지는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줄어들기만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농지의 개척은 필요합니다아시아나 유럽은 비집고 들어 갈 틈도 없고 북미도 남에게 내놓을 여유가 없습니다기후온난화로 덕을 볼 것으로 기대되는 동토의 시베리아 지역은 기대와 달리 많은 곳이 습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남미의 열대우림과 아프리카를 개발하는 것은 기후변화 문제도 있지만 특히 숲이 없는 열대농지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금세 지력이 고갈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국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토지거래 시장이 활발합니다플랜테이션을 확보하려는 경쟁의 선두는 중국과 일본이며 한국도 그 뒤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아프리카의 95%가 소농이고 앞으로 장기비상사태가 계속되는 절대적 결핍의 시대에 자국의 식량을 남의 나라로 빼앗기는 현실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우니 이를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은 불 보듯 뻔합니다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의 땅에 눈독을 들이기보다 이미 있는 땅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새만금 간척지를 아직도 농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식량자원 기지로써의 농지개발을 목표로 했던 새만금 간척 사업이 토목사업으로 뒤바뀌었습니다농업용지 대 산업용지의 7:3비율이 뒤집혀서 3:7로 바뀌었습니다도리어 기업도시를 탄생시켰습니다멀쩡한 국가가 땅 세탁을 주도한 것입니다농지의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회로 오히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식물공장(plant factory)이니 버티컬 팜(vertical farm)이니 선전하는 것도 식량위기를 핑계로 한 지칠 줄 모르는 개발주의자들의 농지침탈 계략일 뿐입니다식물공장이라니 이렇게 뻔뻔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건물을 높여 농장을 만든다는 생각도 가소롭기 그지없습니다수경재배가 중심이니 토양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한정된 영양소로 키우니 채소들이 겉모양만 멀쩡합니다생명에 필요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중요 한 영양소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온전한 음식이 아니지요. LED라지만 전기 소비도 엄청납니다원자력발전소를 계속 더 짓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음식과 에너지는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산업화된 농업은 에너지 고갈을 장막 뒤로 숨겨두고 성장을 노래합니다농업이 기업의 대열로 들어서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정부는 2020년까지 곡물자급률을 32%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농지가 175만 헥타르는 필요하다는데 그때는 160만 헥타르 밑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표심을 얻기 위한 대규모 개발 공약들이 난무할 테지요공단이니 산단이니 신도시니 대부분 기름진 전답을 깔아뭉개고 들어섭니다그럼 자급을 위한 땅이 남아날 수가 없습니다부족한 농지를 건물에다 만들겠다는 걸까요?

 

더 이상 늘어날 농지는 없습니다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남은 농지는 지키고 농지의 개발과 전용은 막아야 합니다이번 대선에 헌법으로 최저 농지면적을 정하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습니다최저농지는 생명줄입니다그럴 리도 없겠지만 한 번 짓밟힌 농지를 다시 생명이 자라는 살아있는 땅으로 바꾸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최저한도 이상의 전용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합니다헌법에서 정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농사짓지 않을 사람이 농지를 자산가치로 사들이기 때문입니다농지 거래 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은 국가가 철저히 환수하여 언감생심 생명을 담보로 한 농지의 거래를 막아야 합니다십여 년 전에는 귀농 사례도 없고 정보도 부족해서 귀농하기가 어려웠습니다지금은 원한다면 언제든 수많은 책과 정보와 교육을 접할 수 있지만 오히려 높은 땅값이 귀농의 진입장애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환수한 이익으로 국가가 농지를 사들여 국유농지를 확대해야 합니다최저농지면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미래의 생명지기를 키우는 젊은 귀농자를 키우기 위해서도 국가의 농지 확보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법이나 제도가 앞서서 농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별로 없습니다법과 제도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도록 부추기는 일은 언제나 국가나 정치인이 아닌 시민의 각성과 여론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농지의 소유를 공공의 영역으로 맡기는 신탁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합니다.

 

비록 내 자식일지라도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농지를 상속하지 않는 것입니다생명의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물려주자는 의도입니다절대적으로 농지로서 보전할 것을 명시한 조합에 가입하여 농지 소유권을 넘겨줍시다또는 신탁법인 같은 곳에 소유권을 넘기고 농사를 지으면서 관리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현재 신탁법이 존재합니다자연환경과 문화유산 국민신탁법인이 있습니다시민들이 농지기금을 마련하여 농지를 사들이고 농부를 모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생태와 자립의 농사를 짓고 가꾸도록 돕습니다그러려면 우선 한살림 같은 생협의 소비자들이 나서줘야 합니다조금 비싸더라도 농지기금이 붙은 생산물을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구입하는 겁니다그리고 농지가 확보되면 거기에서 나는 농산물도 사줄 수 있어야 합니다농지를 매개로 먹거리를 나누는 운동입니다농지의 감소는 토양의 비옥도 상실에도 원인이 있습니다되도록 경운하지 않고 비료는 가능한 적게 주도록 해야 합니다자연 멀칭과 탄소질 중심의 퇴비로 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농지기금으로 짓는 농사는 철저히 자연의 농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그래야 농지 보전의 뜻이 온전해집니다. ‘Agriculture’는 땅이라는 ‘agri’와 경작이라는 ‘culture’로 이루어진 말입니다흔히 이 말을 두고 땅을 경작하는 것이 농업이라고 해석합니다지금 관행농업을 보면 맞는 말입니다인간이 온갖 수단을 가지고 땅을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기계로 땅을 파 뒤집고 비료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그렇지만 본래 뜻은 땅이 경작한다는 뜻입니다땅속의 수많은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 작물에게 영양을 주는 게 유기농입니다비료는 바로 흡수하지만 퇴비는 땅속의 경작자인 미생물이 없으면 바로 흡수하지 못합니다땅을 빈틈이 많은 떼알구조로 만들어 배수와 보수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이들이 하는 일입니다장일순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지요무엇을 위해 하는 사람은 자연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말입니다농사는 자연이 짓는 것이며 우리는 보조자일 뿐입니다그래야 땅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시애틀 추장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어 소름 끼치게 놀랐습니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팔고 약탈할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우리 모두 시애틀 추장이 걱정하던 백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농지만은 사고팔 수 없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인류의 원칙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이런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서 법과 제도가 쫓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자본의 시대지만 농지의 사용가치는 살리고 교환가치는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귀농이란 말도 단지 농사를 짓기 위해 내려간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근본으로 돌아가서 도시적 삶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립하면서 생태계의 일원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어머니 대지인 농지에 자유를 돌려줍시다도법스님이 서울 시민을 패륜아라고 표현하셨지요돈이 안 된다고 무식하다고 모시기 힘들다고 부모를 버리는 행동을 패륜이라고 합니다시민을 먹여 살리는 농업농촌농민을 지금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십시오더 이상 패륜아가 되지 않고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의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농지는 지켜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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