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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청년에게 '일상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2015-08-21 18:28:00

* 『모심과 살림』 5호(2015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청년에게 ‘일상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 ‘과천 청년들’의 사례로 본 지역과 청년의 상호작용

 

글 송준규 (도시와 공동체를 고민하고 관찰하는 인류학도)

 

 

‘포기 세대’, 우리 사회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

 

청년, “일상과 미래를 포기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더하여 ‘5포’, 더 나아가 꿈과 취업까지 포기한다는 ‘7포’ 세대. 우리 시대의 청년을 부르는 호칭이다. 취업이 어렵고 집값이 높아 청년들이 각종 일상과 미래를 포기한다는 이러한 현상. 이 시대를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청년들에게는 그 하나를 지키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현실이다.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애도 키우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생계를 유지할 돈이 있고, 안정된 퇴직까지 보장된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월급은 적고 업무량은 많아서 야근이 잦으며, 비싼 집값 때문에 직장과 거주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등의 혹독한 조건 속에서 일상은 메말라갈 수밖에 없고 청년들은 자연스레 미래를 포기해서 현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청년 시절은 꿈과 이상만으로도 빛나는 시절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청년’이기를 포기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다. 신영복 교수는 “사회의 뿌리가 사람이고, 사람의 뿌리가 청년시절에 자라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혹독한 처지에 놓여있는 지금의 청년들. 청년이 ‘청년’답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청년들의 문제,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의 청년들도 부모 세대가 누렸던 직장 생활과 경제적 안정을 누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실정이다. 대신 박봉을 주는 단기 계약직 일자리만 전전하는 능력 있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계층 간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등 청년의 기성세대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분석도 등장하고 있다.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미국 청년들의 연이은 시위가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퍼져나갔다. 같은 해 스페인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50% 정도로 치솟으면서 청년들이 장기간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실업률과 경제의 관점에서 숫자로만 분석했을 뿐, 청년들이 겪는 현실과 조건에 대해서는 면밀히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청년 문제를 실업률과 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걸까?

 

2015년 1월, 프랑스의 시사풍자만화지 ‘샤를리 엡도’의 총격 테러가 파리 시 소외지역에서 성장한 이민 2세 청년들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파리 시는 이번 문제를 청년의 소외 문제로 바라보고 소외 지역의 문제를 포괄적인 사회통합 정책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하였다. 소외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청년과 지역의 연계성을 높여서 도시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소외와 사회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는 청년 문제의 해결을 지역과의 연계성으로 풀어가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년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청년 문제,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서울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정책을 주거·부채경감·미래설계 등의 생활안정 전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청년 문제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취업 차원에서만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있는 청년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경기도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시적으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할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지역’이다.

 

청년의 문제를 실업률과 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신 일상의 공간인 지역에서부터 바라보면 어떨까? 여기서, 지역을 단순한 지리적 공간으로만 바라본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신 지역을 지리적·사회적·문화적 요인들이 역동하면서 만들어지는 구성체로서 바라본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지역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이 있고, 대안적인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라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서울시의 실질적 청년실업자가 3명 중 1명꼴이라고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청년의 유출을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자리가 없어서 그렇다’고만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보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청년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일상을 담고 있는 ‘동네’와 청년의 상호작용을 경기도 과천시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우리 청년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리 동네, 과천을 소개합니다

 

오래된 신도시, ‘읍내’ 같은 과천

 

사례로 들고자 하는 경기도 과천시는 1970년대 말 독재자의 ‘의도치 않은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북한의 장거리포가 개발되었다면서 서울의 정부청사를 관악산 남쪽으로 옮기고 배후도시를 만들게 된 것이다. 1984년에 완공된 과천시는 1990년대에 완공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1기 신도시’보다도 더 오래된 ‘초기 신도시’이다.

 

과천시는 인구 7만 명 규모를 30년 넘게 유지하고 있으며, 면적의 90%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수도권의 ‘기이한 도시’이다. 살기 좋다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낡고 좁은 아파트에 비싼 집값으로도 유명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과천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오랫동안 정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도시가 건설될 때 신혼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가구도 많은데, 이들을 ‘아파트 원주민’이라고 부른다. 적은 인구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과천 중심가에 가면 마치 ‘읍내’에 나온 것처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오래된 상가들과 나무들은 더욱 더 ‘읍내’ 느낌을 풍부하게 해준다.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풀뿌리 네트워크

 

과천은 풀뿌리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 곳곳에서는 지역의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자치운동이 일어났는데, 과천은 이러한 활동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25년 넘게 풀뿌리 시민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네트워크’ 방식으로 활동을 전개하였고, 세대를 교체하면서 활동 주체를 다양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천의 풀뿌리 시민운동 1세대는 1990년대부터 전국 최초 주민발의로 시립 탁아소 설립조례를 제안했으며, 송전탑 반대 운동으로 전력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80년대 말부터 ‘한살림 과천공동체’를 중심으로 한살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1세대의 활동은 기존의 운동방식과는 다르게 생활 속에서 요구나 부당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생활 운동’을 전개했다는 특징이 있다.

 

2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과천의 공동육아를 통해 들어온 시민들로서 2000년 전후로 대안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지역화폐, 생활협동조합, 독서모임 등의 다양한 풀뿌리 조직을 만들었고, 다양하게 분화된 풀뿌리 네트워크는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특히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단위에서 활동의 이름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풀뿌리 시민운동이 더욱 일상의 차원으로 내려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과천의 풀뿌리 네트워크는 평상시에는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다가 부모됨·이웃됨·시민됨의 코드가 작동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활동을 전개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활동은 과천을 ‘아이들의 고향’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지역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 스스로 과천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0년 전후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는 3세대에 이르면 평범한 시민이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좀 더 공적인 해결방식을 추구하면서 ‘생활정치’로의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특정 정당 소속이 없는 주부 2명이 시의원 7석 중 2석에 당선되어서 활동 중이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청년들 등장해

 

2014년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시민진영의 시장·시의원 후보들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역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서 정책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계기로 청년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천시 풀뿌리 네트워크에 새로운 4세대가 영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청년들은 기존 풀뿌리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천이라는 도시와 함께 성장했다는 점이다. 기존 세대가 ‘아이들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면, 청년들은 ‘과천이 고향’인 그 아이들이었다.

 

 

도시와 함께 자란 청년들의 지역정체성

 

아파트가 고향인 청년들, 둔촌주공아파트의 사례

 

‘고향’과 ‘신도시’를 연결한다는 게 어딘가 낯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년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파트 단지에서 유년기를 보낸 세대들은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립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이 잡지의 발행인 이인규 씨는 주택공사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고 살아온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사진을 수집하여 연작으로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파트가 아닌 여러 주거공간에서 살아봤지만, “아파트가 더 삭막하고 주택가가 더 정겹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둔촌주공아파트는 인생에서 가장 따스한 시절을 보낸 소중한 곳으로, 주차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단지 상가를 휘젓고 다녔던 추억들을 잡지에 담아내고 있다.

 

 

이 작업을 하다가 다시 둔촌주공아파트로 이사를 들어온 이인규 씨는 단지 상가에 <마을에 숨어>라는 문화공간을 열어 기타·일러스트·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3월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아파트인생>展 한 코너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또한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린미끄럼틀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실측과 사진 등의 기록을 남기고 추억이 있던 주민들을 모아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 작업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둔촌주공아파트를 보고 ‘다시 돌아올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둔촌주공은 물론 잠실주공·개포주공·반포주공·과천주공 아파트단지에서 살았던 ‘아파트 키드’에게서 “나도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다”는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인규 씨는 “고향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 자체라기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과천에서도 ‘동네’와 ‘고향’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과 이들이 공유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었다. 둔촌에서 지키고 싶어 하는 ‘무언가’와 과천에서의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각자의 관계망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다.

 

('동네에 의미 있는 장소' 앙케이트 발표)

 

‘과천다움’, 청년들이 공유하는 상징

 

공동체는 하나의 상징적 구성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그들만의 영역을 형성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징이 두드러지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로 작용한다. 과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징은 과천에서 자란 청년들에게서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었다.

 

과천에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청년들은 ‘대공원 산책’, ‘큰 가로수’, ‘관악산·청계산’ 같은 자연을 가장 많이 꼽는다. 그 때문에 오랜만에 과천으로 놀러온 친구는 “아 풀냄새, 이게 과천이지”라고 감탄하고, 외국으로 유학 간 친구는 “페북에 과천 사진 좀 올리라니깐” 하고 종용한다. 서울에서 과천으로 오는 남태령 고개를 넘어오면 버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맡는다는 얘기에 ‘맞아, 맞아’라고 박수치며 격하게 공감하기도 한다.

 

또 청년들은 “내가 놀던 아파트단지가 그대로” 남아있거나 “내 ‘나와바리’이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릴 때 봤던 축제가 계속 있어서”라고 말할 정도로 ‘지속성’을 과천의 장점으로 말한다. 12개 주공아파트단지 중 2곳이 높은 아파트로 재건축 되었을 때, 과천에서 자란 청년 대부분의 반응은 ‘과천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에 낮은 아파트로 구성된 과천시내의 경관이 변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했다.

 

또한 축제에서의 경험도 청년들이 내세우는 것이다. 1997년부터 마당극큰잔치로 시작한 지역 축제에 풍물패로 참여했던 친구는 연극연출을 전공하게 되었고, 통역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는 영문학으로 박사과정 유학 중이다. 이렇게 축제는 과천의 청소년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청년들은 문화적 경험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공감 요인으로 꼽았다.

 

이렇게 과천에서 성장하면서 생겨난 자연환경, 사회적 관계, 도시경관, 문화적 경험 등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청년들 사이에서는 ‘과천다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세대들에게서는 정의되지 않은 채 ‘그 무언가’라고 불리던 것이었다. 기존 세대들에게 정리되지 않던 ‘그 무언가’는 과천에서 직접 자라온 청년들의 체화된 경험과 인식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유되고 있는 인식과 감정이 복합된 지역정체성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과천다움’이라고 불리게 되면서 더욱 뚜렷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비싼 집값에도 과천에 살겠다는 의지

 

‘과천다움’이라는 지역정체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주성’이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수도권에서는 임대료·직장·교육 등의 이유로 지역을 자주 옮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우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지역정체성이 뿌리내리기 어려울 수 있으며, 이러한 ‘심리적 부유’ 상태가 누적되면 어른에게도 힘든 조건이 될 수 있다. 2012년 국토해양부의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현 주택에 거주하는 기간이 자가는 10년, 전·월세 등은 3년으로 나타났다.

 

과천은 부동산 가격이 매우 비싸다. 낡고 좁은 아파트이지만 ‘살기 좋다’는 이미지는 집값을 꾸준히 상승시켰고, 재건축하려는 시도 때문에 더욱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과천의 전·월세 비율이 61.5%로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천 청년들에게도 임대료는 과천에 사는 데 가장 어려운 요인이다. 그럼에도 과천에서 자란 청년들은 독립하거나 결혼을 해서 과천에 계속 살고 싶어 하고, 심지어 청소년기에 이사를 나갔다가 결혼 후에 다시 과천으로 이사를 들어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같은 가격으로 다른 지역에서 넓은 평수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과천의 청년들은 그러한 ‘경제적인 선택’을 포기하고 과천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한다.

 

수도권에서 한 자리에 오래 산다는 것은 흔히 ‘자기 집이 있거나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과천에 강한 지역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전·월세를 부담해서라도 그곳에 계속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적인 선택’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과천다움’이라는 지역정체성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어떻게든 과천에서 거주를 이어나가려 하고 하는 청년들은 이제 과천에서 활동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청년공간·청년흥신소·청년마켓…뭐하지?

 

과천의 청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과천다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페이스북에 ‘과천, 청년들의 수다’라는 페이지를 개설했고, 회원수가 4,000명을 넘어섰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 중 몇몇은 공감대에서 그치지 말고 활동으로 이어서 전개해보자며 모임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민했던 활동 아이템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청년들의 공간 : 청년들의 활동을 인큐베이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았다. 과천 곳곳에 능력 있고 독특한 청년들이 많지만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없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의 청년허브 같은 것이 과천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었고, 새벽까지 작업할 수 있는 카페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과천의 비싼 임대료 때문에 아이디어를 그 이상으로 전개시킬 수 없었다.

 

●청년흥신소 : 과천의 ‘취준생(취업준비생)’들과 ‘자발적 백수’들에게 ‘짧은 일용직 알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생각해낸 것이 청년흥신소이다. 집에 혼자 계신 노인은 운전해 줄 누군가가 필요할 수도 있고, 집안일을 하던 주부가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못을 박아야 할 때, 또는 아기엄마가 급한 일로 베이비시터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전화하면 대기하고 있던 청년들이 출동하는 방식을 구상하였다. 흥신소 논의에서 중요했던 점은 적게나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청년마켓 : 건물 공간을 임대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는 일로 중앙공원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각자의 재능을 펼쳐 보여주는 청년마켓을 구상해보았다. 처음에는 서울의 ‘마르쉐@’이나 ‘연남동 마을시장’처럼 형태를 완벽히 갖춘 장터를 준비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장터를 찾아오는 대부분이 과천 내부의 주민일 것으로 예상하고, 규모를 작게 줄여서 실현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청년마켓은 과천이라는 신도시에서도 ‘로컬피플·로컬프로덕트·로컬푸드’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과천시는 기준이 모호한 ‘공원에 상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무조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장소·사람·추억…지역정체성이 청년들의 원동력으로

 

과천이나 둔촌에서는 청년들의 지역정체성에 기반한 관계망이 형성되고, 눈에 보이는 활동을 이제야 하나둘씩 시도해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역정체성을 형성하며 공유하고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그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소 : 아파트 단지인 둔촌이나 신도시인 과천은 ‘만들어진 도시환경(built environment)’을 가진 지역이지만, 이곳에서 성장해온 청년들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자칫 청년들은 도시의 빠른 변화를 선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사례에서 보면 신도시에서 자란 청년들은 도시의 고유한 경관이 지켜지기를 원하고 있다.

 

●사람 : ‘읍내’스러운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과천에는 학교가 초등학교 4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4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너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고, 동네에서 뭘 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과천은 도시계획상 인구규모가 작지만 밀도가 있고, 중학교가 2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관계망이 집중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익명성’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추억 :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험이 공유될 때, 청년들의 새로운 놀이가 시작될 수 있다. ‘추억팔이’라고 부르는 이 놀이는 지역정체성을 자극하면 각자 자신들의 추억이 어떠했는지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발생되고, 이렇게 모인 추억들이 자연스레 공유되는 방식이다. 추억이라는 걸 터놓고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청년들의 참여를 유발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단계까지 다다를 수 있다.

 

 

지역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풀뿌리 기성세대, “새로운 방식이지만 근기가 필요”

 

기존에 활동하던 풀뿌리 시민들은 과천의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청년들이 ‘미디어를 잘 다루고 시각적인 취향에 민감하다’는 점이 기성세대가 크게 느끼는 차이점이다. 그래서 동네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청년들이 각종 모임에 간사 역할로 들어가서 시각적으로 전달력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세대들이 ‘서명운동’으로 시민들에게 문제에 대해서 알렸다면, 청년들은 ‘설문조사’로 인포그래픽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2세대 활동가는 청년들이 ‘근기를 갖고, 버텨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언에 대해서 청년들은 ‘일부러 어려운 일에 버틸 생각은 없으며,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려고 지역 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진 다른 대화에서는 세대 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과천에서는 2세대가 등장하면서 1세대의 활동을 부정하고 대화를 단절하면서 세대 간 단절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과천시, ‘과천다움’을 지우려는 정책으로 역행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과천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누리당 전략공천 후보가 민주당과 녹색당의 경합을 제치고 시장선거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5년 올해, 과천을 경마장과 연계한 ‘말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이다. 주민들은 조용한 거주환경과 푸르른 자연환경 때문에 과천에 계속 살고 있는데, 과천 시장은 주민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마장과 연계하여 도시의 상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과천 축제를 ‘말 축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과천시는 일방적인 설명회 외에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사건에 가장 발끈하고 반대하는 세대가 과천의 청소년과 청년 세대이다. 10대·20대의 응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설문조사(총 1,065명)에서 78.8%가 말 축제로 변경하는 것을 반대하고, 76.8%가 기존 거리예술 축제를 자랑스러운 축제였다고 응답했다. 또한 기존 거리예술 축제를 59.9%가 적극적으로 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형 축제’라는 이름으로 축제의 경제효과만을 부각하는 용역보고서를 검토해본 결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빤한 용역보고서에 ‘과천’과 ‘말’이라는 용어만 얹어놓은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과천의 상징을 묻는 용역 보고서의 설문조사 문항은 시목인 밤나무, 시화인 철쭉, 시조인 비둘기, 시 동물인 말 중에서 선택하라고 해놓고, ‘시민들은 말을 가장 대표적인 상징으로 응답했다’고 결과를 내놓는 식이었다.

 

축제는 상징이 살아 숨 쉬는 일탈의 순간으로 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를 경제이득으로 바라보기 이전에 정체성과 상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상징은 행정이 정하고 시민들이 따르는 ‘동원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의미를 걸어놓고 공유하는 ‘참여의 구성체’이다. 공동체는 상징적 구성체이며, 축제는 이러한 공동체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어야 한다. 과천의 축제가 그러한 점이 부족했다면,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과천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 한 명 때문에 과천에서 자란 아이들이 의미를 두고 있던 축제는 이러한 식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청년’답기 위해서는 일상의 지지를 받을 ‘동네’가 필요

 

현재 과천에서는 청년들과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풀뿌리 시민들이 모여서 이런 문제에 함께 대처하고 있다. 설문조사·서명·시민토론회 등의 의견 수렴, 전단지·현수막·인포그래픽 등의 정보 전달, 시의원과 다른 정당과의 연계 시도, 대안적인 축제 방안 모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들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청년들이 눈에 보이는 활약으로 동네에서 일종의 데뷔를 하는 중이다.

 

과천의 축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로 청년들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고 자신들이 공유하던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행정의 한계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가려는 자조적인 움직임이 더욱 생겨날 수도 있다. 과천의 비싼 임대료로 청년들은 활동 공간도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청년 지원 프로그램도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고립된 청년들을 한두 명씩 찾아서 그 관계망을 넓혀나가고, ‘과천다움’을 공유하면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낼 것이다.

 

청년에게는 일상에서부터 상호작용을 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동네’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지 기반은 반드시 지리적인 영역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담고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생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청년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또는 자발적으로 대안적인 생활 방식을 찾고 있는 청년들 모두에겐 나름대로의 ‘동네’가 필요하다. 이러한 ‘동네’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모이고 얽힐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에서부터 형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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