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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두물머리에서 빠마컬처 하기
2016-04-22 15:22:00

* 모심과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두물머리에서 빠마컬처 하기

- 만물에 기대어 스스로의 삶터를 설계하다

 

글 봄날 (두물머리친구들)

 

 

하나. 팔당은 에코토피아

 

2009년 여름, 팔당 일대는 사대강 사업 개발로 내몰리기 직전이었고, 그러한 장소에서 에코토피아가 열리는 것은 다행이었다. 또 당연했다. 그건 세상이 계획한 성장과 진보의 단계를 밟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것이 있다고, 그래도 행복하다는 주장이니까. 에코토피아는 쉽게 말해서 캠프다. 실험이다. 혹은 다시 살아보기이다. 최소 에너지, 단순한 먹거리와 느슨한 옷차림, 시계 없는 시간, 주최자/참여자·놀이/노동 경계의 애매함. 당연한 것들로부터 벗어나와 바깥에 서 보는 것.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는지 ‘같이’ 상상해 보는 것.

에코토피아 캠프 동안, 석유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조금 부끄러워졌고, 누구나 무슨 주제로든 꺼내놓을 수 있는 자유워크숍 하나를 진행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음주가무에서조차 별 볼 일 없었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뒤 손톱발톱의 흙때를 꺼내고 브래지어를 다시 착용하는 일이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 며칠의 에코토피아가 남긴 기억은 강렬했다.

 

그리고 그 에코토피아에서 두물머리라는 장소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사대강 사업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있는 두물머리 농민들을 찾아가서 작은 일손을 거들었고, 그러다가 혼자 우연히 어딘지도 모르고 비닐하우스 뒤쪽으로 걸어나가게 되었다. 홀로 조용히 맞는 바람은 달큰하고, 눈앞에서 흐르는 물은 넓고 깊었다.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가 그곳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꼭짓점, 한강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한참을 걸려 깨달았다. 내가 두물머리와 처음 결합되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 두 개의 강물이 만나 흐르던 나무 십자가 아래 있던 그 시간일 것이다. 눈앞의 풍경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속에 소속되어 있음을 이해할 것 같은 느낌, 세계가 나에게 어떤 틈을 열어 보여준 것 같은, 안내 받지 않고 스스로 이곳을 찾아왔구나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둘. 두물머리 행정대집행 유기농 텐트촌

 

2012년 여름, 두물머리는 농민과 연대하는 시민들의 최후 저항지가 되었고, 이로써 사대강 사업의 완공은 저지되고 있었다. 정부는 다시 한 번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건, 한마디로 강제철거이다. 무장경찰과 용역깡패가 밀고 들어와 삶터를 때려부수고 그 장소와 사람을 떨어뜨리는 폭력. 두물머리에서 버티기 위해 팔당유기농지보전공동대책위와 시민들은 유기농 텐트촌을 꾸렸다. 텐트와 배낭을 지고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중앙선 전철 안에서 나는 친구들의 말/글을 읽었다. 학자도 정치인도 운동가도 아닌 그냥 보통의 친구들이 쓰고 만든 말/글들. 가령 국토해양부에서 정해준 자진철거 시한 7월 18일에 쓰인 저항포고서, ‘두유작전(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 대작전) 선언문’.

우리는 드라마 몇 편 분량의 산전수전을 온몸으로 겪으며 두물머리를 함께 사랑해왔고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폭력을 통한 억지공사 강행을 당장 중단하고, 당신들 안에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는 평화의 유전자를 끄집어내서, 대화의 장으로 냉큼 나오십시오. 우리는 행정대집행이 들어온다고 해도 끝까지 연대하여 두물머리 농지를 지켜낼 것입니다. 이미 두물머리를 지지하는 3691명의 탄원서의 힘이 경작금지 가처분을 기각시켰고, 지금은 더 큰 힘이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십시오.

또는, ‘우리는 왜 싸우는가’.

그동안 우리는 불복종 경작의 방법으로 개입해왔고, 선언과 서명의 방법으로 개입해왔고, 탄원서 제출의 방법으로 개입해왔고, 집회ㆍ시위의 방법으로 개입해왔고, 노래와 춤을 추는 것으로 두물머리에 개입해왔다. 다만, 시대를 거슬러 살고 있는 가부장 국가가 눈치가 없었을 뿐이고, 우리들의 난장판을 뒷받침할 정치가 부족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개입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공유지를 계속 공유하기 위해서.

또, 7월 29일 ‘유기농행진 낭독문’.

저들은 지금 공유지를 말하면서도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친환경과 녹색이라는 말을 훔쳐갔으면서도 물, 흙, 생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린 유기농작물처럼 힘이 세고, 또한 서로 기대어 기운을 주고받는 일에 능하지 않은가요? 자연생태를 떠들며 약을 파는 저들의 기만에 절대 합의하지 않을 우리들은, 언제나 새로이 두물머리 유기농 기운을 충전하고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논밭에 몰려오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모래만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들이 잘못을 분명히 되돌리게끔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이 말들이 드디어 두물머리에서 우리로부터 터져 나왔다. 처음 이 말/글을 본 날, 훌쩍이는 걸 보며 내가 삶 속에서 얼마나 절망하고 있었는지 짐작했었다. 그러니까, 일/여가/발전/보전으로 꼬리표 붙여지고 바코드가 박힌 일상과 세계의 구획과 관리체계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저항하고 있던 건 사대강 공사도 국가폭력도 아닌, 삶 없는 삶이었던 걸까, 내가 외치고 싶었던 구호의 구체성이란 실은 이런 것이었던 걸까, 눈앞이 계속 흐릿해졌다. 지난 2년 동안 그래왔지만, 어느 때보다도 무르익고 증폭된 농부와 친구들의 말/글들,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만들어져 이제는 출처가 불분명해진 말/글들이 나를 뒤흔들면서 그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전경들이 진입을 시도하려던 날, 우리는 앞치마를 입고 부들을 꺾어 유행가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대치했다.

 

 

그들은 물러갔지만 다시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텐트촌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당신이라면, 맹목적인 폭력으로부터 어느 강변의 부드러운 땅을 지키기 위해서 기약 없이 낯선 이들이 찾아드는 그때 그곳에 있다면 무엇을 하며 지내겠는가? 밥을 짓는 것은 어떨까? 방금 따온 고추와 토마토, 전국 각지로부터 응원의 말과 함께 도착한 쌀과 부식으로 말이다.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는 똥도 잘 눠야 하므로 풀섶에 뒷간을 지어 볼 수도 있겠다. 사람 키만큼 자란 들풀을 달팽이 모양으로 깎아 길을 낸 뒤, 그 한가운데 밑창이 들린 늠름한 의자를 가져다 두고, 그 옆으로 재와 커피찌꺼기 통, 그리고 작은 삽 하나를 놓아서 마무리할 수 있다. 전경과 용역을 상대해 본 적 없이 없다면 비폭력 워크숍에 참여해서 국가와 평화적으로 맞짱 뜰 수 있는 방법, 또는 최소한의 나와 친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법,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침엔 함께 체조를 한다. 기왕이면 창의적으로. 지렁이체조, 씨뿌리기, 호미질, 삽질, 분노의 팔질 동작 후 숨고르기로 마무리 등등. 쑥스럽다면 구경만 해도 된다. 매일 저녁 열리는 유기농 토크쇼도 무척이나 재미나다. 예를 들어, ‘생태화장실과 국토 신진대사’. 먹고 싸고 농사짓는 걸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 꽉 막힌 국토계획 까대기는 덤이다. 육체적 노동이 그리웠던 차라면, 임농부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함께 차양막을 치거나, 배수로를 만들거나,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건실한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 어슬렁어슬렁거리기,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기, 여기저기 참견하기는 꼭 해봐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찾아 강과 땅과 풀과 미생물들과 어울리며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을 두물머리에서 살았다.

 

두물머리 유기농지보존투쟁, 합의 이후

2012년 8월 14일, 두물머리 농민들과 사대강추진본부장 심명필은 두물머리에 호주의 세레스와 영국의 라이튼을 모델로 한 생태학습장 조성을 합의했다. 농민 추천 전문위원과 정부 측 추천 전문위원 12명으로 구성된 두물머리 협의체가 꾸려졌고, 이들은 2년여 동안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의 밑그림을 그리는 한편, 예산 8천만 원을 들여 ‘두물지구 생태학습장 관리운영 및 프로그램 개발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재 두물머리에 생태학습장은 없다. 2014년 1월, 양평군은 일방적으로 협의체 종료를 통보하고 지난 2년 동안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을 단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 생태학습장은 고사하고 2015년 현재, 양평군과 한강유역청(환경부) 공동으로 별도의 양수리 개발 사업 ‘에코폴리스’를 추진 중이며, 이 과정에서 두물머리 협의체와의 어떠한 논의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유기농민과 정부의 사회적 합의는 철저히 무시된 것이다.

합의 과정에서 자신의 재산권에 관한 어떤 요구사항도 꺼내지 않고, 오로지 두물머리의 공공성에 관한 합의 결과를 도출하려했던 두물머리 유기농민들은 수억의 빚을 지고 새로운 농지에서 새로운 터를 잡고 또 다시 유기농을 시작했다. 먼저 합의하고 두물머리를 떠났던 농민들의 경우 새로운 농토와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내었던 빚의 이자와 원금(연간 5천만 원 내외)을 갚기 시작하면서 그중 몇몇은 벌써 거의 파산을 했다. 이는, 끝까지 싸웠던 네 농가가 내년부터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국가 폭력에 불복종하고 생태적 가치를 지켜내려고 싸웠던 사람들의 합의 이후 삶이 이런 식이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사회적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무시하고 책임지지 않는 행정부와는 더 이상 대화와 협력으로 어떠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사대강 공사가 끝난 두물머리 곳곳에 양평군은 ‘생태 회복 공간’, ‘에너지 생태 체험 공간’, ‘학습 및 체험 집중화 공간’ 등의 입간판만을 덩그라니 세웠다. 매일미사가 올려지던 두물머리 꼭짓점에는 ‘두물경’이라고 새겨진 거대한 바위 한 덩이가 박혔고 입구에는 사대강 사업을 기념하는 머릿돌이 세워졌다. 강변의 옥토는 듣보잡 흙과 자갈로 복토되었고, 나무는 잘려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강가에서 살 수 없는 조경수를 심었고 두 계절도 지나지 않아 새로 심긴 그 나무들은 죽거나 무성한 망초에 뒤덮였다. 습지였던 곳의 일부는 들풀들이 빼곡히 자라면서 육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관광객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를 한다.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의 적절한 운영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서 양평군이 계속 이런 식으로 버티다 보면, 사대강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예상했던 그림 그대로 세미원이 두물머리의 관리 운영 주체로 떠오르면서 두물머리를 넘겨받는 수순을 밟게 될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에코폴리스든 그 무엇이든 죽지도 않고 또 올, 온갖 에코, 생태, 녹색으로 치장된 계획으로 분탕질 될 것이다. 펜스를 치고, 입장료를 받고, 유기농의 ‘농’ 자는 꺼내지도 못할, 연꽃과 조각들과 포토존으로 이루어진 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풍경을 소비하며 지나칠 곳으로 두물머리는 포맷될 것이다. 유기농의 발상지, 사대강 사업 최후의 저항지, 농사로 투쟁하던 시민불복종의 장소라는 기억은 말끔하게 증발될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셋. 두물머리 빠마컬처 디자인 코스

 

사회적 합의라는 것은 그 꼴이 났지만, 농부들은 다시 유기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농민과 지역민, 연대하던 친구들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고, 농사-강-생태-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2014년) 10월에는 농부들과 친구들이 ‘두머리부엌’이라는 작은 식당 겸 카페를 열었는데, 이곳에서는 ‘못났다 벌레 먹었다 해서 출하하지 못하는 파치 농산물’로 맛난 음식을 만들고 나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며, 조합원은 100명이 넘는다. 매달 첫째 토요일이면 농부들, 동네 할머니, 손재주꾼들이 손수 기르고 만든 농작물과 가공품, 수공예품들, 헌 것들을 사고파는 ‘시시장’과 ‘모퉁이음악회’도 열린다.

한편, 생태학습장 조성이라는 합의 이행을 이끌어내기 위한 궁리는 농민과 두물머리대안연구단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양평군이 생태학습장을 만들지 않아? 그럼, 우리가 하자. 우리가 두물머리에서 생태적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장면을 만들자. 올해 초, ‘두물머리친구들’이라는 작은 모임을 꾸리고 지역의 어린이들과 ‘강들학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 두물머리는 거대한 도화지가 되었고, 거기에 공동의 그림을 그리는 ‘두물머리 퍼머컬처 국제 공인 디자인 코스’를 열었다.

2주 동안 열세 명의 코스 참가자들은 퍼머컬처의 원리를 배우며 삶터를 디자인하는 방법을 익혔고, 모둠을 이루어 특정 장소를 관찰하고 설계했다. 코스의 마지막 날 손님들을 초대해 설계 결과를 발표한 뒤, 모두들 두물머리로 들어갔다. 나뭇가지에 우리가 그린 두물머리 설계 그림을 걸어두고, 코스 동안 디자인하고 실습했던 밭과 생태구조물들 사이사이에 앉아 떡과 술을 나누었다. 제사상에 동네 농부님들이 기른 농작물과 강가에서 난 풀들로 음식을 만들어 올리고 연과 부들을 꺾어 장식을 하고 절을 올리며 축문을 읽었다.

 

유세차

2015년 8월 29일 두물머리 빠마컬처 친구들이 모여, 북한강과 남한강 그리고 한강의 신에게 고합니다. 이 보슬보슬한 땅의 신에게 고합니다. 풀과 나무, 농작물, 눈에 보이지 않는 토착미생물의 신에게 고합니다

이 좋은 날, 두물머리에서 우리가 그려본 삶터와 공동체의 장소를 여러 친구 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두물머리 빠마컬처 코스를 하면서 우리는 이름 모를 미생물로부터, 식물의 풀잎과 꽃잎과 낟알로부터, 작은 동물의 발걸음과 사람의 손길에서부터 시작되어 공동체를 바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처럼 이곳이 자연과 사람이 잘 어울리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부디 보살펴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집과 마을, 강가로부터 땅투기하려는 귀신, 풍경을 상품화하려는 귀신, 관광과 레저로 환장한 귀신, 이 모든 잡귀들을 죄다 몰아주시길 비나이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삶터를 오래오래 아름답게 가꾸어나갈 수 있는 마음과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부디부디 보살펴주소서.

상향

 

한때는 유기농부들의 딸기밭, 배추밭, 논이었고, 강제철거 반대 시위 텐트촌이었고, 불복종 감자밭이었고, 어쩌면 강이었고, 숲이었던 곳에 한판 춤을 추었다. 사대강 사업으로 농민들이 떠난 지 2년 만에, 변해버린 모습 때문에 다시 가보기도 주저되던 그곳에서, 농민들도 연대하던 친구들도 함께 신명나게 놀았다. 그 들판 위로 보름달이 어찌나 휘영청 떴던지 눈이 다 부셨다.

 

 

나는 퍼머컬처를 빠마컬처라고 쓰곤 하는데, 퍼머컬처는 ‘permanent와 culture’의 합성어이고, 머리를 빠마한다고 할 때 빠마의 영문이 ‘permanent’로 파마가 곧 빠마이기 때문에 다른 말은 아니다. 이런저런 서적을 보면 퍼머컬처가 ‘영구농업’이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한데 그것은 적절하지 않고, 굳이 번역을 해야 한다면 나는 ‘영구적인 문화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하고 싶다. 퍼머컬처가 해외 수입 이론이나 실습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우리 전통의 농사와 살림살이의 방식이 초기 퍼머컬처의 중요한 참조점이었기 때문에, 이국적인 듯하지만 우리스러운 느낌을 살리는 데 ‘빠마’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퍼머컬처에 관한 공식적인 정의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관계를 모방하여 지역에서 필요한 음식, 섬유,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한 경관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 사고방식과 설계 원리이다. 퍼머컬처는 경관, 유기농 텃밭 가꾸기, 지속가능한 농사,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축, 생태마을 개발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 가정, 지역사회가 그런 일을 설계하고, 수립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Permaculture Design Course: PDC)는 퍼머컬처에 입문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즐거운 교육과정이다. 코스를 통해 참여자들은 생태적으로 자립하는 데 필요한 순환시스템, 적정기술, 공동체 기술을 학습하는 동시에 실행한다.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의 모델로 제시된 세레스 생태학습장이나 라이튼 공원이 바로 이 퍼머컬처의 원리로 디자인되고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지구 곳곳에서 퍼머컬처를 학습하고 실행하는 생태공동체 혹은 생태학습장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 각자가 제시하는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는 각자의 생태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래서 우리는 두물머리의 상황과 조건에 어울리는 퍼머컬처 코스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고 우리 스스로 배우고 싶고 나누고 싶은 것들을 찾았다. 그리고 서울의 갈현텃밭을 중심으로 퍼머컬처 실현지를 준비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퍼머컬처 학교’와 함께 코스를 준비했다.

 

 

두물머리 유기농민이었던 최농부의 농장 한편에 교실을 마련하고, 텐트촌을 꾸렸다. 이곳저곳에서 열세 명의 수강생과 핵심 강사인 소란이 도착했고, 두물머리친구들과 퍼머컬처 학교 선배들이 일손을 거들러 들어왔다. 편한 마트 놔두고 동네방네 지역 농부님들이 그때그때 내는 농작물을 사다가(농부들은 덤을 더 많이 들려보냈다) 거기에 맞춰서 삼시세끼를 차리고, 아침마다 동그랗게 모여서 전 세계 강강술래 땐스를 하나씩 배워서 췄다. 두물머리에 들어가서 자연을 관찰하고 에너지의 흐름을 기록하고 장소를 읽는 방법을 배웠다. 흙과 물을 지속가능하게 사용하고 순환시키는 사례들을 보았고, 미세기후를 이용해서 집터와 밭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밭이라면 당연히 매년 씨 뿌리고 추수하는 줄만 알았는데, 떨기나무와 큰키나무,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 농작물을 함께 섞어 그들 스스로 매해 싹을 틔우는 숲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과 양분을 효율적으로 보존하는 동그랗고 높낮이가 있는, 혹은 구불구불한 밭을 그렸다. 각목 몇 개로 등고선을 찾는 도구를 만들어 땅을 재고, 생전 처음 긴 대나무를 똑바로 잘라보겠다고 여럿이 달라붙어 용을 썼고, 그것으로 스타돔을 지었다. 어떤 날에는 두물머리에서 농사지었던 서농부가 와서 바이오다이나믹농법, 즉 우주와 함께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달빛에 성하는 풀들과 500번부터 시작하는 증폭제들과 생명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멋졌다. 부들과 칡을 거두어서 바구니를 짜고, 달뿌리풀을 엮어서 빗자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드디어 둠벙을 완성했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땅을 파고 맨발로 진흙을 다져서 물이 머무는 곳을 만들고 여기서부터 이어진 물길이 실습으로 만든 밭들을 돌아 습지와 강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흘려보낸 물이 습지로 흘러 들어가자 모두들 소리를 질렀다. 둠벙 주변으로 붓꽃과 수양벚나무도 심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강가에서 풀을 뜯어다가 반찬을 하고 술을 빚었다.

 

 

그리고 열흘째가 되던 날부터, 참가자들은 장소를 설계했다. 우주적으로다가 공정하게 사다리타기로 모둠을 나눴는데 영험하게도 각자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참여하면 좋을 만한 사이트별로 모둠이 꾸려졌다. 설계 사이트 세 곳은 ‘개인(농장)’, ‘마을(마을사업)’, ‘유역공동체(두물머리 생태학습장)’였고, 이렇게 서로 다른 규모와 차원의 공간을 세 팀이 각각 디자인하면서, 동시에 전체 회의를 통해 각 공간의 겹침을 조율하고, 공동의 운영 원칙을 세우고 사이트 상호간에 공유할 것과 연계할 것을 찾아서 설계에 반영하였다. 참가자들은 빠마컬처 코스에서 배운 것들을 총동원해, 장소에 관한 관찰과 애정을 기반으로, 우정의 힘으로 초집중하여 도면을 그리고 운영 기획안을 작성했다. 그렇게 해서, 자나 깨나 똥으로 농사지을 궁리하는 최농부의 ‘생명역똥농장’, 지역에서 생태적 재화와 서비스가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마을 플랫폼 ‘생태영성마을-두물마당’, 유기농을 기반으로 한 생물종다양성연구소와 습지학교가 있는 ‘두물두물학습장’의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두물머리에서 빠마컬처를 하고자 하는 것은,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의 모델이 되는 세레스나 라이튼이 퍼머컬처로 디자인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발주의자와 행정가의 시선, 관광객과 자본가의 시선으로 땅을 읽고 함부로 그림을 그려대는 사람들에게 다른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인, 공무원, 계획가, 토목가, 조경가 들에게 위임해왔던 땅을 그리는 권한을 되찾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장소를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과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조감도나 지도, 도시계획에서와 같이 추상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진짜로 경험하고 관계 속에서 성숙하는 장소만이 풍성한 삶의 터가 될 수 있다. 진짜 장소를 창조하는 우리의 능력을 믿고, 더 이상 남에게 맡기거나 다음으로 미루지 말았으면 했다. 만물에 기대어 창조하며 스스로의 삶터를 설계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했다. 몇 년 동안의 깜짝 땅 투기가 아니라, 몇 백 년 동안 공진화해 나갈 자연-사람-사물의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는 능력을 두 줄기 강이 만나 하나로 시작되는 두물머리에서 함께 가져보고 싶었다.

 

 

아래 사진은 행정대집행 유기농 텐트촌이 꾸려졌을 때의 한때이고, 이 장면은 나의 마음 깊이 박혀있다. 저 강 건너편에서 국가폭력이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순간, 우리가 두물머리에서 강과 땅과 미생물과 친구들과 사물들과 함께 만들어내던 풍경은 이러했다. 국가와 자본은 두물머리라는 이 장소의 이야기를 지워버리고 함부로 구획 지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주춧돌을 박기 위해 두물머리의 삶을 몰아내고 공터로 만들고자 시도했고, 지금도 시도 중이다. 지금 저 나무는 베어졌고 원두막은 철거되었고 땅 위로 산책로가 놓여졌다. 하지만 유기농이든 생태학습이든 에코토피아든 빠마컬처든 그걸 뭐라고 부르든, 두물머리에서 강과 땅과 인간이 서로 기대고 어울리는 이야기를 거듭 쓰고 싶다. 그래서 머지않은 어느 여름날에 당신과도 그런 이야기로 두물머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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