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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태동과 진화
2016-05-19 11:38:00

* 모심과살림 3호(2014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태동과 진화

 

글 구도완(환경사회연구소 소장)

 

 

동학혁명과 박정희 체제

 

2014년은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 해월의 삶과 사상을 흠모했던 무위당 장일순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일제 강점,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과 같은 거대한 사건들을 겪었고, 그 사건들의 영향을 받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 삶을 규정짓는 공업 자본주의, 그리고 그것의 한 형태인 박정희 체제는 동학을 압살한 일본 제국주의와 다른 듯 보이지만 같은 뿌리를 가졌다. 약육강식, 국가 폭력, 공동체 해체는 이 두 체제의 공통점들이다. 동학도들은 봉건 억압과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고, 해월 최시형을 존경했던 장일순은 이승만과 박정희 체제에 맞서 생명을 살리는 세상을 꿈꿨다. 해월과 장일순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가 무엇이고 이를 넘어서서 어떻게 사람과 자연을 살릴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62년 울산 공단 기공식에서 박정희 육군대장은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그 연설문의 일부는 지금도 울산의 공업탑에 새겨져 있다.1) 그 체제는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풍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 억압 그리고 환경파괴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인 부귀”를 이루는 데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한편 그것은 반대자들과 뭇 생명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탑이다.

 

한국의 반공해운동,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은 이러한 죽임의 구조와 문화 속에서 탄생했다. 환경운동의 선구자 최열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1975년 감옥에 갇혀 공해에 대한 책을 보면서 반공해운동을 시작했다.2) 생명 사상의 이론가 김지하는 감옥 창틀에서 자라나는 풀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장일순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보며 1977년경,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맑스주의를 넘어서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3) 그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당연히 종식되어야 하지만, 자연을 약탈하는 산업문명을 그대로 두고서는 공해 문제, 핵 문제 등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4) 박정희 체제는 개발과 반공, 독재를 한 몸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자연을 착취하며 한반도 남쪽을 지배했다. 이 죽음의 억압 속에서 유기적 지식인들은 사람과 자연을 살리기 위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의 환경·생명운동

 

1979년 5월에 감옥에서 나온 최열은 ‘공해문제도 중요하지만, 민주화하고 난 다음에 공해문제를 해결해야지 순서가 맞다’는 동료들의 말에 따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79년 YWCA 위장결혼 사건에 참여해 다시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1982년 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1985년 온산병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광주항쟁이 끝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 숨도 쉬기 힘들 만큼 폭압적 상황에서 원주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문건이 만들어졌다.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이 문서는 1981년 가을에 김지하에 의해 초안이 만들어졌고, 원주의 활동가들과 장일순 등이 윤독하고 수정, 가필하여 1982년 상반기에 완성되었다.5) 이 글은 김지하의 『남녘땅 뱃노래』에 “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이라는 제목으로 수정하여 실렸다. 이렇게 정리된 생명사상은 드디어 1989년에 「한살림선언」으로 완성되었다.

 

1980년대 왕년의 민주화운동 투사들이 환경, 공해, 생명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박정희 개발독재에 의한 공업화와 이로 인한 환경과 삶의 파괴가 지식인들에게 삶과 운동의 의미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반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식인들은 ‘죽임’의 문명, ‘죽임’의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과 사상을 고민하고 토론했고 이를 글로 남겼다. 재미있는 것은 1989년 한살림모임에 장일순을 비롯한 김지하, 박재일, 최혜성 등 원주의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최열 당시 공해추방운동연합 공동의장도 회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6) 김지하는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지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70년대 암울했지만 열정이 넘치던 시대를 살아온 유기적 지식인들은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한국의 독특한 사상과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상과 운동의 분화

 

앞에서 보았듯이 생명운동의 싹이 1980년대에 피어나기 시작했지만, 젊은 학생들과 투사들 가운데에는 민족해방이나 계급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이들의 유토피아도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빠르게 혹은 천천히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민중이 더 이상 스스로 민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에 이들은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찾아 새로운 환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회원을 모집하고 시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시민 환경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환경운동단체들은 동강댐 반대운동,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 등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가치관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다른 한편 생명운동은 한편으로 좀 더 근본적인 문명전환운동과 생협을 중심으로 한 협동운동으로 발전했다. 「한살림선언」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담론을 만들어낸 한살림모임은 1990년대 중반에 사라졌지만 『녹색평론』이 대안적인 생태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했고, 2002년에는 한살림모임의 정신을 이어받은 모심과살림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생명사상은 한살림이라는 생협운동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40만 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살림’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한살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신뢰의 사회적경제 실험을 하고 있다. 생명 담론은 종교인들의 삼보일배, 생명평화결사 등 여러 운동을 통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켜 왔다.

 

앞에서 본 시민 환경운동이 환경을 파괴하는 국가 혹은 기업에 대항해 싸우고 부딪히면서 대항적인 녹색 헤게모니, 녹색 연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생명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은 마을과 도시에서 서로 손을 잡고 더불어 숲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두 운동은 모두 사람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지만 그 방향과 방법은 사뭇 다르다.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어디에도 숨을 곳, 도망칠 곳이 없는 위험한 지구에서 우리끼리 유기농산물 먹으면서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구적 위험의 시대에 생협 조합원들이 이제 탈핵을 외치며 아이들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녹색당이 창당되어 새로운 녹색정치를 실험하고 있다. 풀뿌리에서 농사를 짓고, 『녹색평론』을 함께 나누던 독자들이 앞다투어 녹색당 당원으로 가입하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생태운동의 그림자

 

지난 20여 년간 시민 환경운동은 국가와 한편으로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 협력하며 정책 전환을 통해 지탱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 왔다. 그런데 계속되는 싸움과 협상 속에서 점점 힘은 빠지고 전환의 희망은 희미해지고 있다. 국가와 싸워서 국가를 변화시켜 빠르게 사회를 녹색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정책의 전환, 구조의 변화는 더디거나 불가능했다. 국가에 맞서 덩치를 키우고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으나 그에 맞는 내공을 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열정으로 가득 찼던 연대의 추억도 아련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 문명전환을 외치던 한살림모임이 사라진 자리에 급속히 성장한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이 자리 잡았다. 두레생협연합, 여성민우회생협, 아이쿱생협 등 새로운 생협들도 나름의 색깔을 갖고 성장해 왔다. 생협들은 빠른 성장 속에서 효율화, 시장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살림은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 새로운 사회적 경제, 생명의 경제를 창조하여 튼튼하고 푸른 숲을 만들어서 많은 생명이 깃들이게 하겠다는 멋진 이상을 마음에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생존을 위한 경쟁과 효율성을 명령하고 있다. 모든 세상이 시장의 지배 아래 휩쓸려 들 때 그 소용돌이를 벗어나 생명과 공동체/사회를 다시 불러오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한살림선언」이라는 담론은 있으나 그것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체제의 시장화와 이로 인한 생태사회 위기가 심화될 때 사회적 경제, 생명 경제의 울타리를 친다고 해도 그 위기의 파도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환경, 생명운동을 넘어선 녹색정치를 꿈꾸고 출범한 녹색당은 낮은 지지율, 부족한 인적·물적 자원으로 고통 받고 있다. 현실 정치가 시장, 독재, 권위주의로 치달을수록 반독재 헤게모니의 목소리는 커지고 그 속에서 소수, 정체성, 생명의 정치는 낡은 진영들의 압력에 고통 받는다.

 

시민환경운동, 생명운동, 녹색당 운동이 어려움 속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정객들은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정치적 자원으로 삼아 자신들의 개발과 전쟁 중심의 지배체제를 지키고 확대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생태 위기와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파시스트들의 폭력정치는 더욱 세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교환을 넘어 (순수)증여로

 

삶과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옛것을 돌아보며 새로운 전망으로 앞날을 헤쳐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세계체제가 어디에서든 시장이 사회와 자연을 지배하는 체제임을 모르는 이들은 이제 별로 없다. 세월호와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이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사람의 생명과 자연의 생존은 값싼 화폐로 대체된다. 개발과 독재의 융합으로서 박정희 체제는 후쿠시마 혹은 고리1호기와 세월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지금 서 있다.

 

우리는 수백 년 혹은 수십 년간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빠져 들어서 화폐를 매개로 상품을 교환하는 시장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시장의 특징은 이윤을 위해 모든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조직된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 소중한 자연과 사람이 화폐를 매개로 부동산과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거래된다. 폴라니는 이를 ‘악마의 맷돌’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증여와 호혜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시장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부모 자식, 친구, 연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랑이나 존경이라는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랑과 존경의 증여와 호혜 관계가 자연(혹은 신)으로부터의 순수증여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7) 태양과 바람과 물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가? 대가 없는 자연의 순수한 선물을 받은 우리가 그 선물을 돌리고 돌릴 때, 신뢰와 우애의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수 있다.

 

<표 1>은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칼 폴라니Karl Polanyi, 가라타니 고진炳谷行人, 나카자와 신이치中.新一의 개념을 재구성하여 만든 것이다. 인류는 그 종의 역사 대부분을 자연에 완벽하게 의존하며 살아왔다. 자연이 주는 햇빛, 바람, 비에 의존하여 수렵, 채취의 삶을 살아왔다. 경외의 대상으로서 자연은 신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것을 나까자와 신이치는 순수증여라고 이름 붙였다.

 

“풀 하나, 돌 하나, 예를 들어서 나락 하나도 땅과 하늘이 없으면, 물과 빛이 없으면, 공기가 없으면, 미물들이 없으면, 이 우주가 없으면 나락 하나가 되지를 않는다 이거예요.” (장일순)8)

 

이 순수증여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공동체 혹은 사회를 이루어 가족, 친족 그리고 더 나아가 이방인을 환대하며 물건과 사랑을 교환하고 증여하며 호혜의 관계망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계획적인 생활공동체 그리고 더 크게 보면 사회적경제가 이러한 증여와 호혜의 교환양식을 바탕으로 하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사례이다.

 

그런데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위계가 생기고 이는 거대권력과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가는 공공의 이익과 안전, 다른 국가의 침략 위협에 대한 대비를 자신의 정당성 근거로 삼아, 세금과 군역을 약탈하고 이를 다시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대 국가는 권력을 매개로 복지국가 혹은 약탈국가로 기능한다.

 

순수증여, 증여, 재분배의 교환양식 위에 드디어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이 등장했다. 시장은 화폐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최종심급의 대법관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그 마지막 형태이다. 장일순은 “시장경제라고 하는 것은 돈을 모시는 경제지, 생명을 모시는 경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9)

 

칼 폴라니10)는 자기규제적 시장이 자연과 사회에서 나왔지만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특성을 비판했다. 가라타니 고진11)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면서 보편적인 평등과 호혜를 지향하는 보편종교의 교환양식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까자와 신이치는 순수증여를 통해서만 가치가 생산되기 때문에 이를 선물의 증여로 순환시킬 때만 새로운 우애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장일순은 이러한 선순환고리를 끊고 생명을 죽이는 문명을 전환하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폴라니, 가라타니, 나까자와가 사회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장일순은 ‘우주적 생명’의 관점에서 인간, 사회, 자연의 하나됨, 한살림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하고는 했다.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은 이러한 순수증여와 증여, 재분배와 시장교환의 선순환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시민환경운동은 국가가 재분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약탈에 몰두할 때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시장이 자연과 사람을 부동산과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취급할 때 이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의 영향력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강화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힘은 부치고, 국가와 자본의 담론에 휩쓸리기도 했다. 생명운동은 국가에 대항해서 싸우는 대신 증여와 호혜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 힘으로 시장의 횡포를 막고 자연과 사회를 모두 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국가 폭력과 싸우다가 국가와 닮아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순수증여의 자연과 증여(호혜)의 공동체에서 대안을 찾았다. 녹색당은 한편으로 증여와 호혜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서, 그 공동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국가와 시장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녹색정치를 실행하고 있다.

 

 

평화, 풀뿌리 생태민주의 녹색정치

 

민주화운동에 삶을 걸었던 최열, 김지하, 장일순, 박재일 등 투사들이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환경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환경과 생명을 지키지 않고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 독재체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존엄을 화폐로 환원하는 시장을 다시 사회 속으로 불러들이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이들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박재일의 한살림은 40여만 명의 조합원이 먹을거리를 나누는 공동체로 성장했고, 최열이 터를 닦은 환경운동연합은 3만여 회원의 환경운동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자민족중심주의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김지하의 퇴행은 환경과 생명운동이 언제든지 심각한 독단으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영광과 치욕을 함께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 김지하와 박재일의 스승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한살림의 정신적 주춧돌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구조 변화의 광풍이 우리를 흔들 것 같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쇠퇴와 변형, 미국, 중국, 일본 등 거대 국가들의 군비 증강, 한반도의 위기 심화, 기후변화의 충격, 석유 고갈의 위기, 핵 위험의 심화 등이 우리의 미래에 어두운 구름을 몰고 온다.

 

구조가 요동치던 시대에 살았던 맑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계급이익을 넘어서 보편적인 계급, 계급 아닌 계급으로서 계급지배를 끝내는 미래를 상상했다. 그들은 계급지배가 사라진 자리에 자유로운 개인들의 어소시에이션의 연합이 등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한살림선언」은 자본주의과 사회주의, 공업문명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는 새로운 문명을 꿈꿨다. 그런데 그 문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씨앗을 본다. 대안학교를 나와 새로운 청년공동체를 만들어 좌충우돌하며 생태적 자립의 모델을 실험하는 젊은이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시장을 넘어 사회적경제를 실험하는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자라나고 있다. 다른 정치를 지향하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 의회 의원들이 성장하고 있다. 녹색당에 모인 젊은이들이 녹색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공감의 범위를 세계로 넓히는 세계시민들이 자라고 있다. 인간 이외의 생물과 자연을 ‘그’가 아니라 ‘너’, 그리고 ‘우리’로 인식하는 생태 시민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들을 나는 생태민주적 세계시민이라고 부른다. 폭력을 독점한 채 상대국의 폭력을 전제로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국가 간 상호의존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평화, 풀뿌리, 생태민주의 녹색정치를 삶과 정치의 모든 장소에서 실천하는 일이 새로운 문명을 우리 안에서 만드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손잡고 숲을 만들어 가면서 숲을 해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순수한 선물을 공짜로 주는 자연을 해쳐서 사랑과 경제와 도덕의 선순환고리를 깨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장일순은 ‘운동에는 다 각각이지만 반생명세력에 대항해서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살림운동의 시각이 정치에서부터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연대할 능력이 있어야 된다” 12)

 

“용서한다는 것은 같이 공생하려고 할 때의 얘기입니다. 그들이 공생 안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폭력, 비협조해야죠.” 13)

 

이 싸움이 승리할 때 국가는 이제 약탈자, 폭력배가 아니라 공동체의 관리자로서 약한 이들을 돌보며, 선물을 나누어주는 재분배의 담지자, 선물이 잘 돌아가도록 살피며 시장이 공평하게 기능하도록 감시하는 관리자가 된다. 이렇게 될 때 공동체, 사회, 마을의 대표들이 만든 생태자치 연방이 지구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위험의 지구화 시대에 숲을 만들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이웃들과 힘을 합쳐 더 큰 숲을 만들어 가고 있다.

 

 

<주>

1) 한국공해문제연구소, 『한국의 공해지도』, 일월서각, 1986, 52쪽.

2) 최열,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환경운동과 더불어 33년』, 생각의 나무, 2009, 21-24쪽.

3)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1997, 123쪽.

4) 위의 책, 103쪽.

5) 김용우, “생명사상 및 운동의 초기 형성과 전개: ‘원주보고서’를 중심으로”, 『산업화 이후의 생명운동 연구워크숍 자료집』. 모심과살림연구소, 2011.

6)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운동 연구: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452쪽.

7) 나카자와 신이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물신숭배의 허구와 대안』, 동아시아, 2004.

8) 장일순, 앞의 책, 94쪽.

9) 위의 책, 52쪽.

10)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도서출판 길, 2009.

11)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도서출판 b, 2012.

12) 장일순, 앞의 책, 80쪽.

13) 위의 책,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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