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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무위당과 영성적 사회운동
2016-05-19 11:51:00

* 모심과살림 3호(2014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무위당과 영성적 사회운동

 

글 주요섭 (한살림연수원 사무처장, 前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무위당이 서울로 간 까닭은?

 

1987년 12월 4일 무위당 장일순은 서울 제기동의 허름한 쌀가게를 찾았다. 서울에서 도농직거래운동을 본격화하는 박재일을 비롯한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돌 고르는 기계 옆에 쌓인 쌀 몇 포대와 잡곡류, 어설프게 진열돼 있는 계란과 참기름을 보면 여느 쌀가게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위당에게 제기동의 쌀가게는 의미심장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전인 1985년 6월 원주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을 열고 원주 인근 농촌의 생산자와 원주 시내의 소비자를 연결하는 생산-소비 직거래운동을 시작한 바 있었다. 원주의 협동운동 그룹이 오랫동안 농촌소비조합을 운영해 왔지만,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하는 협동조직을 만든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러나 원주는 아무래도 소비량이 적었다.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직거래의 획기적 확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라면 무위당의 서울 나들이는 의례적인 격려 방문에 그쳤을 것이다. ‘양적 확대’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무위당과 원주 사람들에게는 그러했다.

 

무위당과 박재일에게 한살림농산은 나락 한 알의 개벽이었다. 충청북도 음성 성미마을에서 온 유기농 쌀과 강원도 횡성 공근마을에서 온 유정란을 통해 소비자들의 밥상을 살리고 농민과 땅을 살리는 도농 상생의 생명공동체운동을 실천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였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이해관계가 정반대여서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서로를 책임지는 이른바 ‘생산-소비 협동’ 모델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킬 출발점이었다.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1982년 원주보고서 이후 5년여 만에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사회운동이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인 날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생산-소비 하나’의 생명공동체운동이 새 이름을 얻었다. ‘한살림’이 그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살림이고 도시와 농촌이 한살림이다. 기가 막힌 이름이었다. 쌀가게 주인(?) 박재일에게나 이를 축하하기 위해 온 무위당에게는 ‘한살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실제 ‘한살림’이란 고유명사는 약 3년 뒤 1989년 9월 한살림선언을 통해 문명전환의 개벽적 언어와 철학이 되었다.

 

 

 

계산 없는 협동

 

무위당은 일찍이 1966년, 박재일이 원주에 왔을 때부터 협동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했다고 말한 바 있다. “계급운동이 아니라 협동운동 속에야말로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훗날 원주를 찾은 일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회고한다.

 

그러나 한살림의 생산-소비 협동이 시사하듯 무위당의 협동은 범상치 않았다. 협동은 협동이되 ‘계산된 협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존 협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넘어 차원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위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협동조합은 본래 산업혁명기에 유럽에서 착취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대기업의 하청업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생산조합이든 신용조합이든 소비조합이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협동을 하면서도 이해타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한 것이 ‘계산 되지 않은 협동’이다.

 

그렇다면 ‘계산되지 않은 협동’이란 무엇일까? 무위당은 그 상징적인 예로 신약성서에 나오는 포도밭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루 포도밭에서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아침부터 온 사람에게도, 저녁에 와서 간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이므로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상식적으로는 아침부터 10배 일을 하였다면 그만큼 더 돈을 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자연의 나라, 자유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일찍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저녁대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그러한 협동으로 좋지 않겠습니까.” 1)

 

무위당의 관점에서 기존의 협동조합은 ‘계산된 협동’이었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모였다가 이익이 사라지면 협동을 외면한다. 더욱이 협동조합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다른 협동조합과는 자본주의적 경쟁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생산자조합과 소비자조합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70년대 원주캠프는 강원도 일원 광산지역 및 농촌지역에서의 수많은 신용협동조합과 소비조합을 만들어 광부들과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으나 종국에는 이해타산 때문에 안타깝게 끝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위당의 눈에는 도농직거래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을 꾀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긴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살림농산이 만들어진 1980년대 후반에도 이미 적지 않은 직거래조직이 있었다. 그러나 거의 전부가 유통 과정 축소와 그를 통한 경제적 이익에만 주목했다. 한살림 20년 역사를 담은 『한살림 세상을 껴안다』에서 소개하고 있는 ‘좋은쌀집’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한살림뿐이었다. ‘계산 없는 협동’ 덕분이었을까? 무위당의 후배이자 평생 동지인 박재일은 한살림농산의 문을 연 이듬해 새해 아침에 <한살림을 시작하면서>라는 편지를 통해 호소했다.

 

“땅과 사람, 물건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갈라지고 못 믿는 사이가 되는 삶이 살림의 삶일까요. 죽임의 삶일까요? 또한 농산물 값이 내려가면 농민은 울고 소비자는 좋아하고, 농산물 값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울고 농민은 좋아합니다. 이처럼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이 옳은 삶일까요?”

 

무위당과 박재일의 협동은 뭔가 달랐다. 나와 우리의 이익을 위한 협동에 머물지 않았다.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넘어서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고 상대의 눈물을 닦아주는 ‘계산 없는 협동’을 열망했다. 한살림의 ‘생산-소비 협동’은 생명에 대한 연민, 이웃의 아픔과 슬픔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된다. ‘계산 없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계산 없는 협동’의 출발점은 거룩한 마음의 협동운동이었던 것이다.

 

무위당은 “왜 한살림인가?”라고 묻고 스스로 답한다. “생명은 하나라는 거예요. 둘이 아니야. 하나지. 한살림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운동이란 말이지.”

 

그렇다. ‘계산 없는 협동’의 바탕에는 ‘생명은 하나’라는 깨달음이 깔려 있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라는 자각이 그것이다. 너와 내가 형제이고 자매고 부모이면서도 동시에 자녀라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무는 산소를 공급하여 나를 살리고, 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식물의 대사를 돕는다. 나무와 나는 둘이 아닌 것이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불행은 땅과 사람, 물건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갈라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상부상조와 같은 협동의 원리 속에도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자각, ‘너와 나는 하나’라는 깨달음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도 한 살림이고, 자연과 인간과 한 살림이고, 온 생명이 한 살림인 것이다.

 

무위당이 서울로 간 까닭은 한살림농산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날 ‘계산 없는 협동운동’, 혹은 거룩한 협동운동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숨겨진 하나됨’이 생산-소비 협동으로 실현되는 영성적 사회운동의 첫 발걸음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생명사상과 영성적 사회운동

 

생명사상이란 쉽게 말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살아있다는 생각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그것은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그것은 ‘생명은 하나’라는 말로 압축된다. 생명세계는 근원적으로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위당은 그 ‘숨겨진 하나됨’을 동학의 ‘시천주侍天主’를 빌려 ‘모심(侍)’이라고 말한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는 시천주로 시작되는 21자 주문의 머리글자인 모심(侍)을 이렇게 설명한다. “안에 신령神靈이 있고 밖에 기화氣化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요(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

 

2000년 한살림의 여성 활동가들이 「한살림선언」 등을 참고해 정리한 ‘한살림운동의 지향’ 제1항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모셔진 거룩한 생명을 느끼고 그것을 실현합니다.” 동학의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구조와 비교된다. 이 한 문장 안에 영성적 사회운동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내 안에 있는 ‘거룩한 생명’에 대한 자각과 그것의 사회적 실현이 곧 한살림운동이요, 생명운동인 것이다.

 

 

내유신령: 숨겨진 하나됨

 

내유신령內有神靈, 즉 우리 안에 모셔진 거룩한 생명이란 기독교식으로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며, 불교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있는 불성佛性이다. 또한 과학적 표현을 빌려 말하면, 내 안에 응축된 우주 진화의 역사이다. 요컨대 모든 존재의 뿌리는 우주적이며 또한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무위당의 ‘모심의 생명사상’도 결국 ‘생명은 하나’라는 숨겨진 하나됨에 대한

통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운 최제우의 “내 마음이 네 마음”, 즉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신비체험도, 무위당의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라는 깨달음도, 한살림 협동운동의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라는 명제도 생명사상의 관점에서는 숨겨진 하나됨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것은 삶/생명의 우주성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한살림선언에서는 ‘생명에 대한 우주적 자각’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137억 년 전 빅뱅 이후 물질적·정신적·사회적 진화의 역사가 내 안에 응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도덕이나 철학이 아닌 과학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나의 삶은 최소한 ‘태양계적’이긴 하다. 태양이 있어야 식물이 광합성을 하고 식물이 존재해야 산소를 공급받고 유기물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삶/생명은 우주적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다면 존재 하나하나가 신령할 수밖에 없다. 감자 한 알도 달리 보인다. 단지 농민의 땀만이 아니다. 칼로리와 가격 아래 숨어 있는 천지만물의 조화와 우주의 숨결을 느낀다.

 

우리의 삶과 실천 역시 거룩해질 수밖에 없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사람과 똑같이, 우주생명을 모시는 존재이며 나와 둘이 아니다. 무위당이 그러했듯이 술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들풀이 예사롭지 않고 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외유기화: 새로운 공동체

 

나락 한 알과 티끌 안에 모셔져 있던 우주가 아름다운 생명공동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외유기화外有氣化다. 또한 숨겨진 하나됨이 밖으로 드러날 때, 사회적으로 그것은 형제애/자매애의 공동체가 된다.

 

고유명사 한살림이 아닌, 보통명사 한살림공동체가 무위당에게는 그 하나됨의 실현태였을 것이다. 도농공동체와 생산-소비 협동이 ‘생명의 하나’의 실현이며, 아파트 안에서 물품을 나누는 소비자공동체와 ‘관계가 있는 농업’으로 땅을 살리는 생산자공동체가 외유기화였을 것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면, 너의 눈물은 곧 나의 슬픔이 된다. ‘계산된 협동’이 ‘계산 없는 협동’으로 전환된다.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충돌된다 하더라도 생명은 하나라는 관점에서 보면 생산자와 소비는 이제 서로를 배려하는 친구가 되고 자매가 된다. 둘 사이 상품을 팔고사는 관계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로 변화한다.

 

답례마저도 차원이 달라진다. 무위당은 강조한다. “답례는 앞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뒤로 하는 거야.” 옆으로 답례, 뒤로 답례가 이루어지자 받은 만큼만 주고받던 양방향의 상호관계가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고 또한 더욱 깊어진다.

 

특별히 하나됨을 체험한 공동체에서는 생명 나라의 법이 이 땅에서 실현된다. 동학의 접接이 그러했고 로마의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여자와 백정과 아이들과 병든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따로 없고, 먼저 온 사람과 늦게 온 사람의 차별이 없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자신의 것을 나눈다.

 

이것이 진짜 새로움이다. 신약성서의 중생의 체험처럼, 새로운 공동체로의 거듭남이다. 기존의 공동체가 이해관계로 엮인 구속의 공동체였다면, 새로운 공동체는 숨겨진 하나됨의 사회적 실현으로써 이 땅 위에 이루어진 생명나라이다. 이를테면 거룩한 공동체이다. 사전의 의미 그대로 뜻이 높고 위대한 공동체이다.

 

 

영성적 사회운동

 

이렇듯 계산과 계약이 아닌 숨겨진 하나됨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가 곧 영성적 사회운동이다. 불성의 실현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현현顯現이다. 이성적 사회운동이 아닌 영성적 사회운동, 배제의 사회운동이 아닌 거룩한 사회운동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이성적 주체를 전제로 사회적 공공성 실현을 목표로 한다면, 영성적 사회운동은 영성적 주체성의 회복을 바탕으로 생명 공공성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생명공공성이란 숨겨진 하나됨에 기초한 공공성을 말한다. 사회적 영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천지공심天地公心’이라고 말했고, 일본 공공철학연구소 김태창 소장은 ‘영성적 공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 나아가 우주적인 것까지를 아우르고 또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됨, 그것이 영성이다. 초끈이론의 그것처럼….

 

이때 영성적 사회운동은 종교적 사회운동, 즉 불교와 가톨릭 및 개신교의 교리와 교단조직에 기반한 사회운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마치 학교가 지성을 전유할 수 없듯이 종교가 영성을 독점할 수는 없다. 더욱이 문명사적 전환기에 즈음하여 우리는 비종교적·탈종교적 영성공동체와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프라우트 이론에 입각해 새로운 공동체와 영성적 사회운동가 모델을 제시하는 수행공동체 아난다마르가에서 오히려 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생명평화운동, 생명살림운동, 생명공동체운동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생명운동’이야말로 영성적 사회운동이다. 거룩한 사회운동이다. 생명운동은 무엇보다 아프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활동이지만, 그 공감의 범위가 깊고 넓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영성적 사회운동이다.

 

영성적 사회운동으로써 생명운동은 “그대가 나”라는 깨달음, 혹은 “생명은 하나”라는 깊은 마음의 통찰에 기초한다. 생명의 눈으로 보면, 공동체의 기초는 독립된 개인 사이의 ‘사회계약’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하나로 연결된 ‘생명의 마음’이다.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으로 표현된 ‘숨겨진 하나됨’의 영성이다. 그것을 무위당은 ‘모심(侍)’이라고 말한다. 나락 한 알 속에 있고, 밥 한 그릇 안에 숨어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안에,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는 농부의 마음 안에, 생산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소비자의 마음 안에 있다.

 

 

전환, 무위개벽의 꿈

 

거룩한 사회운동이라고 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엄밀하고 정확하게 지금 여기의 포도원을 만들어간다. 무위당에겐 그중 하나가 제기동의 쌀가게였다. 후천개벽, 우주적 합일로 뜻이 높고 위대하긴 하지만, 또한 그 우주가 좁쌀 하나, 티끌 하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주를 덮는 무위당의 무수장삼無袖長衫의 꿈이었다. 성글고도 촘촘한 무위당식 사회운동 전략이었다. 개벽적 전환의 기획이었다.

 

 

 

엑서더스

 

‘엑서더스’가 첫 출발이다. 1992년 어느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다. 세월호의 참담함 속에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다시 읽다 눈에 확 들어온다. 탈출, 그렇다. 거룩한 사회운동, 즉 생명운동은 대탈출의 결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반생명적인 일체의 조건을 갖다가 다시 보고 그것에서부터 우리는 탈출해야 돼. 엑서더스. 그것은 주먹을 쥐고 상대를 때려눕히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변화시키는 운동으로, 비협력으로 탈출해야 돼. 비폭력으로 탈출해야 돼.”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내려야 할 때이다. “이대로는 정녕 아니야”,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어”라는 느낌이 들면 결단을 해야 한다. 결정적인 시기에는 ‘생명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 전환의 계기가 ‘각비覺非’, 즉 ‘아니다’라는 자각이라면 그 실천적 출발점은 엑서더스다.

 

농약으로부터의 엑서더스

핵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서울로부터의 엑서더스

고용노동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요양병원으로부의 엑서더스

학원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자동차로부터의 엑서더스

자본 숭배와 경쟁 시스템과 물질주의적 생활양식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이미 탈출은 시작되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탈脫’ 할 수밖에 없다. 탈도시, 탈학교, 탈노동, 탈성장, 탈종교, 탈정당… ‘반생명적인 것’으로부터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됐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 탈출하는 순간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 할 때다. 출애굽과 함께 우리 안에는 이미 가나안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귀농이 그렇고, 힐링 신드롬과 협동조합 열풍이 그렇다. 결단하여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순간, 귀농공동체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고단하여 위로를 받고자 하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마음공부모임이 만들어진다. 자본 중심의 경제를 포기하는 순간 사람 중심의 경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탈학교 대안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비정당적 정치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비종교적 영성공동체가 만들어진다. 탈(고용)노동 생활협동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깨달음과 새로운 공동체

 

1977년 즈음부터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무위당은 고백한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라는 성찰이다. 기존의 삶의 방식,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으로는 ‘아니’라는 자각, 이른바 ‘각비覺非’가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근본을 묻기 시작한다.

 

“난 사실은 77년서부터 결정적으로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네. 땅이 죽어가고 생산을 하는 농사꾼들이 농약 중독에 의해서 쓰러져가고, 이렇게 됐을 적에는 근본적인 문제서부터 다시 봐야지. 산업사회에 있어서 이윤을 공평분배하자고 하는 그런 차원만 가지고는 풀릴 문제가 아닌데,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꿔야 되겠구나, 인간만의 공생이 아니라 자연과도 공생을 하는 시대가 이제 바로 왔구나 하는 것 때문에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지.”

 

잠시 기존의 활동을 멈추고 성찰한다. 되돌아본다. 아마도 이때 젊은 시절 접했던 동학을 다시 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귀歸, 돌아감이다. 근본으로 되돌아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듯이 엑서더스는 사실 돌아감이다. 제 삶의 터전으로, 생명의 근본자리로의 귀환이다.

 

그리고 얻은 깨달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하나”. 나만 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만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만의 생명이 아니라 모두가 한 생명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하나로 연결된 생명공동체이다.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다. 하나이다. 삶의 영역이 우주로 확장된다. 나에게서 이웃으로, 다시 자연으로, 그리고 우주, 혹은 깊은 내면으로 확장 심화된다. 이것이 생명의 본래 모습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일본과 대만 등에 활동가들을 보내고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의 사례를 연구한다. 영감을 얻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무위당과 원주의 활동가들은 지금 여기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간다. 그리하여 1985년 원주소협이 문을 열고, 1986년 한살림농산이 활동을 시작한다. 기존의 공동체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사회운동 방식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협동조합은 이제 이윤을 위한 결사체가 아니다. 생명의 눈으로 본 협동운동은 너와 나 안에 숨겨진 하나됨의 실현이다. 상대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켜 너를 변화시킨다. “사심 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나면”, 지금 여기 하느님나라가 된다.

 

뭇 생명의 아픔과 함께하는 ‘치유의 사회운동’, 구조를 탓하기 전에 삶을 바꾸는 ‘대안적 사회운동’, 부엌과 농촌에서 문명을 바꾸는 ‘전환의 사회운동’, 우주로 확장된 삶의 영역 속에 모든 존재가 하나임을 알아차리는 ‘깨달음과 영성의 사회운동’이 시작된다. 거룩한 사회운동이 시작된다. 새로운 협동운동이 시작된다. 우리를 위한 협동운동, 이윤을 나누는 협동운동에서 계산 없는 협동운동, 서로를 살리는 협동운동이 시작된다.

 

 

 

무위의 꿈

 

무위당의 삶보다 조금 더 극적이긴 하지만, 수운 최제우의 삶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피난避難과 장생長生의 땅을 찾아 헤맸지만 어디서도 궁궁촌을 찾지 못했다. 과거시험도 아니고 장사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서학도 아니고 비결서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귀歸, 과거의 사사로운 욕망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문득 ‘하나됨 체험’을 하게 된다. 깨달음이다. 그리고 접接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전환의 프로세스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1)각비覺非: “더 이상 이렇게는 아니다”라는 생명감각

 

2)엑서더스歸: 기존 질서로부터의 탈출, 혹은 제자리로 돌아감

 

3)각성: ‘생명은 하나’라는 깨달음

 

4) 새로운 공동체: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내용과 형태의 생활/문화 공동체

 

5)사회개벽: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사회적 확장, 그리고…

 

물론 각비와 돌아옴과 깨달음과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는 단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거의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때가 되었다는 것,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무위당과 선배님들이 깨달음과 새로운 공동체로 뿌려놓은 씨앗들이 싹이 트고 자라서 작은 숲이 된다.

 

그렇다. 이제 사회개벽이다. 때가 되었다. 그때가 지금이다. 이심전심으로 새로운 공동체의 열망이 표출되고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세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경향각지에서,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 이러저러한 옹달샘에서 발원한 새로운 흐름이 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고 있다.

 

무위당의 무위無爲를 다시 생각해본다. 무위당은 동학을 빌려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길을 이야기한다. 무위이화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함이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덕분에 저절로’이다. 이심전심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고 천지 기운이 활동하여 어떤 일이 실현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꿈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는 것이다.

 

 

거룩한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

 

원주보고서를 통해 생명운동이란 말이 세상이 처음 나온 지 정확히 32년, 그리고 생명운동가 무위당이 생명나라로 돌아간 지 20년, 무위당의 거룩한 사회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무위개벽의 꿈은 방방곡곡에서 삶의 전환, 사회적 전환의 사발통문의 꿈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로 확산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생명운동으로 뒤따르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협동운동을 배우기 위해 원주를 찾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무위당기념관(?)에 들른다. 생명사상에 기초한 영성적 사회운동은 문명사적 전환기 한국 사회운동 새길 찾기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덧 30년이다. 거룩한 사회운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요컨대 영성적 기초는 더욱 깊게 하면서도 그 드러난 모습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영성이 무겁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면, 물질적 풍요 속 오늘의 거룩함은 좀 더 경쾌해질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시스터 액트>의 춤추는 수녀님들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거룩한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의 변화라고 할까. 생명운동은 이제 문화로 꽃피워야 한다. 숨겨진 하나됨과 우주생명 리듬은 예술로 표현되어야 한다. 원불교 교전에 “풍류로써 세상을 건지리라.”라는 말이 있다. 신라시대 세상을 구한 피리 만파식적이 유명하다. 전일성의 과학자 에리히 얀츠는 『자기조직하는 우주』라는 책에서 “탁월한 예술은 우주의 깊은 마음과 닿아 있다”라고 쓰고 있다. ‘거룩한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라는 말은 결국 문화적으로 표현된 신성이다. 문화는 신성함으로 우주의 마음에 다가가고, 신성함은 무늬를 통해 드러난다.

 

다음으로 거룩한 사회운동은 여성과 만나야 한다. 생명운동은 시작 때부터 살림하는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였으나 여전히 담론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치열하게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또 활동해온 정현경 교수는 1991년 무위당을 찾았을 때 “‘문명의 전환’이라는 말로 시대를 평가하는” 무위당에게서 뭔가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무위당의 답 가운데 하나는 부드러움이었다.

 

“여태까지 걸려 있던 것이 얼마나 영악스럽게 단단한지 몰라요. 이건 부드러운 게 아니어서는 못 풀어. 강한 것 가지고는 백번 쳐봐야 당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페미니즘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여성의 핵은 부드러운 거라구요. 지금 페미니즘의 개념을 정확히 잡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부드러운 게 아니고서 페미니즘이라고 한다면 생명을 상실한 거지. 모든 생명은 연하잖아. 그러니까 살아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 딱딱한 대지를 뚫고 나오는 거지.”

 

무위당과 현경의 만남이 시사하듯, 무위당은 한살림의 여성들에게 도통(?)을 전수했는지도 모른다. 현경은 2000년대 초 무위당과 김지하를 통해 ‘살림의 사상’을 접하고 ‘살림이스트 선언’을 하였다. 현경이 말하는 살림이스트는 말 그대로 살리는 사람이다(살림꾼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영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뭔가 가벼우면서도 그럴 듯해 보인다.). 여신이면서 동시에 생활지킴이인 깊은 마음의 살림이니스트. 그런 점에서 현경의 살림이스트 선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어쩌면 생명운동의 변신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림이스트는 모든 것(특히 죽어가는 것)을 살아나게 함. 살림은 한국 여성이 매일 하는 가정일을 일컬음. 예를 들면 나무하기, 물 긷기, 음식하기, 빨래하기, 베 짜기, 아이 키우기, 병간호, 노인 돌보기, 꽃나무 가꾸기, 우물 지키기, 소·닭·개 키우기, 그리고 영靈들 돌보기 등. … (또한 살림이스트는) 마술사, 혁명가, 여신처럼 모든 것을 만짐. 그녀가 만지면 모든 것이 웃고, 자라고, 태어나면서 생생하고, 색깔 있고, 살아나게 됨. 그녀는 채식주의 음식을 즐겨 만듦.(그러나 아주 가끔, 그녀가 화가 매우 많이 나면 못된 놈들을 큰 솥에 넣고 끓이기도 함.) 그녀는 운동의 전략이나 근본적인 사회 변혁의 비전을 요리해내는 것도 즐김. … (이하 생략)” 2)

 

 

<주>

1)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1997, 148쪽.

2) 현경, ‘살림이스트 선언’, 『미래에서 온 편지』, 열림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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