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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협동조합 자본 조달에 대한 소고
2016-06-13 09:35:00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협동조합 자본 조달에 대한 소고

 

글 류하 (자유기고가, (사)한알마을 이사장)

 

 

협동조합은 설립보다도 성공적 운영과 고유 가치를 실현하기가 더 어렵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에 많은 협동조합들이 설립되었지만 이제 겨우 법적인 조건을 갖추었을 뿐 모두가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고유한 결사의 가치를 실현하며 성공적으로 경영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애초에 진지한 고민과 공감, 현실과의 접합 등이 결여되거나 협동조합의 원칙에 어긋난 협동조합들을 제외하고 다수의 협동조합이 정상적으로 설립되었더라도, 최소 몇 년간은 협동조합으로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간난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영역에 거대자본이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인재, 많은 자본이 필요한 신규 영역에 도전하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협동조합의 경영과 운영 경험이 일천하여 협동조합의 생리와 원칙을 현실에 맞게 조율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즉, 이미 있는 시장에서는 기존에 진출해 있는 자본과 경쟁해야 하고, 신규시장은 적정한 인재와 기술 및 자본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체의 내공과 실력 또한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틀 내에서 후발주자로, 그것도 이미 일반 자본을 중심으로 제도와 법령이 정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이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분간은 상당히 많은 개인과 사회의 노력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위한 초기자본 조달이 용이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협동조합의 역사를 보면 조합원들이 낼 수 있는 출자금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초기에는 조합원 확대도 용이하지 않다.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기 위해서는 일반 자본과 국가와 쉽게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협동조합은 설립 초기와 사업 확장 시 필요한 자본 조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면서 확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방법과 제도적 조건은 무엇인가? 이는 또한 한살림운동을 비롯한 생활협동조합운동이 생협운동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지역사 협동공동체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도 검토되어야 할 중요 요소이다.

 

협동조합 원칙의 역사와 의미 :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를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시피 협동조합 역사는 1844년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을 기점으로 삼는다. 로치데일 이전에도 협동조합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협동조합운동으로서 일반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로치데일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다. 당시 로치데일이 적용했던 협동조합 원칙들이 확산되어가던 협동조합에서 준용되었다. 18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설립은 로치데일로부터 약 50년이 경과된 뒤였다. 로치데일로부터의 협동조합의 성공은 전 세계로 협동조합이 확산되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ICA가 협동조합의 개념과 원칙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ICA 협동조합 원칙의 준수는 ICA 가입의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ICA에서 정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정의와 원칙은 1995년 맨체스터 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원칙은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 제기된 「레이들로 보고서」를 시작으로 수많은 논의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레이들로 보고서」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 근대경제체제의 환경 아래서 협동조합이 겪고 있는 현실과 역사성, 정체성 위기를 지적하며 새로운 협동운동으로의 전환을 요청하는 논문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협동조합이 희망이기 위해 견지해야 될 원칙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고 1988년 「마커스L.Marcus 보고서」와 1992년 「뵈크S.A.Book 보고서」를 거치면서 1995년의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한 ICA성명서」(이하 ‘ICA성명서’)와 「21세기로 향한 협동조합 선언-협동조합의 과거, 현재, 미래」(이하 ‘선언’)라는 두 가지 문서로 수렴된다. 또한 성명을 보완하는 문서로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한 ICA성명 배경자료」(이하 ‘배경자료’)를 발행했다. 이것을 이전의 협동조합 원칙과 비교해보면 <표 1>과 같다.

 

ICA 원칙의 변화는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들 원칙 중 제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관련된 내용은 초기에 조합원의 출자, 현금거래, 이용고배당, 출자금에 대한 이자제한 등으로 제기되어 왔다. 1937년 원칙에 있던 현금거래의 경우 로치데일 초기부터 외상거래나 협동조합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거래를 제한하고자 했던 원칙이지만 점차 거래의 신용이 높아지고 다양한 형태의 지불수단이 등장하면서 빠졌다. 그렇다고 조합의 경영을 고려하는 거래 정신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ICA의 협동조합 원칙은 협동조합운동과 경영에 있어 각각의 원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지하고 연동해서 적용되고 운용되도록 되어 있다. 이를테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은 협동조합의 주인으로서 조합원의 권리를 포함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의 원칙은 조합의 경제적 사업에 대해 조합원이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해 앞의 원칙과 쌍을 이루되 ‘자율과 독립’ 원칙의 기초가 된다. 협동조합 원칙의 이러한 상호의지와 연동의 원칙은 협동조합의 정책이나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운영할 때 특정의 원칙 하나만을 가지고 잘 된다고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하며, 다른 원칙과 연동하여 대립되거나 모순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3항인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역시 이와 같은 정신에 따라 검토되어야 한다.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에 의할 때만 협동조합은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조합원에 의해 자본이 조달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때 자율과 독립이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는 협동조합의 가장 중심적 원칙일 수 있다. 그런데 ICA는 1995년 대회에서 앞서 설명한 대로 ‘ICA성명’과 더불어 ‘선언’을 채택하였으며 성명의 이해를 돕고자 ‘배경자료’를 함께 배포하였다.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관련하여 성명에서는 원칙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배경자료’에는 이의 실제 운영과 관련한 내용들이 해설되어 있다. ICA가 1995년 결의한 ‘ICA 성명’과 이에 대한 ‘배경자료’를 중심으로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에 대한 자본 조달 부분을 살펴보면, ‘ICA 성명’에 없는 내용이 ‘배경자료’의 셋째, 넷째 항목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본적으로 조합원은 네 가지 방법으로 자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합원의 출자금…

둘째, 협동조합의 사업수익금 중 일부의 적립금(내부유보)…

셋째, 협동조합은 경제활동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적립금보다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많은 협동조합들은 조합원이 배당의 일부를 재출자하거나 또는 퇴직시까지 정기적으로 출자하도록 요청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도 조합은 이자를 지불하지 않고 조합원은 계속적인 참가와 미래에 받을 배당을 통해 이익을 얻습니다.

넷째, 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더 많은 출자를 받기 위하여 특별요청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협동조합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특별출자금(조합원 채권)에 대해서는 출자금의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단 공정한 이율이 중요합니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 보통의 경우는 정부 또는 은행의 이율을 감안합니다.

 

이를 통해서 보면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는 조합원의 출자와 사업 수익의 내부유보, 배당금의 회전출자 및 지급유보, 그리고 특별출자금(채권출자)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은 결국 국가와 은행을 비롯한 사私금융으로부터의 ‘자율과 독립’이라는 원칙과 연결되고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원칙이 자본 조달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ICA는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마치고 2013년 총회에서 「협동조합 10년을 위한 청사진」이라는 문서(이하 ‘청사진’)를 의결한다. 이 문서는 2012년 ‘세계 협동조합의 해’의 성과와 세계적 근대 자본주의 경제위기 속에서 ‘협동조합이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시에, 향후 10년 동안 협동조합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상호 긴밀히 연동된 다섯 가지 주제로 제시하면서, 그중 다섯 번째로 ‘자본’을 제시하고 있다. ‘청사진’은 자본 항목에서 ‘협동조합의 사업은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며, 협동조합이 장기적 사업을 위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장기적인 위험이나 손실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자본은 조합원의 출자금이나 내부유보에 의해 조달할 수 있지만 출자금의 성격이 수시로 인출 가능하고 변동이 심해 출자금만으로 필요자본을 조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내부유보를 축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신설 협동조합들은 전혀 없기 때문에 자본 조달에 대해 협동조합들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어야 하며 ‘협동조합에 자금을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는 금융수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협동조합이 투자자기업과 비교하여 투자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협동조합이 사람의 삶을 바꾸고 사회 전반에 제공하는 이익이 크다는 점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투자를 유치하고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제공하되 조합원에 의한 통제나 협동조합 정체성 고수와 같은 협동조합 특성을 손상시키거나 악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청사진’은 법체제 항목에서 ‘자본 조달 및 정부와의 다양한 계약과 관련하여’ 협동조합이 사회적 가치의 실현 및 공공재의 생산과 운영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각국의 전국적 협동조합이나 연합체들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일반의 ‘투자자소유기업과 비교하여 세법이나 공정거래법 등에서 제한이나 차별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적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활동해야 한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은 조합원의 출자금이나 협동조합의 내부유보 등에 의해 기본적으로 조달되지만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을 ICA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ICA는 협동조합이 일반적인 회사채와는 다르지만 조합원 채권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 조달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 자금을 특별한 목적기금이나 협동조합을 위한 기금으로 조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제도와 법을 정부에 요구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이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관여와 그에 따른 자율성의 침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에 대한 몇 가지 개념틀 검토

협동조합도 기업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자본시장에서 차입하거나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대여되는 자금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95년 ICA 원칙 채택 이전에 외부 자본에 의존한 협동조합들이 자율성을 잃고 주식회사와 같이 자본주의 시장기업화 되거나 파산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또한 일부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등에서 국가가 협동조합을 육성하기 위해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협동조합의 관제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농협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이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고 조합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며 국가와 일반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이고 자치적으로,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네 번째 원칙인 ‘자율과 독립’의 원칙이 포함되었다. 은행을 비롯한 외부자본의 조달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주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 협동조합에서 자본 조달은 원칙적으로 조합원들의 힘에 의한 내부 조달이 우선이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하고 있는 자본 조달 방법은 조합원 출자, 내부유보, 회전출자 등 세 가지이고 마지막 네 번째의 특별출자금 또는 조합원 채권과 관련해서는 아이쿱생협을 비롯한 소수의 협동조합 외에는 시도한 곳이 없다. 그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채권 발행이나 특별출자금에 대한 법·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어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부분에 대한 이해와 고민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수많은 협동조합이 초기 자본축적이 안 된 상태에서 협동조합으로의 성공을 위한 자본 조달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또한 생활협동조합처럼 상당한 역사를 가진 협동조합들도 사업의 운영자금(예: 수매자금)이나 확장자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에서 협동조합 기금 또는 은행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을 못하거나 또는 ‘대정부 제안 정책’으로까지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과 관련한 용어와 개념들이 혼용되고 있어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 아직 협동조합의 역사가 짧은데다 실천이 다양하지 못하고 제도화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과 관련하여 다음의 용어들은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직 국제적으로도 명시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는 조합원 차입, 협동조합 채권(채권출자), 특별출자, 협동조합기금을 다음과 같은 기초개념을 바탕으로 재정의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조합원 차입(Member Loan):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부족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자본을 빌리는 것이다. 이때 빌리는 대상은 조합원이어야 하고 돈을 빌리는 기간과 이자 여부가 명시되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단기적인(1년-2년) 자본 조달에 사용된다. 공정한 이자를 지불할 수 있다. 협동조합 채권과 유사하나 제도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무이자 차입도 가능하다고 본다. 협동조합 회계상 부채 계정으로 하며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사용된 사례가 있다. 조합원 간 거래는 불허 또는 불가능하다.

 

협동조합 채권(Debenture(Bond) of co-operative): 일반회사의 채권과 비슷하며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로서, 구매자는 조합원 또는 발행 주체 외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을 장려고무하기 위한 협동조합연대은행이나 협동조합 기금재단 같은 기관에서 매입 또는 대신 발행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장기적인(3-10년) 자본 조달에 사용할 수 있다. 공정한 이자를 명시하여 지불할 수 있다. 협동조합 법인에 대해 채권으로서 성격이 있으며 회계상 부채이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에서 사용된 사례가 있고, 일본의 생활클럽생협에서도 운영 사례가 있다. 원칙적으로 조합원 간에 이전거래가 가능하다고 본다.

 

특별출자: 협동조합이 특별한 목적사업을 위해 조합원들에게 규정된 기본 출자 외에 별도로 모집되는 출자금으로, 목적 달성 이후에는 자유로운 인출이 가능하며 출자에 대한 이자 지불 여부 및 금리를 조합원의 민주적 결정으로 한다. 특별출자의 경우 이자를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조합원 개인이 할 수 있는 증자의 좌수를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는 범주로 제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생협의 매장 신설을 위한 출자금이나 쌀 수매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출자금 등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이자를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모금액이 특정인에게 과도하게 몰리거나 또는 소수집단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채권적 성격이 아니라 증자의 성격이 있고 출자와 충돌하거나 부채가 아니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전통적인 자본조달 방법이기도 하다.

 

협동조합 기금: 협동조합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공익기금으로 고유목적사업을 위해 적립된 기금이다. 이 기금은 단위조합 또는 연합기관이 사업의 성과 중 일부를 조합원 결의에 따라 내부유보로 할 수도 있고, 조합원들이 특별한 출자와 기부를 통해서 만들 수도 있다. 출자의 경우는 기한을 정할 수는 있어도 이자는 없다. 정부나 지자체와 협동조합이 거버넌스Governance 형태로 설립할 수도 있다. 일본 생협에서는 2000년대 초반 사회복지사업을 비롯한 NPO법에 따른 활동을 위하여 다양한 목적기금 운영사업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생명협동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동조합과 공동체조직의 설립과 활동이 촉진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생명협동운동을 하는 여러 단위조합과 조합원들의 출자로 이루어지는 '생명협동 기금'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 경우 조합원들의 출자는 장기적으로 인출하지 않고 의사결정의 권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출연의 성격이 있다. 협동조합 회계상에서는 특별회계나 독립회계로 처리한다.

 

인터넷상에서 몇 가지 개념들을 검색해 보면 조합원 차입과 협동조합 채권을 운영하는 협동조합과 나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이 어떠한 법률과 제도를 가지고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을 장려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협동조합이 자체적으로 묵인적 규범에 따라 운영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것은 비법非法적 행위는 될 수 있어도 불법不法행위는 아니다. 물론 비법적일지라도 협동조합정신과 보편적 조합원 정서에 어긋나게 해서는 안 된다.

 

조합원 차입이든 협동조합 채권이든 조합 내부의 조달이라 할지라도 원칙이 있다. 자본 조달의 목적과 규모, 상환계획이 협동조합의 경영자료와 함께 조합원들에게 명시적으로 공개되어야 하고 차입금의 규모는 통상 자본금의 200%를 넘을 수 없다. 자기 자본금보다 과도하게 많은 차입은 경영상황에 따라 상환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것은 곧바로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이율도 시중 은행이나 정부 이자를 넘어서게 되면 투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어 협동조합 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법적인 규제보다는 협동조합의 정신이라는 원칙에서 해석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을 활성화하고 경영을 안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출자 또는 출연하여 만드는 협동조합연대은행 또는 협동조합 연대금융기관(이하 협동조합연대은행)을 구상할 수 있다. ‘협동조합연대은행’은 협동조합들이 자발적인 자구책으로 설립하는 기관이자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한 금융기관이다. 몬드라곤의 ‘인민금고’가 이에 해당된다. ICA는 ‘청사진’에서 국제적 차원에서 또는 각국의 전국적 협동조합연합체가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한 자본 조성과 이에 관한 법·제도적 정비를 위한 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연대은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운동 내부의 논의와 조정도 필요하고 금융과 관련한 법·제도적 정비의 요청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한 자본 조달과 관련해서 어떠한 법령과 제도가 필요한지 본격적인 사례 수집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협동조합 법률과 협동조합과 국가의 관계

 

우리나라는 협동조합기본법에 협동조합의 조합원 차입이나 협동조합 채권, 협동조합기금 등 어느 것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생활협동조합법도 총회 의안에 ‘차입금최고한도’를 안건으로 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 차입금의 협동조합적 운영방법에 대해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협동조합기본법 14조 ‘다른 법률의 준용’에 “이 법에 규정한 사항 이외에는 상법의 제1편 총칙과 제2편 상행위, 제3편제3장의2 유한책임회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규정을 가지고 한국의 협동조합이 조합원 차입을 시행하거나 협동조합 채권을 발행했을때 정부와 충돌하는 법령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인데, 이 법이 협동조합과 생활협동조합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협동조합법상의 상법의 준용과 이 법률은 구체적 조항이 없어 판단하기 어렵지만 협동조합의 자본조달의 자율성을 규제할 수 있기에 일정한 보완개정이 필요할 듯하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정당하며 협동조합의 ‘자율과 독립’ 원칙과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원칙’, 그리고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 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된다면 국가의 개입은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공공재를 생산·공급함으로써 투자자소유기업보다 공공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법과 제도에서 배려받아야 한다.

 

다만 국가와 협동조합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에 있어서 1980년 「레이들로 보고서」에 제기된 정체성의 위기 중 하나가 국가와 지나친 결합-정부로부터 정책적 지원과 보조금을 지원받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에 대해 ‘국가로부터 죽음의 키스’를 바라는 유형이라는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또한 지나친 시장화에 대해 조합원 주권주의에 입각한 결사체(Association)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1995년의 정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통제 범위에 협동조합을 두려고 한다. 협동조합을 위한 국가 정책과 법·제도적 정비는 필요하지만 협동조합의 주권을 국가와 지자체의 덫에 넣을 필요도 없고 당장의 필요 때문에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도 없다.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근대자본주의 문명은 끊임없이 협동조합이나 다양한 민民자율기업의 탈자본주의적 성향의 움직임에 대해 자본시장의 원칙을 강요해 협동조합을 도태시키기거나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시장에 길들이려고 애썼다. 협동조합의 정신에 따른 조합원 자신의 힘으로 운영되지 않는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죽은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결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사업체로서의 협동조합은 한순간에 조합원을 객체화시키고 경영진들이 주도하여 자본과 국가의 품 안으로 달려간다. 반대로 국가주의자들은 협동조합 조합원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억압하며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국가의 객체나 하위 계열화로 이끌어 간다.

 

협동조합에 있어 자본은 성장과 확장에 따른 필요불가결의 요소이나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조합원들을 얼마나 중심에 세우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느리게 가더라도 조합원들을 중심에 두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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