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0호] 2012년 가이아를 점령하라
2016-06-03 14:53:00

* 『모심과 살림』 0호(2012)에 실린 글입니다.

2012년 가이아를 점령하라

- 서틀 액티비즘(영적 행동), 거리의 행동(거리의 사회운동)과 만나다

* 원제는 Occupy Gaia in 2012: Subtle Activism Meets Street Activism. 미국의 사회적 영성운동 블로그인 리얼 샌드위치(Real Sandwich)에서 실렸다.

 

데이비드 니콜 (David Nicole. Center for Subtle Activism 이사)

번역 정혜성

 

1939년 10월 초,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영국의 신비주의자 다이온 포춘(Dion Fortune)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전쟁의 위기에 빠진 국가를 위해 “집단 의식(group mind)"을 고양할 수 있는 영적인 통로를 만드는 마법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획은 나중에 “영국의 마법전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녀의 편지에는 모든 참여자들이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 15분부터 12시 30분까지 특별한 명상을 수행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하여 명상을 할 것을 또한 요청했다. 몇몇의 숙련된 명상 수행자들은 포춘의 지도 하에 매주 일요일 런던에 자리한 그녀의 집에서 둥글게 둘러 앉아 명상을 하며 영적 중심점을 만들었다.

 

이 명상에서는 영적 힘을 이끌어내는 시각적인 상징이 이용되기도 했다. 상징은 처음에는 상상을 통해 나왔지만 모임이 계속되면서 마치 독립된 생명체인 것처럼 스스로 성장하며 유기적으로 발전해갔다. 포춘은 이를 두고 그것이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이미지들은 최종적으로 아서왕의 전설과 그리스도교의 핵심 인물(아서왕과 멀린, 그리스도와 마리아)을 연결시켜 나갔다. 포춘의 모임은 이러한 명상을 통해 영국의 집단의식을 그리스도교와 아서왕 전설과 연관된 기사도와 용기라는 원형적 이상으로 전했고, 이는 역경의 시기에 국가의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신화는 영국의 국가 전통과 깊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국가 정신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또한 무의식적 이미지를 명상을 통해 의식의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는 이론적 뒷받침도 더해졌다. 여러 방면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던 전문가들을 통해 그러한 생각(무의식에서 전화된 의식:역자)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실제로 포춘은 (당시에 국가 정신의 거울로 널리 알려졌던) 타임지(The Times)의 사설에 대해 “적절할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염원을 잘 표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틀 액티비즘

 

사회적 변화를 위한 영성 혹은 의식에 기반한 실천을 ‘서틀 액티비즘’이라고 말한다면, 영국의 마법 전쟁은 서틀 액티비즘의 탁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틀 액티비즘은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적 실천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영성의 내적 세계와 (보통 상상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외적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은 것이다. 사회적 변화 과정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창조적 방법이 있는데, 운동적 성공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집단의식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기술과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음에도 강력한 정신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군대나 사회운동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서틀 액티비즘은 사회운동에는 의미의 차원을 깊게 해주고 참여자에게는 더 큰 동기를 부여하며 헌신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내면의 진화와 영적 흐름을 잘 인식하고 스며들 수 있게 함으로써 운동적 의지를 북돋워준다. 모든 존재는 외적인 분리 이면에 깊은 차원에서 완전히 연결되어 있으며, 아주 작은 모임도 영적으로 집중하면 공동체 전체나 국가, 종(種) 전체의 집단의식에까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직접적, 물리적 행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혹은 지구적 변화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구의 신비주의는 “마법 전쟁”의 사례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다양한 영적 형식과 전통을 통해 서틀 액티비즘을 실행하고 있다. 포춘 이후 가장 유명했던 영적 행동은 수천명이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수행에 참여하여 전지구적 명상 이벤트를 벌인 일이다(인터넷의 발달과, 전세계적인 초교파 운동의 성장, 영적 전통의 혼합으로 인해 이러한 일이 더욱 용이해졌다.). 실행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서틀 액티비즘은 내면 세계와 외부의 변화를 통합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수많은 창조적, 영적 응답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점령 운동과 그것이 대표하는 세계사적인 전환운동을 뒷받침하는 서틀 액티비즘을 실천하는 일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점령운동의 영적 차원

 

점령운동에는 처음부터 어떤 마법이 작용했던 것 같다. 최근 몇십 년 사이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이 개입한 사건들은 대부분 주류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점령운동은 거의 즉각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다른 저항운동 이상의 그 무엇, 그야말로 역사적인 운동으로 인식되었다. “점령하라”라는 표현의 탁월한 기획력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는 99%다”라는 단순한 메시지 덕분일 수도 있으며, 투쟁의 전략 혹은 유명 인사들의 지지 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점령하라’가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진을 쳤던 캠프는 겨울을 지나며 대부분 사라졌고 이제 점령운동은 다음 단계를 향한 탐색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점령운동이 정치적 견인력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고 비평을 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뿌려진 혁명의 씨앗은 분명 새로운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점령운동에 의해 크게 조명된 불평등 문제는 지금까지는 어떤 식으로도 얘기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랍의 봄이 꽃을 피우고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분노한 청년들이 일어나고 점령운동의 현장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오늘의 시대정신이 혁명적 행동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시기로 들어섰음은 분명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점령 운동이 비판의 표적으로 삼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쟁점은 근본적 전환을 압박하는 다차원적 지구 위기의 한 가지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오일 피크, 대량 멸종, 토양 손실, 인구 과잉, 여전히 위협적인 금융위기의 다중적 위협을 인정한다면, 우리 문명이 이미 종말을 향해가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점령운동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는 지구 생명공동체의 폭발적인 자기조직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뤄내야 할 전환의 기획은 현 체제 내에서의 점진적 정책 변화를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원리로 이 세상을 상상하고 조직하고 창조해나가야 한다. 구시대는 중환자실에서 생명을 연명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게 넘겨받거나 하는 두 가지뿐이다.

 

이 전환의 중심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가 분열되어 있는 현대판 최면상태로부터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이라는 진리를 인정하고 살려내는 의식의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생태주의자이자 문화사학자 토머스 베리는 이러한 전환을 일컬어 “우주를 ‘객체들의 집합’이 아닌 ‘주체들의 친교(communion)’로 느끼고 경험하는 일”이라고 천명했다. 인류 문명이 지구 위에서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수많은 지구적 차원의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전지구적 협동의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지구 생명 공동체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점령 운동이 금융 시스템의 불평등에만 관심의 초점을 두었음에도 초반부터 그처럼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다양한 참여자와 보편적인 주제를 겨냥했고, 대중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완전히 새롭고도 포용적인 세상에 대한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가령 총회나 합의로 도출된 결정을 실행하는 일은 새롭고도 보다 참여적인 자치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발전된 실험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 과정은 사회의 집단지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운동이 가진 영성적 의미는 새로운 자각의 씨앗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회-정치 영역의 틈을 열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점령운동을 통해 새로운 인식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지 여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알다시피 가을에 에너지가 처음 분출된 이후, 점령 운동은 향후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모으며 점검을 위한 자기 성찰의 국면, 휴지기로 들어갔다. 점령운동은 또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전략으로서의 비폭력에 대해 재산상 혹은 물리적 공격과 폭력을 포함하는 ‘전술의 다양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엄존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싼 내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근본 문제를 부각시킨 대가로 얻은 경찰 및 정부와의 야영지 관련 분쟁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게 된 현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여전히 이용하고 기대어 살고 있는 금융 시스템에 맞서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내적 성찰과 대화의 시간은 점령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운동을 재편성할 에너지과 추진력을 얻는 이상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거의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서틀 액티비즘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다시 말하면 서틀 액티비즘은 분명하고 직접적 형태의 활동에 대한 대체가 아니다(이러한 직접행동은 꼭 필요하고 더욱 권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서틀 액티비즘은 다른 상황에서는 수동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시키는 창조적인 응답 중 하나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할 수 있는 갖가지 활동 가운데, 모두가 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에 요청을 받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요청받은 사람들 모두가 응답할 수도 없다). 실제로 점령 운동에 참여해 텐트를 치고 집회에서 행진했던 이들은 수천은 아니더라도 수백 명은 되었을 것이고, 거리에서 함께하지 않았거나 함께할 수 없었지만 이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수백만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서틀 액티비즘을 통해 (거리에 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점령운동의 전망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과 연결될 수 있고, 운동의 공간을 계속 넓혀가는 전지구적 깨달음의 장을 만들 수 있다.

 

‘가이아를 점령하라(Occupy Gaia)’는 점령운동을 지지하는 전지구적 장을 마련하기 위해 가이아필드 프로젝트(Gaiafield Project (http://gaiafield.net))가 소집한 서틀 액티비즘 프로그램이다. 이는 점령운동에 영성의 변혁적 힘을 연결시키도록 개발된 많은 선도적 운동 가운데 하나이다(다른 사례로는 명상 플래시몹, 변화를 위한 자리, 불교 평화 협회, 선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여러 종교 간 연합 활동들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http://gaiafield.net에서 볼 수 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