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0호] 방사능 문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
2016-06-03 16:13:00

* 『모심과 살림』 0호(2012)에 실린 글입니다.

방사능 문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

먹는 일은 책임지는 일 - 쓰치다 다카시 씨에게 듣는다

 

우리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는 매스컴에 휘둘려 그저 안전한가 혹은 위험한가 하는 것만으로 방사능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초래한 장본인(도쿄전력, 정부 등)에 대한 분노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40여 년 전부터 이미 탈원전을 주장했고, 오래 전부터 농가와 소비자 간 제휴운동에도 진력해 온 쓰치다 다카시(전 교토세이카대학 교수, 환경사회학) 씨에게 물어 보았다.(편집자 주)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는 동일본 대지진 당일(2011년 3월 11일) 일본 유기농업연구회 전국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후쿠이현에 가 있었습니다. 3월 11일에 원전은 이미 대단히 중대한 사태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쿄전력 또는 원자력 전문가들이 그 같은 중대 사태가 일어난 것을 몰랐다면 그들은 원자력과 같은 매우 위험한 기술을 취급할 자격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숨겼다면 그들은 참으로 죄가 깊은 무리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커다란 문제입니다.

 

대회가 끝나 교토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상담역을 맡고 있습니다만, 1973년에 저희가 만들었던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래 월 1회의 비율로 탈원전 강연회를 계속해서 개최해 왔습니다. 또한 매월 11일에는 칸사이전력 교토지점 앞에서 탈원전 캠페인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강연회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호소하고 계신 내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탈원전 강연회를 통해 사고원전 주변의 농산물을 함께 먹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량의 방사능이 광범위한 지역을 오염시켜버린 현실은 대단히 엄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태를 직시하면서 그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사능으로 인한 피폭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무시하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중심적 생각과 지나친 공포감으로 인해 엄혹한 현실 앞에 소극적인 태도가 되어버리는 것이 좋겠는가. 물론 임산부와 영유아는 방사능 피폭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 특히 고령자들은 후쿠시마 사람들이 먹는 먹을거리를 함께 먹음으로써 문명사회의 혜택을 누려온 책임을 함께 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카타 원전 소송에서 알게 된 것들

 

원전 문제에 관여하신 지 40년 가까이 된다고 하시던데요.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1954년에 비키니섬 수폭 실험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핵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핵무기를 폐기하고 원전을 만든다면, 다시 말해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면 몰라도 한편에서는 핵 실험을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원전은 평화적 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업적 이용이었지요. 그래서 당초부터 원전은 수상쩍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원전 문제에 직접 관여하게 된 것은 1973년 시코쿠전력 산하의 이카타 발전소 원전소송 때입니다. 그 당시 원전에 대한 저의 지식은 원자로가 비등수형(沸騰水型)인가 아니면 가압수형(加壓水型)인가 하는 정도, 즉 개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도 그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초보자였던 거지요, 그런데도 이카타 원전소송에 협력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초보자인 제가 소송에 끌려나오게 되었던 것은 원자력 전문가들이 아무도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원전 추진은 국책이었지요. 전문가들의 경우, 국책을 거스르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쿄대와 교토대의 원자력공학 교수들은 돈다발로 귀싸대기를 얻어맞으면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놓는 성과라는 것은 이번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즈음하여 등장했던 어용학자들의 태도를 봐도 아주 명확한 것이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정부 측은 증인으로 도쿄대와 원자력연구소의 1급 연구원을 줄지어 내세웠습니다. 그에 비해 원고인 주민 측 증인은 초보자인 제가 원자로 노심 연료를 담당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양측 증인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이카타 원전소송은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정부 측은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인 교수들이, 주민 측에서는 전문가도 아닌 신출내기 조교수)가 상대했던 거지요. 그래서 정부 측은 주민 측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상황은 아주 볼 만했습니다. 정부 측 증인인 도쿄대 교수가 답변에 궁한 나머지 침묵하는 시간이 속출했습니다. 변호사들도 이렇게 재미있는 재판은 일찍이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원전은 국책사업이었던 것이고, 최종 판결은 아주 엉터리였습니다. 처음부터 편견에 근거한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었고, 결론에 맞지 않는 원고 측 주장, 즉 주민 측 주장은 일방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재판이라면 무엇 때문에 재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판결을 널리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는 대단한 공적이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엉터리 같은 판결을 들은 뒤 마츠야마에서 오사카까지 칸사이기선을 타고 밤에 돌아왔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도 3권 분립도 모두 뼈대만 남고 의미가 없어져가는, 바로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과학자의 길을 계속해서 가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과학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의문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만, 이카타 원전 소송 판결을 계기로 등을 떠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토대학 공학부 교수직을 그만두었습니다.

 

농업과 먹을거리가 못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카타 원전소송이 시작되었을 무렵과 거의 동시에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만드시게 되었군요.

 

1950년대 초에 ‘케세라세라’라는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내가 시집갈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부자일까 아니면 가난한 그림쟁이일까, 케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지, 앞날의 일은 몰라.”라는 가사입니다. 농업기본법 제정이 1961년이지요. 그 기본법에 근거한 농정이 시작되기 전에 불렸던 노래입니다. 당시 일본은 시대의 전환점에 와 있었던 거지요. 비유컨대, 한쪽은 가난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가난뱅이 화가, 다른 한쪽은 돈 많은 부자. 여자가 어느 쪽으로 시집갈지 망설인다는 노래입니다. 용케도 이 노래는 당시 일본 사회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삶의 보람이나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경제적 또는 물량적 행복만을 추구할 것인가를 비유한 노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일본이 어느 쪽을 선택했는가는 아주 명백합니다. 이렇듯 물량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조금 뒤쳐진 채 남아 있었던 것이 바로 농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은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농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악마의 속삭임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속아 넘어갔습니까?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저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농민들을 부추기고, 약간의 보조금을 붙여 정치라는 이권 구조 속으로 농민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대량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농업이 못쓰게 되면 먹을거리도 못쓰게 됩니다. 첨가물 투성이의 식품공해가 빈발하는 것도 불 보듯 뻔하지요. 세상이 온통 돈 중심의 시대가 되면 썩은 것은 상품으로 취급할 수 없게 되지요. 그저 대량생산․대량소비로 비용절감을 도모하고, 값싼 상품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내려 합니다. 하지만 식품은 변질되고 썩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먹을거리를 상품화하는 데 있어서는 썩는 것이 아주 곤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식품첨가물 등을 넣게 됩니다. 그런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일까요?

 

또 하나 머지않은 장래에 다가올 가능성이 큰 식량 위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입니다.

 

자기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하는 것은 이기주의

 

모임 설립 후 바로 농산물 직거래 운동에 힘을 기울이게 되셨다구요.

 

네, 지금은 저희 모임에서 취급하는 농산물 중에 무농약 재배 농산물이 대단히 많이 늘었습니다만, 설립 때부터 저는 농약을 치지 않은 먹을거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라,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문제 있는 소비자와 역시 문제 있는 생산자가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함께 그 문제를 극복해 가자는 것이었지요.

 

예를 들어 소비자 측이 “농약은 두려운 것이고, 신경독(神經毒)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처음에는 농민들에게 즉각 전달이 안 됩니다. 하지만 하우스 안에서 소독 작업을 하고 나서 밤에 맥주를 마시면 그 맥주가 아주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농민들은 바로 이해합니다. 그것이 신경독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듣는 거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농민들에게 당신 손자들에게 먹일 것과 똑같은 먹을거리를 원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을 재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고요. 무농약의 정의(正義)에 대해 말하기보다 농약이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생산자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서서히 무농약의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 날로 고령화되는 농민들에게 뜨거운 염천 아래에서 풀베기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에고이즘(이기주의)’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문제투성이인 사회 현실에 주목해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안전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가 아무리 비싼 값을 지불한다 하더라도 에고이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모임은 이렇게 자칫하면 에고이즘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을 경계하면서 운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사람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에 기뻐하거나 즐거운 감정을 느꼈을 때 바로 그런 감정에 의해 변해가는 존재입니다. 예컨대 소비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원한다는 점을 생산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생산자는 무농약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했을 때 소비자들이 기뻐하는 것으로 보람을 삼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계는 돈의 논리,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쓰치다 씨께서는 현재 일본유기농업연구회 간사이시기도 하지요.

 

네, 그렇습니다. 유기농업 운동과 관련해서 한 가지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일본유기농업연구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연구회 결성 당시의 취지서에 담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후쿠시마 대회 때입니다.

 

1971년 일본유기농업연구회가 결성될 당시 그 취지서에서 강조했던 것은 경제합리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습니다. 경제합리주의에 따라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됐고, 그 결과로 흙과 먹을거리의 건강을 파괴하기에 이르렀지요. 바로 그것이 망국의 위기라고 강조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 운동이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기농 운동은 단순히 농민들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먹고 있는 모든 소비자를 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취지서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소비자들에게 각성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유기농 운동이 그저 안전한 농산물 생산이라는 좁은 의미의 운동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산자들은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유기농 운동의 의미를 농(農)의 위기, 문명의 위기와 관련지어서 호소해 왔는데 과연 그 같은 운동이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구입한다는 것. 이것은 유기농 운동의 측면에서 본다면 정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싸게 지불해야 할 대상은 ‘안전’이라는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것을 생산해 내는’ 가치에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소비자는 물론이려니와 생산자들에게서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을까요?

 

일본의 유기농업이 변질되고 만 것은 JAS법에 의한 유기인증제도가 시작되고부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이미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각성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이면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진정한 제휴’일 것입니다.

 

함께 마음 아파하고 함께 분노해야

 

처음 주제로 돌아가면, “사고 원전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함게 먹자”는 호소 역시 유기농업과 농약 문제에 대한 쓰치다 씨의 생각과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제 입장에서 본다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문제입니다. 사고원전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방사능 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 직후에 일본 정부가 발표한 잠정기준치는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사능 물질이 제로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고 원전 근처의 슈퍼에서 물건을 살 경우 다른 지역에서 온 물품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 지역에서 나는 것이 많습니다. 사고 원전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도 똑같이 먹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고 원전 주변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그런 현실로부터 자기만 빠져 나오려는 생각은 이기주의입니다. 다 함께 마음 아파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마음 아파한다고 해도 싫은 것은 싫은 것입니다. 그 싫은 것의 정체에 대해 직시하면서 그에 따른 분노를 그것을 발생시킨 근본 원인으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안전지대로 피해 왔으니 됐다.”라고 할 때 과연 분노가 끓어오를까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분노하는 것, 그것은 바로 도쿄전력과 ‘원자력 무라(원자력 추진세력)’의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을 철저하게 따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도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원전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방사능 문제와 관련해서 교토에서도 ‘다이몬지의 오쿠리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교토의 수치입니다.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면 큰 문제라고 미리 생각해서 ‘노’라고 말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만, 믿는 사람들의 심정을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려는 생각이 있고, 그런 생각을 ‘오쿠리비(혼령을 보내는 불)’나 ‘무카에루비(혼령을 맞이하는 불)’라는 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써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을 행하려고 했던 사람은 선의에서 계획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데서 사회가 비로소 성립되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한 대로 방사능 물질을 뒤집어 쓴 장작을 태우면 오염을 확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지요. 아무리 작은 정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싫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사회성이라는 것은 자지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자기를 왜곡하지 않은 가운데 타인과 잘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분석해 본 결과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방사성세슘이 1킬로그램 당 1천 베크렐. 이 정도 수준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다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분노는 행사를 계획했던 사람들에게 향할 것이 아니라 도쿄전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분노의 방향이 달라야 했던 것입니다.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과학자로서 쓰치다 씨는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는 과학자를 그만 두어서 과학적인 논의 방법은 취하지 않습니다만, 1000베크렐이라는 방사능은 어느 정도일까. 후쿠시마현의 고도로 오염된 지역은 1m2당 3천만 베크렐의 오염도입니다. 1000과는 자릿수가 다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3천만 베크렐의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지요. 하지만 50만, 100만인 곳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쓴다면, 1000베크렐에 난리를 치고 있는 나 자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자문하게 될 것입니다. 안전만을 바란다면 이기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1000베크렐이 작은 수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전 얼마만큼의 방사능이 존재해 왔을까요. 자연방사능을 말하는 겁니다. 다만 어용학자들이 자연방사능 이야기를 뿌린 죄를 면죄하듯 이야기하기 때문에 답답한 겁니다.

 

사실은 사실로서 직시합시다. 자연계에는 방사성칼슘이 있습니다. 이것이 칼륨이라는 원소의 일부로서 온갖 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연상태로 있다면 무해한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공적인 방사성 세슘과 천연의 방사성 칼슘, 양쪽 모두 방사선의 피해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거부할 것인가. 거부는커녕 우리는 쌀이나 채소를 통해 방사성칼륨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감자, 토란에는 칼륨이 많지요. 그 대부분은 비방사성 칼륨이지만, 일부는 방사성 칼륨입니다. 얄궂게도 건강을 생각해서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방사능을 많이 섭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는 감자도 고구마도 많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채소는 방사성 칼륨을 포함하고 있지만 다른 성분의 효과, 다른 요인으로 발암을 억제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매일 자연의 방사능을 섭취하고 있는 인간의 몸은 대체 몇 베크렐의 방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방사성 칼륨만으로 매일 50베크렐 정도씩 섭취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배출도 하고 있지만, 신체에는 상시 3000~5000베크렐의 방사능이 있습니다. 만약 조금의 방사능도 싫다면 만원 전철은 타지도 못하겠지요. 그런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농민은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한편, 후쿠시마 사고 원전 주변에서는 도쿄전력과 원자력 무라가 만들어낸 원자력발전 때문에 방사능으로 고통 받는 농민이 있습니다. 그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바꾸고자 노력하지 않고, 돈만 있으면 안전한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차별입니다.

 

이후에는 방사능과 어느 지점에선가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네요.

 

방사능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방사능이라는 것은 아주 적은 양이더라도 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이유라고 해도 방사능이 여기저기 뿌려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하물며 경제적 이권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여 위험한 원전을 늘린 도쿄전력과 원자력무라의 패거리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특정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우리는 서일본에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관서에는 와카사라는 일본 제일의 원자력발전지대가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해야만 하는 첫 번째 과제는 일본 전체의 원전을 멈추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끼리 서로 문제를 떠맡길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손자들을 위해 먹자

 

‘사고 원전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함께 먹자’라는 호소는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네요.

 

방사능 피해는 아이들이 감수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임산부는 지켜야만 합니다.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감수성이 낮지요.

 

방사능의 피해, 특히 아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일찌감치부터 지적한 미국의 고프먼이라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논문과 책은 저희의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비판적 논점은 고프먼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고프먼에 따르면 50세 이상이 방사능에 의한 암으로 죽을 위험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45세 이상도 위험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암이 걸리기 전에 수명이 다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을지 말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저는 가장 선견적인 주장을 해 온 고프먼의 주장을 신용합니다. 그래서 50세 이상의 사람은, 도쿄전력과 원자력무라에 대한 분노와 함께, 후쿠시마와 그 주변의 농산물을 먹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애초에 50살 이상의 사람은 지금 이 세상을 만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손자들의 방사능 피폭을 줄이기 위해, 농업을 지키기 위해, 방사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농산물을 먹는다고 해도 벌을 받지는 않겠지요.

 

후쿠시마에는 몇 번이나 방문하셨는지요.

 

2011년 6월과 8월 하순에 두 번 방문했습니다. 6월은 이타테마을에 갔었습니다. 다테시에서 고개를 넘어 이다테에 들어선 순간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소는 방목되어 있고, 밭은 전혀 경작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평화롭지만 이상한 풍경이었습니다. 8월에 방문한 미나미소마시도 일부분 경작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작년까지 밭을 일구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지요. 밭은 한 해만 경작을 하지 않아도 다음에 밭을 일굴 때 굉장한 근성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짓이겨졌을 농민들의 마음, 그들의 진짜 마음을 저는 이해할 수 없겠지요.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후쿠시마현은 일본 전체 쌀 생산량의 5%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올해(2011년) 후쿠시마산 쌀이 판매되는 상황에 따라 5%의 생산량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하 광물자원에 의존하는 공업문명의 번영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언제까지나 먹을거리를 수입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농지가 줄어들면 아이들은 점점 굶주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아이들과 손자들이 굶주리는 상황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쿠시마와 가까운 지역의 농업을 지키고 싶습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