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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쿠바의 유기농업 운동
2016-06-03 16:23:00

* 『모심과 살림』 0호(2012)에 실린 글입니다.

쿠바의 유기농업 운동

 

페르난도 푸네스

번역 박지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초빙연구원)

 

왜, 쿠바의 생태농업에 주목해야 하는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라도 국민들이 행복하기 어려운 작금의 장기불황, 석유고갈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잘먹고 잘사는 법’이 시대적 화두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유기농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난한 과정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인간은 이미 지구의 한계를 25%나 넘어서서 환경을 이용하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고도성장을 포기하거나 하강하겠다는 과감한 행보는 여전히 위험천만하다는 것이 지배적 인식이다.

 

쿠바는 경제봉쇄로 국가적 위기를 맞아 갑자기 엔진을 잃어버린 비행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만의 동력을 개발해 초저공비행으로 연착륙하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주체들의 협력과 전통농업 복원으로 재발견한 유기농업 운동의 시작이었다.

 

세계자연보호기금이 지구상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건을 충족하는 유일한 나라로 든 쿠바는 세계공황에 비길 만한 위기에서 살아남으며 지금과 같이 평균수명, 교육수준, 1인당 GDP를 토대로 산출한 인간개발지수 0.8 이상을 달성할 수 있는 국가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에 나와 우리, 이후 세대의 먹거리가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쿠바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쿠바 유기농업운동 발전 과정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쿠바는 규모화된 협동농장 혹은 국영농장이 주축이었던 기존의 중앙집권적 제도나 생산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면적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들과 도시텃밭 농부들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역의 생산 강화를 주요 원칙으로 삼고, 행정이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둘째, 식량위기 극복의 대안으로서 기존의 관행농업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수입선을 모색하는 대신 전통농업을 복원하고 과학기술 체계를 재정비하여 교육과 현장훈련을 기반으로 한 농생태학을 정립했다. 농민, 학자, 행정관료 등이 현장, 연구소, 대학, 정부부서에서 긴밀하게 연계함으로써 유기농업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셋째, 도시의 빈터나 텃밭을 활용한 신선한 먹거리 생산이 직거래 장터 이하의 가격으로 도시 좌판과 재래시장을 통해서 거래되었다. 기존 제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토지들이 생태농업 선구자들에게 재분배되었고, 생태농업을 시행한 지 수 년 만에 소농들과 도시텃밭 농부들이 식량안보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 ‘생태적 채무를 해결하라. 국민들이 아니라 굶주림과 싸우라’고 독려하는 쿠바 생태농업의 원칙과 전략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유기농업은 최근 수십 년 간 중요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오늘날 강력한 국제적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운동의 주요한 목적은 보편화된 “녹색혁명”형 농업모델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 녹색혁명은 수확량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유약성, 취약성과 환경, 건강, 생태계에 대한 위험성이 드러나고, 더불어 최빈 농민층에게 사회경제적으로 거의 안정적이지 않은 결과를 야기했다. 오늘날 환경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녹색혁명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들을 동반한 지구적 영향을 일으키고 지속시켜왔다는 것을 1992년 브라질에서 있었던 유엔 지구 정상회의에서부터 공히 인식해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농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침식, 염분 함유도, 불모지의 확산 등이 산업형 농업이 초래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의 상실, 삼림파괴 증가, 도시로의 대규모 이주를 비롯한 농촌지역의 사회경제적 문제 등에 대한 우려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많은 이들이 이에 경종을 울렸으며, 국제 과학계에도 반복해서 이 문제들을 제기해왔다. 지난 두 세대에 걸쳐 이 문제들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세 권의 책, 목소리를 내온 것은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1962), 『도둑맞은 미래』(테오 콜본 외, 1996), 『세계의 굶주림: 12가지 신화』(프란시스 라페 외)가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우리 시대의 근원적 문제를 점검하고 지배적인 농업모델이 만들어낸 환경적 결과를 실제 사례들을 들어 보여준다. 이들은 좀 더 생태적인 방향에서 농업발전을 재설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쿠바에서는 오늘날의 유기농업운동을 이끌어온 중요하고 역사적인 선구자들이 있었다. 초기 개척자들은 귀중한 작업을 통해서 박물학자의 배경에서 저술을 했고, 생태농업적 전통을 수립하고 중요한 지식, 개념, 아이디어를 미래세대에게 제공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간, 특히 1990년대에 쿠바에서 유기농업운동은 농업 시스템뿐 아니라 환경에 기반을 둔 발전이라는 국가적 개념에서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데 커다란 성과를 거두어왔다. 쿠바는 국가차원에서 특별화한 제도, 법제화, 연구, 교육, 농촌지도를 수립하고, 생산적인 실습을 통해 지원적인 역할을 해왔다. 레인(Lane)에 따르면, 쿠바 발전모델은 21세기에 최초로 지속가능한 사회 중 하나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녀는 이 잠재력을 구성하는 기본축의 하나로 과학과 교육에 기반을 둔 발전을 지목하고 있다.

 

1990년 이전의 쿠바농업: 혁명 이전

 

쿠바에서 유기농업운동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는 쿠바농업 역사와 더불어 시작해야만 한다.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이전 시대 수렵, 어업과 병행하는 아주 초보적인 농업을 수행했다. 정주농업은 식민지 지배기간 중 1511년 디에고 벨라스퀘스가 발의한 첫 번째 토지분배시기에 시작되었다.

 

1536년 왕정의 토지점거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토지소유는 국영주택과 농장으로 인정되었다. 토지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서 정착하는 농촌 지주계급에게 분배해서 쿠바농민을 탄생시켰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약 65만 명을 초과하여 18세기 후반에 섬으로 유입되기 시작해서 사탕수수산업을 탄생시키고 확장하여 쿠바 농업발전의 핵심이 되었다.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농법은 얼마 후 사실상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프리카 노예들과 유럽, 스페인령 아메리카 지역으로부터 들어온 기술들이 합쳐졌다. 이런 혼합기술은 섬의 자연조건에 적용되어 지속가능한 농업의 한 분야를 창조하고 조심스러운 선별, 토지 전유, 지역기후에 걸맞은 파종일정 계획, 복작과 돌려짓기를 활용한 파종, 토지개량에의 적용, 유기 비료 등 많은 사례들을 특징지었다.

 

4세기 동안 중소규모 토지 소유자들, 특히 작물기반의 중소 생산자들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목축민들은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까지 여전히 대자산가들로 이뤄져 있다가 후에 인구증가와 더불어 중소규모 작물과 겸하는 농장들로 분화되었다.

 

1862년과 같이 훨씬 이전 시기에도 포조 뒬케스(Pozos Dulces) 백작이 “사이짓기, 돌려짓기가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무성해진 토지파괴를 되돌려 놓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초기의 농생태학적 사고를 제시하였고, 라미로 게라와 페르난도 오트리즈 같은 역사학자들도 이 시기의 특징들을 검토하고 있다. 스페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시기(1895-1898)의 초반에는 9만7백 개 활동농장이 있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 6만7백11개로 평균 58헥타르의 크기였다. 미리 점유된 13헥타르 미만의 토지들은 국가 전체의 농지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135헥타르 이상의 대농장들은 사탕수수와 가축생산에 전용되었다. 사탕수수 단지에서도 몇몇 토지는 소 목축, 산림 생산, 먹을거리, 과일, 기타 작물용으로 이용되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개입과 대량의 자본이 섬으로 유입됨과 동시에 사탕수수시대가 확장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대토지 소유 혹은 몇몇 사례들에서 소목축과의 연계를 특화시키는 것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동시에 농장 수가 감소하고 토지가 소규모화되며 유형이 보다 다양해졌다. 1934년에 중소규모 농장은 38,130개만이 남았다. 이후에 대규모 쌀 생산은 대규모 라티푼디움들의 확산과 더불어 사탕수수의 궤적을 따랐다. 이러한 대규모 단작 라티푼디움들은 “관행적” 혹은 “현대적”농업의 원칙들을 사용하는 미국계 기업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1958년 쿠바인구의 56%는 여전히 농촌에 살고 있으며, 극심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농업분야에서 9.4%의 토지 보유자들이 73.3%의 토지를 소유한 반면에 85%의 농민들이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으며 대토지에서도 4백만 헥타르 이상이 경작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반면에 20만 가족농들은 땅이 없었다. 농촌지역들은 문맹율, 유아 사망율이 높았으며, 비위생적인 조건에 처해 있었다. 6백만이 조금 넘는 전체 쿠바 인구 중에서 60만이 실업상태이고, 50만 명 이상이 1년에 4개월만 일하는 임시 농업노동자였다. 최상의 농지 절반 이상이 외국계 소유자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혁명기의 농업

 

1959년 쿠바혁명 승리 이후 1959년과 1963년에 농업개혁법을 통해 20만 가족농에게 농지가 분배되었다. 반면에 70%의 라티푼디움들은 국가소유로 넘어갔다. 동시에 이 지역들의 교육, 문화, 건강, 경제개발 분야에 엄청난 시도들이 착수되었다. 농촌마을, 고속도로, 도로가 건설되었고, 농촌 전기화와 더불어 건강시설, 학교, 대학, 과학센터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다.

 

혁명적 농업 분야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 인구의 먹을거리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

* 수출수입을 확대시키는 것

* 농촌지역의 빈곤과 비위생적 조건을 제거하는 것

 

혁명기 초기에는 농업 다양화와 환경친화형 농업에 보다 중점을 두는 데 대한 지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농업 진화의 개념은 곧 당시의 요구와 경향성에 굴복해 관행농업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런 청사진은 동유럽의 사회주의 진영을 포함하여 산업화된 농업의 전 지구적 전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초기에 직면했던 조건들에 비해 개선점들이 나타났지만, 현대 농업모델은 결국 경제적, 생태적,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줬다.

 

* 과잉 특작화, 단작화, 과잉 집중

* 외부 투입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비료, 살충제, 동물농후사료, 농기계, 관개시설)

* 대규모 산림벌채

* 염류축적작용, 침식, 다짐작용, 토양 황폐화

* 지속가능하지 않은 공장식 목축체계 심화, 가금류, 돼지 사육

* 농촌-도시 이주민 급증(농촌인구 1956년 56%, 1989년 28%, 1990년대 중반 20% 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기의 강력한 사회적 전환들은 투입재가 낭비되는 관행농업에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농민들이 파산하면서 빈곤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수천 농민들을 막을 수 있었고, 이것이 다른 저개발 국가나 개발도상국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 기간에는 토지 80% 국가소유였으며, 20%가 사적소유 아래 있었다. 평균적으로 130만 톤의 화학비료와 60만톤의 농후사료가 매년 가축사육에 쓰였으며, 8천만 달러치 살충제가 쓰였다. 트랙터 수는 9만 대까지 증가했는데, 한편 소는 10만 마리에 못 미치도록 줄어들었다. 혁명기 초기 30년 간 무역을 우선시했던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들, 특히 소련에서 이러한 농업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투자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소농들은 전국적으로 전국소농연합을 만들고, 많은 이들이 소농생산협동조합 혹은 신용과 서비스 협동조합에 가입했다. 한편으로 다품종 작물들과 통합된 농업 활동은 땅에 묶여있는 채였다. 귀중한 농업 전통은 소농들이 가축 경운을 사용하고 직관적으로 생태 과학을 운용하는 것으로 지속할 수 있었는데, 외부 투입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기반으로 자기 농토를 관리하고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쿠바농업에서 최근의 변화

 

1970년대 쿠바정부는 지배적인 농업모델의 문제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투입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던 당시에 보다 합리적이고 시대 추세를 반영하는 농업체계로의 변화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수입되는 투입재와 천연자원을 대체하기 위한 정책들이 발의되었고, 모든 분야에서 재정과 물질 절약을 촉진하고 이윤율과 자급을 새롭게 강조하게 되었다.

 

게다가 연구소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는 목표와 전략들로 바꿔나갔다. 이 시기에 세계 에너지 위기와 수입되는 연료, 비료, 농후사료, 살충제, 다른 제조품의 가격 상승은 쿠바 농업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을 주었다. 1980년대는 연구, 개발, 수입되는 투입재 대체 방법에 대한 교육이 증가세를 보였다.

 

1960년대 설립된 견고한 연구체계는 농무부 내에서 강화되었고, 17개 연구소와 38개 실험실(다양한 분야에서 795명의 연구자들과 168명의 박사들) 연구소와 대학들의 네트워크를 연계한 고등교육부, 교육부, 그 밖의 기관들에서 농생태학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위기 : 쿠바의 “특별한 시기”

 

1989년의 극심한 위기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더불어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유념해야 하는 것은 쿠바는 자본과 에너지 면에서 충분한 공급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1989년 이전 쿠바무역의 85% 이상은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이루어졌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은 10%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쿠바는 식량의 3분의 2를 수입했고, 대부분의 석유와 기계부품의 80%, 예비부분을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수입했다.

 

쿠바의 구매능력은 40%까지 감소했고, 석유 수입은 3분의 1까지, 비료는 25%까지, 살충제는 40%까지, 농후사료는 30%까지 줄어들어 모든 농업활동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 갑자기 쿠바 무역에서 1년에 80억 달러가 사라졌다. 쿠바 GNP는 1989년과 1993년 사이에 193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떨어졌다. 수입은 대부분의 식량, 예비부분, 농화학재, 산업장비를 포함하여 75%까지 감소했다. 많은 산업시설들은 문을 닫아야 했고, 공공 교통수단과 전기발전은 최소한으로 운영되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대”와 산업화된 농업체계는 식량생산을 증진시키는 데 난관에 직면해야 했던 반면에 수출용 생산을 유지하고 있었고, 투입재 가용성 면에서 모든 부문이 50% 이상 감소했다.

 

위기에 직면하여 쿠바정부는 경제 내핍상황을 진단하고 긴급한 변화를 단행했는데, 새로운 국내경제정책, 해외투자에 대한 개방, 쿠바시민들의 외환 보유 규제 자율화, 다양한 분야에서 사적 활동에 대한 허가를 승인했다. 구조적인 재편과 더불어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온 새로운 농업기술은 처음으로 새로운 교육을 실행하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안들이 도입되었다.

 

* 새로운 조직적 형태와 생산 구조를 통한 국영농업 부문의 분권화

* 다양한 지역에서 다품종 작물에 대한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토지분배

* 농업생산의 전문화 감소

* 생물학적 해충 방제 및 생물비료 생산

* 가축 경운을 새롭게 활용

* 도시, 가족, 지역사회 텃밭운동의 증진

* “공급과 수요” 조건 하에서 농민시장 개설

 

이 “특별한 시기” 동안에 농업정책의 목표는 농업에서 투입재 비중을 낮추는 형태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생산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쿠바연구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조직과 농업교육 구조, 정보 공유 개선, 자본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기술에서 이를 경감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동시에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화했다. 1992년에 토리첼리 법안이 승인되고 미국계 해외 자회사가 쿠바에 식량과 의약용품을 수송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헬름-버튼법은 쿠바에 대한 해외투자를 제한시켰다. 이 법안들은 다양한 수정안과 봉쇄효과를 중첩시키고 야만적이고 극한 특성들을 심화시켰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가까스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지표들을 유지해 왔다. 식자율은 여전히 95%를 넘었고, 교육은 무상의무로 16세까지, 1천1백만 주민들의 평균학력은 9학년이며, 50만명 이상이 대학졸업자이다. 1천명 당 사망하는 유아의 비율을 나타내는 유아 사망율은 6.4이다. 인구 1만 명 당 약 60명의 의사가 있고, 평균 기대 수명은 여전히 75세 이상이다. 경제활동인구 100명당 96명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노동력의 43%를 차지하고 주로 교육, 보건의료, 과학, 기술 분야에서 활동한다.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과학계 종사자들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 생산의 많은 부문은 최근 몇 년간 회복되고 있는데, 특히 뿌리작물, 덩이줄기, 신선한 야채들과 국가적 산림조성이 두드러지며, 현재 국유지가 21%를 넘어섰다. 도시농업은 식량보장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소규모 쌀, 약초 생산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진전이 있었으며, 가축 경운의 활용이 재발견되었고, 농민시장이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주식물보호국과 다른 국가기관들은 “고정가격상한” 시장을 열어서 적절한 가격으로 식품을 공급했다.

 

 

농업 행정구조

 

농무부는 국가 기관으로서 농업과 임업 생산을 감독하고 관리를 전반적으로 담당하며, 인구 대비 식량수요량, 산업에 대한 원자재, 관광 필요사항뿐만 아니라 수입 대체품을 충족시키고 최대 효과로 수출을 장려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농지, 물, 기술공급, 토양보호와 국내 야생 동물의 유전정보 축적, 사탕수수 외 농업과 임업 생산에서 저항성 있는 다품종 작물들과 종자들의 보존과 활용 방향으로 추진되는 노력들에 기대고 있다. 농무부 주식물보호국은 또한 동․식물 건강과 환경보호, 안전한 일터 환경에 대한 서비스와 검사를 보장하고 있다. 전체 인력 1,153,000명(협동생산기본단위 노동자들을 포함) 중 26,352명은 고등교육의 학위를 갖춘 전문가이며, 62,200명은 기능사이다. 주식물보호국 국영기업체계는 487개 기업과 222개 독립농장으로 구성되어, 40만 명의 노동자들이 농업분야(69%), 산림재배(10%), 산업계(9%), 건설(2%), 운송(1%), 상거래(9%)를 차지한다.

 

쿠바경제에서 사탕수수와 설탕산업이 다용도로 중요시되는 것을 감안하면, 설탕산업부는 약 150만 헥타르의 농지를 관할하고 있으며, 주식물보호국도 농업과 농산업 분야에서 이같이 유사한 기능들을 담당하고 있다.

 

농업과 긴밀하게 관련된 기타 기관들

 

전국소농연합은 조직적이고 생산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실습, 안내, 판매홍보, 국제적인 협력을 제공하는데, 개별 지주, 농업 노동자, 혹은 개별 농민이든 상관없이 모든 소농들이 해당된다. 이 조직은 쿠바의 농업 전통, 경험, 문화의 상당 부분을 보존하도록 도와왔으며, 지속 가능한 농업과 생태적 농업으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교육부는 농촌지역의 기술적인 교육을 담당하여, 과학기술전문연구소 네트워크(특히 농촌 직업 고등학교들)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연구소들에는 농업 생산지가 배치되어 담당 학생들을 교육하고, 이론과 실습적인 교육을 병행하는 한편으로 학생과 교수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고등교육부는 대학, 대학원 교육을 관할한다. 모든 농업대학들뿐 아니라 상당수 연구소, 실험실은 이 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국가적,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주식물보호국의 활동에 중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환경부는 특별한 시기인 1994년에 설립되어 과학, 기술, 환경문제들과 관련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며, 그 가운데 농업 부문이 우선 순위를 차지한다.

 

식품부, 해외투자 경제협력부, 수압자원 연구소 모두가 농업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생산구조의 변화

 

1993년 9월 쿠바 당국은 이전 국영농장 토지소유 체계에 변화를 시도해 지금까지 많은 부분을 협동생산기본단위로 전환시켜왔다. 이 토지들은 이전에 국영농장에서는 무료 토지 이용권의 기반(임대료 없음) 하에서 보장되었는데 이제는 생산수단(농장 설비, 도구, 가축, 건축물)을 협력적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협동생산기본단위는 일반적으로 협동농장에 비해 넓은 지역을 포괄하며, 자치적이고, 재정적으로 독립적이다.

 

오늘날 사적 부분은 농업생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농생산협동조합과 신용 서비스 협동조합(1970년대 설립되고 전국소농연합 산하에 조직되어 있음), 이전 국영농장은 협동생산기본단위뿐 아니라 개별 생산자들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이른바 새로운 형태의 국영농장은 협동생산기본단위를 선호하지 않는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이 형태의 주된 특징은 이전국영농장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수정된 주식물보호국 규칙 419호는 80,748헥타르의 토지를 커피 생산을 증진하기 위해 새로운 농민들에게 제공했고, 53,948헥타르는 담배 생산, 17,004헥타르는 새롭게 분배되었다.

 

토지 보유제도

 

구조

기원

보유권

이점

소농생산협동조합

독립 지주들

협동조합과 연합조직을 만들기 위한 자발적 기부

임금, 노력과 참여를 기반으로 함

신용 서비스 협동조합

전 임대농, 농장 노동자, 당원, 소작농, 소규모 지주

토지 이용권이 부여된 사적 토지

은행 신용대출, 이익공유

협동생산기본단위

전 국영농장 노동자들

생산수단, 가축 등 구매, 집단적 토지 이용권

임금, 노력과 참여를 기반으로 함

농촌분야, 토지이용권이 부여된 토지

국유지, 주로 커피, 코코아, 담배

국유지의 토지 이용권

국가 주요작물 수매, 가족농 생산보조, 초과 생산분 자유시장 판매

도시농업

텃밭, 옥상, 발코니, 도시 및 도시 주변 공터

사적보유 혹은 토지이용권 0.25 헥타르까지

가족 자체수요 충족, 야채, 원예, 허브, 가축 이웃에게 판매

새로운 형태의 국영농장

협동생산기본단위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 결핍된 국영농장

국유지, 행정적 자율성이 높아진 국유 생산수단

임금, 노동과 생산결과를 기반으로 함

국영기업

국유지

국가에 귀속된 모든 생산수단

임금 노동자, 식량 및 수출용 생산

 

쿠바에서의 유기농업 운동

 

초기에 농업 선구자들이 일군 이 같은 비범한 작업은 이후 세대인 수천 명의 소작농, 농민들이 알려준 지식, 아이디어, 경험들로 오늘날 쿠바의 유기농업운동과 기본원칙을 만들어 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쿠바 과학자들과 농민들은 고투입 농업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몇몇 연구소들이 이런 경향의 작업을 채택했고, 쿠바가 중요한 투입재의 사용을 감소시키고, 경제 및 환경 관점에서 보다 지속가능한 농업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의식이 점차 형성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쿠바 당국이 발의한 최근 전환을 고려하여 1992년 주로 고등교육부 소속인교수들, 연구자들 그룹이 관행농업에 대한 대안을 개선시킬 필요성을 인식하고, 하바나 농업대학(당시에 하바나 선진농업과학 연구소로 불렸음)에서 생태농업 아이디어들을 토론하는 데 함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기농업에 관한 최초의 전국회의를 조직하고 1993년 5월 국가농업과학연구소에서 대표단 100명 이상과 해외인사 40명의 참여로 쿠바유기농업연합 핵심 그룹을 창설했다. 이들의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운 농업체계의 필요성에 대해 국가적 인식을 발전시킬 것, 동시에 경제적으로 생존 가능한 방법으로 충분하고, 가용할 수 있으며,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것.

* 지역 생태농업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것, 그리고 농업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교육과 훈련을 증진시킬 것.

* 생태농업 연구 및 교육과 기반이 되어온 전통농업체계에 관한 원칙들을 회복시키는 것을 촉진할 것.

* 농민들에 대한 기술적 지원 체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유기적이며 자연적인 농업생산체계 수립을 증진시킬 것.

* 해외 기관들과 경험을 교환하는 것을 장려할 것(라틴아메리카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중점),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발전 전문가들과 협력할 것.

* 유기농산물 판매홍보의 중요성을 증진하고 공표할 것.

 

쿠바유기농업연합의 창설 이래로 워크숍, 현장 일정, 대학, 연구소 내 토론, 컨퍼런스, 행사, 농민들과의 간담회뿐 아니라 이동 생태 도서관이 각기한 생산, 연구, 교육센터, 농업협동조합, 다른 관련 연구소들을 순회하면서 맹렬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동시에 “생태농업 등대들”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이 농민들과 더불어 출범했고, 전국 각지의 생태농업 개념이 적용된 농장에서 지속가능한 생산체계를 촉진시켰다. 등대 프로젝트는 하바나 지역의 2개 지자체의 3개 소농생산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시작되었고, 지역적으로 150 가구 가족농들과 약 400명의 농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유엔개발프로그램의 일환인 ‘지속가능한 농업 네트워킹과 농촌지도 프로젝트’는 이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하바나 농업대학과 농업과학기술전문연구소에서의 훈련을 포함했다. 7개의 새로운 등대들이 최근 피나르 델 리오, 하바나, 하바나시, 씨엔푸에고, 상뜨 스피리투스, 빌라 클라라, 라스 뚜나스 지역에서 협동생산기본단위, 신용 서비스 협동조합, 소농생산협동조합들을 출범시켜왔다.

 

등대들과 같은 프로젝트는 ‘세계를 위한 빵(독일)’, ‘완전한 협력을 위한 인간주의 연구소(네덜란드)’, ‘옥스팜 미국(미국)’의 재정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전국소농연합을 위한 국립학교에서 컨퍼런스들, 참여형 간담회, 비디오 토론들이 이론과 실천적 주제들에 관해 제공되어왔다. 마침내, 농생태학과 유기농업에 관한 많은 과정과 워크숍이 전국 각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쿠바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은 수년 간 주식물보호국, 설탕관리국 등 행정부서와 전국소농연합, 쿠바교회협의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 유기농산물의 생산, 판매, 홍보를 목표로 이 기관들과 함께 작업했으며, 교육, 연구,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한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교류해 왔다.

 

1995년과 1997년에 제 2차, 3차 유기농업에 관한 전국 컨퍼런스가 하바나 지역의 동물과학연구소와 빌라 클라라 중앙 대학교에서 각각 열렸다. 2차 컨퍼런스에서 참여기관들과 합동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조직했는데, 각 나라들에서 온 유기농업 활동가, 전문가들과 더불어 여러 지역으로의 선진지 견학이 포함되었고,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 개의 전문 워크숍(생물해충방제와 가축을 활용한 토양 경작), 두 개의 단기과정(섞어짓기와 생태농업 체계의 설계), 3일 단위 컨퍼런스, 제2차 유기농업 국제 과정이 개설되었다.

 

3차 컨퍼런스에서는 400명 이상의 대표단(해외 180, 쿠바 240)이 3일 동안 참석했다. 사전 워크숍은 산악지역, 도시농업에서의 개발, 생태적 해충관리에 관해 열렸으며, ‘지속가능한 농업 네트워킹과 농촌지도 프로젝트’를 위한 국제회의가 동시에 열려서, 회의 직후 ‘살충제 행동 네트워크’와 3차 유기농업 국제과정이 개최되었다. 3차 컨퍼런스 과정에서 ‘제1차 라틴 아메리카 유기 인증자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이는 인증제도에 관해 배우고 지역 관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동 실행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교육 분야에서 하바나 농업대학의 지속가능한농업연구센터는 농생태학 석사, 박사학위과정을 개설했다. 1997년 이래로 전국에서 높은 수준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농생태학 1년 단위 통신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유기농산물 인증과 유기농 커피에 관한 생산과 인증을 다루는 과정뿐 아니라 농민들에게 다양한 컨퍼런스와 워크샵을 제공한다. ‘유기농업 이탈리아 연합’은 국제유기농업 조사관으로서 이탈리아에서 두 개의 직업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이러한 노력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경제연합이 이를 승인하고 있다.

 

유기농업 잡지는 1995년부터 1년에 세 차례씩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의 목표는 유기농업뿐 아니라 체계 지속가능성을 위한 관점에서 저투입과 생태농업 기술에 관한 새로운 뉴스에서 각기 다른 양상들과 진전을 분석하고 토론하며 퍼뜨리기 위한 것이다. 환경, 사회, 경제 주제에 관한 토론, 특히 세계 각 지역에서 관행농업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들과 관련된 내용이 실렸다. 전국 및 세계 각국의 광범위한 독자 수에서 이 잡지를 채택하는 빈도수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국가 및 국제적 협력이 강력하게 작용해왔다. 실질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센터나 기관에서 연계를 갖거나 농업형태를 만드는 쿠바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은 프로젝트, 코스, 출판물, 회의 조직 등에서 공동으로 작업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협력 작업뿐 아니라 국제회의들과 해외 대표단들의 전국적인 선진지 견학을 통한 실천적 참여는 유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쿠바의 경험을 만들어온 수천 회의 참여를 낳는 결과가 되었다. 쿠바의 전문가와 농민 대표단은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멕시코, 아이티,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라오스, 말레이시아, 네팔, 스리랑카, 미국, 기타 국가들에서의 농업 실습에 관해 보고했으며, 이 지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였다.

 

1996년에 쿠바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은 유기농업을 증진시킨 업적에 대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개발 상(Mallinckrodt: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 유기농업운동회의 국제연맹에서 발표되었음)을 수상했다. 1999년 4월 쿠바유기농업연합은 이름을 변경해서 현재 유기농업 그룹(GAO)으로 불리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지위를 얻었다. 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은 생태적 농업의 홍보와 개발에 대한 동일한 전제 하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1999년 12월 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은 유기농업 전파와 증진에 대한 업적으로 스웨덴 의회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대안 노벨상”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바른 삶 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유기농업에 있어서 유기농업연합 핵심그룹의 훌륭한 작업으로 인한 것이며, 매일같이 유기농업 개발과 실천을 수행했던 쿠바인들에 대한 입증이기도 하지만, 40년 이상 경제봉쇄로 고통 받았음에도 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길로서 인정받은 것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의 도전

 

유기농업과 농생태학은 과학기술적 모델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농업, 바로 그 길을 표상한다. 이 과정은 곧 지역 현실의 조정과 더불어 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유기농업과 농생태학은 쿠바의 사회경제적 맥락 내에서 뜻이 통하게 되며, 하나의 규칙으로써 이런 형태의 농업이 혁명적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이 원칙들은 신자유주의가 수행하는 악랄한 세계화에 맞서며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고 연대하는 보다 인간적인 세계화를 추구하며, 자급을 우선한다. 생태농업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중간상인과 중개자의 역할을 줄이고, 잔인한 과학기술 방안보다 농민들의 의식을 발전시키며 지식을 적용하는 데 있다. 농민은 자연과의 협력자로, 문화적 존재로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생산적 단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쿠바는 이상적으로 유기농에 대한 가능성을 온전하게 입증하고, 진실로 지속 가능한 농업체계를 획득하기 위한 위치에 와 있다. 현재 쿠바의 유리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 농산물에 대한 강력한 요구

* 농업활동과 연결된 질적으로 훌륭한 인력

* 공동체 활동을 경험한 인구 수

* 식량자급을 지지하는 행정, 사회구조

* 국민들의 이득을 위한 공개 캠페인을 지원하는 공식적인 대중매체

* 새로운 모델에 부합하는 연구 결과

* 최근 수년간 많은 인구들의 귀촌

* 생태농업 문화창조에 기여하는 조직

 

유기농업은 일반적으로 점차적 전환 과정을 통해 전 국가적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오히려 급격한 변화와 이전 생산체계의 급작스런 파열은 경제위기 덕분에 쿠바에 닥쳐온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덕분에 쿠바는 생태농업적 생산을 완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고, 각 지역, 작물, 생산목적, 기술 및 경제 환경과 같은 특정한 조건에 걸맞게 조정해왔다. 이런 상황은 커피, 감귤류, 과일 혹은 가공된 과일, 설탕, 꿀과 같은 몇몇 상품작물에서 급격한 전환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여러 이유로 몇몇 관행농업체계는 유지될 것이며, 유기적이고 생태농업적 체계가 완전히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관행농업의 고비용을 고려할 때 외화가 귀한 최근 경제 상황은 유기농업을 실행하고 홍보하는 데 또한 유리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농업형태에 따르는 규칙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농산물이 유기농으로 인증 받고 판매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관련 정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일련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고려할 사항들은 표준에 대한 정의와 유기생산을 관장하는 법적 규칙들, 국가 인증 시스템, 선호도를 규정하는 시장조사, 국가 안팎의 가능성들, 매개 작물에 대한 진단 절차를 포함한다. 유기농산물 인증체계에 관하여 우리는 초기에 유기농 먹거리에 대한 소비, 건강, 환경과의 영속적 관계성과 관련한 국가적 의식을 발전시키고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우리의 독립성을 유지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투입재 대체재에 대한 첫 번째 단계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면, 미래의 도전은 보다 복잡하여 생태농업 체계가 통합적이고 일관성 있게 작물, 가축생산, 산림관리, 여타의 하부체계들이 유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에 기반을 두고 상승작용의 이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전진하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실험결과들과 전통적으로 생태농업을 실천해온 농민들의 임상경험에 대한 전망이 매우 밝으며, 농촌에서 가축, 작물, 과일, 임목이 통합적으로 갖춰져 있는 한편, 잔류물들이 순환하고 가축경작과 풍력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다.

 

연구개발 프로그램은 반드시 지속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유기농업과 농생태학의 광범위한 잠재성을 입증하는 것이고, 농촌지도를 위한 보다 효과적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며, 출판물의 수를 늘리는 것, 훈련을 개선하고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해외 협력을 증진시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농업에서 패러다임 이동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역동적인 작업들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위협은 화학적 투입재들의 수입이 다시금 보편적으로 가용될 때 직면하게 될 것이지만, 그때엔 신념보다 오히려 필요성에서 유기적 방법을 활용하는 농민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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