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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전환의 시대, 사회운동의 방향과 역할
2016-06-13 09:21:00

  

* <모심과 살림> 1호(201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전환의 시대, 사회운동의 방향과 역할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실장)

 

 

전환을 이야기하자

 

전환에 담겨 있는 의미

새천년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이제는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곳곳에서 ‘전환(轉換)’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왜 지금 시대에 사람들이 전환을 이야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전환이라는 말의 의미와 쓰임새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전환’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쓰임새를 좀 더 살펴보면 단순한 ‘바꾸기’가 아니라 새롭게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기’를 가리키고 있다. 교정이나 보완보다는 형식과 내용, 방향 등에 있어 질적인 차원 변화가 바로 전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switch, change, transition보다는 transformation에 가깝다.

 

따라서 전환이라는 말을 우리 현실 속으로 가져올 때 그 인식의 밑바탕에는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즉 현실을 정상(正常)이 아닌 비상(非常) 상황으로 보는 ‘위기’ 의식이 전환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 의식은 어떨 때 생기는가. 일반적으로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 원인을 찾지 못했거나, 문제의 원인은 알았지만 해결 방법이 잘 안 보이거나, 해결책은 찾았는데 책임지고 해결에 나설 주체의 준비가 안 됐거나,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결국 남은 시간 자체가 부족한 경우들을 두고 위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어떤 위기적 특성이 전환을 부르고 있는가.

 

왜 전환의 시대라 부르는가

사실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은 수많은 난관과 도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굳이 지금을 ‘전환의 시대’로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공간적’ 측면에서 지금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 수준을 넘어서버렸다. 지구적 생태위기나 글로벌 경제위기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런 인류 공동의 위기적 문제를 눈앞에 두고서도 국경을 넘어선 협력적 해결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히려 각자의 이익을 앞세운 국가들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갈등만 더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1)

 

둘째, ‘시간적’ 측면에서 위기 현상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오염과 파괴, 고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국, 유럽을 거쳐 세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위기의 충격이 선진국과 개도국의 동반 침체로 이어져 삶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대안에 대한 여유로운 모색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재 당면한 위기의 원인이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보편타당하다고 믿고 있는 ‘가치체계’와 ‘삶의 동기’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생태위기, 사회경제적 양극화, 구조적 실업과 빈곤문제 등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가치와 제도,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의 발전 체계와 목표 자체도 도전을 받고 있다. 양적 성장과 국민 행복의 실현이 비례 관계에서 점점 벗어나는 현상은 대표적인 예다. 특히 우리나라는 빠른 성장만큼 국민 행복과의 불일치 현상도 점점 커지고 있다.2)

 

여기에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저성장 체제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과 속도에 의존한 경제생활과는 상당히 다른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률 지표가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흐름과 연동된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 변화는 심각한 수준이다.3)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대다수가 당연시 여기고 익숙해 왔던 가치와 제도, 시스템 전반에 대해 새로운 물음 제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를 둘러싼 변화의 폭과 속도가 매우 크고 빠를 뿐만 아니라 이것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충격과 부담도 상당히 큰 전환기 상태다. 그만큼 국가와 사회 전체를 아울러 발전 방향과 내용, 방식 자체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해야 하는 전환의 전략이 필요한 때다. 이 글에서 전환기의 시대적 특성과 운동의 의미를 확인하고 바람직한 전환을 이끌어내기 위한 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살펴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환기의 현실 진단과 과제들

 

기후변화와 방사능 오염 문제는 지금 시대가 당면한 전환기적 위기 상황을 분명히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문제가 가져다 줄 파국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견된 재난’ 상황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모습은 최근에 일어난 상징적 사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00ppm이 말하는 위험한 진실

지난 5월 9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 지구시스템연구소가 운영하는 마우나 로아 관측소(Mauna Loa)에서는 1958년 처음 관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400ppm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대표적인 지구온난화 물질인 CO₂의 대기 중 농도가 지구 역사상 수백만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준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4) 해외의 한 매체는 ‘정신 번쩍 차리게 하는 이정표’, ‘우리가 어리석은 길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 행동을 요청하는 사건’이라고 이번 조사 결과의 의미를 전했다.5) 과학자들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8년에는 CO₂ 농도가 기후 재앙을 다스릴 수 있는 최종 저지선인 450ppm을 넘어서게 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앞으로 약 2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CO₂ 등 지구온난화 물질은 대기 중에 한 번 배출되면 수십 년에 걸쳐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 지구 생태계 전반에 파국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더라도 기후변화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미 이런 사실들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을 위한 노력은 지지부진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도시 산업문명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교토의정서가 각 국가들의 책임 회피로 유명무실화되는 현실은 이런 우려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작년 말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는 참가국들 간 입장 차이로 결국 교토의정서를 2020년까지 8년 더 연장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온실가스의 대량 배출국들이 불참하면서 교토의정서의 효력을 크게 감소시켜 버렸다.6)

 

그렇다면 기후변화의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로서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한가.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이며, 증가 속도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그만큼 국토면적 대비 화석연료 소비량이 워낙 많은 데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영향도 커서 온난화 속도도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 100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 상승은 1.7℃로 세계 평균보다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대표적 화석연료인 석유의 생산·공급이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석유정점(oil peak) 시대가 5~10년 내에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가운데, 기후변화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일각에서는 원전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반복되는 원전 사고와 그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돈벌이 논리

지난 5월 28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현재 가동 중이거나 준비 중인 원전 6기에 위조된 불량품이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내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원전의 핵심 부품이 안전 관리의 책임을 진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원전 관련 각종 비리들이 터져 나와 정부 차원에서 조사와 관련자 처벌 등을 통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약속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번 부품 위조 사건은 정부의 원전 안전 관리 체계 전반의 심각한 결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원전의 안전을 책임지는 관련자들이라는 점, 사건화 된 계기가 자체 검증이 아닌 외부의 제보에 의한 것이라는 점, 이미 작년에 감사원 등을 통해 원전 부품 공급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고도 은폐한 사실이 밝혀진 점,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원전을 둘러싼 부패의 카르텔 구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점 등이 그러하다.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사태는 원전 사고와 방사능 오염이 현 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와 자연생태계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지, 핵에너지에 의존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후쿠시마 사태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후쿠시마 이후 세계의 원전 산업이 주춤해진 상황을 활용해 원전을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계획을 세워 추진했고, UAE와의 원전 수출 계약으로 세계 다섯 번째 ‘원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고 홍보해 왔다. 뿐만 아니라 좁은 국토에 원전 밀집도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13기의 원전을 신규로 더 세우자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후쿠시마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원전을 고집하고 오히려 더 확대하려는 것은 원전 이용에 따른 ‘욕망’이 원전의 ‘위험’에 대한 인식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원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연이어 발생한 원전 비리와 불량부품 납품 사건은 물론이고, 국익을 앞세워 원전의 해외 수출에 발 벗고 나선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원전을 둘러싼 위험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현재 박근혜 정부가 국정기조로 내세운 ‘국민안전과 행복’의 실현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이번처럼 원전 사고의 원인을 ‘개인 비리’로 돌리고 ‘부품 교체’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원전을 둘러싼 사고의 재발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수백 억 원의 예산과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품 교체로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심각한 사고가 나면 수많은 생명의 희생은 물론이고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걸려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도 정상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원전 사고의 특징이다.

 

이번 원전 위조부품 사고로 국내 23기의 원전 중 10기가 가동 중단에 들어간 이때, 우리사회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강제 절전 등으로 시민들이 겪게 될 불편과 부담이 오히려 빌미가 되어 원전 확대 정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에너지 생산 및 소비 구조와 그것에 기반한 사회경제 체제 및 삶의 방식 전체를 깊이 되돌아보고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인가.

 

전환에 따른 진통과 비용이 특히 큰 우리의 현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상황을 놓고 경쟁사회, 과속사회, 피로사회, 우울사회, 무책임 사회, 지속불가능 사회, 위험사회와 같은 우울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환의 시대를 지혜롭게 열어가기 위한 치밀한 준비와 노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지난 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 총량적 목표 하에 시간 단축적 성장 전략을 숨가쁘게 추진해 온 우리나라는 전환기의 진통이 유난히 클 뿐만 아니라, 전환에 따른 비용과 부담도 특히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전환의 조건과 과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경쟁과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 내는 ‘집단적 피로감’으로 인해 성찰의 기회가 제한되고 대안 모색의 능력도 취약하다.

지난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선진국 따라잡기 성장전략을 추진해 온 우리나라에서 사회와 개인 모두는 시간 효율성을 기준으로 주어진 목표를 향해 숨가쁘게 달리는 데 익숙해 왔다. 그러나 ‘빨리빨리’라는 말처럼 치열한 생존경쟁, 순위경쟁은 오버페이스(over pace)에 따른 과부하로 지친 사람들이 가득한 ‘과속사회’, ‘피로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다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 논리와 시공간 거리를 단축시킨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제품과 정보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켜 순식간에 폐기하고 매몰시켜버리는 ‘휘발성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이런 상황에서 긴 호흡으로 이웃과 미래세대, 뭇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고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둘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불균형과 양극화가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적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적 공감과 합의의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총량적 성장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농업보다 공업, 농촌보다는 수도권 대도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국가가 나서서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농업, 농촌은 급속히 무너졌고, 인구와 자원, 권력이 과잉 집중된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간 갈등 등을 주요 현안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문, 지역, 영역, 계층 간 양극화에다 최근에는 세대 간, 세대별 양극화도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한 보고서에서는 스펙푸어, 허니문푸어(10-20대), 베이비푸어, 에듀푸어(30-40대), 워킹푸어, 하우스푸어(40-50대), 실버푸어(60-70대)로 세대별 당면 과제들을 서로 구분해 놓고 있다.7) 한편, 불균형과 양극화에 따른 문제는 정치 영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정치사회, 경제사회, 시민사회의 불균형한 발전으로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에 비해 시민사회의 발전이 가장 늦게 이루어졌다. 한국 민주화의 특징을 “지체와 조숙”으로 들면서 민주주의의 불균형 현상을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8)

 

셋째, 단절과 소외, 파편화와 개인화에 따른 소외감과 무기력감이 확대되면서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가진 주체들의 발굴과 육성이 쉽지 않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삶터와 일터의 ‘영역의 분리’에다 높은 이동성에 따른 ‘공간의 분리’와 이웃 관계와 공동체의 해체를 통한 ‘관계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복잡한 사회관계와 연결망을 느슨하게 만드는 근대화 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을 개별화·개인화시켜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실패의 책임까지도 개인에게 떠넘겼다.9) 문제는 위험과 모순은 사회적으로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을 해결할 책임과 의무는 계속 고립 분산된 개인들의 몫으로 돌린다면 과연 누가 사회적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 것이냐 하는 점이다. 게다가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개인의 자유와 자율적 선택이 오히려 과도한 부담감으로 이어져, 긴장과 탈진, 무기력감으로 인한 집단적 우울증 현상까지 생기고 있으니 문제다. 사회적 우울증은 당면한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능력을 무력화시켜버리는 것이 특징이어서, 자발적 주체의 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10)

 

넷째,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는 위험에 사람들이 과다하게 노출될 경우 오히려 위험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무뎌지고 문제 해결의 책임 의식도 약화되는 문제가 있다.

위험의 반복과 일상화가 무감각화와 무책임화를 낳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려하는 위험사회의 본질이며, 지속불가능성을 확대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존의 터전을 파괴하는 데는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보존·복원·재생하는 능력은 갈수록 퇴화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개발·성장 방식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구체적인 사실로 확인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안 탐색의 노력도 소홀히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위험은 공간과 시간, 각 부문과 영역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면서 오히려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의 위축된 욕망을 채우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당면한 생존의 불안감을 이유로 미래의 자원을 무분별하게 끌어다 쓰거나 또는 현재의 욕망과 미래의 위험을 맞바꾸려는 경향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성장 기조와 삶의 방식들을 고집하면서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핵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데서 나타나는 자가당착적 모습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전환기의 사회운동, 전환을 위한 사회운동

 

전환의 시대, 사회운동이 당면한 현실과 과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폭과 속도는 우리의 인식과 통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격변(激變)과 격동(激動)의 시대에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경험과 지식들이 잘 맞을 리 없다. 하지만 전환기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당면한 문제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압도되어 실체적 사실에 눈을 감은 채 집단화된 고정관념에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맡겨버리기 쉽다. 당면한 문제의 원인이 그 집단의식 속에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선택에 따른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사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표피적인 처방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거나 결국 해결의 책임을 이웃과 미래세대로 떠넘겨버리게 된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새로운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급속한 변화가 만들어내는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변화의 방향을 바르게 잡고 필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 나와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회운동은 우리 현실에서 정책과 제도, 시스템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많은 역할을 해 왔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사회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대한 저항과 비합법적 투쟁을 통해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들을 위한 생존권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은 정치사회적 변화와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었다. 민중운동의 시대를 거쳐 시민사회에 기반한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새로운 운동의 시대를 연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도 함께 작용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이 그 중 하나다. 1980년대 이후 무역 자유화와 3저 호황을 통한 경제성장과 함께 88올림픽 이후 대중소비 사회가 등장하면서 도시 중산층에 바탕한 시민사회가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1991년 구소련의 해체를 통해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한 사회운동 이념과 모델이 설득력을 잃어버린 점도 운동에 대한 새로운 모색에 기여했다. 여기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화를 통한 공론의 장 확대와 1990년대에 들어 새롭게 부활한 지방자치제도도 운동의 새로운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이후 시민사회에 기반한 사회운동의 급속한 성장과는 별개로 경제의 세계화에 따른 충격과 변화가 사회운동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는 한국사회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대규모 실직, 조기퇴직, 비정규직, 부도, 파산, 도산, 자살이 사회의 주요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서민금융체제 붕괴, 자영업 실패, 늘어나는 카드빚 속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확대되고 패자부활이 없는 혹독한 경쟁사회는 사람들의 삶을 절망의 터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가운데 1990년대 이후 급성장을 해 오던 시민사회운동은 2000년대 들어서 점점 조직 구조의 위계화와 소통의 부족으로 시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운동적 활력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회원과 회비수입이 감소하고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재생산 구조도 취약해진 가운데 소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정부나 기업 등 외부로부터의 지원에 기반한 다양한 협력 사업들이 생겨났으나 이것이 운동의 정체성과 자립기반을 약화시키고 대안적인 의제와 비전을 생산해내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된 우리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충격과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동시에 거대한 생태학적 도전에 따른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해법과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작금의 경제위기와 양극화는 중산층 붕괴와 함께 600만의 비정규직과 1000조 원이 넘는 가계대출로 서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더욱 치열해지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불안정한 국가나 탐욕스런 시장에 더 이상 자신들의 생존과 미래를 맡긴 채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 사회운동은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사회운동이 오히려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요구받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는 자립(自立), 자급(自給), 자율(自律), 자치(自治), 자작(自作)으로 일컬어지는 ‘스스로’(自)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사회운동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본을 바꿔내는 운동이 필요하다

전환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중층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그 핵심으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권력은 통치 권한을 가진 사람을 통해 행해지기도 하지만 조직이나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나아가 이념이나 가치를 통해서도 권력이 행사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이 행사되는 경우다. 이 경우 권력은 행위자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양적인 개념에 해당되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교체를 통한 ‘물갈이’가 변화를 위한 운동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 수없이 인물들을 교체해 왔지만 같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 자리 그 위치에 들어가서 같은 문제들이 반복해 발생한다고 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만을 탓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사람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권력이 체계화되고 구조화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지금 사회는 집단적인 목표를 제도화시켜놓고 행위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며 명령과 지시체계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선택된 행동을 유도하고 불이행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된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개인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각종 조직과 구조, 제도가 자본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짜여져 움직이고 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보다 은밀하면서도 더욱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의 사고와 선호 체계,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심층적인 차원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11)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나 문화가 사람들의 선호 자체를 왜곡시켜 자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 권력은 사람과 제도, 가치 체계를 아울러 중층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특히 가치나 상징의 조작을 통해 당사자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욕구와 욕망까지도 조작해 내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존과 미래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는 위태로운 선택을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을 통해 내리도록 하는 심층적인 권력의 작동이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전환기적 위기 상황의 본질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확대 재생산 구조와 경쟁과 이윤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는 현재 당면한 위기적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알아서 마음대로 하라’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선택의 기회를 주었지만 실상은 그 속에 어떤 편향된 가치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고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된 노력이 결과적으로 지배 시스템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한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12)

 

전환의 시대에 사회운동은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위한 노력 못지않게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체계, 의식의 상호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적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생활 속 가까운 곳에서부터 체제 전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대안적 실천 모델들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의 새로운 과제와 전망

 

개인적 성찰을 넘어선 사회적 통찰이 필요하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사회운동은 체제적 대안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받고 있다.13) 지금 경계선에 서 있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이 필요하다.14) 통찰은 기존의 경험과 지식이 무용지물임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인식 수단이다. 분석(analysis)의 시대에서 종합(synthesis)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통찰(insight)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5)

 

통찰(洞察)은 현실에서 겉으로 드러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 또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핵심을 꿰뚫어봄으로써 지혜롭게 해결 방안을 찾는 것으로,16) 그동안 당연하게 믿고 의지해 왔던 가치나 인식 체계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는 전환의 시대에 요구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성찰(reflection)이 자신의 존재 의미와 그 본질에 대해 되돌아 비추어 보는 반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통찰은 사회적 성찰 또는 성찰의 사회화를 통해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통찰이야말로 파편화된 경험과 정보 등을 새롭게 재구성·재조직하여 인식의 차원을 새롭게 확장시키는 것으로, 전체적인 맥락과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고 상호 작용과 연관성을 고려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공적 가치에 대한 합의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초입부터 일제의 식민통치를 경험했고, 해방 후에는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을 거치면서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권위주의적 개발국가 시절에 만들어졌던 성장제일주의, 목표달성주의, 속도주의, 결과중심주의의 뿌리 깊은 관성은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 전 영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다 남북이 대립하는 분단국가 체제는 이익 갈등에다 이념 갈등을 결합시켜,17) 소통과 토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형성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공적 의식이 약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흐름이 급속히 확장되면서 사적 영역이 오히려 공적 영역을 침해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경제적 자유화 흐름이 국가의 권위적 통치력이 후퇴한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공적 가치가 개인의 사적 가치를 압도하던 소위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시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금 시대의 문제는 하버마스 주장처럼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믿어져왔던 각종 규제와 억압(족쇄와 사슬)들이 사라져 자유화·유연화·유동화됨으로써 오히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식민화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18) 소위 공적 영역이 사라진 자리에 사적 이해관계가 경쟁적으로 난무하는 ‘멸공종사’(滅公從私)의 시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전환기적 위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그 어떤 힘이나 지혜도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적인 것들의 침해로부터 공적 영역을 보호하고 새로운 공적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면한 운동적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틀 속에 갇혀 있던 공적 담론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소위 ‘국익(國益)이 곧 공익(公益)’이던 시대는 지났다. 사적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가치들을 모아내고 차원 변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매개 공간들을 만들어 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낡은 공사(公私) 이분법을 넘어선 ‘활사개공’(活私開公)19)의 원리로 생활세계와 제도세계를 새롭게 연결시켜 협동과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새로운 전망으로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20) 억압과 복종의 획일적 구조에서 벗어나 개개인들의 개성과 활력을 살려내서 스스로 결정 내리고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활사(活私)라면, 언론과 정치의 역할이 부재한 현실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주체가 되어 공적 영역을 창조적으로 복원함으로써 공론화를 통한 합의형성의 기반을 확장해 가는 것을 개공(開公)으로 부를 수 있다.

 

<표1> 사회적 진화의 과정: 협동과 공생의 시대로21)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전환으로부터 시작하자

‘상호 연결’과 ‘상호 의존’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삶의 방식을 바꿈으로써 ‘함께 살림’(共生), ‘서로 살림’(相生)의 관계로 삶의 그물망을 넓고 깊게 짜나가는 일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전환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회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방식과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환의 실마리는 결국 자연과 사회, 이웃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의 모습과 스스로의 인식 체계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둘러싼 중층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한 가치관의 전환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자원 매장량과 생태학적 수용능력의 ‘한계’ 요인과 세계경제의 ‘위기’ 문제는 에너지, 자원, 자본의 무한 공급을 전재로 한 근대적 성장 모델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화석연료 사용 감축 방안과 그에 따른 에너지 부족의 해결책으로 강조되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이 주는 ‘생태학적 딜레마’는 그 대표적인 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지속불가능 시대에는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 우리 미래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적어도 우리가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았을 때보다 더 나쁘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양심과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와 이웃, 생태계가 서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자각을 바탕으로 생태학적으로 책임 있는 실천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된다. 나아가 상호 연결과 상호 의존에 대한 자각은 개체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협력적 실천의 대상을 인간은 물론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시켜 준다. 대형 개발사업의 파괴적 행위에 맞서 생명 보존의 상징

역할을 했던 동강의 할미꽃, 천성산의 도룡뇽, 새만금의 백합과 농게, 4대강의 쑥부쟁이, 강정마을의 구럼비 등이 바로 그렇다.

 

나아가 전환을 이끌어내는 운동의 실질적 힘은 주의나 주장보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생활양식의 전환도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생활양식 전환 운동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 왔던 주류적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그러한 방식의 삶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았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자신감은 바로 여기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 전환을 위한 대안 모델을 만들자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신자유주의 성장체제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한 상태인 데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자원 고갈 등 생태적 도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성장 모델 자체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더욱 분명해졌다.

 

따라서 사회 전반의 총체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제도 및 시스템의 수준을 서로 일치시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과 현실적 실천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낼 수 있는 다양한 대안적 실천 모델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의 밑바닥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다양한 영역들을 꿰어내고 미래로 확장해가는 대안적 모델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환기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대안의 영역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협동조합의 의미와 역할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지속성장을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태동기와 성장기에 등장했던 협동조합 이론과 실천 모델을 참고는 하되 ‘새로운’ 성찰과 모색이 필요하지는 않는가.

 

갈수록 거세지는 생태학적 도전 앞에서 협동조합은 생산의 성격과 내용은 물론 생산조건 자체의 변화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식량, 에너지, 물 등 생존과 경제활동의 기본 요소인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생산과 지혜로운 이용은 협동조합은 물론 지금 시대의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요구되는 가치 기준이자 책무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협동조합이 취급하는 물품의 생산 방식과 유통 및 소비 과정이 이웃과 자연, 미래세대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조합원들은 조합의 사회·생태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참여하고 있는지, 파괴적인 죽임의 질서를 생명살림의 질서로 바꿔내기 위한 활동들을 얼마나 책임 있게 계획을 가지고 해나가고 있는지 깊은 물음이 필요하다.

 

전환의 시대에 체제적 대안의 모델로서 협동조합이 의미 있게 자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생산’에서 ‘더 좋은 생산’으로 생산의 성격과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낸 욕구를 실현하고 결핍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써의 협동조합을 넘어서야 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와 욕구의 전환을 바탕으로 각자가 가진 경험과 역량, 비전을 함께 나누면서 공동의 과제를 책임 있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의 영역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전환의 시대에 협동조합이 부여받은 중요한 역할이다.

 

체제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 즉 자본과 권력, 물질, 정보의 흐름과 작동 방식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지속불가능한 시장경제를 움직여 온 자본의 흐름을 협동조합을 통한 지역자립과 순환의 경제로 바꿔내고, 중앙의 제도권의 권력 작동 방식을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과 조합원 생활자치의 힘으로 변화시켜 내고, 협동조합의 생태적 감수성과 책임성을 높여 자연자원과 에너지의 지속가능한 생산과 이용을 실현하는 것을 전망으로 삼는 협동조합의 실천 모델이 적극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져 다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공동소유와 민주적 운영에 따른 지배구조 개선과 고용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등 국가와 시장의 한계 영역에 대한 보완적 역할에 주로 머물러 있다. 지금의 협동조합이 새로운 참여 프로그램이나 사업 모델의 차원을 넘어서 전환기의 체제적 대안으로서 어떤 전망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1) 이런 변화된 현실에 대해 래치먼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술혁명에 기반한 ‘낙관의 시대’는 끝나고 제로섬(zero sum)의 경쟁이 난무하는 ‘불안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기디언 래치먼, 2011).

2) 우리나라는 2012년 OECD 회원국 행복도 조사에서 32개국 중 31위를 차지했으며, 미래 세대인 어린이, 청소년들의 행복도는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올해 한국방정환재단과 연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조사해 발표한 ‘2013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 결과를 보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최하위이며, 특히 초등학생 7명 중 1명이 가출 및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이 비율은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갈수록 더 높게 나타났다.

3) 1970~80년대에 경제성장율 10% 대의 고도 성장기를 경험했던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거친 1990년대에 성장률 5% 대를 유지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 후 3% 후반대로 추락해 올해는 2% 후반대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 산업혁명 전까지 약 80만 년 동안 180~280ppm 수준을 유지하던 대기 중 CO₂ 농도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70년 이후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의 본격적 사용으로 143년 만에 400ppm을 넘어섰다.

5) www.commondreams.org/headline/2013/05/10-5.

6) 새롭게 연장된 교토의정서에 참가하는 국가들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전체의 15%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7) 삼성경제연구소, 2012

8) 김진현, 2013

9) 지그문트 바우만, 2009: 16. 지그문트 바우만은 예측가능성과 지속성, 상호결속에 기반한 ‘고체형 근대’가 변덕스러움, 순간성, 관계단절을 특징으로 하는 ‘액체형 근대’로 바뀌면서, 한편에서는 개인에게 자유를 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는 파편화 된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10) 사이토 다마키, 2012:35

11) 스티븐 룩스(Steven Lukes)는 이처럼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심층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3차원적 권력’이라 불렀다(1992). 사람을 통한 1차원적 권력이 행태적(behavioral) 권력이라면, 제도적 힘을 통한 2차원적 권력은 구조적(structural) 권력이고, 가치를 매개로 한 3차원적 권력은 구성적(constitutive) 권력에 해당한다.

12) 사이토 다마키, 2012:44-45

13) 최근에 상상력에 기반한 사회적 실천을 열어가는 방안으로 소셜픽션(social fiction)에 대한 관심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14) 레베카 코스타, 2011

15) 관련해서 서영표는 체제를 넘어선 상상력의 결여가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하면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대중의 의식세계에 대한 천착을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서영표, 2012: 200).

16) 통찰의 ‘insight’ 자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차원’(invisible)을 ‘보는 것’(sight)을 의미하고 있다.

17) 소위 진보, 보수의 이념적 대결 구조는 정보화를 통한 소통의 기반이 확장된 상황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아, ‘수꼴’(수구꼴통)이나 ‘좌빨’(좌익빨갱이) 같은 말들이 온라인 상에서 부유하고 있다.

18) 지그문트 바우만, 2009: 112

19) 이 개념은 일본 공공철학연구소 소장 김태창 선생이 창안한 것이다(김태창, 2012).

20)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공적 소명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적 문제해결의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살려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차원에서 등장했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일본 사회에 새롭게 불고 있는 ‘새로운 공공’(New Public) 운동이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21) 정규호의 글(2012) 29쪽을 토대로 재구성.

22) 권위주의 시대에 ‘공’(公)은 총체적 의미로서 국가 영역을, ‘사’(私)는 사사로운 개인의 영역을 의미했다.

 

 

참고문헌

기디언 래치먼. 안세민 역. 2011. 『불안의 시대』. 아카이브.

김진현. 2013. 문명전환기에 대한민국 어디로. 철학문화연구소. 「계간 철학과 현실」. 96호.

김태창 구술. 정지욱 옮김. 2012.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레베카 코스타. 장세현 역. 2011. 『지금, 경계선에서: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 쌤엔 파커스.

사이토 다마키. 이서연 역. 2012. 『사회적 우울증』. 한문화.

삼성경제연구소. 2012. 소비의 새물결이 마케팅을 바꾼다. CEO Information. 제 848호(2012. 4. 4).

서영표. 2012. 기로에 선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진보평론」 제 53호, 184-209쪽.

스티븐 룩스. 서규환 역. 1992. 『3차원적 권력론』. 나남.

정규호. 2012. 시민사회 마을공동체 운동의 발전방향. 서울시립대. 「제26회 대도시행정세미나 자료집」.

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역. 2009. 『액체근대』. 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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