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1호] 사회운동 방식의 전환
2016-06-22 11:26:00

  

* <모심과 살림> 1호(201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사회운동 방식의 전환

 

하만조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요구하는’ 운동에서 ‘만드는’ 운동으로

 

사회운동의 방식은 하나의 형식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사회운동을 기억한다. 아마도 주류 미디어가 보여준 것처럼 깃발을 나부끼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행진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을 위해 서류봉투를 들고 법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운동의 이미지가 아닐까? 그렇게 비추어진 사회운동의 모습은 매우 비일상적인 경험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생활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듯 느껴져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회운동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지를 지키던 사람들은 전경들 앞에서 트로트 가요를 틀어놓고 춤을 췄고, 행정대집행을 위해 온 전경들은 이를 멀뚱히 바라보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전국에서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부산으로 달려가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운동이 등장하기도 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경고하던 시민들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햇빛발전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하고 있다. 자연스레 운동의 영역도 생활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운동의 참여자, 영역, 조직, 이념, 자원동원 등도 변화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어떤 증상이라면, 그 이면의 원인, 혹은 패러다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변화했고,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에서는 최근 사회운동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운동 방식의 변화와 그 이면의 동력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앞으로 사회운동의 과제를 전망해본다.

 

제도화된 사회운동의 등장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1989년 경실련이 설립되며 합법적인 틀 안에서 비폭력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과거의 사회운동과 전혀 다른 시민운동이 출현했다. 이제 조직은 합법적으로 설립되고 회원도 양성화되고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과거 활동가 중심의 결사체 조직 구조는 일반 회원(자원활동가)-간사(전문활동가)-전문가 구조로 점차 변화되었고, 소수 전위적 운동가의 이념을 주장하기보다는, ‘일반시민’이면서 ‘국민’인 회원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시민운동에서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운동의 방식도 제도의 틀 안으로 이동해 다양한 회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요구형’ 사회운동의 모델을 만들어 왔다. 주된 활동은 전문가와 간사를 중심으로 입법청원운동, 소송, 정보공개청구, 기자회견과 같은 전문적 활동과 함께 퍼포먼스, 대중 집회, 시위, 온라인 게시판 활동과 같은 회원 참여형 직접행동들이 병행되었다.

 

시민운동은 국가를 극복의 대상이나 갈등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업의 파트너이며 협력적인 관계로 바라보았다. 정부와 지자체도 시민운동을 체제 내부 운동으로 이해하고, 이들의 인적·가치적 자원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재정적 지원도 확충되어 왔다.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정치, 경제, 환경, 인권, 사회복지, 여성 등과 관련한 이슈를 부각시키고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넓혀가면서 점차 사회운동의 주류로 떠오르게 되었다. 2000년에는 전국 412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부정부패한 정치인을 뽑지 말자는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였고,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대안적 형태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회계부정 사건, 주요 리더들의 정치 참여, 이념적 분화, 조직의 관료화에 대한 비판 등으로 시민운동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또 대통령 제도가 갖는 강력한 국가 권력 체계 속에서 정권에 호의적인 단체로 지원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서 점차 시민운동은 생존을 고민하는 힘겨운 길을 걷게 되었다.

 

운동의 내부적으로는 활동가의 헌신과 회원의 재정 지원에 기대어 성장해온 시민운동이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해 활동가의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제도개혁이나 이슈파이팅에 집중해오면서 일상적으로 회원들과의 소통이 부재하면서 회원 참여가 저조해지게 되었다.1) 이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외부 프로젝트 등을 점차 확대하면서 애초에 조직 설립 시 지향하던 자율적 가치와 목적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2)

 

외부환경도 변화했다. 생태계와 경제 위기가 가속화하며 고용 불안정과 복지 수요가 확대되고 사회 변동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해 시민운동이 모두 수용할 수가 없고, 정부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점차 시민단체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행동’을 실천하거나, 스스로 필요와 가치에 따르는 대안을 만드는 방식의 운동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특히 IT 기술의 발달과 시민권리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서 시민들이 직접 정부에 대해 다양한 생활상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온라인 여론 형성3)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되면서 시민운동 중심의 사회운동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엄숙한 운동에서 유쾌한 운동으로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 방식에서 합법성과 정당성4)은 새로운 행위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실련을 비롯한 대부분 시민운동은 합법적인 조직으로 설립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운동 조직은 정부로부터 불법단체라는 딱지 붙이기를 당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운동 방식에서 법이 규칙이 되면서, 법은 ‘지켜져야 하는 위치’에서 ‘활용되는 위치’로 위상이 변화했다. 법을 활용하기 위해 틈새를 찾게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2000년에 시작된 참여연대의 ‘1인 시위’가 그랬다. 삼성의 불법 증여를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조세당국이 세금을 부여하도록 하기 위한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집시법에서 집회의 개념을 ‘다수인’으로 규정한 것에 착안해 시위자 혼자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1인 시위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이를 릴레이 1인 시위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물론 1인 시위는 일제시대에도, 과거 정부에도 있었고, 법원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수많은 1인 시위자들을 통해서도 나타났지만, 이를 ‘법적으로 검토’하고 이용했다는 점에서 앞선 시위와 차이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5)

법의 틈새를 이용한 사회운동 방식은 2008년 촛불문화제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는 해가 진 이후에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문화행사 등은 예외로 인정” 6)됨을 활용해 수개월에 걸친 촛불문화제가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을 뒤덮기도 했다.

 

정당성(justice)도 전통적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집회나 시위 현장에는 역사적 사명이나 헌법, 계급론에 입각한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선언문이나 성명서 발표, 현수막 행진, 노래 제창 등의 형식으로 정당성이 강조되어 왔다. 때때로 농민들은 벼를 도로 한 가운데 쌓아놓거나, 소를 거리로 몰고 나와서 멀쩡하게 잘 키워놓은 생산물이 왜곡된 시장 안에서 헐값에 팔리는 현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제도화된 사회운동의 시대에도 법 외에 다양한 가치를 바탕으로 정당성을 갖추는 것은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의 참여자들은 행위의 정당성을 헌법에서 찾았다. 그들은 거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짧은 노래를 제창하며 ‘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2011년의 ‘점령하라(Occupy )’ 운동은 들뢰즈Deleuze, Gilles와 가타리Felix Guattari가 “우리의 시대는 소수자 7)의 시대가 되고 있다”고 표현하듯 ‘(소수자인) 우리가 99%(숫적으로 다수다)’ 라는 구호로 행위의 정당성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합법성과 정당성이 운동의 주요한 조건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불복종운동 방식의 직접행동도 계속되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목표를 이루기 어렵거나, ‘법의 한계 = 운동의 한계’ 8)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9)

직접행동은 집회나 시위, 불매운동, 납세거부 방식으로도 등장하지만 상대와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는 노동현장에서는 파업이나 태업으로, 철거 대상 지역에서는 점거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직접 상대와 마주하는 힘의 대립 구도에 놓이면서 종종 험한 풍경이 연출된다. 특히 조직화되지 못하거나,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거나, 정당성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운동을 지속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팔당 두물머리 지키기 운동과 홍대 앞 두리반 지키기 운동 사례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철거 반대운동이나 개발 반대운동과는 조금 다른 운동 방식을 보여주었다.

 

두물머리 지키기 운동에서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공원 개발과 유기농지 보전이라는 이슈가 갈등했다. 개발측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후에 행정대집행을 진행하려 했고, 보전측은 ‘밭전(田)위원회’의 발족과 함께 공개적인 불법 경작운동을 통해 대응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행정대집행 앞에서 직접행동에 뛰어든 농민과 젊은 행동주의자들은 전시회, 강변가요제, 영화제, 벼룩시장 등의 축제와 이벤트를 마련했고, 천주교 성직자들은 930일 동안 ‘생명의 강 지키기’를 위한 생명평화미사를 진행하면서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천주교연대의 중재로 가까스로 타협 지점을 찾아가는 사례를 만들었다. 두리반 지키기 운동은 도시 지역 개발과 세입자 보호라는 이슈가 갈등했다. 개발측은 용역 깡패와 단전, 소액의 이삿돈으로 협박과 회유를 병행해왔고, 세입자 측은 음악공연, 전기자전거, 영화제, 낭독회, 파티로 저항하며 버텼고 마침내 시행사로부터 배상을 받게 되었다.

 

두 사례에서 운동 참여자들이 퇴거의 압력에도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을 통해 최근 등장한 직접행동 방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일반적 철거 현장에서 벌어지듯 끌어내기와 버티기의 힘 대결을 통해 법의 심판이라는 경로로 가기보다, 파티와 공연, 놀이, 벼룩시장 등을 개최하거나 농사를 짓는 등 공간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다양한 행위를 통해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 쉽사리 개발(철거)이 이루어지기 어렵도록 했다.10) 또 정부(회사)측이 진행하려는 개발(철거)의 정당성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며, 보존측의 논리를 강화하여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셋째, 운동의 현장은 정부(회사) 측에서 보면 ‘철거 대상’이었지만, 보존 측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놀이와 일상이 겹치는 ‘소규모 해방구’로 의미가 형성되었고, 자연스레 그들(농부와 가게주인)의 공간이 우리(그들과 직접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간이 되면서 개발(철거)은 남의 문제가 아닌 나와 친구의 문제가 되었다.11) 끝으로 ‘철거 대상’으로서 공간을 ‘경작과 공연의 공간’으로 의미를 전환함으로서, 정부(회사)측의 무력 개입이 낯설어지고, 때로 우스꽝스럽게 되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의 논리는 조금씩 미끌어지게 되었다. 과거보다 덜 진지하지만 더 재미있는 직접행동의 경험은 이후에도 명동과 북아현동의 또 다른 철거 현장에서 공연과 기도모임, 밥 나누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12)

 

직접행동 방식의 운동은 종종 권리 담론 간의 경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동등한 입장에서 대립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도시 빈민들의 철거 반대 운동처럼 자구적 목적에서 운동에 나서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의 경우도 언론에서는 재산권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핵발전에 의한 전력생산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우리 그냥 이대로 살게 놔두라’라는 실존적 요구가 있다. 이처럼 다수결을 원리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이른바 ‘민주주의의 결손’에서 직접행동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13)

 

직접행동의 결과는 천성산 터널 공사 반대 운동처럼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의 권리라는 측면으로 세간의 인식을 확장하거나, 두리반 운동처럼 관련법을 개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거나 ‘자립음악생산자모임’과 같은 대안운동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팔당 유기농지 보존 사례와 같이 타협점을 찾아가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외국의 경우에도 직접행동이 대안 만들기 운동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태국의 무토지 농민들은 골프장에서 채소를 재배했고,14)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은 자급자족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갔으며15), 우리나라에서는 키친아트처럼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했다가 직접 운영하는 사례나, 한살림처럼 수돗물 불소화 반대 운동이 불소 없는 치약 생산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비일상적 사회운동에서 일상적 사회운동으로

 

90년대 이후 권력 감시와 제도 개선 운동이 등장하고 자구적 활동으로 법 집행에 저항하는 ‘직접행동’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대안 만들기’ 운동16)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이 운동은 사실상 근대 이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17), 사회운동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운동은 무엇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거나 이를 위해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기 보다는 스스로 변화의 중심이 되어 실천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기농운동은 화학제초제와 농약의 유독성을 우려한 생산자 스스로 이를 쓰지 않는 데서 시작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 간의 정기적인 모임 정도는 있었지만, 목적의식적으로 결집한 사람들의 운동은 아니었다.18) 이것을 두고 비제도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운동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87년 이후 사회운동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국민의 정치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사회, 경제, 문화, 환경 영역에서 다양한 주체의 정체성과 가치의 실천이 점차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고 운동의 개념은 확장됐다. 예컨대 농약을 치지 않으려는 작은 행동은 유기농운동이 되었고, 불과 한 세대를 지나면서 관행농업의 위기라는 맥락 속에서 기존 주류가치의 틈새를 벌이며, 산업화된 화학농업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수단이면서 대안이 되었다. 신협운동은 도덕적 헤이에 빠진 금융 자본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홈스쿨링과 대안학교 운동은 ‘학교 = 교육이 아니’며, 제도 바깥에서도 교육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직업은 물론 삶의 공간을 옮기기도 한다. 매년 약 2만 명의 도시인이 농촌으로 향해 새로운 삶을 찾아 가고 있다.19) 제도 내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수록 다른 삶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안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안 만들기 운동은 발견되는 운동이다. 주류 가치와 제도가 만들어낸 구조 안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때로 나락에도 떨어지고 더 나은 삶을 찾으면서 문득 돌아보니 생활세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대안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였거나, 스스로 만들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류가치의 재생산구조가 응축된 공간이자, 이의 구조적 압력에 놓인 생활세계에서 시민들이 자율성과 자기규제, 창조적 잠재력을 키우는 실천20)의 운동이다. 윤수종은 이러한 운동을 크게 ‘대안교육운동’, ‘생산공동체운동’, ‘생활공동체운동’, ‘대안문화운동’, ‘기타대안운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또한 전통적인 생산 중심적인 사고 및 활동을 넘어서서,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형태, 기존의 권력이나 자본이 원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삶의 형태를 모색해 나가’는 운동으로 대안(만들기)운동을 정의하고 있다.21)

 

우리나라에서 1987년 이후 등장한 ‘대안 만들기’ 운동을 연도별로 간략히 살펴보면, 1987년에는 생산과 소비의 협력을 통한 직거래 방식에 기반한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산업문명과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생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기 위한 한살림운동이 나타났다. 문화운동 측면에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독립영화 운동이 출현했다. 1990년대에는 노동자공동체의 생산자(대안기업)운동, 간디학교를 시작으로 하는 대안학교 운동과 육아문제의 대안으로 공동육아운동, 생태적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한 귀농운동, 미내사에서 시작한 대안화폐 운동, 시민과학운동, 귀농운동, GMO반대 운동, 세계화에 저항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이 나타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부안의 등룡마을을 비롯한 대안에너지 운동, 마포의 지역공동체 라디오 운동, ‘피자매 연대’의 대안생리대운동, 토종종자를 나누는 씨드림, 식문화 개선과 대안적 식문화를 목적으로 하는 슬로푸드 운동이 등장했으며, 2010년 이후에는 마르쉐@혜화와 같은 대안장터운동과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22)이 등장하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대안적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23)

 

대안 만들기 운동은 자율과 자립적 삶,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 생태적 질서 보존 등 기존의 주류적 가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포괄하고 있으면서 구체적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며, 먹거리를 구매하고, 에너지를 보급하고, 대안적 은행이나 병원을 만드는 일과 같이 일상생활과도 밀접하다. 그런 점에서 운동의 영역을 생활세계로, 그리고 운동의 실천을 상시적으로 진행되도록 한다. 거리에서의 비일상적인 시위나 제도정치의 틀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하루하루 생활의 일부가 운동 과정이 된다. 이에 따라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방에 있던 생활인’들도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다.24) 생협이나 신협과 같이 조합원이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라디오 청취자나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 혹은 에너지와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참여자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스스로 필요에 따라 대안적 가치를 부여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업(운동)을 진행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소비함으로서 초기에 지향했던 가치와 삶의 방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는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만들기’ - (가치) ‘소비’ - ‘되기’(내가 소비한 것이 나)의 과정으로 표현해 볼 수 있다. 만들기 운동의 한 예로 한살림의 경우, 조합원들이 친환경농산물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면서 친환경농산물의 소비를 넘어 그 이면에 자리한 생명의 가치, 농적 가치, 협동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고 그러한 행위들의 영향으로 스스로가 변화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살림서울에서 조사한 의식조사 결과25)는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는데 참고가 된다. 조사 결과를 보면 94.5%의 조합원들이 한살림에 가입한 이후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88.0%), ‘농업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91.3%), ‘건강한 식생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94.5%)고 보고하고 있다.

 

‘만들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되기’로 나아가기 보다는 ‘소비’에만 머물 수도 있다. 때문에 참여자들 스스로는 처음 계획했던 목표와 방향, 지향하는 가치를 성찰하고 이의 재생산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부 공동체운동주의자들은 산업화된 도시와 농촌을 떠나 자신들만의 정착촌을 만들어 생활세계를 방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류의 조직과 체계가 추구하는 가치와 운영방식이 전일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 살면서 대안 만들기 운동을 진행하기 때문에 종종 갈등에 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대안 만들기 운동은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삶의 전환보다는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하고 점차 그것이 다른 부문으로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6)

 

전술한 세 가지 방식의 사회운동은 각각의 영역에서 상호보완적이다. 그동안 제도개선 운동과 직접행동은 왜소화한 의회정치와 상호보완적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에 의미 있는 사회 활동으로 평가되어 왔다.27) 그리고 이제 ‘대안을 요구하는 운동’과 함께 ‘대안을 만드는 운동’의 상호협력을 통한 경제와 사회의 민주주의, 즉 호혜와 연대의 관계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성찰하는 운동

 

미국의 Gaia Field라는 단체는 직접행동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기도와 명상 등으로 사회변화를 지지하거나 사회운동에 공감하는 다수의 보이지 않는 지지자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서틀 액티비즘subtle activism을 정의하며28), 기존 사회운동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 영성, 마음, 생태계, 우주 등 -을 포함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국내에서도 2012년 시작된 생명평화결사의 ‘1000일 정진’은 인간을 포함해 ‘보이지 않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 이보다 앞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운동의 관심은 삼보일배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은 2003년 4대 종단의 성직자들이 ‘나부터 반성하며 뭇생명을 살리자’는 취지로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진행하면서 알려졌다. 그간의 사회운동 방식은 지배 권력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소송을 하거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오기도 하고, 철거와 폭력 현장을 시와 노래가 있는 공연장으로 재구성해보기도 하고, 다른 가치를 갖고 대안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생활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는데, 삼보일배는 뭔가 달랐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식이기도 했지만 나와 세계의 관계를 ‘되돌아보자’는 운동이었다. 요구와 만들기 운동의 시선은 각각 상대(他)와 나(我)에게로 향해 있다. 그런데 ‘되돌아보기’는 상대와 나의 내면을 응시하고 관계를 의식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미래세대, 동식물, 소외된 사람, 생명의 공동체 등)을 인식하는 것이다. 2003년 새만금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한 수경 스님은 ‘너는 나의 뿌리이며, 나는 너의 뿌리’라는 화엄경의 연기론을 인용하며, 세상이 거미줄처럼 얽힌 그물망이고, ‘뭇 생명의 거대한 공동묘지’인 현대 문명에서 나로부터 청정해지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서 ‘환하게 꽃피는 봄날’을 맞이하겠다는 결심을 담아 삼보일배를 떠났다.29)

 

결과적으로 이러한 운동 방식은 간척사업을 막지 못했지만 상당한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삼보일배는 ‘1보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2보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을 멸하고, 3보에 치심을 멸한다는 뜻’ 30)을 되새기며, 혹은 굳이 의미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절을 하는 행위 자체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수행’과 운동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이는 자본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일상적으로 생활세계를 방어하는 노력으로써 수행적 대안을 제시했다. 또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삼보일배 운동은 ‘자기 성찰’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연민’, ‘궁극의 시간에서 사회의 시간을 비판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31) 특히 한국과 같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가 유독 많은 국가32)에서, 그리고 경쟁의 압력이 점점 거세져 가는 사회에서 성찰의 의미는 인식론적으로, 방법론적으로 현재 사회운동의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조직적 동원에서 공감과 자발적 참여로

: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창조적 활동의 확산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이 양성화되면서 이를 지원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도 공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기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IT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창조적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은 “쌍용차 사태에서 해고자들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남은 가족들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상처투성이인 채로 살아갔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쌍용차 문제만이 아니다. 울산에서도 해고자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면서 “자살은 가족뿐 아니라 친지 동료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상처를 안고 있지 말고 드러내서 상담을 통해 치료한 후 당당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33)고 주장하며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희망버스도 달렸다.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과 이에 동조하는 다양한 시민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의 현장,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씨, 강원도 홍천의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 고리와 삼척, 영덕의 원자력 발전소로 달려가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버스 안에서의 활동과 도착한 이후의 활동들을 고스란히 생중계 했다. 희망버스는 노사 갈등만 부추기는 제 3자 개입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보다는 공개적으로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는 사회적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희망버스는 노동운동 진영에서 장기투쟁사업장을 순례하는 ‘희망뚜벅이’로, 시청광장을 99%가 점거하는 ‘희망광장’ 운동으로, 쌍용차 노동자분향소의 시민상주단과 ‘희망지킴이’로 조금씩 방식을 달리하며 변화해 갔다.34)

 

‘밥 먹기’를 통해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장기 투쟁 사업장에서 밥을 담당하던 해고 노동자들이 주 1회 식당을 빌려 시민들에게 밥을 판매하고 남은 수익금을 장기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희망식당 ‘하루’가 운영되고 있다. 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은 이곳을 찾아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노동자들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연대’를 표현한다. 지난해 여름 인터넷 동호회 ‘82쿡 닷컴’ 회원 30여명은 온라인 모금을 통해 모은 2700여만원으로 MBC 노조의 파업을 응원하는 삼계탕을 밥차에 준비하여 200그릇의 삼계탕과 수박, 식혜, 떡, 아이스커피 등을 파업 조합원들에게 제공했다.35)

 

인터넷을 통한 개인들의 만남에서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플랫폼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소셜펀치’는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모금 싸이트다. 이들은 ‘정부나 자본에 비판적인 사회운동이 그들의 지원금에 의존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36)라는 질문을 던지며 ‘누구나’, ‘어디서나’, 모금에 참여할 수 있고, ‘모금 자체가 이슈파이팅’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쌍용차 해고자를 돕는 프로젝트’에 5월 24일 현재 2천3백만원의 기부금이 모이기도 했다. ‘나는 꼼수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 ‘팟캐스트’가 대안 미디어로 떠올랐다. 불과 2년 사이에 다양한 주제와 ‘오락적 요소’가 가미된 수천 개의 팟캐스트들은 물론 이들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팟빵’이나 ‘아이블러그’와 같은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반 시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다루는 내용도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상담, 교육, 생활 등 매우 다양하다. 종합순위 10위 안에 들어 있는 팟캐스트는 대부분 시사 이슈나 근현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형식에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관점에 따른 이슈 분석과 토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IT기술의 발전과 사회운동의 변화

 

온-오프라인 실시간 상호작용형 생활양식의 등장과 사회운동 방식의 변화

IT 기술의 발전은 실시간으로 온라인 접속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우리 생활양식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일상적으로 정보와 지식이 온라인 공간에 축적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을 소유하기보다는 활용하는 데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방식으로 삶의 형태가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운동 전반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가상공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이곳에 축적된 자료를 통해 누구나 사회운동의 이슈와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온라인 게시판을 통한 소통이 확산되고, 여기서 다뤄진 의제들과 운동 전략, 패러디와 같은 내용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재현되면서 현실에서 집회 및 시위 문화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내용의 전달 측면에서도 속도가 매우 빨라서 단기간에 사회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그것이 사회운동으로 연결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태그라는 새로운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동원’ 37)하는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이 나타나기도 했다.

 

집회현장도 사진 촬영과 동영상 전송을 통해 참여자와 비참여자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피드백 된다. 오프라인 활동과 온라인 활동이 동시에 전개되며 다양한 의제와 운동전략 토론, 패러디 생산, 정보 공유 등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른바 ‘민회’가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주류 미디어에서 외면 받는 사실과 주장들이 참여자들의 커뮤니티와 동조적인 미디어를 통해 소통되면서 운동의 정체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의 일상화로 시위 참여자들 스스로가 거리에(오프라인) 있으면서 공론장(온라인)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부산 영도조선소의 고공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씨도 외양상 혼자였지만 온라인에서는 지지자들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위터가 없었다면 긴 농성을 쉽게 버티지 못했을 거’ 38)라고 밝혔다. 시간과 공간, 조직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공통의 가치와 연대의 정신에 기반한 메시지들은 그녀가 자칫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었던 고공농성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극복해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39)

 

개인적 역능의 강화

2008년 촛불집회는 연인원 500만 명이 참여한 범국민적 시위였다. 그런데 이 시위를 촉발시킨 것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초기 단계에서 직접 시위를 ‘계획’하고 ‘홍보’ 했다. 단적인 예로 130만 명의 서명을 받아냄으로서 촛불시위 초반 ‘광우병’ 이슈를 사회적으로 확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음 아고라의 이명박 탄핵서명’ 제안자 역시 ‘안단테’라는 필명의 10대였다.40) SNS를 통해 손쉽게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2011년 홍대 청소 경비용역업체 해고 근로자 농성을 지지하는 SNS가 배우 김여진을 비롯한 개인들에 의해 트위터로 전파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지 방문과 후원금 모금에 동참하기도 했다. 소셜 크라우드 펀딩도 등장했다. 저비용, 스토리 기반의 십시일반 모금이 가능하게 되었고 공익적 가치에 공감하는 개인들의 참여가 나타나고 있다.

 

또 2008년 촛불집회 당시에 칼라TV, 오마이뉴스, 시사인, 민중의소리에서 집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했고 아프리카, 유튜브, 판도라 TV에는 개인들이 올린 수백 건의 동영상이 전송되면서 시위 현장의 구석구석을 중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영상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고, 글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특히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인터넷 영상은 나의 눈을 수백, 수천 개의 눈과 연결했다. 개인은 스스로 미디어로 기능하며 관계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개인의 힘은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드러나듯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인 동시다발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회운동의 참여자가 특정 집단이나 국가 내로 한정되지 않고, 뜻과 가치에 공감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로 확장된다. 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어도 약간의 관심만 기울이면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탈권위화 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익명성의 접촉에서 상호 존대 문화가 일반적으로 관찰되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상호 존중하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을 형성하기도 한다.

 

87년의 민주화가 개인의 권리를 신장시켰고, 그것이 회원 조직을 통해 대변되었다면, 20여년이 지난 2008년에는 개인이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대변하게 되었으며, 2011년에는 자원 동원은 물론 전 세계 시민과 실시간으로 함께하는 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사회운동의 전환

 

지금까지 살펴본 최근 사회운동 방식의 변화는 첫째, 엄숙한 운동에서 유쾌한 운동으로 변화. 둘째, 만들기 운동의 활성화로 비일상적 사회운동에서 일상적 사회운동으로 변화. 셋째, 드러난 현상보다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성찰 운동으로 변화. 넷째, 조직적 동원에서 공감과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의 확산. 다섯째, 온-오프라인 실시간 사회운동의 등장과 개인적 역능의 강화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운동 방식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는 생활세계의 요구가 더 이상 대변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의회를 통해 민의를 대변하는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정치 불신과 맹신으로 나타났고, 학생, 노동, 농민, 시민운동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 잦아드는 사이 IT 기술에 힘입어 역량이 강화된 시민의 직접행동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의회정치와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제도정치로 수렴되지 않는 요구는 자율과 자치를 지향하는 자립운동, 만들기 운동을 통해 생활세계에서 구성되었고, 성공적인 모델들이 나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둘째, 생태위기에 대한 우려이다. 생존 문제로부터 문화적 요구까지 다양한 사회운동이 동시적으로 혼재하는 가운데,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의 생명 공동체와 후속세대의 지탱가능성을 위한 운동의 필요성이 종교계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셋째, 시민들은 생존의 두 측면이 경쟁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즉 화폐를 획득하기 위한 강도 높은 경쟁 사회로 진입과정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자기 규율적 경험은 타인을 적대적으로 인식하지만, 세계화된 생산-소비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 전락하는 경험은 서로가 경쟁하면서도 같은 처지에 있다는 공통의 인식 프레임을 형성하고 세계적 수준의 동시다발적 사회운동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넷째, 제도의 유인을 들 수 있다. 세계 경제 위기에서도 사회적경제운동, 공유경제운동, 협동경제운동의 결과물들이 생존력 있는 모델로 평가받으며 지자체와 정부에서도 이를 지원하는 법률과 제도가 마련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반협동조합은 불과 6개월 만에 900여 개가 설립됐다. 그러나 87년 이후 시민운동을 비롯한 공부방운동, 야학운동, 자활운동의 제도화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정부 지원과 시민 지원이 대체재이며, 자립과 자치, 자율적 능력이 후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국가와 시장이 창출하는 보편화된 종속의 프레임을 경계하기 위한 일상생활에서의 성찰과 수행운동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승한 외. 2012. ‘Occupy Wall Street’운동에 나타난 협력적 미디어 문화생산.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통권 제29권 4호.

강준만. 2009. 한국 시위의 역사: 왜 한국은 ‘시위 공화국’이 되었나?. 「인물과사상」 통권 133호. 인물과사상사.

권영숙. 2012. 희망버스 이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흐름. 「문화과학」 여름호, 361쪽.

그린비출판사편집부. 2007. 『소수성의 정치학』. 그린비.

김성국. 2000. 신사회운동의 제도화와 급진화: 영국의 도로건설반대운동을 대상으로. 「한국사회학」 제34집.

김강기명. 2011. 청(소)년, 그리고 몰락의 정치: 홍대 앞 두리반과 청(소)년의 집합행동.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도서출판 이파르. 167~197쪽.

박형준. 1993. 시민사회론의 복원과 비판적 재구성.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2)』 의암출판사.

수경. 2003. 생명평화 실현을 위한 삼보일배 발로 참회를 시작하며.

사이시옷. 2011. 『세상을 향한 알싸한 프러포즈 ‘일인시위’』. 헤르츠나인.

서광민. 2008.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인가: 2008년 촛불시위의 특징과 그 원인. 「한국사회학회 2008 후기 사회학대회 자료집」 851쪽.

오장미경. 2005. 여성운동의 제도화, 운동정치의 확대인가 제도정치로의 흡수인가. 「여성과사회」 제16호.

윤수종. 2007. 대안운동의 현황과 방향. 「사회이론」 가을호.

이근행. 2006. 생태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성공회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이미영. 2005. 네트워크사회의 사회운동: ‘활동적 시민’의 등장에 관한 경험적 분석.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이시재. 2004. 사회운동은 생명운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세계생명문화포럼_경기2004 자료집」

이원규. 2003. 참회의 길 생명평화의 길-새만금 삼보일배를 다시 돌아보며. 「환경과생명」 152-161쪽.

조성윤. 2009. 종교의례의 재탄생:새로운 운동 방식으로서의 삼보일배. 「한국사회학회 국제사회학대회」 발표자료.

조희연. 2008. 촛불시위, 제도정치와 직접행동정치. 『촛불이 민주주의다』. 해피스토리.

주요섭. 2013. 생명운동과 새로운 사회운동의 패러다임. 「모심의 눈 살림의 길」 6호.

최금좌. 2010. 브라질의 대안사회운동: MST(무토지 농민운동)의 자율(autonomia) 정치. 「라틴아메리카연구」 Vol.23, No.1.

통계청 농림축산식품부. 「2013. 2012년 귀농 귀촌인 통계」.

하승우. 2004. 『참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한살림서울 모심과살림연구소 2012. 「2012년 조합원 의식조사 결과보고서」.

한신갑. 2012.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을 통한 집단기억의 형성과 유지. 「기억과 전망」 여름호(통권 26호) 194쪽.

April Carter. 조효제 역. 2007. 『직접행동: 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 교양인.

David Nicole. 정혜성 역. 2012. 2012년 가이아를 점령하라. 「모심과살림」 0호.

Lee Salter. 2003. Democracy, new social movements and the Internet. 『Cyberactivism: Online activism in theory and practice』. Routledge: New York, NY. pp. 117-144.

http://www.occupytogether.org

 

1) 참여와혁신. “시민운동 위기와 노동운동 위기는 닮은 꼴”. 2005.8.10.

2) 1999년을 전후하여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참여연대 등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 시민단체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또한 정부지원금이 아니더라도 기업, 지자체, 재단 등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으면서 프로젝트 및 이슈 쫒아가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 2008.11.12.)

3) 심지어 이규원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1990년대 시민단체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고 주장한다.(김강기명, 2011)

4) 90년대 시민운동은 흔히 제도화 과정으로 분석된다. 큐빅(Jan Kubik)은 제도화를 표준화, 반복성, 정당성, 공인과 합법성, 동원과 탈동원, 일상성의 6가지에 근거해서 정의한다.(오장미경, 2005:12~13) 이 가운데 90년대 사회운동에 요구되는 1차적 과제는 특히 합법성과 정당성으로 볼 수 있다.

5) 사이시옷, 2011:29~30.

6) 두산백과 ‘촛불집회’ 항목에서 인용.

7)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 ‘소수자 집단’에서 인용. 여기서 소수자는 숫적 개념이 아니고 권력, 척도, 이성에 입각한 지배집단에서 구분되는 집단을 의미함.

8) 그린비출판사편집부, 2007.

9) 1992년부터 시작된 ‘영국 도로건설 반대운동’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주민조직을 도와 반대 운동에 참여한 ‘Friends of Earth’(FE)라는 단체는 EU 차원의 소송을 포함한 모든 합법적인 투쟁에서 패배하자 현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주민조직은 FE가 철수한 뒤에도 현장에 남아 있던 ‘Earth First’ 및 젊은 활동가들과 손을 잡고 계속해서 직접행동에 나서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대하지 않은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김성국, 2000) 이 사례는 제도화된 사회운동이 개입하지 못하는 곳에 직접행동 방식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0) 여기서 ‘재미’는 중요한 요소이다. 김강기명은 이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기술이나 지식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김강기명, 2011:186~187)라고 주장한다.

11) 두리반의 경우 모든 활동과 살림에 대해 논의하는 ‘반상회’에서 참가자들의 동의만 받으면 운동의 당사자인 유채림, 안종려 두 사람 의견이라 할지라도 보류될 수 있다. (김강기명, 2011:180~181)

12) 이들의 ‘망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연대의식’도 인상적이다. 두리반 지키기 운동 참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리반에 잉여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들한테는 일종의 ‘망했다’는 의식이 있어요. 이 나라에서 자본주의적인 성공은 할 수 없다는 인식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20% 안쪽에 들지 못하면 80%로 가는 건데, 그 80%는 더 망하거나 덜 망하거나 망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해요. 두리반에 있는 애들은 최소한 내가 남들보다 일찍 망했구나 하는 건 알고 있는 애들인 거죠.”(김강기명, 2011:192에서 재인용) 이러한 인식과 참여도 희화화를 특징으로 하는 운동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3) April Carter, 2007.

14) April Carter, 2007:45.

15) 최금좌, 2010.

16) ‘요구형’ 사회운동에 대비하여 ‘창조형’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새롭게 무엇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의 것과 약간 다른 무엇을 만든다는 점에서 대안이라는 표현을 쓴다. 윤수종은 ‘대안운동’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만드는 것’에 주목하기 위해 ‘대안 만들기’로 표현하고 있다.

17) 일제시대에는 천도교와 기독교 단체 및 자생적인 협동조합운동이 펼쳐졌고, 해방 이후에도 공동소유를 통한 나눔을 실천하는 한삶회 공동체 운동,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운동이 나타났고, 1960년대에는 농촌과 도시에서 고리채에 시달리는 민중들이 서로 힘을 합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펼쳤다. 1970년대에는 화학농약과 제초제의 독성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농부들과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을 살려는 농부들이 생명을 죽이는 농업의 대안으로 유기농업 운동을 실천해 왔다.

18) 윤수종, 2007:286

19) 통계청·농림축산식품부, 2013.

20) 박형준, 1993:24

21) 윤수종, 2007:255~256

22) 지난해 12월 1일부로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2013년 5월까지 900여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23) 윤수종, 2007:257~279를 참고하여 재구성.

24) 주요섭, 2013.

25) 한살림서울·모심과살림연구소, 2012.

26) 이근행, 2006.

27) 조희연, 2008.

28) David Nicole, 2012.

29) 수경, 2003.

30) 네이버 두산백과 ‘삼보일배’에서 인용

31) 이시재, 2004.

32) 강준만(2009)은 “한국 시위의 역사”라는 글에서 시위의 이면에 억울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결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33) 뉴시스. 2013. 2. 27

34) 권영숙, 2012.

35) 한겨레. “힘내라 MBC 파업, 마봉춘 삼계탕이 왔다”. 2012.7.2.

36) http://www.socialfunch.org/about 소셜펀치 소개에서 인용.

37) 한신갑, 2012:194

38) 한겨레. 김진숙. “자살 생각하던 나를 진정시킨 건...” 2011.11.15.

39) 물론 그녀에게는 함께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와 같은 오프라인 지지자들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40) 서광민, 2008.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