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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소비자협동운동, 제 길을 가고 있나?
2016-06-22 11:57:00

  

* <모심과 살림> 1호(201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소비자협동조합운동, 제 길을 걷고 있나?

 

하승우 (모심과살림연구소 초빙연구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원래 청탁을 받은 주제는 ‘협동조합 신드롬’이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협동조합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내실 있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주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바이고(필자도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1)), 당분간 그 진행과정을 보며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 이곳의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협동조합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불협화음은 매장을 둘러싼 문제이다. 급기야 지난 5월 2일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생협매장 문제로 아이쿱 광주권 생협과 한살림광주생협의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매장 문제가 현재 소비자생협들의 가장 큰 쟁점일까? 매장이나 그 입지가 중요하다는 건 일반 유통기업과 다를 바가 없고, 공급에서 매장으로 생협의 물류망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왜 그동안 서로 의논해서 원칙이나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 간 연대 원칙이 희미해진 상황에서 이런 갈등을 둘러싸고 ‘협동조합 간의 경쟁’이라는 논리가 등장한 것은 유감이지만 매장 외에도 소비자생협의 정체성과 방향을 놓고 진지한 논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녹색평론』에 실린 박승옥 선생과 신성식 경영대표의 논쟁은 의미가 있다. “망하지 않고 사업체로서 살아남고 사업이 지속되는 것과 성장신화에 갇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박승옥 선생의 지적과 “성장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경영원칙을 세워야” 하지만 한국에서 소비자생협의 성장은 불가피하다는 신성식 대표의 반박은 곱씹어 볼 만한 주제이다.

 

이 논쟁을 시작으로 다양한 논쟁들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나 비전, 그 사업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협동조합운동역사에서도 주요한 주제였다. 이런 물음들이 있었기에 협동조합운동이 지금껏 자기 몫을 충실히 해 오고 있었던 거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논의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 이야깃거리들을 제안하려 한다.

 

협동조합의 탈협동화, 다른 나라의 일일까?

 

계간 『살림이야기』 제 17호(2012년 여름호)에 “살리지 못하면 죽는다― 유럽 탈협동화 경향이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협동조합의 탈협동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은 주로 갈러Zvi Galor의 글을 인용했는데, 이 글은 탈협동화 문제를 더 깊이 다룬 볼로냐대학의 바띨라니Patrizia Battilani와 베르겐대학의 쉬뢰터Harm G. Schroter의 공동연구 “탈협동화와 그 문제점들”2)을 소개하려 한다.

 

탈협동화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소유권 구조의 변화, 전통적인 협동조합에서의 이탈, 협동조합의 사회적 가치변화를 특징으로 본다. 바딸라니와 쉬뢰터는 20세기부터 탈협동화가 진행되어 왔고 1980년대 이후 특히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그런 배경에서 2007년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탈협동화를 심층적으로 조사할 연구위원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탈협동화되었던 협동조합들이 다시 협동조합으로 변신하는 ‘재협동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기본적으로 탈협동화가 미국식 경쟁 자본주의와 비슷하고,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 연구에서는 탈협동화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지목한다.

첫째, 기업이나 정치·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아 협동조합이 사기업이나 투자자소유기업의 절차와 전략을 따르면서 협동조합의 조직이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

둘째, 공동소유구조가 너무 경직되어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어렵다며 사유화를 지지하고, 급속도로 강화되는 경쟁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화적 요인,

셋째, 일반경제학 교육을 받고 상호성을 옹호하지 않는 경영진이 취임하고 이들이 조합원을 희생시켜 자기 이득을 취하려 하면서 생겨난 경영진의 착취,

넷째,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협동조합에 대한 반감이나 협동조합을 낡은 모델로 보는 의식이 확산된 정치적인 요인,

다섯째, 자본이 제한되고 관리자에 대한 통제체계가 없는 협동조합의 비효율성 또는 성장전망의 부재.

 

이런 요인을 정리하면서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지난 20년 동안 ①조합원제도에 바탕을 둔 상호부조라는 전통적인 인센티브가 흐려질 경우(협동조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때), ②정부가 탈협동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③미래의 전망을 발전시킬 방법에 관한 대안적인 견해가 전통적인 견해보다 더 매력적일 경우에 탈협동화가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협동조합이 기업으로 전환되기가 쉽지 않은데 정부가 탈협동화를 가능케 하는 법률들을 제정함으로써 여러 협동조합들(특히 보험과 관련된 협동조합들)이 탈협동화를 부추겼다는 점이다. 탈협동화가 적절한 법적인 틀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런 법적인 틀이 탈협동화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보통 탈협동화가 성과와 성장을 내세우지만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탈협동화가 더 나은 효율성과 성과를 보장한다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신세대협동조합과 같은 혼성조합이 탈협동화와 관련되어 있고 탈협동화가 혼성조합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한다.

 

이 연구를 통해 탈협동화의 경향이 수십 년 동안 강화되어 왔고 미국식 경제의 확산과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체결하고 세계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위에서 열거한 탈협동화의 원인이 한국의 소비자생협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의 대의원총회나 이사회가 형식적인 의결 기구로 변하고 일반 기업과 비슷하게 관리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1인 1표와 민주적 참여의 원칙을 훼손하는 현상, 일반 기업의 경영전략이 협동조합에 적용되는 현상 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리고 한국에서 보편화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논리가 협동조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을까? 그러다보면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조합’으로만 인식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울러 자본 출자를 둘러싼 논쟁과 협동조합의 전략 부재에 관한 논쟁 등도 불거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도구로 보는 정부의 시각은 어떤 형태로든 협동조합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외부의 우려처럼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을 동원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경우, 탈협동화 경향은 훨씬 더 강화될 수 있다.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지적하듯이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정책이 탈협동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생협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단 ‘협동조합 간의 경쟁’이라는 틀은 이런 현실의 경향에 저항하고 그것을 바로잡기는커녕 탈협동화 경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한살림광주생협과 아이쿱 광주권 생협의 토론회에서 매장경쟁과 관련해 어느 한 매장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서 그 지역에 다른 매장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독점’이고 협동조합 사이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조합원을 위하고 전체 협동운동의 몫을 고려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것은 경쟁이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독점의 반대말이 경쟁이라는 것은 하이예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한국에서는 주로 자유기업원)이 강조하는 논리이다. 소비자생협이 이런 논리를 따라야 할까?

 

자유주의 경제학과 다른 관점에 따르면 독점의 반대말은 경쟁이 아니라 공유나 경제민주화, 자급자족이다. 생협매장의 지나친 경쟁을 막고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경쟁을 방해한다는 논리로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설령 어쩔 수 없이 경쟁을 고려하더라도 그건 일반기업과의 경쟁에 대처하는 방법이어야지 협동조합 간에는 적합하지 않다. 외려 소비자생협이 일정한 매장운영협정을 만들고 그런 규칙이 사회적 시장을 만들도록 자극해야 하지 않을까?

 

멘자니Tito Menzani와 자마니Vera Zamagni는 “이탈리아 경제의 협동조합 네트워크”에서 이탈리아 협동조합운동의 성공이 네트워크3)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한다. 보통 네트워크라고 하면 하나의 중심을 가진 중앙화된 네트워크나 이리저리 분산되고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를 생각하지만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은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했기에 강한 힘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에서 한 단위는 단순한 구성원일 수 있지만 때때로 다른 단위와 선으로 연결되거나 전체 네트워크를 코디네이터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다른 단위들이 자신에 의지하게 되면 전체 네트워크의 주요한 단위가 될 수 있다. 이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시장경쟁력을 증가시키고 생산을 합리화시키며 공동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위험과 기회를 공유했다는 게 이들의 평가이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경제블록’이라는 말이 등장했지만 그것이 위에서 말한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그렇게 형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 중요하게 소비자생협들은 그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요한 단위가 되고자 하는가?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그런 경험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축적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기업 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래야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을 받는 조합원들이 현실의 경쟁논리에서 벗어나 협동의 논리로 현실을 바라보고 삶을 기획할 수 있다. 만일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경쟁의 논리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협동조합을 탈협동화시킬 수도 있다. 소비자생협들이 경쟁논리를 도입해 서로간의 적대적인 경쟁을 강화시킨다면, 당장은 개별 생협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탈협동화의 경향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한살림도 예전에 이랬다’, ‘아이쿱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자기 살을 깎아먹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소비자생협의 구조가 비슷하게 적대적인 합병을 시도하려는 외부의 기업들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의 차이를 만들어야!

 

협동조합이 현실에 기반한 실사구시 운동이라지만 협동조합‘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생협은 언제든 탈협동화의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한 안창호 선생은 그 방식이 정의돈수(情誼敦修), 사랑을 도탑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동은 내가 더 이상 홀로 살 수 없음을 자각하는 과정이고, 협동조합은 그렇게 자각한 사람들이 서로를 떠받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생협은 여러 가지 외부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운동, 21세기의 대안』4)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은 “소비자협동조합의 합병시도에서 배우는 이론적, 실천적 함의”5)라는 글에서 협동조합이 외부의 자극과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챌은 1997년에 앤드류 리건Andrew Regan이라는 민간업자가 유럽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이던 영국의 도매협동조합 CWS(Co-operative Wholesale Society)를 합병하려 했던 과정을 분석하면서 협동조합이 미디어의 영향이나 내부매수 등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런 문제가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사업과 결사의 분리에서 불거졌다는 점도 지적한다. 버챌은 협동조합이 사업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잠재적으로 이로운 건 조합원들 때문이라는 점을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점을 자각하고 잘 활용한다면 소비자생협이 시장에서 제한되지만 잠재적으로 아주 유용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거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세인드 메리 대학 경제학과의 노브코비츠Sonja Novkovic는 협동조합/신용조합과정(MMCCU, the Master of management : Co-operatives and Credit Union)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인식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나 시민들이 이 차이를 이해하고 믿도록 하고 이 가치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거다. 노브코비츠는 아래와 같은 것이 협동조합의 차이라고 본다.

 

<표1> 협동조합의 차이 이해하기6)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의 사업은 이런 차이를 마케팅하는 것이고 마케팅이 곧 교육이고 교육이 마케팅이라는 점, 시설이 교육이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노동자(활동가)가 생산품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람과 큰 뜻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인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비자생협이 활동하는 장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버챌과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이 적대적인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논리를 내부에서 더 많이 교육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은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성장시키는 것이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협동조합의 전략이다.

 

플레차Ramon Flecha와 크루즈Ignacio Santa Cruz는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협력: 몬드라곤 사례”7)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가 경쟁력을 만들고 협동조합 간의 연대나 이익의 공유, 매우 평등한 봉급 체계, 안정적인 고용 구조 등이 협동조합의 차이를 만들고 확산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노동인민금고나 인도주의적인 경영만이 아니라 공개적인 지적 토론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몬드라곤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나 8시간노동제, 연금 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보는 눈과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선구자조합이 매장에 읽을거리를 비치하고 대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것은 당시 노동계급에게 절실했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공간에서의 토론과 학습을 통해 계급의식을 형성해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이 선구자조합의 성공을 보장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소비자생협에게도 ‘협동과 연대의 의식’을 만들고 확산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조직화에는 식생활이나 취미 등을 매개로 하는 모임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의식을 형성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할 모임도 필요하다. 가령, 소비자생협의 주요한 조합원인 주부들이 가부장적이고 자본화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다른 사회의 전망을 구상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각자의 다양성과 차이를 드러내고 무엇이 소비자생협의 전망인가를 토론할 수 있는 다양한 장도 필요하다. 1978년에 부산에서 만들어진 양서협동조합이 단순히 좋은 책을 거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1978년에 협동서점을 만들고, 1979년에는 협동출판사, 1985년에는 협동도서관, 1990년에는 협동연구소, 2000년에는 협동대학을 설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소비자생협들이 빠른 성장 속에서 이런 장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차이가 부각되지 않다보니 ‘의식과 삶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소비자생협들이 이런 괴리를 조장하는 면도 없지 않다. 이것은 소비자생협이 생산에 대한 관심을 놓고 소비와 매출고를 높이는 데 관심을 두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윤리적 소비와 생산-소비의 연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호세 존스턴Josee Johnston은 “시민-소비자 혼성의 이데올로기 긴장과 홀 푸드 마켓 사례”8)에서 윤리적 소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존스턴은 윤리적 소비운동이 역사적으로 네 단계, ①소비자의 힘을 조직해서 지역 내 생산에 개입하려 했던 19세기 영국의 협동조합운동, ②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디즘에서 출현했고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정체성에 주목했던 소비자 행동주의, ③미국의 소비자운동으로 유명한 네이더주의Nadersim가 통제받지 않는 기업자본주의를 비판하며 공정한 정보와 기업의 책임성을 강조한 시기, ④개인소비자에게 안전한 시장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집단적인 소비에 관심을 두고 환경과 같은 후기 산업사회의 가치에 주목했던 1980년대 이후의 대안적인 소비운동 시기를 거쳤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기업들도 소비자운동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일정 부분 적응하며 심지어 이런 운동을 새로운 사업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런 점에서 존스턴은 윤리적 소비운동이 이런 현실적인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존스턴은 해외에서 유기농 시장이나 대안적인 식생활문화를 개척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훌 푸드 마켓’을 분석하면서 윤리적 소비운동이 일정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본다. 이 어려움은 그 개념 자체의 모순에서 생기기도 하는데, 존스턴은 소비자운동과 시민의식이 원론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가진다고 본다.

 

<표2> 소비자운동 대 시민의식9)

 

이 구분은 원론적인 의미이고 현실의 소비자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존스턴은 이 두 모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점점 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자발적인 선호가 강조되다보니 절제하며 공공재를 보존하도록 국가를 압박하는 시민의 책임은 최소화되는데, 기업은 이런 편리하고 즐거운 쇼핑을 부추긴다. 그리고 좋은 맛과 영양, 건강함을 강조하는 ‘훌 푸드 마켓’의 홍보 전략은 엘리트 계층의 문화자본을 정당화시키고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또한 소비를 통한 보존이라는 전략은 더 많은 욕망과 소비를 자극하고, 자급하고 짧은 거리 내에 유통되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는 포장, 상품화되지 않은 식재료 등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존스턴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시민-소비자를 섞는 기업의 프레임이 녹색을 팔아먹는 전략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프레임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훌 푸드 마켓’의 윤리적 소비라는 프레임을 통해 시민-소비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사회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는 대중적인 관심과 더 높은 소비생활로 기업이윤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겉으로는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민-소비자는 약간의 제한요건만 받아들이면 영원한 경제성장과 소비자 주권이라는 소비자 이데올로기에 계속 몰입하면서도 시민으로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관심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소비자생협들은 이런 존스턴의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생산과 소비를 분리시키고 개인의 소비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한살림의 ‘2009 수도권 지역 한살림 조합원 의식조사’ 자료를 보면, 조합원의 자가주택 소유율이 74.7%, 월평균 가계소득이 454만원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2012년 아이쿱생협 조합원 소비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를 보더라도 응답자의 77.6%가 대졸이고, 64.9%가 자기 집을 소유했으며, 가구의 평균소득은 약 422만원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생협운동 자체가 중산층의 전유물이라고 보지는 않더라도 현재 한국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구성이 중산층을 반영하고 그들을 마케팅목표로 삼는 전략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야박한 평가일까? 또한 소비자생협이 조합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소비의 확대보다 자기 욕구와 필요를 평가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나?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조합원의식이 충돌할 경우 소비자생협은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나? 직거래되는 농수산물에서 가공품으로 생활재의 비중이 변하고 있는데 소비자생협들은 생산자, 노동자의 삶에 어떤 관심을 쏟고 있나? 그리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은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소비자생협은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나?

 

이런 물음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소비자생협에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단지 조합원 교양이나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과 사업 차원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자신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협동조합운동의 지속을 쉽게 장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과 노동자를 고민하지 않는 소비자생협이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 리스트Gilbert Rist는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10)에서 “‘발전’은 분명히 한정된 자원을 끊임없이 수탈함으로써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풍요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보편적인 결핍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얼버무리는 실체적인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즉 소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생산과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는 소비자협동조합은 경쟁 자본주의에 쉽게 동화될 뿐 아니라 자신의 뜻은 아니라 할지라도 타자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시킬 수밖에 없다.

 

소비자생협에서 소비자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한살림은 이런 물음을 더욱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한살림이 ‘한살림농산’에서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으로, ‘한살림생활협동조합’으로 변해온 역사는 이런 고민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초기의 고민은 지금의 정체성과 방향, 사업방식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최혜성 선생은 1989년 7월에 발표된 “한살림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생명의 세계관이란 “인간이 사회 안의 공동체적 협동, 자연과의 조화된 공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고 한살림의 이념은 “사회적 노동에 의해 창출되는 모든 생활가치가 협동적으로 생산되고 공정하게 배분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고, 생활가치가 인간노동의 소산이자 자연의 소산임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생명의 젖을 먹여주는 자연의 생태균형을 유지시키고, 정의의 사회적 실천, 자연과의 조화된 생활을 통하여 내면적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것을 그 실천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살림 초창기의 소식지나 가입안내서를 살펴보면 유기농산물 거래의 목적은 안전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자연과 외국농산물의 수입으로 쓰러져가는 농촌 살리기, 농약으로 신음하는 농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과 소비자생협이라는 틀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제가 한살림에 있다고 본다. 즉 한살림은 윤리적 소비운동을 넘어서는 인식틀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스스로 실현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조합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1)  그 부분에 관한 저의 입장이 궁금하신 분은 《문화과학》제 73호(2013년 봄호)에 실린 “협동조합운동의 흐름과 비판적 점검”을 보시길 바란다.

2) “Demutualization and its Problems”, Quaderni DSE Working Paper, 2011.

3) “Cooperative Networks in the Italian Economy”, 『Enterprise&Society』, 2010.

4) 들녘, 2003.

5) “Some theoret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s of the attempted takeover of a consumer co-operative society”, 『Annals of Public and Cooperative Economics』, 2000.

6) 출처: http://www.vtsummit.coop/pdf/Novkovic-Managing_the_Co-operative_Difference.pdf

7) “Cooperation for Economic Success: The Mondragon Case”, 『Analyse & Kritik』 2011.

8) “The citizen-consumer hybrid: ideological tensions and the case of Whole Foods Market”, 『Theor Soc』, 2008.

9) 출처: 앞의 논문

10) 봄날의 책,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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