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1호] 도시와 소농을 잇는 쌀본위제 지역통화의 가능성
2016-06-22 12:32:00

  

* <모심과 살림> 1호(201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도시와 소농을 잇는 쌀본위제 지역통화의 가능성

일본 아이치 현 주먹밥통화를 중심으로

 

김이경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조교)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먹을거리, 살 공간 등에 대한 대답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물으면 대부분은 ‘돈’이라고 대답한다. 행복, 사랑, 건강 등 추상적인 단어를 말하는 사람도 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돈’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단다. 일하는 시간,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 대부분의 것들은 돈으로 바꿀 수 있고 돈을 갖고 있으면 못 하는 것, 못 사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다들 돈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치솟는 물가에 오르지 않는 월급, 감당할 수 없는 월세나 전세 보증금, 대출금을 보면 돈, 돈, 돈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지금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이 멋지다”라고 칭송하는 것처럼 오늘날 돈은 교환수단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우러러보고 원하고 있다. 돈을 다시 교환수단이라는 제자리로 돌리려는 시도는 수시로 진행 중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지역화폐운동이다.

 

진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지역화폐는 1832년 로버트 오웬이 발행한 노동증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금융위기와 경제불안, 높은 실업률 등으로 점철된 지금 상황을 비춰보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만들어진 지역화폐가 더 가깝게 와 닿는다. 1930년대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순간에 은행이 문을 닫고 예금주들의 돈은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농민들은 먹을거리를 생산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은 돈이 부족해 살 수 없었고 결국 도시와 농촌은 악순환에 빠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화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먹을거리와 노동력은 충분한데 돈이 부족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깨닫고 스스로 화폐를 만들어 지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으로 대공황은 일단락되었고 국가 단위의 경제 통제가 시작되었다. 곧 국가라는 강력한 신용을 앞세운 화폐가 전역에 쓰이기 시작했고 지역화폐는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경제는 롤러코스터처럼 불황과 호황을 반복했고 불황 때마다 지역화폐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다 다시 사라지곤 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또한 97년 IMF 당시 실업극복운동과 지역경제 살리기가 어우러져 서울 관악구, 동작구 및 광주, 인천, 대전 등에서 지역화폐운동이 호기롭게 시작되었다.

비록 현재는 대전 한밭레츠 외에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지역화폐에 대한 욕구와 가능성은 정부와 연계한 재래시장 상품권이나 나주시의 나주사랑 상품권, 성남시의 성남누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쌀로 바꿀 수 있는 지역화폐

 

시민이 직접 만들고 발행한 지역화폐가 확산되지 못하고 금세 사라지는 이유는 좀 더 조사해야겠지만, 이웃을 도와주는 대가를 온라인상에서 혹은 유통범위가 애매한 자체 제작 화폐를 통해 교환한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쓰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역화폐를 쓰는 방식이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할 거래처가 부족한 것도 지역화폐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가 될 것이다.

 

아이치 현에서 사용되고 있는 쌀본위제 f-money(おむすび 오무스비 통화, 이하 주먹밥통화)는 ‘쌀’이라는 현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기존의 지역화폐가 사람들과의 믿음, 신용이라는 무형의 것으로 만들어졌다면 주먹밥통화는 소농들이 정성껏 지은 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주먹밥통화를 거래할 수 있는 상점들에서 화폐를 쓰다가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없을 경우 쌀로 교환하고 거래를 끝내면 된다.

 

1971년 금본위제 폐지 이전에 금과 화폐가 1대 1 교환이 가능했던 것처럼 쌀과 돈이 1대 1로 교환 가능하다. 쌀은 금처럼 종교·신화적 상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금’은 영원성, 권력으로 상징된다면 ‘쌀’은 농경생활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생명이자 ‘신’으로 추앙 받은 신화성1)을 가졌다. 하지만 금은 먹을 수도 없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생기지만 쌀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량이며 없어지면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농사짓는 청년의 아이디어, 소농을 알리고 살리다

 

주먹밥통화는 도시에서 살다 아이치 현의 농촌 아스케로 이주한 30대 청년 요시다(吉田大)의 제안으로 2010년에 만들어진 신생통화다. 고베 출신인 요시다는 아스케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나고야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다 흥미가 없어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우연히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접하곤 일본 사회문제에 대해 자각했고 돌아와 농촌으로 이사해 10년째 아스케에서 살고 있다. 일주일 중 2-3일은 기술저작권 관련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그는 주변 농가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을 접했다. 농부들은 유기농업을 하며 누구보다 정직하게 소비자에게 먹을거리를 전하지만 식생활의 변화와 쌀값 하락, 외국 쌀 수입 등은 소농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OECD 34개 국 중 30위이고 전 세계 176개 국 중 127위2)를 차지할 만큼 낮은 실정이다. 주먹밥통화 자료에 따르면 현재 아이치 현의 경우 식량자급률이 13%이고, 나고야는 1%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쌀자급률은 다른 곡물보다 높은 자급률을 기록하지만 냉해와 같은 자연적인 변화나 전 세계적인 쌀 파동이 있을 때마다 주식인 쌀 가격은 요동쳤다. 쌀자급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농민과 소비자의 불안이 늘 존재하지만 쌀은 언제든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 쉬운 상품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과 같이 일본도 농사짓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불황과 미국의 쌀 개방 압력으로 농가가 위험에 처했다. 더불어 2011년 3월 후쿠시마 지역 쓰나미와 함께 원자력 발전소가 ‘멜트다운(meltdown)되면서 에너지 문제뿐 아니라 세슘 검출 등에 따른 먹거리 문제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이에 일본 농가의 위기와 에너지 문제, 먹을거리 문제 등 실질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문제들이 엮여 주먹밥통화가 거래되고 있다.

 

처음에는 ‘물물교환 게릴라’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지은 쌀을 가게로 가져가 쌀과 상품을 직접 물물교환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만류로 실행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 후 요시다는 지역에서 열린 한 철학 강연회에서 지역화폐 개념을 접했고 쌀을 기반으로 한 화폐를 발행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해 아스케와 나고야, 도요타 시를 중심으로 제안했다. 이후 무라타 히사오 및 대여섯 명이 출자해 화폐발행국을 만들고 근처 농가를 방문하거나 주먹밥통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농부와 농가를 확보하고 상점을 늘려나갔다.

 

주먹밥통화의 목적은 농촌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약을 치지 않고 작은 단위의 농사를 유지하려는 소농들에게는 가격과 선수매를 보장하고 판로를 제공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화폐 생성과정을 이해하고, 화폐를 사용하면 농가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즉 주먹밥통화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돕고 농가와 땅에 대한 연결고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확산되는 주먹밥통화

 

2010년에 발행된 주먹밥통화는 영어로는 f-money라 불린다. ‘f’에는 free(자유), family(가족), farmers(농부들)라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일본어로는 ‘주먹밥(おむすび 오무스비)통화’라고 하는데 むすび(무스비)라는 단어 자체가 주먹밥을 뜻하는 것과 동시에 ‘연대’, ‘끈끈하게 맺어지다’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과 농가 그리고 경제를 서로 맺어준다 혹은 관계를 엮어준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한 통화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뜻도 전달된다.

 

주먹밥통화의 기반이 되는 쌀은 아이치 현의 열두 농가가 생산하고 있다. 2010년부터 발행된 통화는 발행 2년 만에 지역에서 유통량이 열 배 이상 증가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4만 무스비(2백만 엔, 약 2천4백만 원, 1무스비=50엔)가 유통되었으며 화폐 회전은 2~3번 이뤄졌다. 나고야, 도요타, 오카자키, 아사히 등 아이치 현의 여러 곳에서 통화를 구입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2012년의 경우 쌀은 2.25톤이 거래되었으며 2013년에는 4톤으로 계획하고 있다. 또한 쌀과 현미의 유통량이 증가하면서 제휴 농가가 경작 면적을 늘리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소비자를 위한 화폐가 아닌 소농과 작은 가게를 위한 화폐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휴 상점 주인들의 요구가 있어 2013년에는 쿠폰이나 상품권 형태를 넘어 좀 더 지역화폐에 의미에 가까운 화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치측정 기준과 유효기간

 

주먹밥통화의 가치는 매년 달라지는 쌀 가격에 따라 조정된다. 2013년의 경우 1무스비에 무농약 쌀은 60g, 저농약 쌀이나 일반쌀은 120g으로 측정된다. 즉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쌀 가격에 따라 유동적이되 농약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아직까지 완전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소농들을 기다린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주먹밥통화는 일반적인 통화와는 달리 사용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통 6개월 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데 2012년의 경우 2012년 6월 1일부터 2012년 11월 30일까지로 사용기간이 한정되어 있다. 즉 11월 30일까지만 유효한 화폐라 이전까지 모두 사용해야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메모지로 쓸 수 있는 종잇조각으로 변신한다. 쓰지 않고 쌓아두거나(저축) 투기를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아끼면 똥’이 된다.

 

마지막은 쌀로 교환하자!

 

통화 유통구조는 ①통화가 발행되기 전 가치측정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화폐 발행에 드는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②화폐에 실릴 광고를 모집하고 추가 혹은 탈퇴하는 가맹점을 정리해 수수료를 정산한다. 이후 ③사무국에서 화폐를 발행하며 ④농가에서 쌀을 구입한다. 이때 쌀에 대한 비용은 현금과 주먹밥통화를 섞어서 지불하는데 농가의 경우 주먹밥통화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주먹밥통화가 발행되면 가맹점에게 배포되는데, 소비자들은 ⑤상점에서 사무국을 통해 화폐를 구입할 수 있다. 또한 가맹점의 경우 주먹밥통화를 차입할 수도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된다. ⑥소비자는 상점에서 화폐를 구입하거나 농가 일손 돕기로 화폐를 얻을 수 있고, 가맹점이 안내된 소책자를 보면서 ⑦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거래할 수 있다. 화폐 사용기한이 6개월씩 정해져 있기 때문에 ⑧유효기간 이전에 곳곳에서 ‘정산 이벤트’가 열리면 쌀로 교환하거나 다른 물건을 구입해서 얼른 주먹밥통화를 소진시켜야 한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⑨상점과 사무국에서 정산3)하고 ⑩가맹점과 농가의 코멘트를 거친 후 다음 주먹밥통화 발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젊은 소농의 목소리

 

제휴농가는 사무국 기준(경작 조건, 재배 환경, 포장 상태, 지역 교차 오염 등)에 의해 결정된다. 농민들은 한 가구 혹은 개인이 농사를 짓거나 여러 동료들이 팀으로 농사를 꾸려나가는데 오랫동안 도요타 시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은 어르신, 사회 문제를 고민하다 귀농해 정착한 젊은 농부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젊고 활기차게 농사짓고 있는 M-easy(Making the Earth Alive Synergy)의 토다 유스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만㎡의 농지에서 부인과 네 명의 동료와 농사를 짓고 있는 토다 유스케는 주먹밥통화가 시작될 무렵인 2010년 10월에 주먹밥통화와 인연을 맺었다.

“아스케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했는데(그가 사는 오다 마을과 아스케는 버스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때 요시다 씨가 주먹밥통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들었어요. 아주 재밌는 아이디어고, 실제로 이뤄지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지만 주먹밥통화와 연계된 농부들은 정말 소농이에요. 농사 규모가 작아요. 주먹밥통화를 사용해서 좋은 점은 쌀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연결한다는 점이에요.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거에요. 또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 젊은 사람들이 농촌이나 다른 생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어요. 돈이나 에너지, 음식에 대한 생활 패턴을 바꿔야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된 거죠. 그래서 주먹밥통화가 계속하기만 한다면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토다 유스케는 지역화폐를 고민하기 전 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우선 개인은 무엇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야 한단다. 무엇보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지역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삶을 찾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농사를 통해 작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확신은 잠깐 농사를 체험하러 온 젊은 사람들을 그가 사는 마을에 농부로 정착시켰고 이들 중 세 개의 농가는 주먹밥통화를 만드는 쌀을 재배하고 있다.

 

따뜻한 돈을 거래하는 상점들

 

“처음에는 제휴 상점이 30개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주먹밥통화가 거래되기 시작하자 많은 상점들이 관심을 갖고 주먹밥통화를 원했어요. 그리곤 입소문을 탔어요. 가게 주인이 다른 가게에 소개해주는 방식으로요.” (주먹밥통화 발행인 요시다)

 

2010년 30여 개로 시작된 주먹밥통화 거래 상점은 3년이 지난 현재 4배로 늘어 120여 개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헌책방, 카페, 음식점, 꽃집, 정육점 등 다양한 곳에서 주먹밥통화를 구매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주먹밥통화를 취급하길 원하는 상점 주인은 사무국으로 신청서를 제출해 가입비를 내고 등록하면 주먹밥통화를 받게 된다. 지역상공회에 가입된 상점은 1000엔의 가입비만 부담하면 되고(상공회에서 단체가입비로 1만 2000엔을 지불함) 가입하지 않은 경우는 3000엔의 가입비가 필요하다.

 

가맹점이 되면 주먹밥통화가 발행될 때 통화를 1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고 100장을 빌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각 상점들은 자체적으로 주먹밥통화를 개인당 혹은 테이블당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과자점은 한 가구 혹은 개인당 600엔까지만 주먹밥통화를 쓸 수 있고, 야채가게에서는 2무스비(100엔)까지만 주먹밥통화를 사용할 수 있다.)

 

제휴 상점이 되면 아래와 같은 혜택이 있다.

① 주먹밥통화 무상대여: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사업장에 100매 무료 배포 후 유효기간 종료 후 반납 혹은 정산

② 주먹밥통화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가이드북에 상점 광고 게재

③ 논 체험 투어 프로그램 진행 및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활동 지원

④ 제휴 상점 및 농가들과 연대

⑤ 화폐 구입 시 45엔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 가능4)

 

현지를 방문할 당시 아스케에서 한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아주머니는 주먹밥통화를 알지만 제휴 상점으로 등록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농촌 지역 경제가 정말 안 좋아. 일단 지역 자체에 돈이 많이 안 돌기도 하고 외지인에 대한 배척과 경계가 심해. 2대, 3대가 살아야지 여기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거든. 아스케에서는 농사 안 짓는 사람은 관광객들 대상으로 가게 같은 걸 열어서 돈을 버는데 사람들이 여기서는 잠깐 들렀다가 도요타로 나가서 돈을 써. 이 가게도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열어 놓지 못해. 저녁에만 잠깐 열지. 이 동네 축제가 아주 유명하거든. 그런데 이걸 보러 온 사람들은 축제가 끝나면 지역에 쓰지 않고 밖으로 우르르 나가. 악순환이야.” (아스케 쿠라마에 상점, 김연자)

 

우려를 표했던 아주머니는 주먹밥통화에 대한 소개와 실제로 상점에서 주먹밥통화를 거래하고 있는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제휴 상점이 되기로 결정했다. 이제 그녀의 가게에서도 테이블당 500엔(10무스비)까지 주먹밥통화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경제에 변화는 크지 않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연대의 끈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지점들이 보였다.

 

“이 돈은 아주 따뜻해요. 돈인데 교류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이 돈을 가지고 오면 고마움을 느껴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돈은 어디서든 쓸 수 있는데 주먹밥통화는 이 지역에서밖에 못 쓰잖아요. 그래서 지역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이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뭔가 말도 건넬 수 있어요. 그리고 농사짓는 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농부와 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전 이 돈이 그냥 돈보다는 2-3배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돈을 낼 때 얼굴과 주먹밥통화 낼 때 얼굴은 달라요. 전혀 모르는 손님이라도 이걸 쓰는 손님은 인상이 좋아요. 아직 많이 사용하지 않는데 홍보가 많이 돼서 자주 사용해주면 좋겠어요.” (아스케 과자가게 ‘카토집’ 운영 아주머니)

 

공동체 감각을 키우는 화폐

 

주먹밥통화는 화폐 뒷면에 광고를 받거나 가맹점의 수수료 등을 통해 기존 도매가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농민의 쌀 가격을 보장해주고 있다. 농민은 쌀 가격 보장과 판매처 확보로 농사에 쏟은 시간과 에너지 등을 헐값으로 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 또한 멀리 수출되는 쌀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먹을 쌀이기 때문에 농약을 뿌리기보다는 더 신경 써서 재배하고 농약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농사를 짓는다. 또한 소비자는 상점에서 화폐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농가를 직접 방문하여 농사일을 거들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 노동을 통해서 주먹밥통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도시와 농촌 사이 교류도 일어나고 있다.

 

“중고장터가 열려서 아이들도 이벤트를 즐겨요. 아이들은 낡은 장난감을 들고 와서 주먹밥통화로 판매하고 화폐를 주고받아요. 서로 사고팔면서 주먹밥통화로 교환하는 걸 체험하게 되는 거죠. 마지막에 농부에게 남은 화폐를 쌀로 교환하는 걸로 끝나요. 이런 행사를 통해서 공동체감각(sense of community)이라고 할까, 전에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거죠. 그냥 화폐로 교환했다면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가 없던 사람들이 교류하고 교환하면서 말이죠.” (주먹밥통화 발행인 요시다)

 

주먹밥통화가 만들어진 지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쿠폰 같았던 통화가 점점 제휴상점이 많아지면서 실제 화폐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제휴상점의 경우는 좀 더 이득을 얻기 위해 소비자 판매를 독려했지만 원래 주먹밥통화가 가진 의미를 파악하고 대기업 중심 경제가 아닌 작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상인, 농민을 위한 화폐를 위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다.

 

“주먹밥통화는 소비자를 위한 게 아니에요. 작은 가게, 작은 농부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만든 통화에요. 작년까지는 지금 한국과 비슷한 상황5)이었어요. 할인해서 화폐를 팔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설득을 갖지 못하는. 하지만 올해부터는 달라질 거예요. 주먹밥통화는 유통량을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감각, 공동체의식을 다시 자극하는 역할을 할 거예요. 지역통화는 세계화가 진행되는 지금 지역과 공동체에 매우 중요해요. 서로 뭔가 나누는 게 없어졌거든요. 나누고 관계를 맺는 걸로 올해 또 시작해봐야죠.” (주먹밥통화 발행인 요시다)

 

돈보다 땅, 돈보다 쌀, 돈보다 사람

 

새해를 맞은 겨울, 일본 젊은 농부들을 만나고 그들이 사는 집의 차가운 다다미방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농민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건 지역화폐에서 중요한 건 경제활성화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이로 인해 생기는 관계의 힘이었다. 많은 부분을 지역화폐라는 틀로, 경제적 이득으로 변환해서 보려는 나에게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7년차 젊은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화폐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농사에 관심을 갖고 마을과 땅에 애정을 갖는 점이 더 놀랍지 않아?” 이 말에 한 대 맞은 듯 머릿속이 얼얼해졌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잇는 관계망이야말로 매일 땅을 만나고 하늘에 감사하는 농부가 보는 세상이었다.

 

주먹밥통화는 아주 작은 시도이다. 이 통화로 식량자급률을 단번에 높인다거나 정부 정책으로 반영시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을 가지고 있다. 바로 씨앗, 땅,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놀이와 같은 주먹밥통화를 통해 조금씩 생긴다는 점이다. 아무 관심이 없었던 골목 너머, 찻길 너머 농부의 삶과 농부의 땅이 내 삶으로 들어온다. 식량위기, 식량자급률이 심각하다고 전문가가 나와서 이야기하고 충격적인 영상이 나와도 식량에 대한 관심을 쉽게 높이지는 못한다. 가장 우선은 삶에 지치고 바쁜 사람들을 땅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주먹밥통화는 시작은 미약할지 몰라도 조금씩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돈의 제자리를 묻고, 돈으로 잃은 자연과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1) 오누키 에미코의 『쌀의 인류학』(2001)에 따르면 일본인에게 쌀은 혼이고 신이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체이다. 중국, 서양의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일본쌀을 먹는 사람에 대한 자기 인식이 생겼고 무엇보다 전쟁의 영향은 일본쌀에 대한 신화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전쟁에 동원된 젊은 군인들에게 일본 국내에서 재배된 쌀을 공급하며 일본쌀을 먹었기 때문에 더 강해진다는 등의 의식이 주입되었다. 이는 천황의 정치적인 힘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2) “日 식량자급률 저조 추세 이어가” 환경일보 2012. 8 14

3) 쌀은 사무국에서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 저장 창고나 포장에 드는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쌀은 농민이 직접 관리하며 주먹밥통화가 회수되거나 이벤트가 열릴 때 모두 모여서 회의하고 쌀 배급을 결정한다.

4) 2012년까지는 각 상점별 기준을 자율에 맡겼기 때문에 주먹밥통화를 정가 50엔에서 할인해서 판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상점에서 이러한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2013년부터는 통화 할인은 이뤄지지 않기로 했다. 이는 상점 주인이 소비자보다는 농민을 우선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주먹밥통화는 2011년 『녹색평론』 7-8월호의 서문에 실려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춘천에 사는 한재천 선생님은 이 글을 접한 뒤 2012년에 춘천 ‘이삭통화’를 발행해 주먹밥통화와 비슷한 방식으로 쌀본위제를 이어가고 있다.

 

댓글[0]

열기 닫기

사단법인 모심과살림연구소 대표자 : 황도근 사업자 등록번호 : 201-82-08260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운로 19 (서초월드오피스텔) 3층 (06732) 전화번호 : 02-6931-3604 팩스 : 02-6715-0818 이메일 : mosim@hansalim.or.kr

  • 전체 : 379001
  • 오늘 : 4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