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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의 삶과 노동
2016-06-22 14:16:00

* <모심과 살림> 2호(201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의 삶과 노동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

 

 

어느 20대 청춘의 호소

 

지난 10월, 20대에서 50대까지 세대별로 한 명씩의 여성들이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여성노동문화제 토크쇼 무대에 함께 올랐다. 살기 위해 누구나 일을 하지만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 중 ‘장미칼’이란 별칭을 썼던 20대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할까 한다.

 

장미칼은 전문대졸 여성으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그녀 스스로 얼마나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다. 영어학원 강사로 시작해 빵집, 사무직, 모델하우스…. 빽빽하게 빈 칸을 채워갔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노동 이력은 의미 있는 경력이 되지 못했다. 그녀 역시 ‘회사가 싫다’고 말한다. 그녀가 경험한 회사는 그녀가 어리다는 이유로 잘해 주긴 했지만 반면 나이 든 여성을 무시하고 외모나 나이에 대해 지적하며 성희롱 하는 등 매우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참아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충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짧은 노동 시간과 적정한 임금’을 꿈꾸지만, 현실은 사람을 부품으로 생각해 짧은 계약으로 쓰고 버리는 것이 관행으로 통하는 사회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인 30대, 병원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40대 여성의 노동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날 토크쇼에 참여한 이야기꾼들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그 ‘노동’이 고통이라며 출구가 어디인지 물었다. 나를 성장시키고 내 삶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만 그런 일자리는 많지 않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약 70%가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데, 서비스 노동은 인격적 무시와 저임금, 불안한 고용계약으로 여성노동자를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적 부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지만 그것은 1% 소수 기득권 세력에게만 해당될 뿐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는 월 100만 원 남짓,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강제 노역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 내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노동, 그러나 피하고 싶은 고통스런 노동,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노동의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2013년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을 중심으로 여성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살펴보면서 ‘고통스런 노동의 출구’는 무엇일지 모색해보기로 한다.

 

 

젠더 관점에서 본 2013년 여성의 삶과 노동

 

가부장제와 여성노동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성립된 근대 시민사회는 낭만적인 이성애와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삼았다. 우리가 흔히 이상적인 가족 모델로 떠올리는 것 역시 성공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똑똑한 아들과 딸로 구성된 ‘스위트 홈’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 어느 가정도 동일할 수 없는데 정상 가정 이데올로기는 수많은 가정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가정폭력, 성폭력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가족의 주인은 아버지이고 아버지 말을 잘 들어야 정상 가족일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 말을 안 듣는 아내나 자녀에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폭력과 처벌을 허용해도 된다는 가부장적 사고가 당연시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왜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진행되었을까? 자본주의 하에서는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 봉건적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가정 내 재생산 노동을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무보수 노동으로 남겨둠으로써 여성은 자유로운 노동자가 될 수 없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는 양육과 돌봄노동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이지만 자본은 여기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단지 생산노동에 대해서만 임금이 지불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산노동을 담당하는 남성 중심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강화시켜왔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쉼 없이 일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었다. 여성은 남성의 생계노동에 의지해 가족을 건사할 수밖에 없어 노동시장에서 2등 노동자가 되어야만 했다. 여성이 하는 일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숙련이 필요하지 않는 노동으로 간주되어 저임금 노동, 싼값에 팔리는 노동이 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은 가족 내에서는 물론이고 노동시장에서도 남성의 보조자로, 보조 인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부장제를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한 여성 참정권 운동과 평등권 운동이 가열하게 진행돼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가정을 책임지는 성 역할 분담이 자연스런 질서라는 성 역할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런 성 역할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한 질서이다. 이는 도리어 남성과 여성을 한 인간이기 이전에 성별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역할을 강제함으로써 남녀의 평등한 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가부장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모성을 우상화하며 가족을 위한 희생은 숭상하지만 여성 개인의 욕망은 처벌하거나 비난한다. 가족을 넘어서는 여성의 욕망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해온 것이다. 이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 가족 돌봄 노동에 대해 약간이라도 소홀한 것으로 비춰질 때 쏟아지는 비난, 그리고 지금도 ‘시월드’로 지속되는 강한 가부장성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유교적 가부장성은 여전히 기업과 사회 조직 원리로 관철되고 있다. 가족, 기업, 사회 모든 곳에서 권위주의가 팽배하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못났다 생각하면 무시하고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꼼짝 못하는 태도는 순응적이다 못해 비굴한 사회의 단면이다. 이것은 강한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이미 그렇게 길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강한 가부장성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여성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여성이 담당하는 가족 돌봄노동과 양육노동이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이라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우리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이유다.

 

투명인간,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시기가 끝나고 저성장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고도성장 시기에 당연했던 낙수효과(trickle down)는 더 이상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수출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내수 중심의 정책을 펼쳐야 하며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생을 살리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전원 정규직화 함으로써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 공약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실태조사를 6월부터 9월까지 실시하였고 이 과정에서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지를 드러내 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규직 취업을 위해 일곱 군데나 서류를 넣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한 면접 참여자는 국책연구기관의 일일조사원, 청년 인턴, 위촉연구원 자리를 전전하며 일한다. 서울에서 독립해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와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월 급여는 120~140만 원밖에 안 되어 두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이라 할지라도 비정규직인 탓에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고 모든 원내 행사에서 배제되며 공식 아이디도 부여받지 못해 항상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어떤 소속감도 느낄 수 없고 연구보조 역할이란 이유로 의미 있는 경력이 되지도 못한다.

 

“위촉연구원이나 일일조사원은 정말 소속감 없죠, 저의 느낌으로는 투명인간.”

 

이 면접자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며, 직장 내 위계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투명인간 대접을 받게 되는지 생생하게 말한다.

 

“이거는 근본적인 고용조건의 문제랑은 다른 건데 사람의 뇌를 그런 방식으로 조직하는 거 같아요. 사회 압축판의 피라미드잖아요.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가장 밑에 있는 사람들과 상대하거나 인사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메일로 일 시키면 되는 거예요. ... 그러니깐 위촉일 때는 정말 투명인간이라니깐요.”

 

이렇게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은 이 면접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 삶을 구술하는 데 핵심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때 처음 느꼈던 느낌은 벽체 같은 느낌? 그림같이 그냥 와 갖고 앉아만 있고 (뭔가 실제 권한이나 이런 것도 없고?) 없고, 누구 하나 말 시켜주는 사람이 거의 없고. 나는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설문조사 결과도 심층면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사 결과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재직 기간은 3.6년으로 평균 연령 만 41.3세인데 평균 임금은 136.2만 원에 불과해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74%가 전환 제외자로 분류되었고, 청소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애초에 정규직 대상자에서조차 제외됐다. 이렇듯 지난 대선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시늉 내기에 그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존재가 거부당하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가사서비스 노동자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는 올해 또 하나의 사업으로 가사서비스 노동자의 일과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가사서비스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자로 분류되어 아직까지 산재나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조차 없는 비공식 노동자다. 2011년 국회 예산정책처 조사에 따르면 가정으로 파견되어 일하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공식 여성노동자가 약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이들의 건강과 노동 실태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알려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면접조사에서 확인된 바 가사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육체적으로 매우 고된 노동을 하고 있고, 판매서비스직과 비슷한 정도의 감정노동을 수행하며 우울증도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며 일할 수밖에 없고,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잘리기’ 때문에 매일매일 자신의 노동을 고객의 입장에서 평가함으로써 오는 높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노동이라는 편견도 이들의 우울증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이렇게 힘든 노동을 하지만 가사노동자들은 정해진 휴식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점심식사 시간은 10분에서 20분 사이이며 편의점이나 차 안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해결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또한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이들이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노동자들처럼 아프면 쉴 수 있고, 실직하면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일하면서 10~20분 쉴 수 있는 짧은 휴식시간을 원하는 것이다.

 

“저희는 고 4시간 동안 중노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간 안에 이렇게 간식이라도 뭐라도 먹어야 되잖아요. 고런 시간이 조금 있었으면 좋겠어요. 간식을, 10분, 20분 고 정도, 고객 분들은 안 좋아하시겠죠.”

 

시간제 일자리 - 약인가, 독인가?

이렇게 여성들은 비정규직과 비공식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도 지켜지지 않고,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최저임금도 지켜지지 않고, 법으로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바로 이런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일-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공무원, 교사, 공공기관 부문에서 네 시간만 일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16,500개 만들고 시간제 일자리를 채용하는 기업주에게 국민 세금으로 4대보험과 인건비를 지원해 총 93만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곧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가사와 양육 때문에 일하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고용률을 높이는 방안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문제가 너무 많다. 첫째, 현재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3명 중 1명꼴인 1,757만 명이다. 그중 여성은 1,285만 명으로 73%를 차지한다.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6.3%, 국민연금 가입률은 13.9%로 4대보험 적용률이 10% 대에 그칠 만큼 열악한 일자리다. 정부가 말하는 최저임금 이상의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는 단 5%밖에 되지 않고 95%가 이렇게 나쁜 일자리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나쁜 시간제 일자리는 그대로 두고 세금 지원으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정책 목표로 전면에 내세우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일단 시간제 채용이 대세를 이루어 정규직으로 채용할 자리도 시간제 채용으로 대체될 수 있다. 전일제 비정규직을 채용할 경우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시간제로 뽑으면 그에 대한 부담도 없다. 성희롱이나 인권 침해가 이루어져도 하루 서너 시간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그 회사에 소속감이 있어서 꼭 그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싸우려 할까? 아마 출산을 앞둔 여성에게는 당연히 퇴사하고 이후에 시간제로 다시 들어오라고 할 것이다. 기업들은 인력 운용에 있어 부담을 훨씬 덜고, 연차휴가도 잘 사용하지 못할 테니 인건비도 절약될 것이다.

 

정부는 교사도 공무원도 시간제로 채용하고 겸직과 영리 행위 허용을 검토하겠다 하니 오전에는 교사로 오후에는 유명 입시학원 강사로 일할 수도 있을 터이다. 이렇듯 기존의 나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개선은 외면하면서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목매는 것은 고용률과 양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정책이고 근로조건이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큰 위험한 정책이다.

 

둘째로 왜 ‘일- 가정’ 양립을 여성에게만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남성들도 아빠로서, 한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누리길 원한다. 권위적인 가장의 무거운 짐을 벗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해체되어야 한다. 민주적 가정과 남녀 모두의 ‘일-가정’ 양립, 아니 ‘일-생활’ 균형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는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내세우는 가부장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남성들의 임금 또한 오르지 않자 그 부족분을 여성 시간제 일자리로 채워 여성의 이중노동을 강화시킬 따름이다.

 

그러나 이상적으로는 시간제 일자리가 나쁜 것이 아니다. 앞서 한 20대 여성노동자의 꿈이라 했던 ‘충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짧은 노동과 적정한 임금’은 실은 우리 모두의 꿈이기 때문이다. 이 꿈이 실현되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제 일자리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전환’ 할 수 있는 ‘전환형’이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 ‘선택’이라는 말이 앞에 붙을 수 있다. 둘째,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성별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차별이다. 지금도 여성 비중이 월등히 높으니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을 낮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4대보험 적용, 인권 보호 등 적어도 일할 만한 괜찮은 일자리여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시간제 일자리는 독이 아니라 약이 될 것이며 고통스런 노동이 아니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노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꿈

 

토크 콘서트에 참여했던 이야기꾼들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신의 노동이, 자신의 삶이 왜 나아지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잘 살아보려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지만, 개인적으로 노력해서는 더 나아질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욕망을 바꾸는 것에 있다. 더 많이 일하고 좀 더 벌기 위해 생존경쟁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나아지지 않도록 강제하는 사회 구조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서로의 삶과 노동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젠가 늦은 시간에 지부 회원 교육에 갔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눈도 오고 바람도 불어 날씨가 무척 사나웠는데도 제각각 공장에서,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원에서 일하다 온 회원들의 눈빛이 그야말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오랜 경제위기가 평범한 여성노동자들을 철학자로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올해 6월에 출범시킨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돌봄협동조합협의회는 말 그대로 돌봄협동조합 간의 협의회이다. 이미 일곱 개의 협동조합이 창립해 활동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여성노동자회를 통해 일하는 돌봄노동자가 1천1백 명에 이른다. 이들은 노인 간병인, 노인 요양보호사, 산모 도우미, 장애인 활동보조인, 가사노동자 등 말 그대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돌봄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임금은 너무 낮고 일은 힘들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으로 힘을 합해 돌봄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사회적으로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자 창립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 들고 병들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노동자를 돌보는 것은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이제 돌봄노동자들은 용기를 내 ‘협동조합’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노동,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우리를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탄압이 악랄해도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협동조합으로, 여성노동자회 회원으로 용기를 내고 힘을 모을 것이다. 우리의 노동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삶과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연결고리가 되도록 만들어 갈 것이다. 그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며 응원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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