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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협동조합, 한국의 새로운 발전모델의 주체
2016-07-01 09:42:00

* 에릭 비데 교수가 모심과살림연구소의 요청을 받아 보낸 것으로, 2016년 7월 RECMA(사회적경제국제리뷰)지에 발표할 원고를 수정한 글입니다.  

 

[특별기고]

협동조합, 한국의 새로운 발전모델의 주체

 

에릭 비데 (Eric Bidet. 프랑스 르망(Le Mans)대학 경제학과 교수)

번역 김신양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오랫동안 호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경제위기에 봉착하며 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후 그 한계는 보다 더 분명히 나타났다. 주요한 변화 외에도, 한국의 인구는 2020년부터 줄어들 것이며, 2050년에 60세 이상 인구는 현재의 세 배가 될 것이다. 향후 수십 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속도가 빠를 것으로 간주되는 이 초고속 고령화 현상은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 간에 필요한 균형을 깰 것이다. 보건정책의 측면에서는 향상된 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모델은 여성의 노동통합이나 가족 간의 연대 유지와 같은 측면에서는 더욱 염려스러운 바가 크다. 뿐만 아니라 높은 청년실업이 지속되고, 근로빈곤층의 비중이 증가하며, 불평등과 사회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짐으로써 사회결속이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또마 피케티(Thomas Piketty)에 의해 한국의 불평등 상승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바도 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한국의 많은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이 그 문제를 강조하였으나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술한 다양한 문제점들로 보아 이제껏 추구해 온 모델에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모델은 장기적으로나 중기적으로 볼 때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공공부문의 개혁이 일부 있었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태껏 유지해 온 성장모델의 토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들은 - 꼭 탈성장이 아니더라도 - 최소한 다른 성장, 즉 더 절제되고 평등하며 지역의 문제와 필요에 부응하는 다른 모델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살림운동 및 몬드라곤에서 영감을 받은 초기 노동자공동체들을 통해 한국에서는 대안의 길이 모색되기 시작하였고, 이 운동들은 다른 개발의 원칙에 부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90년대에는 아주 소비적이고 시장화된 보건시스템에 대안 논리를 제공하는 초기 의료협동조합1)의 경험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후반의 위기는 또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참여주의, 근거리 환경문제 및 지역문제를 중시하는 새로운 운동을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한국의 사회적기업이 태동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이후 공공정책으로 편입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들은 탈성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다른 성장 형식을 구현했다. 그중 협동조합을 비롯하여 넓게는 사회적경제가 핵심적인 초석이 되었다. 협동조합이 오랫동안 준정부조직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던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러한 변화발전은 아주 흥미롭다.

 

불과 20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드러났으며, 사회적 목적을 가지는 활동이나 사회문제와 연관된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강력한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최초의 중요한 조치는 2000년대 초 최저소득보장정책으로 자족(selfsufficiency)의 원칙에 기초한 전국적인 자활지원조직의 설립이다. 이후 2006년에는 사회적기업을 육성하여 이를 고용정책의 지렛대로 삼고자 했으며, 2012년의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모델의 기업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정부 부처들이 전국적인 망을 가진 중간지원조직을 통하여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 모델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들 조직은 정부의 정책을 추진하는 임무를 맡았다. 여러 자치단체들(광역 및 기초 등) 또한 이러한 방향에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고용, 농업, 대인서비스, 학교급식, 주거 등과 관련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산을 마련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최근 15년여 동안 추진된 정책은 중앙이든 지방이든 공공부문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 아주 복합적이긴 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공통의 역동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협동조합 모델은 처음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정책이 공적자금과 민간의 자원을 합하여 창업지원이나 전문기술 습득 혹은 비숙련노동자들의 지원을 통한 실업 탈출이라는 사회적 목적에 역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를 보면 사회적 목적을 가지는 조직(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경제활동 영역에서 발전할 수 있는 참여적 지배구조 - 모든 구성원의 동등한 의사결정권 - 를 가지는 기업모델(소비협동조합2) 및 일반협동조합)까지 협동조합 모델에 대한 관심이 실로 대단한 듯하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기업 모델로서 협동조합 모델이 인정받게 된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소비협동조합의 발전

 

한국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며 지속되어 온 협동조합의 역사는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 이 시기에 정부 주도로 최초의 법적 지위가 도입되어 1차 산업 부문 협동조합(농업, 축산, 어업, 산림)의 틀이 마련되었고, 여기에서 파생되어 2차 산업부문(농식품산업) 및 3차 산업부문(은행)으로 발전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온 이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의 이미지가 - 특히 농업 분야에서 -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이용되며 선거전략에 복무하는 일종의 공적기구처럼 준정부조직이 연상되도록 만들었다 . 이런 전통적 협동조합들은 1980년대 말부터 정치민주화 분위기에 힘입어 정부의 후견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협동조합들은 한편으로는 공기업 모델의 영향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수익이 은행 및 금융활동에서 오기에 전통적 은행의 모델의 영향을 받아 아주 관료적인 협동조합 모델을 구현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의 협동조합 모델과 다른 비전을 구현한 첫 협동조합운동이 바로 소비협동조합이다 . 1920 년대부터 시작되어 대부분 단발적인 시도로 끝난 경험이 있은 후 , 1980 년대 중반에 환경과 소농과의 연대, 지역사회 개발 , 소비자의 권리 등을 강조하며 참으로 대안적인 비전으로 공식화된 모델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들 협동조합들은 프랑스의 비오콥 Biocoop 네트워크처럼 유기농업에서 나온 제품을 진흥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 이 한국적 소비협동조합의 방향이 설정되는 데에는 1960 년대부터 원주에서 발전된 생각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생산협동조합 및 ‘농기구공동이용협동조합’(프랑스의 쿠마(CUMA)3)처럼), 또는 탄광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고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기 위한 소비협동조합의 원칙에 영감을 받은 다양한 시도도 사실 원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이러한 활동을 보면 19 세기 유럽의 선구적인 협동조합의 경험(로치데일, 라이파이젠, 뷔세 등)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민계층의 필요에 부응하고 더 나은 사회정의 실현에 영감을 받은 정치프로젝트를 담보한 사회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으로 대처하려고 했던 필요와 그들이 제안한 대응책은 한 세기 반 전 유럽에서 대두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말부터 전통적 농업협동조합들이 주축이 되었던 대량의 화학비료 사용과 그 결과로 생긴 보건문제(공해, 질병) 및 사회문제(농촌인구유출)를 고발함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은 지배적인 성장모델을 비판하는 최초의 운동을 대표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한국의 소비협동조합과 환경운동의 토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 두 방향을 하나의 운동으로 구현한 것이 한살림운동이다. 한살림이 제안한 대안은 가까운 농업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소생산자가 결사하여 참여적인 지배구조의 원칙에 기초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형식을 띤다. 근본적인 생각은 1987년에 발표된 ‘한살림을 시작하면서’에 나와 있듯, 생산자와 소비자가 책임을 나눈다는 것이다 :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계를 책임진다’. 이후 한살림은 건강과 환경을 걱정하는 도시의 소비자들과 대량의 화학비료 사용에 의지한 집약적 농업시스템을 벗어나고자 한 소생산자들 간의 사회관계를 건설하려는 생각에 근거하여 서울과 대도시에서부터 발전해 나갔다. 한살림이 탈성장운동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생산성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회관계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직거래에 가치를 두고 지역 개발을 보장하며 건강과 환경의 문제에 부응하는, ‘다른 생산과 다른 소비’의 형태를 추구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살림이 밟아온 길은 프랑스에서 발전되어 온 비오콥 Biocoop네트워크나 ‘농민농업유지를 위한 단체 (AMAP)’와 분명히 유사성이 있는데, 이 조직들은 일본의 ‘제휴(Teikei, 提携)’라는 직거래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한살림은 일본의 소비협동조합운동, 특히 ‘생활클럽 (Seikatu Club)’의 영향을 더 받았는데, 조합원 구성 및 - 비록 지금이나 과거나 리더들은 남성이지만 - 다수 여성 자원봉사자에 근거한 활동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한다.

 

1990년대 말 소비협동조합의 제도화와 이후 10년간 아이쿱과 두레의 등장과 더불어 이어진 대단한 성공은 협동조합의 이미지가 바뀌는 데 기여했다. 이들 조직 덕분에 협동조합이 이젠 유기농업과의 연계를 통하여 안전한 먹거리, 소생산자의 보존과 전환, 학교급식 및 직거래와 같은 문제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자율적인 특별한 기업모델로 점차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의료협동조합(건강협동조합)4)의 경험은 소비협동조합의 독특한 형태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2006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의해 더욱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의료협동조합의 상징적인 경험

 

2006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제정으로 한국은 사회적기업에만 해당하는 법적인 틀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육성법은 사회적기업에 특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리든 비영리든 다양 한 법적 지위를 가지면서 활동하는 기업모델로서 사회적기업을 정의한 것이다. 이 제도는 사회적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목적 - 취약계층 고용, 취약 계층에 서비스 제공,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 -을 인정요건의 관문으로 둔다. 이러한 조건은 프랑스에서 2014년에 도입된 사회연대경제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유용성 (utilite sociale)’ 이라는 개념과 아주 가깝다 . 의료협동조합은 육성법의 인증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조직형태이다.

 

의료협동조합의 실천은 한편으로는 어려움을 겪은 인구집단에 다가가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용자(조합원)들에게 한국에서 보통 하루 평균 약 70건의 진료(2010년 연구)를 맡고 있는 다른 의사들보다 더 시간을 내어주는 주치의모델을 권함으로써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가까운 의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대안적 의료활동의 비전을 보여준다. 또한 의료협동조합은 항생제 이용 감소의 필요성(한국의 경우 가장 소비가 많은 국가에 속함)과 예방 및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의료협동조합은 돈은 좀 덜 벌지 모르지만 의료진이 일과 여가(혹은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다른 의료 실천활동의 틀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득과 여가의 전통적인 조정방식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의사에게 있어 의료협동조합에서 일한다는 것은 환자와의 대화시간을 거의 배려하지 않는 업종의 관행과도 단절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의료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의료행위 및 진료서비스 제공의 대안적인 접근법을 가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970년대 말 의무질병보험제도를 도입하여 이후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점차 확장해왔다. 개혁의 과정에서 높은 보장률(국민의 97%)과 낮은 의무분담금(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같은 비율로 급여의 약 6%) 방식이 선호되었다. 그 결과 구조적으로 진료보장 수준은 높지 않으며 피보험자 부담률이 상당히 높은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OECD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의료비 지출이 7.5%인 데 비해 한국의 경우 35%). 또한 민간재정에 속하는 의료비 지출은 45%에 이른다(OECD 평균은 28%). 의료서비스 제공은 거의 대부분 영리기관(일반병원과 전문클리닉)이나 비영리기관(주로 재단이나 일부 의료협동조합)에서 이루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넘어서지만 환자 부담 수준(OECD 국가 중 상위 2번째 수준), 건강보험제도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서비스, 항생제 처방, 의료인당 진료 수, 평균 입원 기간이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의료협동조합이 제안하는 모델은 건강과 빈곤에 관련된 지역의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주민참여 방식을 권장하는 다른 접근법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사회적 배제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예방을 강조하며, 환자와 의료보험시스템의 비용부담을 줄이면서 지역에서의 건강 및 사회결속의 문제에 지역사회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협동조합은 조합원의 필요에 부응하는 건강 서비스 제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두면서 호혜적 이익을 실현하고, 의료 시스템에서 배제된 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고 예방 및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치료를 통하여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데 기여함으로써 공익도 추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모델이다. 한국 의료협동조합의 실천 방식과는 좀 다르지만 프랑스의 공제조합이 상호진료센터나 최근의 일반의약품을 위한 모임 등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목적과도 접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사회적 목적으로 인하여 의료협동조합이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상황에서 의료협동조합 모델은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우선 의료협동조합은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때쯤 생존의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인증사회적기업에 비해 더 지속가능한 조직 형태를 구현한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인증사회적기업에 비해 참여적인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의료협동조합은 전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규모가 꽤 크며, 협동조합으로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지배구조를 적용하는 사회적기업모델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의료인, 시민사회단체, (때로는 장애인, 노인, 여성, 농민, 빈곤층 등 사회배제계층을 대표하는) 이용자와 같은 상이한 조합원 범주를 운영 및 관리에 포함시킴으로써 최초로 다중이해당사자구조를 시도한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볼 때, 의료협동조합은 의료인이 아주 상품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시스템 안에서 참여지배구조를 실천하는 드문 시도라는 측면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참여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급속한 고령화 및 고수익 창출을 위한 의료인의 기회주의적 행동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추세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협동조합은 가치도 목적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조직과 같은 형식을 취하여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러나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도입에 따라 ‘거짓’ 의료협동조합과 ‘참’ 의료협동조합이 구별될 수 있는 방안이 생긴 것이다.5)

 

협동조합 모델의 법적인 인정

 

2012년에 도입된 협동조합기본법은 우선 한국 정부가 ‘고용유발계수’6)에 근거하여 잠재적으로 협동조합 모델을 고용창출 모델로 삼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일반기업에 비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에서 투자자본 대비 고용 효과가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협동조합기본법 또한 실업 극복과 고용창출의 목적을 가진 이전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적 의도를 넘어서 보면 협동조합기본법은 기존의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기본법 시행령은 우선 정부가 협동조합에 대한 공공정책을 수립할 의무를 규정하며(제3조:협동조합 정책에 관한 기본계획), 협동조합정책심의위원회의 책임하에 3년마다 변경하여야 하며(제4조:협동조합정책심의위원회), 심의위원회에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대표 및 협동조합에 관한 전문가 중 기획재정부장관이 위촉하는 사람이 참여한다. 기존 협동조합운동 내 칸막이현상이 심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러한 정책은 협동조합 간 협동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다른 법적 틀 속에 있는 기존의 협동조합운동과의 협동이 가능할지 보아야 할 것이다. 기본법은 1차 산업, 은행, 소비자협동조합을 관장하는 기존의 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두 가지 형태의 협동조합을 구분한다. 하나는 사회적협동조합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협동조합이다.

 

기본법 시행령은 많은 부분(제11조~제23조)을 사회적협동조합에 할애한다. 제12조는 생산자, 소비자, 직원, 자원봉사자, 후원자 등 다른 조합원 범주에 속하는 이 중 최소 5인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을 명시한다. 이는 프랑스의 공동체이익협동조합 (SCIC)과 같이 다중이해당사자 구조에 해당하지만 이해당사자 범주에 지자체를 두지 않음으로써 지자체를 조합원으로 할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제14조(주 사업 판단기준)는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을 정당화하는 활동을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지역재생, 일자리 유지, 지역환경 개선, 지역사회문제 해결 등)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의료, 환경, 문화 등의 분야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및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2014년에 도입된 사회연대경제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유용성 (utilite sociale)’을 보이는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의 유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적협동조합은 비영리협동조합으로 조합원에게 잉여를 분배할 수 없으며, 잉여의 최소한 30%는 적립해야 한다. 일반협동조합은 지자체에 신고 및 등록을 하는 반면 사회적협동조합은 해당 부처의 인가가 필요하며 비영리성에 따른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기본법에 의해 도입된 조치에 따라 의료협동조합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였다.

 

일반협동조합에 관해서 주목해볼 것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한국의 법체계에서 도외시되었던 노동자협동조합 모델이 최초로 인정되었다는 점이다. 법의 정신을 보면, 노동자라 함은 피고용인으로서의 노동자와 피고용인이 아닌 노동자(독립노동자나 개인사업자 등) 둘 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78년 법에 의하여 노동자협동조합에 특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해주고, 2014년 사회연대경제법에 의해 보완되었는데,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은 노동자협동조합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최초의 의미 있는 인정 조치라 할 수 있다. 모든 유형의 노동자조직에 대해 아직도 반감을 가지는 한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었다. 또한 노동자협동조합이 오로지 도시빈민이나 비숙련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전망을 가지는 조직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모든 종류의 활동에 적합한 기업 모델로 받아들여지는 데 기여했다.

 

2016년 초 현재 약 9천 개의 신규협동조합이 등록되었는데, 월평균 250개가 설립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협동조합기본법이 ‘협동조합 쇼크’를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러한 현상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등록된 협동조합의 절반만이 실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또한 이 중 상당수(약 2/3)가 중소기업협동조합이나 개인사업자, 혹은 독립노동자 협동조합으로서 업종단체 협동조합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조직은 대개 신규창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경우이다(이러한 사실이 기본법에 의한 협동조합 모델이 가지는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뜻은 아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과 2006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비교해보면, 1500개의 사회적기업이 인증된 기간의 절반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등록된 협동조합의 수는 6배에 이른다. 물론 두 법이 부여하는 잠재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은 특정한 기업의 지위를 정하지 않고 사회적 목적을 가지는 활동을 하는 기존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것이고,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종사할 수 있는 특정한 기업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특히 신규협동조합의 2/3를 상회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 개인사업자나 독립노동자협동조합의 경우 향후 참여지배구조의 형태 등 구체적인 운영양식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결론

 

한국의 경험은 최근 20여 년간 이어진 협동조합운동의 변화가 어떻게 오랫동안 공적 기구로 인식되어왔던 협동조합의 이미지를 바꾸고, 풍부하게 하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했는지 보여준다. 사회운동에 뿌리를 두고 정부의 통제를 비켜난 협동조합운동의 탄생과 발전과 법적인 인정은 협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나갔다. 이렇게 된 데는 1980년대에 조직되어 1999년에 법적인 인정을 받은 소비협동조합, 1990년대에 탄생하여 2006년 법에 의해 사회적기업의 모범으로 인정받은 독특한 형태의 의료협동조합 경험, 그리고 2012년 법에 의하여 등장한 사회적협동조합 및 노동자협동조합 등 설립과 운영에 있어 더욱 유연성과 자율성을 가지는 새로운 협동조합 조직의 역할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장차 한국의 협동조합 모델은 저성장 시대에 지역의 필요와 환경 및 건강 문제를 중히 여기는 더욱 평등한 다른 개발의 초석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1) 필자가 말하는 의료협동조합은 ‘한국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된 협동조합을 지칭한다. 이들 조직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대부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거나 전환 중이다.(역자 주)

2) 한국의 경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이 글에서는 국제협동조합운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 소비협동조합으로 표현한 필자의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역자 주)

3) Cooperative d’Utilisation de Materiel Agricole: 농기구의 공동이용을 위하여 함께 투자한 농민들의 농기구이용협동조합. 쿠마는 평균 18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되며 관리를 위하여 인력을 고용하기도 한다. 2006년 기준 프랑스에는 13,100개의 쿠마에 230,000명의 조합원이 6,450명을 고용하고 있다.(역자 주)

4) 필자가 말하는 의료협동조합은 ‘한국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된 협동조합을 지칭한다. 이들 조직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대부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거나 전환 중이다.(역자 주)

5) 이는 기존의 유사의료생협의 비리로 인하여 의료생협의 이미지가 손상되어 피해를 입었었는데 협동조합기본법 도입 이후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소속 조직들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함으로써 일명 사이비 의료생협과 구별될 수 있게 된 사실을 말한다.(역자 주)

6) Employment Inducement Coefficient : 10억 원의 재화를 산출할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를 뜻하며 한국은행이 2005년부터 산업별로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2010년 전 산업평균 고용유발계수는 8.3명인데 이는 10억 원어치의 제품이 팔릴 경우 고용이 8.3명 발생함을 의미한다. 한편, 2010년의 고용유발계수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2005년 10.1명에 비해 17.8%나 줄었다. ‘취업유발계수’라고도 한다.(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역자 주)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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