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2호] [좌담] 노동의 현실과 현실의 대안
2016-06-30 15:00:00

* <모심과 살림> 2호(201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좌담] 노동의 현실과 현실의 대안

 

참석

김신양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정책국장)

장주영 (대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진행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주요섭 > ‘새로운 삶과 사회를 여는 노동의 대안’이라는 특집 주제를 가지고, 몇 가지 현안이나 쟁점이 될 만한 것들을 같이 이야기해 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자리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진단하고, 실천적 대안이 무엇일지 같이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사회적 경제나 돌봄, 여성, 청년 노동의 현장에 계시면서, 또는 연구자의 시각에서 현재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이나 단면을 짧게 말씀해주시죠.

 

일자리 환원과 일자리 양극화가 만들어낸 불안한 노동 현실

 

김신양 >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삶의 문제가 일자리의 문제로 환원되어 버렸습니다. 실업자는 취업을 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 목표인 사회인 거죠. 그런데 실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의 문제예요. 한국 사회에서는 고용과 노동이 섞여 쓰입니다. 사회 문제가 일자리 문제고 삶의 질이 고용의 질 문제가 되어버렸는데, 그런 노동중심적 경향은 진보 보수가 다르지 않죠. 시장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된 거예요. 노동을 얘기할 때 그 기준을 시장에 둘 것인지 아닌지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야만 고용과 일자리를 넘어서는 노동 문제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안소영 > 요새는 중학생들이 직업 체험하러 다닌다고 합니다. 저에게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있는데, 그 아이들도 진로 적성검사 같은 걸 하고, 방학 동안 직업 체험을 하라고 해요.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에게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거냐’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무슨 직업을 가질지를 묻는 거죠. 그 상황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 중심 사회이고, 그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바꿔내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행함과 우울함, 피로감들이 안 바뀔 것 같아요.

 

주요섭 > ‘일’과 ‘노동’은 다른 개념으로 쓰신 건가요?

 

이안소영 > 일례로 전업주부는 임노동시장에 들어가 있진 않지만 굉장히 많은 일을 하죠. 활동과 일과 노동이 각각 다른 범주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계속해서 (고용)노동만을 이야기하고, 평등에 있어서도 노동할 권리와 (자연으로부터 가져온 자원을) 평등하게 가질 권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마을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평등도 있을 수 있고,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어떤 일을 하는 평등처럼 다른 권리와 평등이 있을 수 있는데, 대체로 임금노동을 중심으로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장주영 > 저희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감정노동 등 굉장히 세분화해서 이야기해요. 기존에는 분명 라인의 생산노동을 중심으로, 즉 굉장히 남성 중심이었고 가족임금 안에서 움직였다면,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까지를 포함해 더 넓게 보려는 것이죠. 일과 노동이 분리되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지역에서 항상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이 지급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이냐 활동이냐, 항상 부딪혀요. 그 범주가 어디까지일까. 생계의 여유가 있으면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고,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는 노동이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요. 전업주부들이 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논다고 하잖아요.

 

주요섭 > 연구자 입장에서 보는 한국의 노동 현실은 어떻습니까?

 

황덕순 > 노동 문제의 범주는 워낙 넓지만 지금의 주제와 관련지어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 중 첫 번째는 양극화가 매우 심하다는 거예요. 이건 내부 소득 격차가 크다는 점도 있지만, 누구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 일을 하고 누구는 아예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고용 측면에서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기도 하죠. 두 번째로는, 전반적으로 노동의 불안정성이 매우 큽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매우 적다는 뜻이죠. 통계적으로 우리 사회의 평균 근속기간은 노동시장이 아주 유연하다는 미국과 비교해도 절반 남짓에 불과합니다. 1년 미만 근속자 비율이 35% 정도 돼요. 현재 직장에 들어온 지 1년이 안 된 사람이 1/3이 넘는 거죠. OECD 평균은 15~16% 정도입니다. 반면 10년 이상 근속자 통계는 정확히 역전돼요. 우리는 15~16% 정도, OECD 국가는 35% 정도입니다. 간접적으로 여러 지표를 보면 (우리의) 노동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지표로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1천만 명이 조금 넘는데, 그 중 5백만 명 정도는 매년 그 일자리에서 나가고 4백50만 정도가 매년 들어와요. 물론 같은 사람이 두세 번 움직이기 때문에 겹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1년을 놓고 보면 자기가 연초에 일했던 곳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은 60%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다.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인데, 고용보험 가입자는 노동시장에서 비교적 처지가 괜찮은 편에 속합니다. 그럴 정도로 일자리의 불안정성, 노동시장 유동성이 매우 높은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주요섭 > 고용보험 가입자 중 45% 정도가 1년 내 들고남이 있다는 통계는 조금 놀랍네요.

 

 

청년 노동의 현실, 그 출구는?

 

주요섭 > 각자 현장에서 느낀 한국 사회 노동의 현실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큰 틀에서의 특징 외에도 삶의 현장에서 봤을 때 쟁점이 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노동 현실은 어떤가요?

 

장주영 > 최근에 지역에서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노동 문제가 삶과 먹거리의 문제, 문화와 생활의 문제뿐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와도 굉장히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학가에는 최저임금에 미달한 상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근로기준법 같은 기본적 노동권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나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은데, 여기서라도 이렇게 일하는 게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요. 입시제도에서 사람들을 등급별로 나누다 보니 거기에 맞춰서 자기의 가치를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많은 청년들이 도시에 살면서 돈을 많이 못 벌면 불안해하는데, 그 이유가 내 생활이 다 돈으로 환산이 되기 때문이에요. 집세, 수도요금, 난방비, 식비…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만들어 하는 삶에서 멀어졌으니 불안한 거죠.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이면 그만큼 일을 많이 해야 하니 돈을 쓸 시간이 없고, 저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벌어야 하니 장시간 일해야 하고, 그래도 먹고살기 팍팍하고. 노동과 돈, 생활이 이어지게 되면서 문화 격차도 굉장히 크게 나타나고. 다들 자존감을 많이 잃어가는 상황이에요. 저도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근로계약서나 임금체불에 대해서 얘기를 잘 못해요.(웃음)

어쨌든 핵심은 ‘불안하다’는 것 같아요. 활동을 하든 임노동을 하든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가 있는데, 이것을 보장해주지 않음으로 해서 불안한 문제가 생기는 거죠. 한편으로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불안한 것도 있고요. 정서적인 문제와 생활의 문제, 사회보장의 문제가 엮여져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지만 활동과 돈 버는 일을 따로 해요.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어요.

 

주요섭 > 청년 세대 중에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은 없는지요? ‘나는 꼭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꼭 취업을 해야 하나?’ ‘사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등등. 물론 쉽지 않지만, 일할 권리만을 이야기한다면 모두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현실에서 그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요. 노동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탈노동 경향이 있을 거라고 보는데 그런 게 혹시 출구가 되진 않을지. 불안정한 상황은 사회 전체의 문제인데, 정책이나 제도, 혹은 기업을 바꾸는 것 말고 또 다른 대안은 어디에서 찾을지 궁금합니다.

 

장주영 > 여러 시도를 해도 먹고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자본으로부터 고용되지 않아도 가능한 삶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탈노동은 지금 당장은 안 보이지만, 협동조합 안에서 재분배를 이루고 서로 돌보면서 노동을 나누고 삶을 같이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동네에서 협동조합 마을카페를 열었어요. 조합원은 33명 정도이고, 네 명 정도가 일로 참여하고 있어요. 하나의 출구로써 협동조합을 생각했는데, 막상 청년들이 모이면 출자금을 수십, 수백만 원 내기 힘든 현실이 있습니다.

 

이안소영 > 귀농이나 귀촌을 선택하는 청년들은 주변에서 많이 보게 돼요.

 

장주영 > 그런 청년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스스로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분명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인데, 단적으로 대전에서는 청년들 중 70%가 서울로 가고 있어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하고, 귀촌이나 귀농 같은 경우에도 그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기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과 활동의 혼재, 존중 받는 노동의 필요성

 

김신양 > 얼마 전에 ‘젊은 활동가들의 노동과 활동 전망’을 주제로 좌담을 했었는데, 노동과 자기의 활동을 혼동하면서 생기는 현장에서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고용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러한 곳이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활동의 장이었을 때 생기는 문제죠. 단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안 쓰거나 노동 시간 혹은 어떤 노동을 할 것인지 같은 근로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동관계가 없어도 노동을 존중해주면 괜찮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거죠. 급여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노동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를 포함해 아주 많은 단체가 이런 상황이에요. 최근 들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쪽이 확대되면서 정부 보조금 사업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새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단기로 쓰면서 고용 불안이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 노동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시장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장주영 > 노동권에는 노동할 권리뿐 아니라 노동을 하면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를테면 단체 책임자는 자본가가 아니니까 노동권을 보호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안소영 > 말씀하신 대로 단체에는 자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자아실현 또는 자기 소명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 월급을 받는 노동이 되는 거예요. 사실 헷갈릴 때가 많죠. 예를 들면 주말에 집회를 가는데 그것을 일로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실제로 시민노동이라고 할 만한 일을 거의 안 하는 거죠. 자원활동을 한다거나 우리 단체가 하지 않는 다른 활동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일을 잘 안 하게 돼요. 너무 바쁘기 때문이에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월급 받는 일 말고 다른 활동, 시민노동, 공동체 기여 등의 ‘일’이 필요한데, 시민사회 활동가도 그 일을 못하는 건 사회가 너무 과잉노동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회 전체적으로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구조인 것 같아요.

 

주요섭 >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한살림과 같은 생협 활동가도 비슷한 고민이 있습니다. 4대보험, 복무규정 등이 비교적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나 근로시간 외에 일하는 것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죠. 요즘 워낙 협동조합을 하면 뭔가 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일자리로서의 협동조합이 가능성이 있는지, 현실은 어떤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출구 중 하나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도 노동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다.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으로는 어떤가요?

 

 

협동조합은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신양 >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은 종속된 노동이고 협동조합이나 다른 조직에서는 대안 노동이라는 분리된 사고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은 일인 거죠. 청소하는 일의 경우, 지자체에서 고용되었건 협동조합에서 하건 청소는 청소이고 그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인 거예요. 일반 기업에서는 이런 노동이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에서는 이런 노동이라고 나눌 수 없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주는 방식, 최저소득 보장, 기본소득 보장 얘기를 하는데, 그 이전에 정말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은 ‘독립된 노동’입니다. 그 일을 할 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안소영 > 현실적으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 하는 지점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는 일이었던가는 다르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요섭 > 개인적으로도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요, 이를테면 동업자 조합과 같은 돈벌이 협동조합이 있고 생협과 같이 필요의 충족을 위한 협동조합이 있다고 할 때, 양자에 참여하는 분들의 태도, 실제 운영, 관점 같은 것들이 다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김신양 > 무엇을 중심에 두고 노동 문제를 볼 것인가를 얘기해야지, 조직을 중심에 놓고는 대안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주식회사에서도 노동 착취만 하라는 법은 없죠. 조직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을 조직하고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예요. 협동조합으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답을 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 전체 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가 있는 공간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냐는 것이 출발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갈 거냐는 생각과 자각이 더 중요한 거죠.

 

이안소영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기업과 협동조합의 다른 방식의 노동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각각 노동을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한 원리를 고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예를 들어 협동조합은 자기가 일을 하는 주체입니다. 노동자이자 고용자이자 출자자죠. 그 일의 방식, 내가 출자자이자 운영자이자 노동자인 그 일의 규모를 늘려가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신양 > 그 부분은 노동관계의 차이예요. 출자자이자 노동자로 참여하는 것, 이건 노동관계의 문제죠. 그런데 사회에는 재분배 시스템도 필요하고, 그래서 공무원의 일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노동이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은 안 좋은 노동, 어떤 것은 대안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황덕순 > 협동조합이 지금 한창 유행이고 대안 조직으로의 가능성도 분명히 있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 역시 노동자예요. ILO와 국제협동조합기구가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에 대해 일정한 합의를 본 게 있는데,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게 노동기본권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라는 게 그것입니다. 협동조합이 호혜적 활동을 하고 그것에 기반해 작동하는 건 맞지만 모든 협동조합이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져야 할 기본 권리가 보장되는 기반 위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될 수 있는 거죠. 협동조합이 커지게 되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위계조직이 생겨나고 경영이 생겨나고 노동하는 사람이 구분돼요. 어떤 조직이든 발생하는 현상이죠. 당연히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설령 조합원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형태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조직이나 기구가 필요해요.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 문제 해결의 중요한 대안이나 수단이 될 수 있어도, 노동의 문제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노동조직이 수행하는 우리 사회에서의 기능,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 둘이 늘 같이 움직여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김신양 > 하나의 협동조합을 볼 때는 그렇죠. 폴라니의 얘기를 빌리면, 재분배와 교환을 종속적으로 사용할 때 호혜성이 제대로 발현되고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했어요. 노동조합이 결사체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재분배 시스템으로 연대임금제가 작동되면 노동조합은 훨씬 잘 운영돼요. 각각이 분리되지 않고 잘 운영되기 위해서 재분배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협동조합 내에도 기금을 두어 신생협동조합을 살려줄 수 있는 길이 있고, 이러한 사고에서 협동조합공화국이라는 게 나온 거죠.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가 될 수 있어요. 다른 정부를 만들 수 있고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겨요. 개별 협동조합이 노동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들 간의 협동과 지역사회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통해서 다른 노동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우리가 지역사회 또는 국가 전체가 아니라 하나의 조직을 놓고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보기 때문에 대안을 구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장주영 > 대안이 되려면 삶의 지속성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지속적인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개별 단체나 회사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의 지속성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방식을 구성해야 하죠. 개별 조직에서 안 될 때는 아까 얘기하신 연대임금제, 일종의 공동펀드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지속적 삶이 가능하도록 노동을 재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지금 당장 임노동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을 해결하는 게 노동운동의 역할 중 하나이죠. 어떤 사람의 삶의 지속성을 가운데 두고 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인생 각 시기마다 필요한 돌봄 노동이 거기에 세심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존권과 삶의 지속성도 같이 디자인되어야 할 것 같아요.

 

 

시간제 노동, 원칙적으론 옳은 방향이지만…

 

주요섭 > 이제 시야를 넓혀서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 현안을 이야기해볼까요? 우선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시간제 노동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이 있을 텐데요.

 

김신양 > 노동 시간 단축을 얘기할 때 네덜란드 사례를 많이 드는데, 네덜란드는 파트타임 노동 비중이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파트타임 일자리 자체가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게 문제예요. 자활에 있었을 때 간병도우미사업이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여성들에게 좋았던 건 출퇴근 시간이 규칙적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요즘은 가사도우미 일의 경우 소개소가 있어서 고정적이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구하기 힘든 건 그 일의 조건과 내 삶의 조건이 안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적은 시간이라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수요는 굉장히 많을 거예요.

 

주요섭 > 시간제 노동도 안정이 되면 괜찮겠다는 의미인가요?

 

김신양 > 시간제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그렇죠.

 

이안소영 > 저도 시간제 노동이 필요하겠단 생각은 들어요. 어린 아이나 노인, 환자들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 돌봄을 제공해야 할 누군가가 있는데, 그것을 시장에서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아요. 가정 밖에서 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돌봄 서비스 영역이 있어야 하지만, 모두 다 상품화시키는 게 아니라 가족과 마을 단위, 근거리 내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게 가능하도록 사회를 구성하는 게 필요해요.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정규직 노동을 할 수가 없을 경우 시간제와 같은 유연한 노동 형태가 필요하죠. 단,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같은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해요. 지금은 상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소득이 가는 구조인데, 그렇지 않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소득이 돌아간다는 구상에서 기본소득 얘기를 할 수 있고, 그게 전제가 되어야 시간제 일자리 같은 논의가 가능하겠죠.

 

황덕순 > 분명 시간제 노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시간제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돼요. 안정적인 시간제 노동이라는 고용 형태가 만들어지면 그분들의 요구에 맞는 일자리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가장 열등한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는 시도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현실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어떤 것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죠. 욕구와 사회적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거기로 가는 방법이나 경로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달 사이 논의 과정을 보면서 시간제 노동 자체가 오염된 어휘가 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간제 노동이 바람직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전체가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궁극적으로 고용된 노동은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 남성들이 혼자 일할 때는 남성들이 벌고 여성들이 돌봄을 수행하는 사회모델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남성과 여성이 모두 자기 시간의 반 정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1/3정도 임금노동을 하고, 나머지 1/3정도는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든지 스스로를 돌보는 일, 1/3정도는 시민노동을 하는 사회로 갈 수 있고 가야 합니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데는 수많은 갈등과 고통 같은 불가피한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겠죠.

 

 

비정규직은 노동이 아닌 사람의 문제

 

주요섭 > 비정규직 문제와 시간제 일자리를 같이 엮어서 볼 수 있을까요?

 

황덕순 > 그 둘은 차원이 다른 문제예요. 시간제 노동은 고용된 임금노동의 시간을 줄이자는 의미, 즉 전반적인 근로시간 단축의 문제이고,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관계의 불안정성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문제라고 봐요. 거친 표현을 쓰자면, 천박성입니다. ‘필라델피아선언’이라는 ILO의 선언 1조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입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약 관계가 상품으로서 노동을 계약하는 거죠. 과거 정치경제학 이론을 따진다면 노동력과 노동을 구분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노동을 상품으로 생각하고 계약하는 임노동 관계, 고용돼서 임금을 받는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다만 노동이라는 건 다른 상품과 달라요.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기계나 재화와 다르게 특별하게 다루어야 하는 어떤 것이죠. 이 고용관계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삶의 가치, 삶의 실현에 좀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짜 나갈 것인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관계가 필요한 겁니다.

고용관계 안정성은 그 기초 중 하나예요. 그런 것들이 무시되고 있고, 마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썼다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데, 이런 게 금세 바뀌기 어렵겠지만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는 그 상징적 사건이었죠. 기업이 어려운 사람을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대다수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업이 어렵다고 해도 사람을 쉽게 해고해선 안 된다는 것에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한 거예요. 노동 문제는 자본의 논리, 기업의 논리와 다른 사람의 문제라는 데 대한 공감대가 드러난 사건입니다.

 

주요섭 > 현실은 어떨까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건 아닌가요?

 

황덕순 > 현실은 아직 멀었죠. 그렇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내면의 불안이 퍼져 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 세대까지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취직할 수 있는 사회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고용불안이나 극도의 양극화 문제가 이제 내 자식의 문제로 다가오는 사회가 되었어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거죠. 지금은 교육이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 자식의 취업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사회가 돼요. 그런 것들이 아마 우리 사회의 지배적 노동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주요섭 > 제도나 정책적 대안도 마련되고 있나요?

 

황덕순 > 지금은 충분히 마련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예를 들면 비정규직법의 경우에, 결함이 많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에서 100만 해고 대란설을 들어 공격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인 거죠. 그렇지만 100만 해고 대란설이 허구였다는 것은 바로 며칠 사이에 드러났잖아요? 조금 더 진일보하게 나간다면 비정규직 고용 규제에 있어서는, ‘계속 지속되는 일자리에는 계속 지속되는 고용 관계를’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안정되고 기간을 정하지 않은, 소위 무기계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 고용관계의 원칙이고, 우리나라 노동법이나 국제적 노동 기준도 다 그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오래 전에 확립된 것이죠. 다만 지금은 시장 질서를 거스른다는 명분으로 그런 확립된 원칙과 기준이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장주영 > 비슷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어떤 일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필요한 업무들이 있음에도 그 사람들을 계속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해 버리는 게 문제죠. 그들이 일하는 것을 존중해주고 직고용을 해야 하는데, 인건비를 계속해서 깎아도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한 사람의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권리가 임금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항목으로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더 싸게, 노동자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거예요. 시간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최소한 명백하게 법으로 정해놓은 것을 어기고 대법원 판결마저 이행하지 않는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으로 시간제를 내놓은 것은 기존 현안들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이안소영 > 시간제 노동을 상용, 정규직화하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여성운동 쪽에서는 시간제 노동을 반기지 않아요. 시간제 노동이든, 시민노동의 활성화든, 돌봄노동의 사회화든, 성별 분업 논의를 깨는 구도가 같이 가지 않으면 계속해서 특정한 노동을 특정한 성이 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일로 인식되는 구조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시간제 노동 담론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여자들만 하는 노동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시민이라면 누구나 시간제 노동을 통해서 자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누구나 돌봄을 통해서 타인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바탕에 두고 성별을 깨는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규직 노동자가 일을 많이 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여성들도 남성들이 들어가 있는 임금노동 시장으로 똑같이 들어가는 방식으로는 삶이 너무 불행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의 전환을 위하여

 

김신양 > 계속 노동시장 안에서만 이야기했는데, 노동관계뿐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청소는 다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떤 측면에서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키우는 일이 있어요. 치유가 되기도 하고요. 모든 일이 사회에 필요하긴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사람에게 굉장히 좋은,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일, 노동이 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프랑스의 에스빠스(프랑스 자활 사회적기업) 사례를 들면, 도심 공원관리나 텃밭 관리 등을 다 친환경적으로 하는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민자 출신이고 아주 오랫동안 사회에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공동정원을 가꾸고 심는 일을 하면서 그 자체로 너무 좋아지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는 거죠. 정신건강에도 좋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는 일. 그러한 일을 많이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안 노동이라고 할 때 노동관계에서 얘기하는 게 협동조합 같은 거라면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 다른 노동의 방식과 그 일 자체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해요. 그런 것을 고민하라고 사회적 일자리가 있는 건데 그렇게 활용하지 않고 시장으로 나가는 데 급급했죠. 정책적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이건 사회적 기업, 자활이건 그런 일을 하게 만든 제도는 실제로 그런 일을 개발해서 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 사회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면 더 좋겠죠.

 

이안소영 > 돌봄을 예로 들면, 우리는 노동시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주는 구조니까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엄마들이) 자유롭게 일하러 나가기 위해서 돌봄교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게토화’되고 있어요. 학교에서 2-3년 동안 갇혀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고립되고, 다른 아이들하고 관계도 없어지고요.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교사 수를 늘리는 거예요. 그 일을 누가 할 건가. 거주자 우선주차 같은 것처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돌봄교사가 되는 일자리를 만들면 마을에서 안전과 돌봄 같은 게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상품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돌봄 등 마을에서의 노동을 일로 만드는 것. 어떤 노동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와도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김신양 > ‘노동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노동을 만들고 개발해 나가는 게 필요해요. 이제까지는 대개 농업 분야였고 약간의 문화 분야가 있었는데, 과학기술이나 제조 분야에서도 그런 노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다른 노동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 콘텐츠’도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사회의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조직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안소영 > 다름을 만들어낼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규모라고 생각해요. 지역공동체에서 적정한 규모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요섭 > 노동의 전환을 위한 실천적 키워드로 좋은 일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봤던 것은 영국 New Economy Foundation에서 제안한 주21시간 노동인데요, 생태적 관점에서나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나 노동 시간 단축 방향으로 이야기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황덕순 > 경제학자 케인즈는 자기 손자 세대가 되면 주 15시간 정도만 일하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전망했어요. 지금이 그쯤 되는데, 저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임금노동을 하는 것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우리 사회가 극단적이라고 했는데, 잘산다는 나라 중에서 노동 시간이 제일 길고 일자리는 부족해요.

세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지만, 제일 비슷하게 간 경우를 들자면 네덜란드예요. 네덜란드는 여성들의 60%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남성들은 20% 가까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합니다. 여전히 남성과 여성 사이 격차가 크지만 OECD 국가 중에서 남성 파트타임 비중이 제일 높아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풀타임은 많은 시간당 임금을 받고 파트타임은 낮은 시간당 임금을 받는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적어도 일이 같은 한 풀타임과 파트타임의 시간당 임금 차이는 없습니다. 또한 이 사회에서 파트타임이라는 것은 주변부 일을 뜻하지 않아요. 우리가 소위 좋은 일자리라고 하는 많은 일,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회계사, 화이트칼라 층이 파트타임에 들어가 있어요.

남성과 여성 파트타임 비율에 차이가 있는 것은 여전히 가족주의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에요. 대륙의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죠. 네덜란드의 경우 남성은 1을 하고 여성은 0.5를 하는 개념에서 1.5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스웨덴은 남녀 풀타임 모델이에요. 물론 노동 시간은 전반적으로 짧죠. 여성들이 애 낳고 육아를 할 때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풀타임으로 복귀해요. 여성들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여성들이 하는 풀타임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자신이 옛날에 가정에서 하던 일을 고용된 임금노동으로 하는 돌봄노동이에요.

네덜란드는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면서 고용률을 많이 올렸어요. 이전에 고용률이 낮았을 때의 총 노동 시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눠가졌다는 뜻이죠. 그게 가능한 겁니다. 완벽한 사회는 아니지만, 얼마든지 그 사회에서 하는 일을 나눠서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궁극적으로는 다같이 50%씩 파트타임을 하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미래사회의 모델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남는 시간은 자기 생활을 위한 노동을 하는 겁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일 수도 있고, 스스로 자기 먹거리 정도는 생산할 수 있겠죠. 이렇게 자기의 생활노동, 돌봄,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노동,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어떤 일을 하는 시간들을 1/3 정도 가질 수 있는, 그런 식의 균형을 가진 사회로 갈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사회 패러다임만 바뀌면 가능합니다. 물질적 기반은 있어요. 다만, 그런 방식으로 사회를 짜 나가고 있지 못해서 생기는 한계일 뿐이죠.

 

이안소영 > 자급노동의 양을 늘리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적게 벌어서 적게 쓴다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주류가 되어야 하고, 풍요와 경제성장과 개발로부터 벗어나는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하겠죠. 네 시간만 일하고, 그 대신 대부분의 것들을 만들거나 품앗이, 두레 등을 되살려 교환해 쓰는 모습으로 가야 해요. 그것과 더불어서 돌봄노동이나 자급노동, 살림노동 같은 데에 젊은 성인 남성이 어떻게 들어오게 할 것인가 하는 논의를 같이 해야 합니다. 자칫 계속 여자들만 그 노동을 하게 될 수 있는데, 젊은 성인 남성이 지역공동체에서 일하고 살림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문화를 바꾸는 문제겠죠.

 

장주영 > 노동은 고달픔과 보람이 공존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다 같이 고달픔은 줄이고 보람은 늘리는 것, 여가를 즐기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전환이나 대안이 되지 않을까요?

 

주요섭 > 고맙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노동의 전환이랄까, 역시 좋은 일 혹은 의미 있는 노동으로 모아질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는 노동 시간 단축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본소득 등 사회적 보장으로 귀결되는 것 같고요. 다루지 못한 부분도 많고, 몇몇 주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의 대안을 탐색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