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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농사 - 손과 발, 몸뚱이에 새겨진 오랜 기억
2016-06-30 15:17:00

* <모심과 살림> 2호(201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농사 - 손과 발, 몸뚱이에 새겨진 오랜 기억

 

백승우 (2001년 귀농해 현재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꾼으로 살며 농업, 농촌 관련 글을 쓰고 있음.)

 

 

들어가며

다 모르고 조금 아는 것에 대해 씀

 

이 글의 한계부터 분명히 하고 시작해야겠다. 농사에 대한 얘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농사는 아마 전 세계 각 지역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해가 차가운가, 따뜻한가, 뜨거운가, 긴가, 짧은가, 땅이 넓고 평평한가, 비탈지고 좁은가, 흙이 검고 기름진가 허옇고 메마른가, 비가 잦고 많은가, 드물고 적은가, 산이 많아 물을 머금었다가 고르게 내보내주는가, 아니면 평지가 넓어 물을 머금지 못하고 한꺼번에 흘려보내고 마는가, 땅이 하늘에서 가까운가 먼가, 땅에 얹혀사는 사람들이 빼곡한가 성긴가 등등에 따라 농사는 다 다를 것이다. 한마디로 보편적인 농사는 없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농사를 짓는 지역은 매우 좁다. 기껏해야 요하 동쪽,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땅과 한반도, 일본 정도인 것 같다. 이 세 지역은 나라가 구분되어 있을 뿐이지 산과 물과 바람과 풀과 나무는 다르지 않다. 농사에 대한 내 앎은 그러니까 동북아시아 좁은 지역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농사는 또 너무나 오랜 것이어서 시대마다 다 달랐을 것이다. 아주 느리고 더디기는 했겠지만 씨앗도 달라졌을 것이고 농사짓는 도구나 기술, 방법, 사회적 환경, 즉 토지 소유 방식이나 세금 내는 방식 같은 것들도 계속 변화해 왔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쌀의 경우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지었을 리 없다. 논의 넓이를 헤아리는 말 중에 ‘마지기’가 아직 살아 있다. 한 마지기, 두 마지기 이렇게 쓰는데, 지역마다 한 마지기 면적이 다 다르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한 마지기가 많게는 250평에서 적게는 120평까지다. 80평 한 마지기가 있다는 얘기도 얼핏 들은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다른가?

 

마지기란 말은 ‘말지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락 한 말을 뿌려서 농사짓는 논의 면적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한 말 두 말 하는 ‘말’은 부피 개념이다. 무게가 아니다. 정교하게 무게를 헤아리는 저울보다 일정한 크기의 그릇을 만들어 기준을 삼는 편이 더 쉬웠기 때문에 저울보다는 말이 널리 쓰였을 것이다. 열 말이 한 가마다. 가마는 일제 때부터 쓰인 단위다. 그 전에는 섬 혹은 석이 쓰였다. 말질에 도통한 사람은, 쌀이나 나락을 받을 때는 나락이나 쌀알을 가지런히 눕혀서 말질을 하고, 내줄 때에는 쌀알을 다 일으켜 세워서 말질을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온다. 땅이 기름지고 날이 늦게까지 따뜻한 지역에서는 씨앗을 성기게 뿌려야 한다. 포기벌기가 잘 돼서 장차 크게 넓게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씨앗 하나가 자라서 차지할 자리를 충분히 두어야 한다. 그래야 씨앗도 아낄 수 있고 수확량도 많다. 이때 씨앗 한 말로 지을 수 있는 논이 가장 넓게는 250평 정도 된다는 얘기다. 한편 봄에 늦게까지 서리가 내리고 가을에도 일찌감치 추워지는 데다가 땅도 척박한 산간 지역은 장차 다 자란 포기 하나하나가 차지할 자리가 좁다. 다 커 봐야 조그만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비교적 촘촘하게 씨앗을 많이 뿌려야 일정한 면적에서 가장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가장 촘촘하게 뿌리는 게, 대략 나락 한 말을 120평 정도 되는 땅에 뿌린 것이다. 이것이 ‘마지기’라고 하는, 논을 헤아리는 말에 대해서 내가 들은 설명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다소 길게 마지기에 대해 자세히 쓴 이유는 “뿌린다”에 있다. 씨앗을 뿌리는 농사가 보편적이었을 것이란 소리다. 지금과 같이 모를 먼저 길러서 무논에 옮겨 심는 방식은 긴긴 농사 역사에 비춰보면 극히 최근에 발생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해서도 추측할 따름이지 잘 모른다. 내 앎이 가 닿는 시간의 거리는 매우 짧다.

 

이 글은 연구가 아닌 경험에 의지한 글이라서,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시공간의 제약이 매우 분명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시작한다. 이를테면 자연환경이 우리와는 전혀 다를 것이 틀림없는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 서기 1,200년쯤에 혹은 지금,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농사짓고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전혀 모른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고 아메리카도 마찬가지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전혀 모른다.

 

흔히 농사는 하늘이 짓고 사람은 거들 뿐이라고 한다. 빈 소리가 아니다. 하늘은 자연이다. 마치 갓난아기가 하루도 빠짐없이 자라듯이 땅에 떨어진 씨앗은 하루도 빠짐없이 제 힘으로 자란다. 그래서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나왔을 테고, 하늘이 하는 일 거드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망 속의 개체이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늘 다른 ‘사람’이다. 사회적 조건을 분리해서 떼어버리면 구체적인 사람이 없다. 비유하자면 집단생활을 하는 개미나 꿀벌을 관찰한다고 할 때, 집단과 동떨어진 개미 한 마리, 벌 한 마리가 하는 일에만 눈길을 둬서는 그 개미나 벌이 왜 그 일을 그렇게 하는지 올바르게 알기 어렵다. 한 마리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가 함께 살아가는 걸 봐야 비로소 생명체 하나하나가 하는 일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글에서 나는 힘이 닿는 대로 논밭과 집안, 마을을 오가면서, 옛날과 지금을 넘나들면서, 농사를 짓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써 보려 한다.

 

 

‘저녁’뿐만 아니라 ‘아침’도 있고 ‘점심’도 있고

게다가 ‘새참’도 두 번이나 있는 삶을 산다

 

내 머리 속에 꽤 깊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다. 자다가 깨어나 보니 동네 아저씨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밥을 잡숫고 계셨다. 둥그런 밥상에 둘러 앉아 고봉밥을 맛나게 잡쉈다. 고봉밥은 크고 깊은 ‘스뎅’ 밥그릇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밥이다. 밥그릇 안에 담긴 만큼 밥그릇 위로도 밥이 솟아 있다. 고봉밥은 먹을 줄 아는 사람만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저씨들은 숟가락으로 밥을 착착 접어서 한 숟가락 가득 뜬다. 그 위에 김치 쪼가리를 하나 얹는다. 입이 찢어질 만큼 크게 벌리고 한 입 가득 몰아넣는다.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한참 씹다가 된장국물 한 숟가락 떠 넣는다. 농사를 짓고 살아서 그런지 유난히 그때 봤던 그 장면이 점점 더 또렷해졌다. 나도 요즘은 그때 그 아저씨들처럼 밥을 먹는다. 꿀맛이다. 그날 아저씨들은 하루 종일 지게질을 하셨다. 멀리 있는 논에서 우리 집 마당으로 볏단을 져 나르셨다. 볏단 나르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라 다른 일 품삯의 배반(150%)을 쳐서 셈했다.

 

일은 새벽 고봉밥 먹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만일 부엌에서 고봉밥을 지어내줄 엄마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쌀쌀하고 해 짧은 가을, 엄마는 일 오신 아저씨들보다 못해도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셨을 것이다.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 뜨물은 따로 받아서 등겨 두어 줌 놓아서 돼지한테 갖다 주고, 볏단으로 불을 지펴서 왕겨를 넣어 불을 세차게 몰아 때다가 밥솥 옆구리로 피식피식 밥물이 끓어 넘치면, 뚜껑 열어 주걱으로 잘 뒤적여주고, 불길을 낮춰 약하고 은은하게 때면서, 밥솥에서 밥물이 끓어 넘치지 않고 뜸이 잘 들게, 행주를 물에 적셔가며 연신 솥뚜껑을 닦아 주셨을 것이다.

 

농사는 만사萬事다. 눈 뜨고 일어나면서부터 일은 시작된다. 이불 개고 방 쓸고, 방바닥 닦고 세수하고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어서 밥 먹고 숭늉 마셔야 논밭으로 나간다. 가족 중 한 사람은 남아서 설거지하고 새참 준비하고 빨래도 하고 가축도 돌봐야 한다. 요즘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농사꾼은 늘 뭔가 하고 있는데, 다 일이다. 바싹 마른 콩 터는 것으로 가을걷이가 대충 끝나고 날이 점점 추워지면 겨울 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집 단도리도 해야 하고 땔감도 마련해야 한다. 농사가 한창일 때라도 상하수도나 전기가 말썽을 부리거나 문짝이 틀어져서 이가 잘 안 맞기라도 하면 농사일 잠시 미뤄두고 팔 걷어 부치고 연장 들고 매달려야 한다. 논밭에 나가 하는 일은 살아가는 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논밭 일이 바쁘고 급할 때는 쉬는 것도 일이다. 쉬어야 할 때 못 쉬면 일을 할 수 없다. 한 여름철 낮잠은 밤잠만큼이나 중요하다. 틈틈이 마실가서 이웃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일이다. “아무개네 밭이 도지 몇 가마에 나왔다더라.” “아무개한테 연락하면 품을 얻을 수 있다더라.” “아무개네 집 콩이 실하고 소출이 많으니까 구해서 씨 하면 좋다더라.” 같은 고급 정보도 마실가서 수다를 떨어야 얻어들을 수 있다.

 

농사는 그 자체로 일이고 곧 삶이다. 일상과 일이 구분되지 않는다. 자본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의 노동은 없다. 간혹 특별한 형태의 고용, 즉 머슴과 주인의 관계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농사는 뼛골 빠지는 일이다

- 빠른 세대교체와 늘지 않는 인구

 

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형제자매는 일곱이다. 어머니는 여덟을 낳으셨고 하나를 잃으셨다. 다른 집도 가족 숫자가 우리 집과 비슷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농촌에서는 어느 집이나 어느 시대나 자식을 이만큼씩 낳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수원 백가 32세손인데 시조부터 나까지 이어지는 가계도를 보면 거의 외줄로 그어져 있다. 가계가 번성하지 않았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인구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삼은 이래,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숫자는 천만 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인구밀도는 낮았고 세대교체는 빨랐다. 인구는 거의 늘지 않다시피 했다. 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한정된 농지와 고된 농사일에 있다고 본다.

 

애들은 자라서 열다섯 살 즈음이면 벌써 어른 한 몫이다. 스무 살 즈음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얘기하기 편하게 아버지라 하자.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한 몫의 일을 해내는 때는 다시 열다섯 살 즈음이다. 아버지는 서른다섯 살이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는 이제 마흔인데, 손주를 봤다. 이런 방식으로 죽 나가면 할아버지(60세)-아버지(40세)-아들(20세)-손주(1세)로 구성되는 부계 4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 되는데, 이 집의 큰일을 도맡아 하며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맡은 대들보는 누구일까? 물론 농지는 한정돼 있다. 한 집안이 지어먹는 농지는 지금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경작권만 있지 처분권은 없는 집안 공유지로서의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땅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사람이 위에서 아래로 물처럼 흘러 지나갔을 것이다. 만일 아들이 둘이라면, 집안 농지의 경작권은 당연히 맏이에게 가겠지만, 만일 맏이가 가족 부양을 거부한다면, 경작권은 둘째에게 가는 식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는 적당한 때에 아들에게 지은 집을 넘겨주고 물러나 앉아야 한다. 사십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쯤 시작해서 마흔 다섯 살까지 삼십 년을 일했으니, 이제 더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 만큼 일한 것이다. 말이 그렇지, 소의 도움을 조금 받는다고는 하지만 농기계 없이 몸으로 때우면서 삽이나 쇠스랑, 가래 괭이 호미 같은 걸 들고 논밭을 일궈 먹고살 만큼 소출을 내야 하는 농사는, 삼십 년이 아니라 삼 년, 삼 년이 아니라 석 달만 하라고 해도 우리 같은 약골은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 한다. 먹고사는 농사는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뼛골 빠지는 일이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분들께서 들으면 기분 나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허깨비 같다고 해도 어른 남자가 있어야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다. 지금도 그렇다. 자식들이 다 도시로 나가서 노인 부부만 사는 집을 들여다보면,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자기 땅을 부치며 살지만, 바깥 노인네가 돌아가시면 자기 땅을 도지로 내놓고 할머니들은 품을 팔러 다니신다. 아들을 낳지 못 하면 양養을 들여서라도 아들자식을 두려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이듦’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아들자식은 일할 수 있는 힘을 잃은 뒤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의지처였을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다시 반복해서 얘기해보자면, 농사가 중심인 사회에서 ‘일’은 농지가 한정돼 있다는 조건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빠른 세대교체와 일정한 인구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농사일의 강도가 스스로 인구 억제력을 가질 만큼이나 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때 맞춰 일 한다

- 어찌 해 볼 수 없는 완전한 종속

 

얼었던 땅이 녹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짧았던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들처럼, 농부들은 일제히 일을 시작한다. 일단 시작하면 땅이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 심을 때 심어야 하고, 물 댈 때 물 대야 하고, 김맬 때 김매야 하고, 거둘 때 거둬야 한다. 누구나 똑같다. 자연은 사람들 사정을 눈곱만큼도 봐주지 않는다. 미처 김을 다 못 맸으니 딱 한 시간만 있다가 비를 내려달라고 아무리 사정해봐야 헛일이다. 바람이 구름 몰고 와서 쏟고 싶을 때 쏟아낸다. 때를 놓치면 다음 일이 몇 배로 힘들어진다. 때를 놓치면 수확이 보잘 것 없다. 오랜 경험으로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농사꾼이라면 누구나 때 맞춰 일하고 싶다.

 

봄에 심는 수미 감자는 100일을 자라야 여문다. 우리 동네에선 빨라봐야 3월 20일 지나야 땅이 녹는다.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중부지방까지 치고 올라오는 때는 7월 10일 전후다. 일 년 중에 가장 해가 뜨거워지는 때는 7월 20일부터 8월 15일 사이다. 이른바 삼복더위다. 감자를 캐지 않고 밭에 두면 큰 것부터 썩는다. 어떻게든 7월 10일 전에 감자를 밭에서 다 꺼내야 한다. 그래야 아주 뜨거운 날 피해서 고생도 덜하고 감자도 안 망가뜨릴 수 있다. 그래서 7월 10일을 기준으로 역산해보면 4월 1일 이전에 감자를 심어야 한다. 3월 20일에서 4월 1일 사이에 거름 내고 로터리 치고 두둑 만들고 비닐 씌우고 씨감자 잘라서 심어야 한다. 이때는 비도 잦다.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바로 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루나 이틀 기다렸다가 밭에 들어가야 한다. 마음 바쁘다고 진 밭에 들어가서 흙을 헤집어 놓으면 흙이 딱딱해져서 삽도 안 들어가는 땅이 되고 만다. 일하기로 잡아놓은 날에 비가 와버리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애가 바싹바싹 탄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농부들이 빚을 내서라도 비싼 농기계를 집집마다 다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한테 부탁해서 하다보면 내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일을 해야 할 때 못하면서 일이 밀려가기 쉽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순발력 있게 일을 탁탁 치고 나가지 못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농사는 농사대로 망가져버린다.

 

집집마다 감자를 심는데, 일은 많고 일에 동원할 자원은 부족하다. 흙을 헤집어 자리를 만들고 자른 씨감자를 넣고 모종삽으로 흙을 두어 삽 떠서 씨감자를 덮는 일을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한다고 할 때, 꾀부리지 않고 줄기차게 일할 수 있는 숙련된 일꾼일 경우 하루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150평에서 200평 정도로 본다. 가령 2천 평에 감자를 심으려면 감자 심는 일꾼만 최소 열 명이 필요하다. 일이 중간중간 끊기지 않고 계속 심어나갈 수 있게 길에서 밭 가운데로 씨감자를 날라다 주는 품도 있어야 한다. 점심밥과 오전 오후 새참도 준비해야 한다. 사람이 딱 맞고 일이 걸림 없이 가면, 예를 들면 씨감자가 부족해서 다 못 심는다든지 일하는 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없이 순조롭게 가면 하루 만에 일이 끝난다. 열두 품이 들어간 걸로 보면 되는데, 혼자서 12일 동안 일해도 이천 평 감자밭 감자를 다 못 심는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몸 아픈 부위가 더욱 심하게 아파서 날이 갈수록 일의 양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심어 가는 중간에 반드시 딴 볼 일도 생기고 비도 온다. 일은 질질 늘어지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쳐간다. 어떻게든 열두 품을 만들어서 하루에 싹 해치우는 게 최고다.

 

일을 다 해내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누구나 내 일을 먼저 하길 바란다. 계속 비유해 말하자면 한 동네 농사꾼들은 동시에 출발해서 동시에 골인해야 하는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혼자서는 뛰어넘기 힘들고 힘을 합해야 건널 수 있는 장애물이 자꾸 나타나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자원을 총동원해서 한두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가 성공하기 위한 경합을 벌인다고 말할 수 있다. 품앗이나 두레는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기계가 없던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계로 웬만한 일을 다 하는 요즘에도 큰일은 혼자서는 못 한다. 여러 사람이 손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다.

 

혼자서 하는 일도 물론 그 나름 일하는 맛이 있지만, 우르르 몰려가 서로 어울려서, 혼자서 하면 여러 날 매달려 해야 할 일을 단숨에 해치우는 통쾌한 맛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매년 봄에 하우스 파이프 박는 일을 품앗이로 한다. 하우스 파이프는 애호박 덩굴을 유인할 지줏대 역할을 하는데, 8미터짜리 파이프를 반원으로 둥그렇게 말아놓은 것이라서, 혼자서보다 둘이서 다루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하다.

 

품앗이가 깨지지 않고 잘 가려면 ‘무조건’의 원칙이 잘 지켜져야 한다. 내 일이 아무리 바쁘고 급해도, 서로 품앗이 하는 사람이 일할 날을 잡으면 무조건 가야 한다. 일단 일을 가면 일 주인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안 맞으면 깨진다. 나는 가서 일 해줬는데, 내가 필요할 때 불렀는데 안 오면 계속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 온 사람이 주인 노릇하려 들면 그 사람과 계속 일하기 어렵다. 네 품 하나와 내 품 하나를 맞교환하는 방식의 품앗이나 같은 일을 순번을 정해 차례대로 해 나가는 방식의 두레는 잘 들여다보면 등가교환이 아니다. 손이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다. 땅이 많은 집도 있고 적은 집도 있다. 일을 잘 하는 데 따르는 보상은 화폐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웃들의 ‘인정’과 ‘존중’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때를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경합하고 협력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경합이 아니다. 목표는 모두가 이기는 것이다. 누구에게 이긴다는 말인가? ‘때’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이다. 도무지 어찌 해볼 수 없는 완전한 종속이다. 하늘, 혹은 ‘때’라는 절대적인 조건 아래서 농부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양보도 하고 고집을 세우기도 한다. 보통 선대에서 이어 내려오는 전통은 그것이 전통이라서 지켜진다기보다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라서 이어진다.

 

 

농사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 누구도 어쩌지 못 하는 완전한 자유

 

화창한 봄날이었다. 얼었던 땅이 녹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얼었다 풀린 질척한 땅을 말렸다. 아내가 호미를 들고 집 앞 텃밭에 앉아 밭을 일구고 있었다. 상추씨를 뿌릴 참이었다. 동네 할머니 서너 분이 밭 옆으로 난 길을 지나가시다가 아내가 일하는 걸 보고 소리를 냅다 지르셨다.

 

“새댁! 일하면 안 돼. 일하지 마!”

 

이미 구댁이 된지 오래인 아내지만 새로 이사 들어온 젊은 아낙이라 동네 할머니들한테는 새댁이다. 난데없는 할머니들의 외침에 아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요?”

 

할머니들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호미귀신 붙으면 죽을 때까지 안 떨어져!”

 

할머니들은 자기들끼리 어린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연신 호미귀신을 들먹이면서 지나가셨다. 호미귀신은 한번 붙으면 안 떨어진다. 농사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때 맞춰 거름을 내고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가꿔서 마침내 먹는다. 농사는 그래서 ‘지어 먹는다’고 말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마지 못해 도시로 나간 할머니들은 도시에 나가서도 빈 땅만 보이면 씨앗을 뿌린다. 유심히 둘러보면 뭔가 심어 먹을 만한 땅에는 어김없이 먹을 만한 게 심어져 있다. 농사를 지었던 사람에게 농사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다. 이를 ‘경작본능’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재미삼아 얘기를 조금 더 밀고나가 보자. 인간에게 본능을 심어서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DNA라고 한다면, ‘농사DNA’라는 걸 가정해 볼 수 있다. 우리 속에는 최소한 일만 년 정도의 역사를 갖는 농사DNA가 장착돼 있다. 실제 DNA는 아니지만 DNA 비슷한 농사DNA와, 여기서 비롯되는 (실제 본능은 아니지만 본능 비슷한) 경작 본능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재미있다. ‘누구나 농사지을 때 행복하다’, ‘혹은 농사를 지으면 행복을 느낀다’, ‘혹은 행복하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등이다. 본능에 충실할 때 사람은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 배불리 먹었을 때, 시원하게 똥 누었을 때 느끼는 그 평화로움 말이다.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갈고, 심고, 김매고, 베거나 뽑고, 묶고, 날라서, 말려서 털고 고르면서 느끼는 쾌감이 있다. 게다가 그 결실을 먹기까지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사지을 때가 가장 좋다고, 행복하다고, 다른 일 신경 안 쓰고 그저 농사만 짓고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흔히 말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보거나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도 땅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농사는 의식이 아니라 손과 발, 몸뚱이에 새겨진 오랜 기억이다.

 

나는 농사 DNA가 아마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 그렇게 추정되는 사람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를 멀리 쿠바에 가서 보았다.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는 불과 400년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모조리 살해되고 이주해온 사람들이 땅 주인이 되었다. 그 사람들은 광산을 찾아 파헤치거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로 일했을 뿐이다. 사회혁명 이후에는 도시로 몰려들었다. 인구 밀도가 낮은 도시에는 빈 땅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사람들은 굶주리면서도 땅을 일구지 않았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농사를 가르치면서 억지로 만들어낸 떼기 밭이 듬성듬성 아주 조금 있을 뿐이다. 없는 것을 봐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뭔가가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는 것, 아하, 일만 년이 넘는 농사 전통, 농사DNA, 경작본능,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했다.

 

땅 위에서 농부는 왕이다. 작물과 농부 사이에서 농부는 절대적인 무한한 권력을 가진다. 심고 싶으면 심고, 뽑고 싶으면 뽑는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린다. 모든 권한이 농부 손에 있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쉰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조언이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남의 농사에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 된다. 금기禁忌다 (물론 딱 하나 예외가 있다. 그 땅을 먼저 지었던 사람, “부모”는 예외다.). 그래서 농민들은 대체로 독불장군이 많다. 쉽게 꺾이지 않는 고집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하늘 아래, 땅 위에서 보내는 농사꾼의 본성 비슷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무시무시한 자연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명 본연의 수성獸性이 남아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하늘에 대한 완전한 종속, 땅 위에 나는 것들에 대한 완전한 지배는 서로 쌍을 이룬다. 완전히 종속돼 있으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동시에 누린다.

 

 

내가 누구인지 다 안다

-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는 편안함

 

논밭에는 그 논밭을 지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십 년 전에 내가 화천으로 들어오면서 정부에서 빌려주는 돈을 얻어 산 땅은 홍천집 아주머니와 송씨 아저씨가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서 처음으로 마련한 땅이었다. 그전 땅 주인이었던 황씨 아저씨는 고아로 어렸을 적에 동네로 흘러들어온 사람인데, 젊어서 일을 너무 많이 한 데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젊은 사람이 아깝게 일찍이 병을 앓았다. 밤에도 관솔불 밝히고 돌밖에 없는 산비탈 땅에서 지게로 돌을 져 날라 가며 밭을 만든 사람이라 ‘도깨비 황씨’로 불렸다. 아직 젊은 황씨 아저씨 부인 최씨는 이웃마을 00리에서 시집왔다. 최씨 집안은 아들이 둘이고 딸이 하나였는데, 아들 하나는 지금도 그 마을에 살고 있다. 황씨 아저씨와 최씨 부인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큰 애도 아직 어린 데다 이제 갓 태어난 핏덩이를 버려두고 툭하면 술주정부리는 병든 남편을 피해 최씨 부인이 집을 나갔다. 논밭에 얽힌 얘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홍천집 아주머니와 송씨 아저씨 그리고 홍씨 아저씨와 최씨 아주머니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동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삼사 대代를 오르내리며 장대한 대하드라마로 오래오래 펼쳐진다. 그러다가 얘기 맨 끝에 가면 드디어 나도 등장한다. 송씨 아저씨가 칠 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홍천집 아주머니가 혼자되셨는데, 도시로 나간, 내 또래쯤 되는 둘째 아들이 꽃 도매상을 하다가 빚을 많이 지는 바람에 사는 집에서도 쫓겨날 처지가 되니까 보다 못한 홍천집 아주머니가 벌써 일 년 전에 팔려고 내놨는데 작자가 없어서 못 팔던 땅을 이제 나에게 팔게 되어 한시름 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용호리 000번지 땅은 동네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의 장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농사꾼이 짓는 논밭은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장구한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역사의 장場이다. 지금 농부가 호미나 삽을 들고 논밭에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그 긴 세월에 온몸으로 동참해서 역사의 맨 끝장을 써내려가는 중인 것이다.

 

삼대三代가 공덕을 지어야 명당에 터 잡고 산다거나 삼대가 공을 들여야 인물이 난다거나 시골 내려가서 동네 사람 되려면 삼대가 걸린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있다. 툭하면 삼대가 나온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홍 아무개가 기초단체 의원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기본적인 검증이 삼대에 걸쳐 이루어진다. 그놈 할애비가 전에 문중 땅 다 팔아먹은 그 영감탱이라든가 뭐 이런 흠이 있으면 홍 아무개는 이미 글렀다. 사람들은 함께 살면서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그 집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아이가 언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는지 뭘 해서 벌어먹었는지 다 안다. 함께 내내 살아오면서 서로 다 봤다.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고 거짓으로 꾸며 말해봐야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그러니 시골에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람이라면 그 집안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대단히 높은 성취를 이룬 훌륭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진짜 드물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 이루어진 일도 다 안다. 함께 살았고 함께 살아 왔으니 모를 게 없다. 바꾸어 얘기하면 애써 꾸미고 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꾸며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얘기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살아도 “된다”.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서로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농사꾼은 제 삶의 주인공이다. 생긴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지어서 내가 먹고 사는데, 특별히 남에게 피해 줄 일도 없고,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특별히 피해를 볼 일도 없다. 좋으면 어울리면 되고 싫으면 피하면 된다. 그저 생긴 대로 살면 된다.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조건은 없을 것 같다.

 

 

마치며

농사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까?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업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 산다. 대한민국만 해도 도시화율은 90%에 다다랐다.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산천을 따라 넓게 퍼져서 살던 사람들이 좁은 지역에 몰려들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사는 방식은 인류에게 낯설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낯선 삶의 방식은 개인·사회·지구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개개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스스로 혹은(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하고(받고) 존중하지(받지) 못하는 인간성 상실의 문제,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과 연대의 사슬이 끊어지고 마치 정글처럼 경쟁적 관계만이 부각됨으로 해서 발생하는 공동체 붕괴의 문제,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떠받치기 위한 심각한 자연환경 파괴의 문제 등이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은 “우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 소위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인류 문명의 현재를 위기로 인식하고 대안을 찾고자 할 때, 농사가 거론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농사는 가장 손쉽고도 가장 확실한, 검증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농사 말고 다른 대안이 있을까?

 

농사짓는 일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하는 노동과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이 점을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노동이라는 단어와 일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구분해 사용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을 하는 농부는 자기 삶의 주인이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공장이나 사무실이 아닌 논이나 밭에서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일한다. 농부와 농부 사이의 경쟁과 협력은 자연이 강제하는 조건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농부들은 위계적 질서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 연대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를 이어가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삶의 터전이 땅이고, 농부는 웬만해서는 농사짓는 땅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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