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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성장위기 시대, 살림운동의 확장을 위하여
2016-07-04 18:15:00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성장위기 시대, 살림운동의 확장을 위하여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성장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성장의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요즘 분위기를 보면 지금의 시대 상황을 ‘성장위기’로 진단하는 것이 별로 새롭지가 않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정치, 언론, 학계와 사회운동 영역에서도 성장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성장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단과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다. 성장의 어떤 측면이 문제인지, 그것을 왜 위기로 보는지에 대해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저성장’ 상황을 일시적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 위기(crisis)로 보는 배경에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성장하락, 침체 또는 불황의 국면이 어떤 특별한 충격적 사건이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믿고 의지해 온 자본주의 시장경제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늪에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어서, 오류에 대한 처방이나 오작동의 개선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기 여파가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성장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부채상환 능력은 불확실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정치연구소가 미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절반(51%)이 미국 경제의 기반인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1)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불만족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미국 내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미국 대선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일으키는 돌풍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내재적 모순이 성장의 한계 상황을 맞아 증폭되면서 신뢰의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선으로 보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이용해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맞지가 않다. 인류 역사에서 경제성장률이 빠른 증가세를 보인 것은 지난 세기 이후의 일로, 그전까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은 1% 미만에서 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고속성장, 고도성장의 길에서 벗어나 저성장 상태로 가는 지금의 상황은 인류 전체 역사에서 보면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현상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지금의 (경제) 성장위기가 우리 삶과 밀접한 실질적인 위기들을 증폭·확산시킬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성장의 위기라는 변화된 상황이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적인 가치와 제도, 구조, 시스템은 여전히 성장주의 시대의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온통 시선이 ‘저성장으로부터의 빠른 탈출’에 쏠려 있다. 따라서 환경, 노동, 인권, 보건, 복지, 교육 등 중요한 의제들은 ‘성장 이후’로 밀려나고, 심지어 ‘경제살리기’ 논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지난 시절 개발국가의 성장주도 체제를 뒷받침한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익숙한 모습을 성장위기 시대에 새삼 확인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장의 위기가 실제 삶의 영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예측과 대비는 매우 부실하고 부족하다. 뿌리 깊은 ‘성장 중독(growth fetish)’ 증상이 새로운 변화를 읽어내는 눈을 퇴화시키고 사전예방적인 대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장의 위기가 가져올 새로운 위기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탱해 온 성장사회의 역할과 비중만큼 성장의 위기로 인한 사회적 변화와 충격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부정적 영향은 특히 사회 ·경제·생태적 약자들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득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장위기로 인한 소득 감소와 일자리 상실은 생계와 생존 자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당연히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커지게 되고, 더욱 심화된 각자도생의 경쟁으로 증폭되는 갈등과 불신은 사회적 불안과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혐오범죄’ 등 익명의 대중을 향한 무차별적 분노 표출과 충동적 폭력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불안사회는 불신사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자녀에게 사랑과 우애, 협동보다는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는 법,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법부터 가르치게 된다.

 

삶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연결된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단기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가진 처방책을 찾게 되고, 이런 분위기는 결국 권위주의적인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게 만든다. 벌써부터 경기 침체와 삶에 대한 불안감을 바탕으로 한 ‘분노의 정치’가 미국과 필리핀의 대선 과정을 흔들고 남미와 유럽 등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경제 살리기’를 최고 덕목으로 삼아 권위주의적 정치지도자를 선택했다.

 

성장의 위기는 생태적 위기를 더욱 부추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환경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 결국 생태계 파괴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었다. 성장의 위기 상황은 경기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확대와 소득창출 및 소비 증대 논리의 명분을 강화시켜, 결국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기존의 보호장치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성장의 한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자본의 생존 전략은 이런 위기적 상황을 더욱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성장위기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도 큰 위협이 된다. ‘지역’, ‘공동체’, ‘가족’, ‘생태’, ‘친환경’, ‘농업’, ‘건강’, ‘치유’, ‘휴식’ 등 삶의 대안적인 가치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영역들은 돈벌이 경제를 움직이는 자본의 입장에서도 매력 있는 투자 대상이자 소비처이기 때문이다. 성장위기 시대가 가져다 줄 변화와 도전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대응 노력이 필요한 때다.

 

 

‘탈성장’으로 성장위기 ‘이후’ 를 준비하자

 

탈출 또는 전복을 꿈꾸는 사람들

성장의 위기는 이미 우리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들은 성장 시대가 만들어 낸 부작용 자체로 힘들어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성장경제 체제를 지속하거나 연착륙시키는 데 대한 관심과 기대가 별로 없다. 희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오히려 탈출과 전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래세대 청년들의 현실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 수준이다. 21세기에 신계급론(수저론)이 나오고 , ‘이번 생은 망했다’면서 장차의 삶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린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자신이 태어난 곳(사회 또는 국가)을 ‘지옥’으로 부르며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이민계'가 유행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서 상대적으로 삶의 질이 높다고 하는 국가로 삶터를 옮기기 위해 '탈'한국을 위한 목돈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 국적 포기자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국적 포기자가 2015년 기준 1,980명으로 매우 높은 데다 전년보다도 24% 증가했다. 귀화자보다 국적 포기자가 많은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가가 우리나라다. 올 1월 한 여론조사기관의 이민 관련 설문조사에서, 전체 10명 중 6명 정도가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충격적인 답을 내놓기도 했다.2)

 

그런가 하면 올해 정초에 한 언론사에서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붕괴와 새로운 시작’을 원했다. 3) 과도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서 행복과 여유, 정신적인 만족, 다양성의 존중, 공동체, 소통 등을 선택의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비슷한 결과는 작년의 다른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2015년 2월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주최의 토론회에서 한국인이 바라는 미래상에 대한 청년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응답은 23%인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응답은 42%로 가장 높았다.

 

문제는 이처럼 기존의 성장 방식이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인 데다 지금은 성장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안에 대한 준비 노력은 매우 부족하고, 오히려 기득권 지키기를 목적으로 한 정파적 갈등과 ‘낡은’ 성장전략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렇게 준비 없이 맞게 될 성장위기 상황이 가져다 줄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성장위기의 대안을 ‘탈성장 ’에서 찾자

지금의 성장위기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 수준을 넘어서 선진국과 신흥 국가를 아우르는 세계 전체의 문제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다가올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도 어렵다. 위기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진단과 함께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위기 ‘이후’의 사회를 진지하게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성장의 위기 상황에서 대안적인 미래사회의 전망을 찾아가는 데 있어 ‘탈성장’을 주요 가치로 삼을 필요가 있다. 탈성장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하게 생존하기 위해 가야 할 중요한 방향을 담고 있다. 특히 국가주의와 성장주의를 강력하게 결합시킨 독특한 성장시스템을 만들어 온 우리나라가 큰 틀에서 방향전환을 하는 데 있어 탈성장은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면한 성장위기 시대를 도피성 탈출이나 대안 없는 전복의 방식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탈성장은 기존 사회나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오기’를 넘어서 적극적인 ‘구출하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저성장, 제로성장, 마이너스성장과 비교할 때 탈성장은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 전자가 현상이나 경향을 말한다면 후자인 탈성장은 목표와 방향, 의지를 담고 있다. 탈성장은 ‘성장’ 자체로부터 시선을 돌려서 다른 가치기준으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는 것으로, 단편적인 정책이나 프로그램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물론 탈성장에 대한 논의가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가 일어나고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4)라는 보고서가 발간되던 당시 탈성장 논의가 꽤 활발했다. 하지만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사회주의권 붕괴,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증대 등으로 탈성장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주춤했는데, 전 지구적인 생태위기와 함께 성장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탈성장에 대한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물론 탈성장이 가진 문제의식을 현실에서 구체화해내기 위해서는 짚어 봐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탈성장 논의들 속에는 생태주의, 아나키즘, 풀뿌리, 공동체주의 등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그만큼 지향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합의된 전망이 구체적이지 않고, 이행 전략과 실천 프로그램도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탈성장론자들은 현실을 무시한 성장 반대론자, 문명의 진보를 거스르는 과거 회귀론자 등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성장위기 상황에서 대안으로서 탈성장을 이야기하려면 사회와 단절된 자급자족의 이상향을 꿈꾸는 비현실주의자라는 혐의에 대한 답으로서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전망, 성장의 위축에 따른 결핍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해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탈성장 사회의 징후들

탈성장 사회를 향한 거대한 전환은 결국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과 변화들을 통해 시작된다. 이 점에서 이미 우리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는 탈성장 사회의 징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경쟁과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성장사회 속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 선진국가 중산층을 중심으로 노동과 소득, 소비 전반을 단계별로 줄여나가는 ‘다운쉬프트족(downshifters)’의 등장은 탈성장 사회를 향한 중요한 신호로 보고 있다.5)

 

우리 사회에서도 과잉 노동과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아이들을 포함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던 일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산업사회 임금노동 체계에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여가 활동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 농촌 지역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는 귀농·귀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 도시민들 가운데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열망과 함께, 6) 협동과 나눔을 통한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성장이 고용을 보장하고, 고용이 소득을 보장하고, 소득이 생계와 행복을 보장한다는 공식이 성장위기 시대를 맞아 설득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 빈곤’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 대신에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최근 들어서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도 탈성장 사회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과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한 삶의 자립과 살림운동

 

자립적 삶은 탈성장의 토대

성장사회를 추동하고 이끌어 온 가치와 제도, 사회 구조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양태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기존 성장체제로부터 ‘거리 두기’와 ‘스스로 서기’의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거리두기’는 성장사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로, 성장 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체질개선 노력을 말한다. 이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급성질환이라면 지금 당면한 저성장 상황은 만성질환에 가깝다는 진단과도 연결이 된다. 마치 사람이 아플 때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심할 경우 외과적 수술을 받기도 하는데, 잘못된 생활습관이 누적된 데 병의 원인이 있다면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오래된 습관과 익숙한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문제 해결도 특별한 정책적 처방책을 찾기에 앞서 성장주의 시대에 확장되고 굳어진 가치와 제도, 구조, 시스템 전체를 ‘다이어트’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성장지표가 만들어 낸 거품을 거둬내고, 소득 감소에 따른 지출 축소 전략을 단계별로 지혜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다이어트 전략의 최종 목적은 빈곤과 궁핍이 아니라 온전한 삶의 주체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따라서 ‘스스로 서기’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성장사회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기반을 만드는 것과 연결이 된다.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외부의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마침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해 보자’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의미가 크다. 자율(自律), 자치(自治), 자립(自立), 자조(自助), 자생(自生), 자존(自尊), 자양(自養), 자작(自作) 등 ‘스스로의 시대’가 열리면서 풀뿌리 생활영역을 바탕으로 한 자립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성장의 위기가 생존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당사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조직하고 삶의 터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역의 생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립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곧 경제 ·사회 ·환경적인 위기가 초래할 충격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완충영역(buffer zone) 을 넓히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높여나갈 수 있다.

 

삶의 자립을 위한 살림운동의 역할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자원과 기술의 투입을 통한 성장률 회복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관계와 자원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살림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서 살림운동은 ‘살림살이 주체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가지고, 협동의 방식으로 집단적인 지혜를 발휘해서, 자립적 삶과 공생의 길을 찾아 함께 실천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살림’의 의미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주로 주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사(house keeping) 노동으로서 산업적 생산노동의 보조적 수단으로 인식되어 오던 것과는 의미의 차원이 다르다.7) 탈성장 사회로의 길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살림’은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거룩한 활동이자, 살림살이 영역에서 삶의 자립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지역과 사회를 서로살림의 관계로 재구성하는 핵심 가치다. 이런 지향을 가진 살림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한살림운동’이 있다. 한살림은 생명의 생산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농민과 함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이끌어 온 여성들의 주체적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들의 활동 영역을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과 사회로 확장시켜 왔다. 내용 면에서도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에다 ‘지역살림’과 ‘마음살림’까지 살림의 영역을 넓혀 왔다. 따라서 한살림운동에는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 있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은 물론이고, 생산공동체와 생활공동체를 복원하고, 농업과 자연생태계를 살리며, 이윤과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과는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등 다양한 차원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먹거리에 기반하되 먹거리를 넘어서, 조합원에 기반하되 한살림의 울타리를 넘어서 살림운동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성찰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과 배제, 단절과 소외를 통한 죽임의 사회를 공생과 협동을 통한 생명살림의 사회로 만들어가려는 살림운동은 한살림 외에도 여러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흙살림’, ‘물살림’, ‘강살림’에서 ‘몸살림’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있어왔고, 자원순환 사회를 위한 ‘되살림운동’과 함께 살림의 경제, 살림의 정치에 대한 논의들이 나타나고, ‘살림’의 가치를 담은 협동운동들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살림운동들은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한 힘을 길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힘의 비결은 ‘협동’에 있다. 사람들은 당면한 삶의 문제를 개인 혼자서 다 해결할 수는 없으며,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 나누며 살아간다. 자립(自立)과 고립(孤立)은 차원이 다르다. 협동운동을 통한 삶의 자립은 성장위기 시대에 필요한 핵심적인 과제다. 탈성장 사회는 자신의 삶을 다른 곳에 맡기는 ‘삶의 외주화(life outsourcing)’ 방식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기 돌봄(self-care)’으로 바꿔냄으로써 가능하다. 생활인들이 자신들의 생활의제를 가지고 생활 현장에서 서로 협동할 수 있는 힘을 살림운동의 확장을 통해 길러낼 필요가 있다.

 

 

탈성장 시대 협동운동과 살림운동의 확장을 위한 과제

 

탈성장과 협동운동의 역할에 대하여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개개인의 고립과 불안, 경쟁을 통해 오히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8) 자본의 자유, 경쟁의 자유가 삶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운데, 개별화된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는 결과적으로 서로 나누고 베풀고 치유하고 돌보는 협동적 삶의 감각과 능력을 퇴화시켜 버린다. 따라서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한 삶의 자립 기반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협동운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만큼 성장위기 시대의 상황에 맞게 자본주의 초기와 성장기에 나온 협동조합 이론과 모델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살펴보면 지금까지 협동조합운동이 성장해 온 데는 성장경제 시대가 만들어 놓은 물질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성장경제와 함께 중산층이 늘어나고 소비주의의 확산과 함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대적 환경은 우리나라 생협을 포함한 협동조합들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당면하게 될 성장위기 시대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으로서, 협동조합에 대한 도전도 상당할 전망이다. 생산자나 노동자 조합원의 소득 증대와 소비자 조합원의 구매력 향상으로 협동조합의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성장위기의 상황은 협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기도 하다. 개별화된 삶의 불안감은 ‘협동적 생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장위기 상황에서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 경우 좁아진 시야에서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을 취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앞당길 수 있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은 공동체 전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개별화된 욕망충족 행위가 어떤 파국적 결말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성장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현재 협동조합은 조합원 욕구의 충족과 필요의 해결은 물론이고, 이웃과 지역, 사회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조합원 욕구의 즉자적인 해결을 넘어서 조합원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관계를 발전시켜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장의 치열한 경쟁 체제에 편입해서 사업적 생존을 모색하거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공공의 책임과 역할을 대행하는 방식으로는 자립을 바탕으로 탈성장 사회로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참여 주체들의 자발성을 상실한 채 외부로부터의 자원 투입과 제도적 기준에 의존함으로써 자연과 사회를 아울러 총체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유기농 본연의 가치까지 퇴색시켜버리는 유기농의 관행화(conventionalization) 현상에 대한 지적이 나오듯이, 협동조합 또한 이런 관행화의 경향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9) 또한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사회적’이란 이름을 단 영역들이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는데, 사회적 전환에 대한 전망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공공의 역할을 대행하는 방식은 자칫 ‘소셜 워싱(social washing)’10)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생산-소비의 경계를 넘어선 살림운동의 확장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넘어서 살림운동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한살림이 펼쳐온 생활협동운동 속에는 생산과 소비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선 서로살림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한살림의 직거래 방식은 단순히 유통과 거래비용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서 생산과 소비 영역 간의 깊은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협동경제 모델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생산과 소비는 하나’라는 가치를 가지고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소비 영역의 분리와 대상화 문제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했고, 농촌은 생산자가 생산 활동하는 생산지로, 도시는 소비자가 생활하는 소비처로 구분해서 보는 인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능적 분업화와 공간적 분리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중요한 생존방식이자 의존성을 토대로 한 분할통치 전략이었는데, 이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한살림운동이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장위기 시대를 맞아 이런 기능적·공간적 분리 현상을 극복하고 자립적 삶의 힘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지역’과 ‘생활’을 중심으로 살림운동을 확장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산과 소비의 깊은 관계와 다양한 만남의 접점들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성장위기로 인한 충격이 지역의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삶의 위기로 나타나는 만큼, 생산-소비-여가-생활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의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의식주와 의료, 교육, 돌봄 등 삶의 기본 필요들을 협동을 통해 공동으로 생산하고 건강한 일자리도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살림운동을 통해 낯설고 위험한 살림살이 공간을 보다 친밀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내는 노력도 중요하다.

 

생산과 소비의 보다 밀도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 영역 속에서 소비의 새로운 가능성을, 소비 영역 속에서 생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도시지역에서는 개별화된 소비자로서 역할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생산협동조직을 만들어 자립에 대한 감각과 역량을 길러낼 수 있다. 이것은 동네 골목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는 대기업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의 삶터를 지켜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협동조직화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의 필요를 결합한 일공동체와 생산공동체들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 결과물을 나눌 수 있는 호혜의 장터들을 펼쳐나갈 수도 있다. 농촌지역 또한 마찬가지로 생산과정의 협동화와 함께 생활 영역에서 자립 기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농촌지역에서도 구매력의 결집을 통한 소비의 주체화가 필요하다. 대형마트를 통해 거대 유통자본이 농촌지역 곳곳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땀 흘려 얻은 소득을 이런 곳을 통해 소비하도록 내버려 둘 경우, 지역과 생활의 자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직거래를 통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생활협동운동을 더욱 힘있게 펼쳐나가되, 농촌과 도시 차원에서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생활살림운동의 모델들을 적극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탈성장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의 양식과 내용, 목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성장위기에 따른 경제의 위축으로 노동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동 자체가 배제되는 테크놀로지 실업 상황이 겹쳐서 나타나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남성 가장의 정규직 노동으로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는 만큼, 노동과 생활의 균형 있는 결합을 위한 대안들이 만들어져야 한다.11) 노동시간 축소가 사람들을 노동 자체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 여유 시간을 창조적인 자기실현과 탈성장 사회를 준비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잉노동의 사회에서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데, 이처럼 자본이 사람들의 생애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삶의 자기주체성과 자립을 위한 ‘자기 시간’ 갖기가 매우 중요하다. 임금노동에 대한 의존과 소비에 대한 강박관념을 줄이면서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산업사회의 강요된 임금노동에 대한 삶의 의존도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노동과 삶 전체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대안 영역으로서 자기고용(self-employment), 공동체 고용, 협동노동과 같은 다양한 방식들이 생겨나야 한다. 노동자들이 경영 주체가 되어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자신의 삶터와 일터를 지키고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계된 사업과 활동을 펼침으로써 생산과 소비, 생활 전반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협동운동의 역할이 성장위기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1) <연합뉴스> 2016. 4. 30. 참조.

2) 여론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자는 작년보다 줄어든 반면(30.2% -> 26.5%), ‘요즘 같아선 대한민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응답은 작년보다 더(57.9% -> 61.1%) 늘어났다. (<세계일보> 2016. 3. 27.)

3) 경향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2035년 미래 시나리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붕괴와 새로운 시작’(46.4%), ‘계속성장 사회’(28.7%), ‘과학기술이 변화를 이끄는 사회’(16.6%), ‘자원보존사회’(8.4%) 순으로 답했다. (<경향신문> 2016. 1. 1.)

4) 세계적인 싱크탱크인 로마클럽에서 1972년 발간한 이 보고서에서는 당시와 같은 성장추세가 계속된다면 100년 내에 세계인구와 산업화, 오염, 식량생산, 자원고갈의 요인들로 인해 성장의 한계에 도달해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40여 년이 지나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후속 연구가 나오고 있다.

5) 클라이브 해밀턴, 『성장숭배: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나』, 김홍식 역, 바오. 2011, 299쪽.

6) 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작년 7월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68.6%가 ‘소득이 낮아도 저녁시간을 보장 받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파이낸셜뉴스> 2015. 10. 28.)

7)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밥-빨-청-교’로 불리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키우는 ‘살림’의 영역은 집안의 허드렛일 정도로 취급했던 것이 기존의 ‘살림’에 대한 인식이었고, 이반 일리히Ivan Ilich 는 산업사회에서 평가절하 되는 가사노동을 놓고 일찍이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고 불렀다.

8) 이 부분의 문제의식은 한병철이 저술한 『심리정치: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도움 받았다.

9)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의 자발적 발의와 참여를 통해 생활공동체와 생산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오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자활공동체운동의 운동적 전망은 약해지고 사회복지 기관으로서 정부 정책의 대행자 또는 전달자 역할에 머물게 된 점은 성장위기 시대에 협동운동의 역할 모색에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

10)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원전개발을 녹색성장으로 부르면서 녹색 (green)의 의미를 이미지 세탁용으로 사용하는 행태를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 부르듯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사회적(the social)’인 것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가 축소되고 편의적으로 왜곡해서 사용될 경우를 ‘소셜 워싱’이라 부를 수 있겠다.

11) “탈성장 사회의 본질적인 특색은 ‘노동’과 ‘생활’을 나누는 경계가 해체되어 노동이 곧 생활이 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점이 탈성장 사회를 정의하는 핵심일 것이다”(클라이브 해밀턴, 『성장숭배: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나』, 김홍식 역, 바오, 2011,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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