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3호] 파국을 넘어 전환의 새로운 길로
2016-06-11 11:38:00

   

* 모심과살림 3호(2014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파국을 넘어 전환의 새로운 길로

- 국가개조론에 부쳐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세월호 참사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전체를 커다란 충격에 빠트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300명 넘는 생명들이 무참히 목숨을 잃는 과정을 온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무나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참사의 충격 정도는 예전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고의 발생 및 구조 과정 전반에서 정부의 대책과 언론 보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 상식마저 허물어버리는 사실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능력과 무책임의 끝을 보여준 정부는 물론이고, 문제 해결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사고 수습’보다 ‘여론 수습’에 더 몰두하고 있으니,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넘어 분노로 가득하다. 과연 지금 우리가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이런 사회에서 다가올 미래를 낙관하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심각한 물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5월 말 기준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200만 명을 넘었다. 또래 친구들을 잃은 학생들부터 소위 ‘앵그리 맘angry mom’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가슴에 추모의 노란 리본을 달고 거리로 나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데는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던 정부가 ‘아이를 살려내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오히려 이들을 통제하고 그 뜻을 왜곡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기본 책무여야 할 국가가 보여준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시민들에게 충격과 함께 ‘과연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하였다. 게다가 시민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면서 이념 공방을 벌이기에 바빴다. 심지어 정부와 여당은 어린 생명들이 무참히 희생된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들에 대해 ‘대통령 지키기’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시대적 열망에 대한 물음도 바뀌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자富者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실 가능하게 비춰진 소망이었다. 2001년 말 한 카드회사의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는 IMF 경제위기로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생존의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모두 부자’는 현실과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어났다. 정상적인 노동을 통한 소득 창출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부동산과 주식, 복권 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기자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헛된 꿈일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2008년부터 불어 닥친 세계경제 위기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어놓았다. 고용 불안과 소득 양극화는 계층과 세대를 넘어 삶의 깊은 불안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가계는 물론이고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 사회 전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난 부채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삶까지 저당 잡혀버리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런 가운데 작년 말부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사회 전 영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국가 기관의 선거개입,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던 사람들에 대한 대량 직위해제, 지역주민 의견을 무시한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등의 일련의 사태는 정치와 거리를 둔 채 ‘개인의 안녕’에 매달려 온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의 묵직한 물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고선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절박한 생존 위기 상황에서 ‘안녕’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소박해 보였다. 이번 참사는 순식간에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끔찍한 일들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프게 확인시켜 주었다. 게다가 우리가 믿고 의지해 살아가는 이 사회가 생명 위기 상황에 대해 사전적 대응과 사후적 조치 모든 면에서 참으로 무감각, 무능력, 무책임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넘어 패닉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놓고 수많은 분석과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생명’보다 ‘돈’을 앞세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탈바꿈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돈 중심으로 모든 가치가 전도顚倒된 사회를 생명이 우선하는 사회로 전환轉換시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신神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즉 배금주의拜金主義 시대의 모순을 세월호 참사가 극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가진 나라에서 수명이 다되어가는 낡은 선박을 수입해 불법 증축하고, 규정을 어겨 화물을 과적하고, 직원 안전교육보다 광고와 선전에 약 500배 많은 돈을 지출하고, 선박안전 점검 기관들과 유착하고,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선장을 비롯해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워 온 선박회사는 승객 안전보다 돈벌이가 우선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사고 이후에도 신속한 구조와 수습 역할을 해야 할 당사자와 관련 기관들이 돈 문제에 붙들려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 구조보다 보상에 걸림돌이 될 화물 과적 사실을 숨기는 데 절체절명의 시간을 허비한 채 먼저 탈출해 버렸고, 사고 직후 선박 구조를 위한 해상크레인 투입도 사용료 부담 문제로 늦춰지고, 민간 인양업체가 사고 수습에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비롯된 각종 잡음의 배경에도 결국 돈 문제가 얽혀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사고의 책임자들은 희생자들의 목숨도 돈으로 계산해 차별하고 있다. 사고를 낸 선박 회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희생된 20대 젊은이들이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일반 승객도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비 지급조차 거부했다니 돈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낸 현실이 무섭고 서글프기만 하다.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경제성장 제일주의’, ‘물질주의’, ‘결과중심주의’, ‘속도주의’의 낡은 관성을 깨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혹자는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이 우리 사회의 시대 구분에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반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통찰, 그리고 특별한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파국을 넘어서기 위한 거대한 전환은 그 필요성과 무관하게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대적 흐름과 요구에 맞지 않고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낡은 관성들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념과 제도로 고착화 되고 거기에 영향력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으면 그것 자체가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돈’보다 ‘생명’이 우선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세계적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 속에서 기존의 경제성장 모델 자체가 근본적인 도전을 받고 있지만 기존의 지배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하는 데는 주저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지금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지속되자 ‘소비심리 위축’을 경고하면서 신속한 경제 살리기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려내야 할 경제가 과연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매우 빈곤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정부부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그렇게 외치고 투자를 늘려 왔지만 막상 결과는 시민들의 실생활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 중 우리나라 10대 재벌은 국가 전체 성장률의 몇 배가 넘는 연간 10%대의 매출액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고용은 2.5% 수준이었다. 작년에 매출액 1조 원이 넘는 159개의 대형 상장사(금융회사 제외) 가운데 영업이익보다 이자비용이 더 큰 곳이 36곳으로 22.6%에 달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사회 이슈가 되었듯이,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OECD국가에서 1위 수준이다. 작년만 해도 가족 생계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매일 5.2명씩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장기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저임금, 저금리에 기반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지만 FTA, TPP 등 개방경제를 향한 정책 기조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영향력과 지속성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보다 더 큰 생명 위기 상황도 우리 눈앞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 4월에 사상 처음으로 한 달 평균 400ppm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별로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현재 폐쇄 중인 세계 원전의 평균 수명이 23년인데 설계수명 30년을 넘은 36년 된 위험천만한 노후 원전을 2017년까지 재가동하려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이다. 1978년 원전 가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각종 사고와 고장으로 19일에 한 번꼴로 가동이 중단됐다는 소식에도 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예견된 재난’ 상황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의 기관차에서 선뜻 내리지 못한 채 주저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전환의 실마리는 관료 조직의 혁신으로부터

 

반복, 확대 재생산되는 위험 요인들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일들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심정으로 마냥 버티고 살아갈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이윤 추구와 돈 중심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총체적 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기심에 대한 무한 추구를 전제로 한 지금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것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에도 성수대교 붕괴, 서해페리호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화재, 대구지하철 참사 등 수많은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난 예방과 관리, 수습 체계 강화를 정부가 약속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돈을 앞세운 일상화된 낡은 관행들이 쌓여서 비극적인 재난으로 드러난 것이다. 적어도 사고 발생까지의 과정을 보면 관련 당사자들은 예전처럼 관행대로 판단하고 움직였는데 결과는 엄청난 참사로 돌아왔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관련자들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버리면 구조 및 시스템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 위험의 본질은 놓칠 수 있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 ‘낡은 배’는 그냥 두고 운행하는 사람만 바꾸는 꼴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삶에 대한 태도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화 된 시스템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제도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스템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가지는 부실과 결함까지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제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재난전문가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가 배치와 콘트롤타워 강화로 지금과 같은 위험사회가 만들어내는 재난 상황을 사전 예방하기는 어려우며 사후 수습에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나면 관성처럼 관련 분야 행정조직은 더욱 커져서 테크노크라트들의 일자리만 늘어나고 시장에서는 새로운 보험 상품이 개발되어 나오는 지금의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시스템 개혁을 통한 전환의 실마리로 우리 사회 관료 조직의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영향력 집단들이 존재하는데, 특히 관료 조직을 문제 삼는 것은 이들이 공적 자원을 다루는 특권을 활용해서 사회 전반에서 이익 집단 카르텔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들 관료 조직은 지역, 학교, 고시 등의 연줄망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 시스템은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통해, 기업인은 시장에서 구매행위를 통해서라도 시민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만, 법과 제도의 보호막 속에서 전문성과 비밀주의를 내세운 관료 조직에 다가가기에는 현실의 문턱이 너무도 높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라 변해 온 관료 집단의 성격과 역할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대 사회에서 관료의 본래 역할은 시장의 독점적 사익추구 행위를 견제하면서 시장 질서를 보호하고 국민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료들이 하는 공적 사무公務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객관적 평가를 통해 능력 위주로 관료를 선발, 임용하고 직업공무원제도를 통해 신분을 보장해 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라 탈규제와 민영화를 앞세운 기업가적 정부가 등장하고, 개방형임용제 등 관료사회의 변화를 위한 조치들이 생겨났다. 즉 시대 변화로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더 효율적이고 전문성도 높을 뿐만 아니라 공공성 실현에도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런데 관료 사회는 이런 상황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희석시켜 왔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지난 세기 개발국가를 통한 근대화 과정에서 관료 집단은 국가 형성과 사회 건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이들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정치권력의 구심력이 약해지면서 상대적 자율성이 높아지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이익 집단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즉 관료 집단이 정경유착의 실행자 위치에서 민관유착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강력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면서 관료 조직에 대한 의회의 견제 기능이 약해진 데다,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전근대적 연줄이 능력에 우선해 작동하는 것을 자주 확인시켜 준 것이 우리의 관료 사회 모습이기도 했다. 특히 정치적 연줄에 따른 ‘낙하산’은 오랜 관행이 되어 관료들의 줄 세우기를 부추겨 왔고, 그 결과 공명심과 합리성보다 출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소위 ‘잘나가는’ 기형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 사업’처럼 경제와 사회, 환경 등 모든 면에서 타당성이 결여된 국책형 개발 사업들이 정치 논리로 제안되고 무리하게 집행되어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왜곡 현상의 이면에는 대선을 비롯해 선거가 끝나고 나면 논공행상하듯 정치권 인사를 공공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관행들이 미친 영향도 크다. 결국 자본과 권력이 관료를 도구화 하면서 생기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관료들은 전관예우 등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과 일자리를 만드는 데 노골적으로 나서왔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관료 조직이 시대적 소임을 제대로 할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조직에서 일했던 이들이 탐욕과 부패의 상징이 되고 공공성을 훼손시키는 문제 집단으로 지목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지금의 관료 조직이 문제 해결에 있어 무능력, 무책임은 물론 문제 원인의 주요 당사자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혼’은 없고 ‘탐욕’만 남은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관료 사회를 지켜보면서 탈법적 범죄조직인 ‘마피아’에 빗대 ‘관피아(관료+마피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퇴임한 공직자가 관련 기관이나 기업 등에 재취업해 로비스트 역할을 하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소위 ‘관피아’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린 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관련 부처(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나 협회, 금융기관에서 퇴직한 관료가 관련 업계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는 ‘모피아’와 ‘금피아’,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관료가 에너지 등 산하기관에 취업해 영향력 행사하는 ‘산피아’, 해양수산부와 해경의 퇴직자가 해운조합 등에 취업해 해운 관련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해피아’, 한수원 퇴직 임원이 원전 관련 부품업체에 들어가서 시험성적 위조 등의 비리를 저지른 ‘원피아’,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출신이 민간기업 공사의 발주와 납품, 성능점검 관련 비리에 관여하는 ‘철피아’, 군 장성과 방위사업청 임원이 퇴직 후 방위사업체에서 계약 선정 과정에 영향력 행사하는 ‘군피아’,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퇴직자가 관련 협회 등에 재취업해 편의를 제공하는 ‘소피아’, 국세청, 관세청 등의 퇴직 공무원이 기업과 로펌 등에 자리를 옮겨 세무 관련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세피아’,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먹거리와 의약품 안전과 관련한 부처 공무원들이 퇴직 후 관련 업계에 재취업하는 ‘식피아’, 국토교통부 등 개발정책을 관장하고 각종 인허가 관련 일을 하던 관료들이 주택, 건설, 토지개발 등 관련 업계로 자리를 옮겨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피아’, 교육부 출신 관료가 대학 등에 자리를 잡는 ‘교피아’, 38조 원 규모의 정부 물품 구매를 담당하는 조달청 관료들이 퇴직 후 정부 납품을 중개하는 곳에 재취업해 물품 공급업자로 변신하는 ‘조피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법조계와 검찰 출신이 자리를 차지한 ‘법피아’ 8), ‘검피아’ 등 관료와 마피아를 합성한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위 ‘관료 공화국’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관피아’들은 국민 생명과 안전, 살림살이에 직결되는 각종 영역에서 영향력 행사를 통해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비리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 유능한 인재들을 관료로 뽑아서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것은 전문성을 살려 공평무사하게 맡은 역할을 해내리라는 기대 때문인데,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큰 불행이다. 관료의 이익집단화는 사회적 자원의 흐름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견제받지 않는 권력 집단으로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관료 집단은 한편에서는 인허가권 등을 앞세운 제도적 권력을 휘두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성을 방패막이로 삼는데, 이들을 4, 5년의 선출직 정치인들이 통제,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관료 사회의 이익집단화는 특히 지금과 같은 전환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책임 전가와 은폐, 복지부동 등으로 변화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유용했던 관료적 합리성은 지금처럼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높은 상황에서 목표와 경로 자체를 새롭게 설정하는 데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명령, 통제, 관리 중심으로 작동해 온 관료 조직은 사회적 소통과 공감, 치유 능력이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술 관료적 합리성에 따른 사회 시스템 자체가 위험사회의 등장과 결코 무관치 않은 상황에서 관료 사회, 관료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국가개조론’을 둘러싼 논란과 전환의 과제들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낡은 관행들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관행의 고착화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통해 그 영향력을 키워서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가로막게 되고, 결국에는 그 피해가 스스로를 구제할 자원과 역량이 없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치러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관피아’ 척결을 내세워 ‘국가개조’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적폐積弊들을 바로잡아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갈 것”을 강조하였고, 이후 국가개조라는 과제를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청와대와 내각의 구성을 바꾸고, 여당은 국회에 소위 ‘범국민적 국가개조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가개조를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가개조에 담긴 의미와 배경, 개조의 범주와 내용, 추진 방식과 과정 등에서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개조’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 담고 있는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조改造의 사전적 의미는 ‘사고방식이나 시설, 조직 등을 고쳐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개조란 나라 전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위험 사회에서 국가 시스템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드러난 만큼 국가개조는 피할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개조의 의미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 자발적 참여의 과정이 없는 국가개조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시 말해 국가개조라는 거대 프로젝트가 통치자의 위기관리나 통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과 부작용 또한 상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20세기 초반에 국가개조 운동을 펼쳤던 독일과 일본의 우익이 결국 파시즘을 만들어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었고, 우리의 경우에도 박정희 정권 시절 인간개조와 국민개혁을 앞세운 국가재건 혁명이 결국 독재체제 강화로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 건설’이나 김대중 정부의 ‘제2의 건국’처럼 정권 차원에서 하향식으로 추진된 거대 프로젝트들이 결국 사회경제적 자원만 낭비한 채 별 성과 없이 끝났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현재 정부가 내놓는 국가개조론이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적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해명과 대책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입을 통해 갑자기 나온 것처럼 보이니 그 배경과 의도를 놓고 여러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국가개조론이 시대적 변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통치 논리와 방식 자체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련해서 현 정부는 국가개조의 필요성으로 “그동안 쌓여온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판단의 획일적 잣대를 하향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과 배제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자칫 ‘비정상의 정상화’ 논리를 자기 방어와 상대에 대한 비판의 수단으로 적용하게 되면 민주주의 자체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근대적 정상성 자체의 균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면 한편에서는 규제를 강화해 국가의 개입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완화 조치를 통해 국가의 역할을 시장 자율의 영역으로 넘기려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국민행복’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소위 ‘4대악’ 척결을 강조했는데, 주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에 의존해서 관련 사업들을 추진해 오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회적 통제 기능이 강화된 ‘치안사회(police society)’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규제를 ‘암 덩어리’로 보고 이것을 완화하고 철폐하는 것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정부는 각 부처와 지자체로 하여금 기존의 전체 규제에서 10-20%를 완화하라는 규제완화 총량까지 제시함으로써 규제완화 조치를 경쟁적으로 내놓도록 하였다. 문제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에서 보듯이 국가 권력기관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영역까지 규제완화라는 논리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시장 자율의 영역으로 떠넘기려 한다는 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는 안전 관리의 역할과 책임을 외부화, 민간화, 시장화 시킨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전환 차원에서 국가개조는 어떻게 인식되고 다루어져야 하는가?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정부조직의 개조(remake)나 재생(renewal)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을 원점에서 새롭게 구성하고 작동시키고자 하는(reset 또는 reboot) 자세와 노력이다.

 

따라서 ‘낡은 것’으로 지목된 것들을 일거에 철폐, 해소시키려는 ‘청산주의’적 태도는 자칫하면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방향 감각까지 상실케 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대상화, 외부화 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성찰과 혁신을 소홀히 하도록 만들며, 개조를 둘러싼 이념 공방과 갈등을 촉발시켜 실질적으로 필요하고 절박한 전환의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개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운영의 책임 주체들부터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개혁, 개조해 낸 사례는 거의 없다. 따라서 국가 운영의 책임 주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한을 활용해서 국가개조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조직의 개혁을 통한 국가개조의 차원을 넘어서 시민사회 민간 영역들이 함께 하는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필요하다. 소위 ‘거버넌스governance’ 시대를 맞아서 정부는 물론 사회 각 영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새로운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로 참여해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누고 공동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영역들을 아래로부터 다양하게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가개조를 넘어 ‘새로운 나라’ 만들기로

 

위기 상황에 대한 강조는 현실에 대한 무감각을 일깨우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으로는 창조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국가개조를 넘어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대한 ‘비전’과 ‘전망’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정부가 이야기하는 국가개조론은 낡은 것에 대한 청산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 ‘새로움’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생명 위기 시대를 넘어서 어떤 사회로 함께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이러한 접근이 갖는 중요성은 우리의 지난 역사적 경험을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사실 지난 세기부터 우리 사회가 걸어온 근대화 과정은 자율적이고 자생적이기보다는 타율적이고 이식된 측면이 컸다. 따라서 그동안 의존해 온 국가 주도의 선진국 따라잡기식 외부 의존형 성장모델은 우리의 토양과 문화에 맞는 합의된 발전 모델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세계적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 속에서 사회 전체의 발전 방향에 대한 좌표는 상실한 채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으로 피로감만 커져가고 있다. 마치 어두운 밤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맞고 있지만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는 선박과 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새로운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이것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 단절성, 폐쇄성, 획일성의 논리가 생명 위기 현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생명살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탄력성, 관계성, 순환성, 다양성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갑작스런 변화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 생태적 완충 지대(buffer zone)를 곳곳에 만들어 내고, 여기서 창조적 역동성이 넘치는 대안적 모델들이 나와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회복탄력성(resilience)’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복탄력성은 근래에 들어 개인과 조직, 사회 전반에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데, 위기적 상황이 만들어낸 충격을 최소화 하면서 신속하게 정상 상태로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들이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회복탄력성을 ‘시련과 역경을 극복해내는 긍정의 힘’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예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의 창조적 도약’의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회는 위기 상황이 만들어낸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여기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여기에 더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고 이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능력은 당면한 시련과 도전을 자기 혁신과 발전의 계기로 삼는 지속적인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 얻어질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기 이해와 자기 조절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상호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경계를 넘어선 소통과 공감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지금 우리 사회에 새롭게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과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지역 자립과 순환의 다양한 실천 모델들을 통해서 협동과 연대의 그물망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회복탄력성에 기반한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라 할 것이다.

 

 

댓글[0]

열기 닫기

사단법인 모심과살림연구소 대표자 : 황도근 사업자 등록번호 : 201-82-08260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운로 19 (서초월드오피스텔) 3층 (06732) 전화번호 : 02-6931-3604 팩스 : 02-6715-0818 이메일 : mosim@hansalim.or.kr

  • 전체 : 353308
  • 오늘 : 9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