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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다른 사회를 위한 새로운 협동운동
2016-06-11 11:55:00

   

* 모심과살림 3호(2014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다른 사회를 위한 새로운 협동운동

 

김성훈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이사장)

 

* 이 글은 2013년 3월 필자가 대표로 초안한 다른경제포럼의 팸플릿 「다른세상, 다른경제」와 2011년 역시 필자가 초안한 품앗이생협의 설립제안서에 많은 부분을 옮겨왔다. 함께 토론한 많은 동료들의 생각에 빚지고 있다.

 

 

근대적 협동운동의 의미와 과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는 협동의 산물이다. 협동은 지구상 인류의 출현과 그 진화 과정,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인류의 곁을 떠난 적 없이 유전정보에 자신을 새겨왔다. 그런데 이것이 의식적인 ‘운동’이 되고 다시 ‘근대적’이 된 것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였다. 인간의 공동생활집단으로서의 사회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스스로 자기조정한다는 신화 속에 탄생한 시장경제시스템에 의해 사회양극화, 사회적 차별과 배제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자 사람들과 그들의 사회는 협동운동을 통해 자기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의미가 좁은 의미에서 ‘개인주의에 기반한 산업문명’, ‘성장발전주의에 기반한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물질문명’,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라고 전제할 때, 근대적 협동운동을 극복하고 새로운 협동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는 역설적이게도 근대적 협동운동의 맹아로부터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사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1830년 사회적경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샤를 뒤느와이에였다. 사회적경제는 국가 단위에서 돈을 기준으로 한 부의 창출을 경제발전으로 여기는 정치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간과 그의 노동, 사회를 중요시하는 사회적경제를 주창하였는데, 그들은 당시의 사회를 ‘임금노동사회’라고 규정지었다. 농민들은 생존의 토대였던 토지로부터 쫓겨나 도시를 전전하는 부랑 노동자가 되었다. 온 가족이 자기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야 겨우 생존이 가능한 소외된 노동을 하며 생존에 허덕이는 비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것이다. 5~6세의 아이들이 면직산업에 동원되어 학대를 받아가며 일하다 죽어갔고, 탄광에서 하루 19시간, 주 6일을 일해야 하는 소년들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부터 출발한 근대적 협동운동의 시작은 17세기 후반 영국의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우애조합이라는 노동자 공제조합을 들 수 있으나, 본격적인 근대적 협동운동은 로버트 오언의 협동촌 실험과 윌리엄 킹의 월간지 『협동조합인』의 영향을 받아 1844년 영국 랭커셔 주의 작은 마을 로치데일에서, 28명의 노동자들이 28파운드의 출자금으로 시작한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이다.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으로 출발한 근대적 협동운동은 또한 근대와 함께 시작된 탈근대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치데일은 근대적 협동운동의 출발이지만 21세기 새로운 협동운동에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김기섭에 따르면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의 의미는, 첫째 상호자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 둘째 소비의 조직화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셋째 조직된 소비의 힘으로 생산을 변화시킨다는 것, 넷째 조직된 소비와 변화한 생산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의미는 근대적 협동조합운동이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이다. 이러한 유산을 현실에서 구현해 온 몬드라곤 공동체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신부는 협동조합의 원칙으로 다음 세 가지를 힘주어 강조했다. 첫째, 특정 협동조합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자. 둘째, 공동체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자. 셋째,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경제 제도의 건설을 위해 도전하자. 위와 같은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방향은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의 저자 레이드로 박사에 의해 협동조합의 사회적 목적으로 다시 강조된다. 첫째, 세계적 기아 해방, 둘째,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일자리 마련(노동자생산협동조합), 셋째, 보전자 사회(the Conserver Society)를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 넷째, 협동조합 지역사회 건설이 그것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공동체, 이탈리아의 트렌토와 볼로냐의 협동조합 연합체, 캐나다 퀘백의 데자르뎅 그룹, 일본 가나가와생활클럽생협 등은 21세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력적 질서에 굴하지 않고 상호부조와 우애의 원리에 따라 로치데일의 이상을 현실화하고 있다. 물론 로치데일 이후 모든 협동조합이 이러한 의미에 충실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영리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새로운 사회를 위한 결사체의 이상을 저버린 경우도 많았다. 현재 전 세계에 94개국 249개 조직에 140만 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합원 10억 명, 글로벌 탑 300의 총 매출은 1조6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양적 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야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협동조합은 무엇을 해온 것일까? 로치데일 이래, 협동조합의 선구자들이 힘주어 강조한 새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대안의 자기사명은 21세기 협동조합에 얼마나 살아있는가?

 

사회위기 ·생명위기 시대, 대안은 있는가?

 

자본주의 300년, 신자유주의 30년, 자본주의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만을 위한 세계화가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1:99 사회’라는 부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위기가 극심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한편, 이기적 개인주의를 발전 동력으로 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기후변화,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라는 생명의 위기를 불러 왔다.

 

자본주의의 모순, 야만성과 폭력성, 지속불가능성은 그 체제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모순을 사회에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극복의 주체를 대중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대중적 기반으로 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결집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저항의 결집을 통한 정치혁명’ 노선이다. 자본주의가 극복된 새로운 세상의 실질적 내용은 오로지 정치권력 획득 이후의 일로 유예한다. 그런 것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이른바 지금껏 우리가 실험한 ‘정통노선’이다.

 

이 노선은 새롭거나 낯선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이 노선을 채택했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는 자본주의 모순에 뒤지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 채 몰락했다. 깃발 아래 모였던 사람들은 떠났고 대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깃발 아래 모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새롭게 모이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그 모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력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틈타 거칠 것이 없어진 자본주의가 더 형편없어졌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삶의 고통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협동운동의 방향

 

저항과 건설의 만남

자본주의 시장사회, 임금노동사회는 새로운 세상을 말하던 사람들과 조직을 압도했고 그 저항 세력을 무력화시켜 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극복을 말하지 않게 되거나, 말하더라도 자기의 생활, 그 살림살이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어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혐오스런 자본주의에 이따금 치를 떨지만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과 패배감에 좌절하고 있다. 전 세계적 현상이었던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민과 민의 살림살이 공동체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것에 저항해 온 노동운동, 시민운동은 자본이 주인 노릇하는 시장과 싸우고 국가와 싸우면서 정작 그 근원으로서 사회를 새롭게 건설 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극복은 오로지 자본주의 속에서 그 대안의 영역을 건설하고 창조하는 것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표현에 의하면 비록 자본주의 속에서 자라지만 자본주의를 숙주로 삼아 그것을 쓰러뜨리는 이른바 대항의 대안세포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극복의 주체 형성에 있어 저항의 노동운동과 건설의 협동조합운동이 노동자 결사체운동의 전통 위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경제운동, 시민운동이 대중조직운동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이를 자양분으로 새로운 정치변혁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며, 이러한 운동의 새로운 지평은 오래된 미래로서 주체화, 민주화, 인간화, 자립과 자치의 토대는 바로 지역사회라고 생각한다.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

 

‘다른 사람-참나’, 내 안의 자본주의 넘어

자본주의가 지배한 지 300년, 거짓 나, 이기적 개인주의 사상이 급속히 퍼졌다. 그것은 사회와 자연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여 배타적 자기이익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여긴다.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으며 사람과 자연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경쟁의 논리로 정당화한다. 자본주의는 생명의 길, 사람의 길, 진리의 길에 맞지 않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우리가 그것의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종말이 세상과 인류의 종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만큼 치명적인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키고 키워왔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자본주의는 먼저 내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나로부터 분리하고 대상화한 뒤 그 어둠과 싸우려는 것은 도깨비와 씨름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300년 자본주의 역사가 아직 해치지 못한 전체적 생명으로서 참나의 자리를 자각하고 나부터 너를 모시고 살리는 삶을 살아감을 통해 가능해진다. 남 탓, 세상 탓만 하게 되면 도리어 남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자기다움을 잃고 자기소외, 자기 상실, 자기분열을 겪게 되고 자본주의 극복도 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세상은 나와 내 삶에 가까운 것으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가야 한다. 나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하되 나 혼자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너를 만나 우리가 되어 함께 저항과 건설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가야 한다.

 

‘다른 경제 - 자립’, 다른 노동에서 시작하는 살림살이

 

“오래 전부터 인간은 다른 노동을 추구하고 그들의 활동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결사하였다. 사회적연대의 경제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은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땅이다.” (사회연대경제를 위한 긴 행진)

 

다른 세상, 다른 경제는 다른 노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여긴다. 임금노동 사회의 태동 이래 사회적경제의 역사와 전통,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따르던 사람들은 누구나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한국사회 역시 이러한 전통에 따라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때의 노동운동은 주로 노동조합운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노동조합운동은 경제투쟁에 머물거나 자본-임노동관계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위한 수단에 머무르면서 자기다움을 실현하는 대안적이고 창조적인 사회적 노동을 만들어 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임금 인상, 근로조건 개선, 정규직 확보 등의 고용 보장,

노동조합활동 보장 등이 주요한 이슈였다. 현재의 노동 문제는 첫째,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 격차가 심해지는 것, 둘째, 노동 소외 및 예속, 셋째, 사회에 유용한 창조적 노동이 아니라 자본가의 맹목적 이윤 추구에 동원되는 노동이라는 데 있다.

 

다른 노동이란 노동관계, 노동의 목적, 노동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실천의 방향으로 첫째, 협동조합과 자주관리기업을 통한 대안 노동을 활성화하고, 둘째, 기업 내 노동자 경영참여를 보장하며, 셋째, 시민사회조직 영역의 활성화를 통해 최저소득이 보장되는 시민노동을 새롭게 발굴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노동과 노동관계를 재조직하는 것과 더불어 소비의 재조직을 통한 생산관계 및 생산양식의 근본적 변화를 스스로 일구어가며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쟁시장에 매몰되지 않는 호혜시장의 영역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시장사회, 임금노동과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극복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결사한 주체들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다른 정치를 만들어갈 것이다.

 

‘다른 정치 - 자치’, 다른 경제에 토대를 둔 이중권력 형성

 

“정치는 인간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즉 사회뿐 아니라 개인들의 삶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자족적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양식의 저장은 필연적이다. 양식을 저장하지 않으면 공동의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과제, 즉 최종 목적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한나 아렌트)

 

새로운 협동운동은 사회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비록 협동조합공화국을 말한다 하더라도 협동조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 다른 운동의 영역을 존중할 수 있으며 새로운 영역이 개발된다. 실제 개별 협동조합이 사회 전체의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이것의 해결을 요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협동조합 내의 노동과 임금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기본소득제,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 경영참여, 재벌구조 혁신 등의 문제의식이다.

 

다른 노동에 기반한 다른 정치의 주체형성 전략은 노동자결사체운동의 전통에 따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만남이다. 이 주체는 지역사회를 무대로 사회적경제운동의 전통을 복원하고 지역풀뿌리운동을 결합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을 유력한 살림살이 기반으로 삼아 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상시적인 정치운동으로 이중권력 운동을 제안한다. 이중권력운동은 협동운동을 통해 다른 노동, 다른 시장을 건설하면서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압박하고 견인하며 대안적 복합경제모델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동시에 민의 정치경제결사체 운동을 확산시켜 마침내 다른 세상,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새로운 상상이다.

 

다른 세계화는 가능하다

 

엄기호의 책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에는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얼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신자유주의가 인간과 사회에 왜 재앙인지 이 책의 제목은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노골적 속삭임,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라는 메시지는 지난 세월호 참사의 비극적 결과로 나타났다. 새로운 협동운동은 기업의 이윤 추구만을 위한 자유주의의 세계화를 극복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다.

 

그것은 1992년 리우환경회의의 슬로건,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한다”를 지지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와 새롭고 활력 넘치는 참여민주주의가 결합하여 2001년 1월 브라질 뽀르트 알레그레에서 진행되었던 세계사회포럼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 역시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보다 이윤을 더 중시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다른 세계는 다른 경제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경제를 생각함에 있어 “민중을 먹여살리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신념 없이 어떻게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김종철의 물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협동운동은 생활세계의 식민화에 맞서는 운동이다. 우리의 삶이 이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이 세계의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를 이용하고, 초국적 금융자본의 은행과 보험에 가입하며, 값 싸고 편리하기 때문에 골목가게를 버리고 대형마트를 이용하고 있다. 머리와 가슴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지만 생활세계는 그 체제를 끊임없이 지지하는 ‘이념에 대한 생활의 배반’,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도대체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우리는 역사로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전의 살림살이를 살펴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것으로 다른 세계화를 위한 다른 경제를 상상할 수 있다. 고대 아시아 경제의 핵심인 신시 神市는 호혜와 교환, 재분배의 획기적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김영래에 따르면 신시는 필요 이상의 축적을 하지 않으며, 지나친 축적을 경계하는 사회, 잉여 처리 방식이나 교환 시장이 개인적 축적이 아니라 사회적 잉여 즉 공동체로 환원되는 사회, 이윤을 목표로 하는 대신 나눔을 목표로 공생과 호혜 원리에 입각한 사회, 일상 물자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다른 이를 돕고 나도 도움을 받는 사회, 그리하여 물건이 선물이 되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고 도는 사회였다고 한다. 품앗이, 두레, 계, 울력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을 나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나부터 신자유주의적 인간과 달라질 것이다. 세계사가 무기의 싸움에서 돈의 싸움으로 변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도 道의 싸움, 영성의 싸움을 준비하는 것으로 새로운 협동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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