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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심고 나누고 되살리는 지역 씨앗 연결망 운동
2016-06-11 13:44:00

   

* 모심과살림 3호(2014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심고 나누고 되살리는 지역 씨앗 연결망 운동

 

박지은 (농민농민정책연구소, 모심과살림연구소 등에서 대안농업을 모색해왔으며, 현재 충북 괴산에서 토종 콩밭을 일구며 더욱 손에 잡히는 연구를 하려 애쓰고 있음.)

 

 

올해 9월 강원도 평창에서는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얼마 전 GMO가 검출되어 논란이 된 강원 지역에서 개최되는 회의와 더불어 생물 다양성 보존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먹거리 사슬로 가는 최초이자 마지막인 씨앗1)이 가뭄, 홍수 등의 기상이변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 지역에서 멸종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이 기상이변이 빈발하고 GMO가 확대되며 국가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국제적으로는 이러한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종자보존소를 지정해 인류에게 필요한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 유전자원센터 역시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공인하는 국제종자보관소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종자를 되살리는 일은 충분치 않다. 이는 지구적 재앙이 일어나더라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보루일 뿐 지역의 토종씨앗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있어 대안이 되지 못한다.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는 씨앗은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아서, 몇십 년 후 이 씨앗을 되살렸을 때 발아되는 환경과 기후, 계통, 병해충이 어긋나는 등 변화된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고 소멸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 중앙집권화된 종자은행은 씨앗을 가장 필요로 하고 돌보는 농민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국립종자원의 설명에 따르면, ‘품종보호’란 품종을 등록한 사람에게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2)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을 갖춘 기관에만 자원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기 때문에 정작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농민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종자에 대한 권리를 보호해주겠다는 대상은 규모와 시설을 갖춘 기업과 연구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것과 같이 영리 목적이 아닌 자가소비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 주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등록한 종자를 지속적으로 자가채종하는 것, 자가소비분 이외의 생산물을 판매하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즉,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매년 씨앗을 받는 행위, 이웃에게 판매하거나 씨앗 나눔을 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이다. 대대로 농사지으며 씨앗을 받아온 농민들이 종자를 등록하는 데 익숙할 리 없다. 결국 무분별하게 종자를 사용하는 농민들로부터 ‘기업이나 국가기관을 보호’하겠다는 논리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농민의 관행에 대해 법적으로 예외조항을 두어 자가채종권을 보호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준거가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농민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세계 시민사회 진영의 인식과 실천이 합의되면서 다국적기업들의 종자 독점에 대항하는 목소리 또한 거세지고 있다. 생물자원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통해 종자 주권과 농부권을 명문화하고 초국적 기업의 자본을 규제할 정치적 공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물다양성 보존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은 유전자원을 국가의 주권 영역으로 인정했으며 이후 2010년 유전자원에 대한 이익 공유에도 합의를 이루었지만, 씨앗을 돌보는 이들이 씨앗에 접근하기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이익을 공유하는 주체 역시 불분명하다. 오히려 생물자원에 대해 지적재산권을인정하는 개념과 타협하게 된 국제 조약들은 결국 그 권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쟁의 한복판이 되었다. 이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기관도 생물자원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종자은행이 지적재산권에서 자유롭지 못해 씨앗을 필요로 하는 농민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오히려 기업의 종자 독점권을 보호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대안적인 지역 씨앗 연결망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 왔다. 농민들의 씨앗 되심기가 최선의 현장 보존임을 강조하며, 씨앗 나눔 자체가 지역의 씨앗은행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를 재발견하고 씨앗의 생명성, 주체성, 지역성을 찾아가는 대안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 씨앗 연결망 운동은 지역의 씨앗을 보존하고 농민들의 자가채종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씨앗은행, 씨앗도서관 등의 형태로 분화해왔고, 최근 들어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인도

 

‘9개의 씨앗’을 의미하는 나브다냐는, 씨앗이 갖는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보호와 씨앗을 공유재로서 보존하고 나눌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다.3) 인도에서는 1998년 다국적기업의 종자를 수입한 이래 수십만 명이 농사짓는 것을 포기하고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져나갔다. 7루피(150원)에 불과했던 국내 보급종 가격이 3,200루피(80,000원)까지 올라가면서 씨앗은 더 이상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브다냐는 씨앗 보존 주체들과 유기농 생산자들 사이 일종의 연결망으로 인도 전역 17개 주에 걸쳐 111개 종자은행 설치를 지원해왔으며, 인도 북부의 웃다르아칸드 지역에서 ‘씨앗학교’를 운영해 농민 50만여 명에게 생물다양성 보존과 유기농토에 관한 지식을 전파해왔다. 나브다냐 센터는 정보 및 인프라 구축, 전통농법으로 병해충을 방제하는 교육 수행, 소농 조직과의 유기적 연결을 담당한다. 타밀-나두 주 안에 있는 여러 지역 NGO와 협동하는 것으로부터 이 운동을 시작해, 장래 농민이 될 마을의 학생들에게 고유종자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어린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생물다양성 대회를 열고, 자발적인 도움으로 토종씨앗과 그 정보를 수집하였다. 외양간두엄과 지렁이두엄을 활용하는 비법, 생물비료, 님Neem 씨앗 등의 자재를 제공하고, 토종 작물을 유기재배로 기르는 비법, 식물에서 추출한 자재로 생물농약을 만들고 자연적으로 병해충을 방제하는 기술, 두엄을 만드는 기술 등을 훈련하고, 품종의 특성과 수확량 및 상세 정보를 여러 언어로 된 교재, 정기간행물, 서적, 포스터, 필름 형태로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녹색혁명 이전 토종종자의 유익성을 보고하는 농민 참여 실습, NGO, 학생, 교사,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학교에서는 글짓기나 웅변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육을 주요하게 담당했다.

 

현재 유기농업은 약 125개 마을에서 약 3천 명의 농민들에게 퍼졌고, 채소밭 세대는 800가구 이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농가들로 이루어진 37개 소농 공동체가 설립되어 있다.4)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쿠로 마을은 농민 스스로가 씨앗 관리 체계를 만들어나간 사례라고 할 수 있다.5) 인도네시아는 녹색혁명으로 인해 국민들이 강제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삼게 되면서, 그 전에 널리 소비되던 밀, 고구마, 옥수수 등의 재배가 줄고 쌀만 집중적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무려 1만 종의 고유 종자를 잃게 되었다.

 

남부 수마트라 농민회(South Sumatra Peasant Union) 멜라티 농민단체의 농민들은 고유 씨앗 지키기에 힘쓰고 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쿠로 마을의 기온에 가장 적합하고 가뭄과 홍수에 강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가장 널리 심는 종이 바로 파디 살렉padi salek이다. 파디 살렉은 긴 줄기와 무성한 잎이 특징이며, 무성한 잎사귀 덕분에 잡초가 자라지 못해 제초제를 쓸 필요가 없다.

 

쿠로 마을 농민들은 씨앗을 지키기 위해 여러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현장의 교육 간부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품 판매 기회를 노린 기업들이 자신들의 교배종자가 ‘최상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배종자와 부가기술 구매를 부추긴 결과, 많은 농민들이 높은 생산량을 약속받고 은연중에 전통 농업 방식을 버리기도 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멜라티 농민단체의 농민들은 고유 씨앗과 전통적 농업구조를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모임을 통해 알려나가는 동시에, 생계형 농사에서도 고유 씨앗으로 수확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현장 보존을 실천하고 있다.

 

태국

 

수출용 작물 종자가 점유한 평야 지대와 달리 태국 북부 지역은 여전히 고유 씨앗을 유의미하게 보존하고 있다.6) 소수민족인 캐런족 공동체에서는 돌려짓기 방식을 통해 쌀 및 기타 곡물, 채소, 향초 등의 고유 씨앗을 보존해 왔다. 캐런족 공동체들은 각각 100종이 넘는 씨앗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 공동체들은 300종 넘는 씨앗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고지대 개발, 삼림보존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부 농민들이 이들 지역에서 퇴출되면서 동시에 고유 씨앗이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대안농업네트워크(Alternative Agriculture Network), 북부농민연대(Northern Farmers’ Network) 등의 단체들은 농민들과 함께 고유 씨앗 보존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종자를 지역에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다양한 종자를 분류, 저장하고 이를 다시 심어서 씨앗을 늘리는 방식으로 보존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이를 통해 태국과 미국 간 FTA에서 의제가 될 수도 있는 벼 종자의 특허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 종자품평회를 개최해 새로운 씨앗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종자품평회가 잇산 지역 종자품평회(Local Isaan Seed Fair, Ku Kasigha Area)이다. 농민들은 이 같은 품평회에서 씨앗을 분석하고 씨앗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또한 품평회에서 씨앗을 교환하고 씨앗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역 고유 씨앗 보존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태국 종자은행에는 약 2만여 종의 쌀 종자가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농가에는 그 몇 배의 고유 씨앗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태국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으로 내수·수출 시장에서 모두 쟈스민 쌀과 같은 장립종 쌀류가 장려되자 여러 종류의 중·단립종 종자들이 퇴출되었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시장의 영향으로 변화한 탓에 결과적으로 농민들의 경작 패턴도 변형되어, 사라져 가는 고유 씨앗 발굴이 급선무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안농업네트워크는 약 130여 종의 쌀 종자를 수집해 검수하고, 전통적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 태국 법에 의해 보호되는 쌀 종은 29개에 불과하다. 2001년 대안농업네트워크 등의 농민단체는 빈민포럼에서 ‘식물종다양성보호에 관한 법(Plant Protection Act)’을 통해 식물 종에 대한 권리가 민중들에게 속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수상으로부터 그에 대한 약속을 얻기에 이르렀다.

 

쿠바

 

쿠바는 2004년 세계유기농대회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농민참여형 종자개량 사례를 내놓아 이목이 집중되었다. 경제위기 상황 때문에 농약과 비료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가뭄, 고온, 병충해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씨앗을 재래종에서 발굴해낸 것이다. 농민과 과학자들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농민은 소비자가 아닌 주체로서 품종개량의 전 공정에 관여하며 과학자는 농업생물다양성의 촉진자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힐베르토레온 협동조합농장 농민들은 15계통에서 선별 육종하고 옥수수 신품종을 개발해 다수확 품종보다 30% 이상 많은 수확량을 거두었다. 쿠바의 이러한 사례는 FAO가 농가의 품종개량과 재래종 확보를 지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성과를 낳았다.

 

쿠바는 규모화 된 협동농장 혹은 국영농장이 주축이었던 기존의 중앙집권적 제도나 생산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전면적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첫째,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들과 도시텃밭 농부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역의 생산 강화를 주요 원칙으로 삼고, 행정이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둘째, 식량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기존의 관행농업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수입선을 모색하는 대신 전통농업을 복원하고 과학기술 체계를 재정비하여 교육과 현장훈련을 기반으로 한 농생태학을 정립했다. 농민, 학자, 행정관료 등이 현장, 연구소, 대학, 정부 부서에서 긴밀하게 연계함으로써 유기농업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셋째, 도시의 빈터와 텃밭을 활용해 재배한 신선한 먹거리가 직거래 장터 이하의 가격으로 도시 좌판, 재래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기존 제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토지들이 생태농업 선구자들에게 재분배되었고, 생태농업을 시행한 지 수년 만에 소농들과 도시텃밭 농부들이 식량안보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태농업을 이끈 사람들은 쿠바 유기농업연합 핵심 그룹으로, ‘생태농업 등대 프로젝트’를 통해 육성되었다. 1993년 5월 국가농업과학연구소에서 열린 이 프로젝트는 100명의 대표단과 해외인사 40명의 참여로 창설되어 2개 지자체의 3개 소농생산협동조합, 150농가로부터 시작되었다. 생태농업 등대 프로젝트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독려하며 쿠바 생태농업의 기틀을 만들어나갔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씨앗 보존 운동은 미첼Michel과 주드Jude 부부의 작은 텃밭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미첼은 자신이 줄곧 살아온 프랑스뿐 아니라 1960년대~70년대에 살았던 폴리네시아, 뉴칼레도니아, 동유럽, 중동, 동남, 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으로부터 배운 자연농법으로 자신의 농장을 일구는 기반으로 삼고, 10여 년에 걸쳐 작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이들은 1986년 씨앗보존재단(Seed Savers Foundation)을 설립했으며, 생물다양성과 씨앗 생산에 대한 교육과정을 개설하였다. 초기 20년간은 재단 중앙이 한 지역에서 씨앗을 수집하고 실험, 저장, 재분배하는 활동을 벌였으나, 이후에는 10여 년에 걸쳐 재단 중앙을 분권화하여 3명 이상으로 구성된 지역 씨앗모임을 전국에서 100여 개로 확산시켰다.

 

또한 전통씨앗의 중요성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출판, 강연, 토론회,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를 넘어 40여 국가에 이 목소리를 전파하고 있다. 특히 다른 국가들에도 지역 종자모임의 매뉴얼을 제시해 농가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담당해왔다.

 

영국

 

영국의 지역먹거리생산네트워크(Tower Hamlets Food Growing Network)는 지역에서 텃밭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성환경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7) 지역의 텃밭운동이 급증하면서 2010년 8월에 설립되었다. 이들에게 ‘씨앗 안내자’로 일컬어지는 전통 씨앗도서관(The Heritage Seed Library)은 영국의 유기농 운동을 50년간 이끌어온 그룹이 주도하고 있으며, ‘지구는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격언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지역 씨앗도서관은 매 계절마다 열리는 모임 자체를 의미한다. 이 모임은 참가자가 기증하는 씨앗들로 운영된다. 브라이튼Brighton의 ‘종자의 날(Seedy Sunday)’은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종자 교환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씨앗도서관은 씨앗을 가져간 사람이 그것을 소비해 버리지 않고 자가채종을 이어가며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텃밭을 관리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씨앗도서관은 씨앗을 심는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씨앗도서관은 자원활동가들을 모집해 근거리 텃밭을 확대시켜나가는 운동을 펼치며, 텃밭 지도사들을 두어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과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미국에서는 1975년부터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Seed Savers Exchange)이 설립되어 재래종 씨앗을 보존하는 활동을 펼쳐왔으며, 1999년 바질(The Bay Area Seed Interchange Library, BASIL)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씨앗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씨앗도서관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8) 씨앗도서관은 야채, 허브, 꽃 씨앗들을 공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도서관으로, 후원자들이 스스로 씨앗을 검수해 심고 갈무리해 반납하며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매년 정기적으로 씨앗 교환 행사를 개최하는데, 먹거리와 씨앗을 공유하는 식사 모임 같은 방식으로 열린다. 바질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지역에서 열리는 씨앗 관련 행사를 통합적으로 홍보한다. 씨앗도서관은 기업적 독점 방식의 씨앗을 거부하고, ‘우리의 씨앗을 나누고 재생산하는 것, 지역에서 농민이 생산한 씨앗을 지역적으로 유통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씨앗도서관은 특히 “씨앗을 기르고 먹고 되돌려줌으로써, 자연의 리듬에 공명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조응하고 우리의 존재가 거미줄처럼 얽힌 삶의 그물에 둘러싸여 있다는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미국 전역에 약 45개가 운영 중이며, 설립이 비교적 쉬워 계속해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의 주목할 만한 사례를 통해 기존의 종자산업 체계에 종속되지 않는 지역 씨앗연결망 운동의 요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씨앗의 생명성이 존중되는 보존에 주력한다. 생명에서 비롯된 씨앗이 반생명적이라는 말은 모순이다. 그러나 씨앗의 생명성을 훼손하는 GMO가 확대되면서 씨앗을 보존한다는 의미에는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의 힘으로 적응해온 씨앗은 기후변화, 병해충으로부터 적응할 힘을 길러 본성이 살아 있다. 땅에서 대대로 살아온 씨앗을 보존한다는 것은 오래된 씨앗을 복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에 되살리는 생명의 힘으로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 씨앗에 대한 농민의 주체성을 인정한다. 씨앗에 대한 기여를 굳이 따지자면 씨앗을 키운 토양과 풍토, 농민에게 그 권한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면 누구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식물자원에 대한 이익 공유 분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농민권이 법제도적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땅에 씨앗을 되심어 왔으며 좋은 씨앗을 이웃과 바꾸며 한 종의 세력이 약해지거나 멸종되는 것을 방지해왔다. 자급을 목표로 하는 소규모 가족농과 여성농민들이 주로 텃밭을 가꾸어 왔으며, 도시텃밭 농민들 역시 그와 더불어 새로운 씨앗 보존의 주체이다. 국제적으로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농민인권 조항에 합의했으며, 이에 관한 선진국들의 국내 적용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다.

 

셋째, 씨앗은 지역에서 보존하며, 해당 지역사회가 관리한다. 지역 고유의 씨앗은 원산지가 어디건 해당 지역에서 가장 잘 적응해온 종자이다. 대를 이어 심고 거두는 과정에서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왔기 때문에 그 지역의 추위, 더위, 병충해에 잘 견딜 수 있다. 지역 씨앗 연결망은 한 지역의 씨앗이 멸종되지 않도록 1차적으로 현장에서 보존하고 씨앗을 토착화시키며, 개개인이 씨앗을 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그 씨앗이 멸종되는 게 아니라 지역 내에서 되살릴 수 있도록 관계가 연결되는 체계이다. 또한 소규모 씨앗 모임을 다차원으로 확대시키고, 씨앗은행, 씨앗도서관, 씨앗학교 등의 방식으로 교육과 합의에 중점을 두고 실천하며, 씨앗에 대한 권리를 지역사회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1) 씨앗은 곡식이나 채소 따위의 씨 혹은 앞으로 커질 수 있는 근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생물의 번식에 필요한 기본물질인 씨앗을 일컫는 종자(산스크리트 Bija)란 불교에서 모든 존재와 현상을 낳게 하는 원인의 씨앗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씨앗이나 종자는 유사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법, 제도적 의미로 통용되는 종자의 의미와 구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씨앗이라는 말을 살려 쓰고자 한다.

2) 국립종자원 http://www.seed.go.kr/protection/system/apply_03.jsp

3) http://www.navdanya.org

4) K. Vijayalakshmi, S. Arumugasamy and A.V. Balasubramanian, “Organic Farming and Indigenous Seed Conservation Experiences from Tamil Nadu, India”,Leisa India,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June 2007

5) 2007년 9월 5일 국제종자포럼(International forum on SEED) 자료집

6) 위 문헌

7) http://www.wen.org.uk/...food/tower-hamlets-food-growing-network

8) http://basilseedlibr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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