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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사람과 마음이 보이는 통일 상상
2016-06-20 17:33:00

* 『모심과 살림』 4호(2014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사람과 마음이 보이는 통일 상상

 

송영훈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2014년 신년 화두는 ‘통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언론사들이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청사진을 제시하였고,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통일을 사회적 의제로 삼았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이은 통일대박론은 드레스덴구상과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등으로 이어지면서 현 정부 통일정책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통일담론들은 통일의 필요성, 통일의 편익 등을 강조하면서도 통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하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통일 상상의 세 가지 측면

 

통일은 서로 다른 공동체 혹은 분리되었던 공동체들이 합의된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일의 개념은 세 가지 중요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첫째, 통일은 최소 둘 이상의 공동체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통일은 여러 공동체 가치체계의 획일적 단일화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혹은 합의할 수 있는 가치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어느 시점에서의 제도적 단일화만이 아니라 그 단계까지 협력하는 과정, 그후 사회적 통합을 유지해 나가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남북한이 단일 민족공동체를 이루는 것 이외에도 통일을 상상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마적 신화의 상에서 대화와 소통의 파트너로

 

무엇보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과 상대의 나에 대한 생각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분단체제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대결적 관계는 남북한 주민들에게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두려움, 왜곡과 편견, 악마적 이미지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괴뢰, 원수, 반공, 섬멸, 박살 등의 언어를 사용하고 북한의 권력자들을 이리, 늑대, 승냥이, 뿔 달린 괴물 등으로 묘사했던 것은 상대에 대한 악마적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랫동안 개인들의 마음에 폭압적 반평화의 기제로 작용하였다. 두 달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북한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나쁜 나라야?”라고 질문을 하기에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아들은 텔레비전 속 전문가들을 통해 북한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북한에 대해 묘사되는 거친 언사들을 통한 악마적 신화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작동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통일의 시작은 남북한이 서로에 대한 악마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서로를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주체로 인식하는 데에 있다. 2014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북한이 협력대상이라는 응답이 45.3%, 지원대상 13.5%, 경계와 적대대상이 36.7%였다. 그리고 통일연구원이 각 이미지별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0점에서 10점을 부여하도록 하였을 때, 경계대상이 5.96점, 적대대상이 5.57점으로 가장 높았고 협력대상은 4.82점이었다. 두 조사 결과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는 경쟁대상을 포함한 다섯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보다 당위적으로 응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통일연구원의 의식조사는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이중 혹은 삼중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북한을 인식할 때 국민들은 당위적 판단과 현실적 판단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 대북정책, 통일정책의 개발과 실행이 필요하다.

 

북한의 이미지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것인가? 일상에서 대립적으로 사용되는 어휘들의 쌍을 사용하여 매우 부정적 이미지는 1점, 매우 긍정적 이미지는 5점을 부여하도록 했을 때, 북한의 이미지는 신뢰, 정직, 자유, 친구, 책임감, 평화, 선함, 민주 등과는 거리가 멀다. 통일연구원의 통합의식조사에 의하면 이 항목들은 부정과 긍정의 중간인 3점보다 모두 낮았다. 즉 북한의 국가이미지는 비신뢰, 부정직, 억압, 적, 무책임, 공격, 악함, 위협 등의 단어들로 상징되고 있다. 민주적 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 북한이라고 국민들이 생각한다면 과연 어떻게 국민들에게 통일의 논리를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라는 국가이미지와 북한 주민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을까? 통일연구원의 통합의식조사는 남한주민들이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보다 주민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긍정적임을 보여 준다. 북한 주민들이 근면하다고 느껴진다는 응답은 평균 3.50점을 기록하였다. 친절함, 온화함, 배려, 신뢰 등은 중간값보다 낮았지만 유사한 국가이미지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국가이미지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가운데에도 북한 주민의 개방성에 대한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와 같은 국민들의 의식은 실제 북한 주민들과의 사회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언론매체 등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기 스스로 형성하거나 주입된 것일 수도 있다. 필자를 비롯한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마다 스스로 형성한 인지의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듯 북한과 통일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도 우리가 가진 인지의 렌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라는 총체적 이미지와 북한 주민의 이미지가 다른 렌즈를 통해 국민들에게 투영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의 평화적 통일 상상을 위해 우리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마음 속 인지의 렌즈에 비치는 것이

악마적 신화의 상이 아닌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파트너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가치의 조화, 마음의 연결

 

남북한의 통일은 70년 가까운 분단 상황 속에서 발전되어 온 서로 다른 가치체계의 획일적 단일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거나 합의할 수 있는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나와 네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다. 한 부모의 자식들도 공통적으로 지닌 유전적 특징과 인성이 있지만, 저마다 구분되는 특징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다. 같은 제도 속에서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만 구성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극단적 진보와 극단적 보수 사이에 아주 다양하고, 그러한 다름으로 갈등하기도 한다. 다만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규칙에 합의할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이 심화되어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이 통일을 이룬다면 어떻겠는가? 남북한의 통일은 가족, 사회, 국가 내의 다름보다 더 다양하고 중첩적인 다름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 지난한 숙제이다. 우선 단절과 대결의 역사에 의해 발생한 복잡한 차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전쟁과 납치, 각종 테러와 무력충돌에 의해 상호 체제에 가해진 역사적 과오들을 어떻게 청산하고 화해하는가는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통일에는 정의의 실현과 화해라는 상충하는 가치의 조화가 필요하다.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지만 통일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가 미래의 비전을 제한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과거청산이 또 다른 폭력으로 사회발전의 장애 요인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진실과 화해에 대한 논의 없이도 남북한은 서로 마음의 통일, 가치의 통일을 이룬 경험이 있다.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통일의 뜨거운 바람이 한껏 불었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단일팀, 같은 해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FIFA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의 남북단일팀은 서로의 다름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고,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도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매개체로 하여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었다. 특히 영화 <코리아>로 다시 조명 받은 여자탁구팀의 활약은 23년 전 한반도에서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촉매제가 되었던 것이다. 스포츠를 통한 이와

같은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통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기에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과 북한이 지금은 서로 너무 멀리에 서 있는 것 같다. 서로 단절을 선언하고 압박과 대결을 반복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 사이 정상회담을 두 차례 개최했지만, 여전히 한반도의 통일시계는 통일과 먼 쪽으로만 향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북관계에서 반복되는 진전과 퇴행 속에서도 통일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계속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실세 3인방이 참석하여 주목을 받았으나, 사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바로 1991년 남북한 주민들 간 마음의 통일을 주도했던 현정화와 이분희 두 선수의 가능성 높았던 재회이다. 23년이 지난 후 현정화는 장애인아시안게임 한국 선수촌장으로 이분희는 조선장애자 체육협회 서기장으로 재회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나 두 영웅은 각자의 불운으로 만나질 못했다. 어쩌면 그들의 재회가 1991년의 통일 열풍을 환기시켜줄 수 있었을 것이며, 그럴 수 있었다면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와 서로를 연결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통일보다 더 큰 ‘통일’

 

통일이 ‘과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5월 “독일의 통일을 예상하지 못했듯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이에 대비해) 항상 문단속을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통일에 대한 준비와 대비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우선 통일은 아무도 모르게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삶의 방식과 사회적 체계가 통일 후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즉 미래는 현재 없이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많은 이익들이 현재의 삶에서도 점진적으로 실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통일은 도둑같이 올지 모르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남북 분단이 폭력에 의해 조장된 것이기 때문에 통일은 또한 그러한 폭력에 의한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에 평화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큰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제도적 통일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이뤄질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시점은 우리가 한반도에서 평화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축과 통일과 평화를 함께 고려한다면 통일은 다층적 과정과 그의 산물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북한 주민들이 한반도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통일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미나에서 만난 중국 학자가 한반도는 한국과 북한이 서로를 격리시키는 반신마비의 상태라고 지적했는데, 현장에 있던 필자에게는 너무나 쓰린 지적이었다. 한반도의 야경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을 기억한다면, 그 북한의 암흑이 북한의 전력난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북한이 모두 섬나라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도 육로로 주변 국가들과 교류할 수단이 없으며, 북한도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 주민들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는 것도 분단과 다름을 극복하는 통일의 한 모습이고 더 큰 평화를 지향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또한 통일은 제도적 통일 혹은 공존 이후에도 지속되는 과정이다. 물론 하나가 되는 제도적 통일 이후에는 그것을 통합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통일이건 통합이건 두 체계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체계를 제도적으로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빈부격차, 남남갈등, 남북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는 여전히 사회 문제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비용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예측으로 인해 오히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제도적 통일 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그 첫걸음은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바로 오늘 현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통일 후 빈부격차에 의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첫걸음도 현재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지금의 노력이 곧 통일 후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가 개인, 사회, 국가 차원에서 확산되는 것이 남북 간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통일은 제도적 통일 전과 후까지 지속되는 통합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의 밑바탕이다.

 

통일 상상의 세 가지 측면은 통일은 특정 개인 혹은 사회적 집단이 독점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지난 70여 년 동안 통일은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일부 사회적 집단만이 주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은 국민들의 합의를 벗어나서 실효성을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통일은 대박이라고 주장하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의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된다. 통일은 반드시 국민들의 마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한때 80%를 넘었던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60% 정도로 떨어지고 통일대박론에 공감하는 여론도 50-60%를 기록하는 것을 보아도 국민들의 마음과 연결되지 않고 정부와 일부 집단이 통일문제를 전유하는 것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통일 상상, ‘여기까지’가 아닌 ‘지금부터’

 

통일을 이뤄야 하는 당위적 이유와 현실적 이유는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본다. 독일의 통일이 있었지만, 냉전 종식 후에도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들이 서로 제도적 통일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주권국가가 분열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아직까지 분리되어 있던 민족들이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루는 데 성공한 사례도 없다. 분리주의적 경향성이 강한 최근의 국제정치 환경에서 남북한이 한숨에 제도적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우리의 희망적 사고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의 통일을 위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목록을 작성한다면 그것은 너무 길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논의한 통일의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통일 상상, 그리고 통일 준비는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통일은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기 때문에 무조건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재와 압박이 정책적 수단이라는 것은 대화와 협상도 정책적 수단임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강경책과 온건책은 배타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적 이익에 따라 혼용할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름을 이해하고 규칙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통일 교육은 북한이해 교육을 벗어나 평화를 위한 교육으로 거듭나야 하고, 통일운동도 평화운동과 연계되어야 한다. 유네스코 헌장의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라는 내용처럼 반통일적 의식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속 평화의 방벽은 통일로 가는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 평등, 상호존중을 부인하고 무지와 편견 등으로 남북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반통일적이고 비평화적인 현상이다.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하여 평화지향의 공동체 건설을 위한 여러 층위에서의 노력들이 요구된다.

 

통일이 장기적 과정과 그 결과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접근도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금 북한의 아동들은 미래 한국의 통일 상대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들에 대한 식량지원 및 기타 인도적 지원활동이 이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은 남북한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통일 후 세계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남북한의 특수한 문제로만 인식하기보다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차원에서 인식의 지평을 전 세계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상호의존성을 더 높여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한국과 북한은 다양한 국제 이슈와 관련하여 협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을 답사하는 중에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여정을 다녀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느꼈을까? 군사분계선을 두고 단절된 상황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것과 다양한 경로로 연결되어 있는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을 바라보는 것은 사뭇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인들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불신을 많이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북한과 북한 주민을 경제협력과 정치협력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적 이미지와는 달리 국가의 이익을 위해 협상할 수 있는 상대로 보는 것이다.

 

치유와 회복, 교감을 통한 통일 상상은 우리의 마음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것은 먼 미래가 아닌 오늘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화 <코리아>의 중 극중 이분희는 “여기까지 올 줄 알았네?”라고 현정화에게 묻고 현정화는 “이 세상에 여기까지란 없어. 지금부터야!”라고 대답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히스테리컬한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이지만 여기까지는 아닌 것이다. 지금부터다. 한국의 통일담론과 정책 결정이 마음과 사람의 통일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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