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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나’는 없고 ‘노동’만 있던 무력감
2016-07-28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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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고 ‘노동’만 있던 무력감

 

기호철 (땡땡책협동조합)

 

『사표의 이유』

이영롱 씀, 서해문집 , 2016

 

회사에 다니면 왜 이렇게 힘이 빠지고 시들어 가는 걸까? 주변 친구들도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일은 계속되고 삶이 걷잡을 수 없이 직선으로만 흐르는 것 같았다. 답답하고 시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항상 그곳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일이 너울처럼 계속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허우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때, 그리고 2~3년 뒤에도 똑같을 것이란 직감에 앞이 깜깜할 때, 생기를 잃어가고 가슴이 답답해질 때. 내가 일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일이 나를 통제하는 느낌. 나는 없고 노동만 있던 무력감 속에서 사표를 냈었다.

대안학교 일을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5만 권의 장서에 내가 관리하던 책 1만 권. 책과 사람이 모이는 곳. 수많은 책이 내 몸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벅찼다. 어떤 책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일까? 어떤 책이 도서관에 꼭 있어야 하는 좋은 책일까 고민하고 읽어보고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지쳐갔다. 생기를 잃어갔다. 도서관 이용자가 책을 대여할 때 응대해야 하는 일상적인 서비스. 그리고 정말 있어야 할 책들을 고민해서 구입하고, 책을 등록하고 분류하며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자리에 두는 일. 독서회를 관리하고, 책이 있는 공간을 돌보고 청소하는 일을 했다. 책을 관리하고 사람들이 잘 찾을 수 있게 하는 일, 나는 그 일을 정말 사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생기를 잃어 갔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땡땡책협동조합 이영롱 조합원이 쓴 신간 『사표의 이유』. 직장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다른 삶을 선택해가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사회학적 분석을 담은 책이다.

 

“미치도록 취직되어야 하는 이 시대에, 무엇이 회사를 그만둔 이들의 ‘결단’을 끌어냈을까? 이전에 그들은 현대의 일터에서 어떤 식으로 노동자가 되어 갔으며, 또한 포기했는가? 이 노동의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하면 이후에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그것은 과거와 ‘다른 삶’일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에서, 직장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을 만나 위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길 시도한다.” (17쪽)

 

책은 크게 두 대상자 그룹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고소득 전문 직종에 종사한 엘리트 직장인과 돈보다는 재미와 열정, 의미가 직업 선택의 중심이 되었던 ‘열정노동’ 직장인이다. 내 주변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고소득 엘리트 직장인들과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열정노동’ 직장인들이 자기 일터를 선택하게 된 솔직한 이야기와 사표를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사표 그 이후의 삶까지도.

 

“일단 노동 강도가 너무 센 거죠. 그때도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이게 착취 구조의 개념은 사실 아니에요. 일의 특성상 내가 맡은 일을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어요.” (111쪽)

 

열정노동을 하는 인터뷰이가 자기착취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착취’당하는 피해자/약자의 위치를 거부함으로써 주체성에 의한 독립적 선택과 노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자신의 자율성을 확신하는 대화 방식일 수 있다는 부분에서, 나도 ‘스스로 선택했고 좋아하는 일’이라며 나를 몰아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였다.

 

책 속에서 사표를 쓰고 나온 사람들은 이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박래연이라는 인터뷰이는 사표를 쓰고 농사를 선택한 사람으로 그의 말이 와 닿는다.

 

“막상 살아보니까 여유롭기도 하지만 한편 시골 생활이라는 건 엄청 부지런해야 하는 거, 쉴 새 없이. 그렇지만 그게 자율활동이기 때문에 덜 하기 싫은 건 있어요. 도시에 있다 보면 ...... 조직생활을 하고 시켜서 하는 일이 많잖아요. 자의보단 타의가 많은데, 해야 되니까 하고 (중략) 농사도 어떻게 보면 농사에 나를 맞추는 거고, 철마다 해야 되면 일을 더 많이 하기도 하고, 근데 어쨌거나 내 선택에서 한다는” (325쪽)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힘. 생기로움을 만들어 내는 힘은 ‘자율성’에 있다. 타율이 아닌 자율. 그것이 정말 중요한 조건이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들이 있는 곳. 거기에 삶의 풍요로움과 활력이 있다. 8시간 동안 꼼짝도 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해야만 하는 일 속에서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내 의견을 낼 수 없는 노동문화와 조건이 나를 시들어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자율성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자율성을 지키면서 일하고 싶었다. 나도 그런 일을 찾고 싶었다. 도서관을 그만두고선 도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장사라고 생각했고 장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감자튀김과 맥주도 팔아보고, 사케집에서 꼬치도 팔고, 점포도 새로 만들고 공사도 해보았다. 노점에서 타코야키를 팔아 보기도 하면서 장사를 배웠다. 하지만 요식업계의 노동 특성상 하루 12시간씩 주 6일을 일해야 하는 생활 리듬. 주변 상권과의 경쟁. 그리고 다양한 손님과 거래처 사이에서 일해야 했다. 내 일과 시간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정말 아득한 일이었다. 어떤 절망감을 가지고 있을 때, 땡땡책협동조합을 만났다.

 

책에선 ‘노동사회 속 개인들이 박차고 나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자 하는 길목에서, 삶의 재생산과 행복이 가능해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거처를 옮기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면 충분할까? 저자는 그 실마리를 각자의 능력과 경쟁력이 아닌 협동과 만남 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이 가능성을 땡땡책협동조합에서 보았다.

 

땡땡책협동조합은 창립하기 전 준비모임부터 조합의 목표와 정관 등 기준들을 함께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특히 조합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합의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게 마음을 움직였다. 스스로가 자기 노동을 고민한다는 건 무척 생소했다. 사무국에서 일하게 될 2명이 ‘일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을 것’이란 원칙을 중심으로 각자가 생각한 중요한 조건들을 채워나갔다. 4시간 노동을 기본으로 두고 나머지는 자발적 활동이 되게 만드는 것. 노동시간의 총량은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일할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합의를 통해서 조정 가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임금에 있어서도 일하는 사람이 먹고사는 데 치이지 않고 조합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수준을 고민했다.

 

이렇게 합의를 통해서 나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면 굳이 돈 많은 사업가가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일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는 협동의 힘이 아니었을까?

 

책의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어떻게 살지 고민의 처분권은 오롯이 개인만의 것이고 사회는 각 개인 스스로가 고립을 자초하게끔 만들면서 결국 고립을 구조화해왔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립의 구조화는 우리들로 하여금 세계는 고립무원, 세상은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뤄진 거대한 전장이라고 믿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듯 아직은 “더 깊이 협력할 능력”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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