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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싸와디카 마렌칸, 이주노동자와 함께하기
2016-08-24 10:46:00

살림의 길>

 

싸와디카 마렌칸*, 이주노동자와 함께하기

*‘안녕, 놀자’라는 태국말로, 2015년 진행했던 청주생산자연합회의 지역공모사업 프로그램 이름이다.

 

이대경 (한살림 생산자(청주연합회))

 

 

전 세계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수는 1억5천만 명으로, 유럽과 북미 등 여러 국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며 국가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축산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 이주노동자의 11%에 이르는 1천6백만 명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도 200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 농축산업 분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가 2013년 말까지 19,726명에 이른다. 1)2) 고령화나 일손이 부족한 농업 현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그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은 서로에게 낯설고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이들과 함께 일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다가올 미래가 아닌 현실로 주어져 있다. 한살림 청주생산자연합회의 사례를 통해 농촌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처음 시작은 단순했던 것 같다. 이웃 농가에서 마주치는 얼굴이 까맣고, 몸이 자그마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수줍게 미소를 보내는, 때로는 무표정하기도 한 이주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다.

 

일 마치고 늦은 밤에 모여 기획서를 쓰고, 한살림생산자연합회에서 하고 있는 ‘지역활동지원사업’에 기획서를 내고, 지원을 받게 되었다. 운영위원회에 프로그램을 알리고 프로그램 내용이 공동체 월례회의에 알려졌다. 처음 기획서에는 1) 외국인노동자 실태조사와 생산자교육, 2) 생산자 태국어 강습, 3) 바자회와 태국음식 나눔, 4) 생산자와 외국인 노동자 야외 소풍을 프로그램으로 잡았다.

 

지금 보니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두 번에 걸친 운영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고, 어떤 공동체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모아오기도 했다. 반대하는 생산자의 의견은 이랬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들도 있는데, 이들을 모아서 바자회를 하고 소풍을 갔다가 문제가 생겨 출입국관리소에 붙들려가서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책임질 수 있냐는 것, 또 이주노동자든 불법체류자든 이런 이들이 생산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한살림 조합원들이 몰랐으면 한다는 의견, 어쨌든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한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쓰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좀 더 쉽게 생각했고, 막상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들은 청주연합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운영위원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를 줄여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우선 태국말 배우기를 시작하면서 진행되는 것을 보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논의는 일단락되었다.

 

근본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지난날, 팔당에서 청주로 생산지 재배치를 할 때 청주가 소농이 주류였기에 가능했다, 지금 인력난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소농 중심의 생산방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어쩔 수 없다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자, 생산자가 태국말을 배우면 생산물품의 클레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생산자교육

 

생산자교육도 부탁하고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도 듣기 위해 ‘청주 이주민노동인권센터’를 찾아갔다. 안건수 소장님은 태국인들이 많은 우리 지역이 좀 특별하다고 했고, 불법체류자를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말로 고쳐주셨다. “체류에는 불법이 있지만, 노동에는 불법이 없다”는 명언도 하셨다. 앞으로 미등록이 아닌 등록이주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내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고 하셨다. 왜냐면, 지금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거나 내쫓는 것도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시다보니 생산자교육은 처음이라고 하신다. 생산자들에게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생산자들의 반발에 부딪친 뒤라 내용을 어떻게 준비할지 점점 더 어려운 마음이 되었다.

 

기획위원들이 몇 차례나 모여서 조심스럽게 교육 방향을 논의했던 것에 비하면, 생산자교육에 모인 인원은 열다섯 명 정도로 많지 않았다. 기획위원들 부부, 여성대표자회의 끝나고 같이 오게 된 사람, 순수하게 교육에 온 사람 서너 명. 그들이 다였고 애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소장님은, 근로계약서 작성을 해야 하며 최저임금 이하는 무효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또 출입국관리소에서 찾아왔을 때 대처하는 법 등을 말씀해주셨다. 주로는 이주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셨다. 교육이 끝나고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 생산자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태국말 배우기

 

우리 지역에는 서연화라고 태국에서 온 여성생산자가 있다. 한국으로 시집와서 아이 낳고 농사짓고 지금은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 우리말을 아주 잘한다. 연화 씨가 아니었다면, ‘싸와디카 마렌칸’의 어떤 프로그램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생산자들의 부정적인 분위기 탓인지 강사를 안 맡으려 해서 외부에서 강사를 모셔 와야 하나 했는데, 고맙게도 강사를 맡아주었고 함께 10강의 수업을 했다.

 

수업은 생산자들이 배우고 싶은 말을 물어보면 연화 씨가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 인사말 , 숫자, 시간, 밥 먹기 , 농기구부터 ‘ 00시에 일 시작하고 00시에 끝낸다’, ‘빨리빨리, 꼼꼼하게, 깨끗하게 해요.’처럼 농작업 하면서 필요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서로 친해지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필요한 말도 배웠다.

 

한 달에 두 번씩 했는데, 밤늦게 일 마치고 모이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10명 넘게 오더니 점점 적어져 5~6명으로 인원이 줄었다. 중간에 ‘똠냥꿍’이라는 태국 음식도 같이 해먹고, 태국음식점도 가고, 태국에 대한 공부도 했다. 이 수업의 최대 성과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스스로 태국어 강습에 찾아온 것이었다. 연화 씨는 우리 교재 옆에 태국어를 써서 그들에게 건네줬고, 함께 한국말도 배우고 태국말도 배웠다.

 

 

한국어 교실

 

처음 기획에는 없었지만, 태국어 강습에 찾아오는 태국사람들을 보면서 한국어 교실을 5회 열게 되었다. 한국어 교실 강사도 연화 선생님이고, 우리 생산자가 돌아가면서 보조교사로 함께 했다. 날이 추웠는데도 10명 이상씩은 꼭 나왔다. 태국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말을 물어오면 연화 씨가 한국어로 알려주는 방식으로 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일을 할 때 하고 싶었던 말을 물어왔다. ‘월급 올려주세요’를 알려달라고 가장 먼저 말하는 이가 있어서 함께 웃기도 했다. ‘부자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알려달라며 사장님과 얘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보조교사로 왔던 생산자는 ‘아름답다’와 ‘예쁘다’의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생산자들의 반대로 못하게 된 프로그램이 생겼고, 그렇게 남은 비용으로 한국어 교실을 열고, 또 남은 비용과 바자회에서 번 돈으로 방한화, 겨울양말, 장갑을 사서 이들에게 선물했다. 끝나는 날 피자와 치킨, 맥주를 먹고 싶다고 해서 같이 먹고, 누군가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돌아가면서 1시간도 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았다. 주로 태국사람들이 노래했지만 같이 자리했던 우리도 한국노래로 답가를 불렀다. 지금도 미소 짓게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소풍 지원

 

단체 소풍으로 기획했다가 생산자들 반대로 개별 농가 지원으로 바꿔서 진행했다. 태국어 강습에 참여했던 농가에 10만 원씩 지원하고, 12월 한 달 중에 소풍이나 식사를 한 뒤에 인증사진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했다. 여섯 농가가 신청했고, 겨울이다 보니 모두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이나 술을 먹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생산자도, 이주노동자도 같이했던 사람들 모두 즐거워했던 것 같다.

 

바자회

 

열긴 열어야 하는데, 일부 생산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이 모이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던 터라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싸와디카 마렌칸’을 처음 제안했던 류근옥 생산자는 반대를 하더라도 하기로 했던 것은 꿋꿋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바자회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하자고 하며 가을에 한살림 여기저기서 열리는 가을걷이 행사장을 돌면서 바자회 물품을 얻어왔다. 우리 생산자들에게도 옷을 모았고, 한살림청주에서도 옷을 모아 보내오고, 행사 준비도 도왔다.

 

우리끼리 회의할 때는 , 바자회를 낮에 우리 물류창고에서 열고 생산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데려와 같이 음식을 나눠먹자고 뜻을 모았다. 그런데 태국어 강습에 온 태국사람들에게 우리 기획을 이야기했더니 , 그럼 안 된 다는 거다. ‘사장님들이 창피하다고 여겨서 옷을 무료로 얻는 바자회에 자기들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갈 수 있게 신촌이나 정봉동 주변에서 하고 , 일 끝나는 밤 시간에 했으면 좋겠다’, ‘같이 밥을 먹는 것도 불편하고 김밥이나 간식 정도가 좋겠다 ’ 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이쪽에는 바자회를 열 만한 공간이 없어서 이웃 친환경농가의 창고를 빌렸다. 마침 그 창고는 앞마당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외국인들에게 식재료를 파는 트럭이 와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미리 만나서 옷과 물품을 정리하고, 당일 아침에 모여 대차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그 위에 옷걸이를 걸었다. 400벌이 넘는 웃옷을 걸고, 바지는 대차를 뒤집어놓고 정리를 했다. 아이 옷과 그릇 같은 생활용품도 정리했다. 한편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먹을 테이블도 빌려오고, 한쪽에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현수막도 걸고, 풍선으로 아치를 만들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6시 반, 바자회 시작하는 시간이다. 몇이나 올까. 이주노동자는, 또 우리 생산자는 몇이나 올까. 몇 사람씩 창고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대동 쪽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차에 태워서 온 생산자도 있었다. 오는 대로 큰 비닐봉지를 주면 그 안에 가져가고 싶은 옷을 담았다. 7시가 되자 옷이 동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왔고, 옷은 인기가 좋았다. 11월이었으니 한참 겨울옷이 필요한 때였다.

 

옷을 나누고, 같이 음식을 나누고, 연화 씨와 사무국장님의 사회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들 마음속에 작은 감동들을 느꼈다. 요 근래 들어 가장 감동스러웠던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한살림뿐 아니라 주변 농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모였다. 이날 온 외국인들이 40명, 생산자들이 30명쯤 되었던 것 같다.

 

며칠 뒤에 한국어 교실이 있었는데, 다들 바자회에서 얻은 옷들을 입고 수업에 왔다. 바자회가 어땠는지 물어보니, 존이라는 친구는 “한국에 비행기 타고 올 때 입었던 옷보다 좋은 옷을 얻었다, 옷이 딱 필요할 때였다.”고 했고, 메이는 “환영하고 반겨줘서 좋았다. 그냥 일꾼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태국인들이 한데 모여서 좋았고, 아이들 옷을 태국에 보낼 수 있어서 좋았고, 또 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

 

처음에는 정말 쉽게 생각해서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뜻밖에 생산자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교육을 준비하면서는 외려 심각하고 진지해져서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막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는 걱정도 진지함도 무거움도 덜어지고, 그냥 만남이 좋고 알아가는 게 좋아서 끝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다.

 

2015년 ‘싸와디카 마렌칸’은 우리 지역에, 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생산자들의 평가와 개인적인 의견으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생산자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 생산자들을 중심에 둔 기획이었는데, 중간에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사업 내용이 흘러갔다, 우리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나 생산자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고, 밭을 오가면서 만나는 태국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한살림에서 이주노동자 관련된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진행했다는 데 의미가 있고, 바자회가 정말 감동스러웠고, 태국말도 더 배우고, 태국에도 가보고 싶다, 외국인들이 농가를 떠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가 되면 좋겠고, 한살림 농가에서 일하면 좋더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남겼다.

 

안건수 소장님 강의를 듣고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졌다는 한 생산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롯’도 우리 집에서 일하고 싶고, 우리도 ‘롯’이랑 계속 일하고 싶은데 가능한 방법은 없나요.” 그래, 그게 고민인 것이다. 그게 가능해질 수 있는 때가 되면 좋겠다.

 

성과가 있다면 우리 생산자들의 시선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처음엔 이주노동자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반대하던 이들이 태국어 강좌, 한글교실, 바자회를 지켜보면서 이런 활동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하나 더, 좀 더 성과를 확대해서 보자면, 우리 생산자와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보다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한다. 서로 위해주는 분위기. 구체적으로는 우리 생산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좀 더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싸와디카 마렌칸’을 지켜보고 참여했던 홍진희 생산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좋은 농사, 건강한 유기농산물은 대한민국이든 태국이든 공동의 가치이므로 이주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그저 생산을 위해 고용된 일꾼이 아니라 올바른 농사를 배워서, 고국으로 돌아가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태국의 소농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유기농업, 생태농업, 태국농업 등 좀 더 내용 있는 교육과 교류가 진행되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랬나. 그이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면 앞으로 태국으로 돌아가서 농사지을 생각이 있는지를 꼭 묻는다. 농사 현장이 고용의 현장을 넘어 교육의 자리이고, 함께 땅을 살려가는 동료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바람이겠다. 우리 생산자와 이주노동자의 관계 맺기가 그렇게까지 발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1) “ILO global estimates on migrant workers”, International Labour Office(ILO), 2015.

2) 「고통을 수확하다 :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국제엠네스티. 2014.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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