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2호] 종교적 혁명의 가능성 - 국제포럼 “현대사회의 위기와 종교 공동체의 역할” 참가기
2016-06-30 13:33:00

* <모심과 살림> 2호(201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종교적 혁명의 가능성

- 국제포럼 “현대사회의 위기와 종교 공동체의 역할” 참가기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악순환을 끊으려는 이들

 

세계가 신자유주의라 하는 무한 경쟁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되었다. 신자유주의를 다른 말로 바꾸면 시장만능주의이다. 정부의 통제도 가능한 자제하고 기업의 자유 경쟁에 맡기자는 논리이다. 그래야 더 많은 자본이 창출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사에 자본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요새만큼 자본을 신처럼 추구하는 세상도 일찍이 없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자본으로부터 초연해야 할 것 같은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 단체도 자본을 무시하고서는 운영되기 힘든 시절이다. 종교의 양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마음이나 자본을 증식시키려는 마음이나 일종의 욕망이라는 점에서는 오십보백보다. 욕망이 팽창으로 이끌고 팽창은 다시 욕망을 자극하는 악순환 구조에서 사회나 종교나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현실을 염려하면서 무한 질주를 멈추고 삶의 동력을 내적 평화에서 찾는 종교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한 평화적 영성을 추구하며 자급자족적 소규모 생태 경제의 모델도 보여준다. 현대인에게 대안적이라 할 만한 삶을 살아가려 애쓴다.

 

그런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상을 염려하고 서로의 삶에 대해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3년 10월 19일부터 20일까지 불광사(서울 잠실 소재) 중창불사 낙성 기념으로 열린 “현대사회의 위기와 종교공동체의 역할”이라는 국제학술포럼이 그것이다.

 

 

어떤 국제 학술 포럼

 

국제학술포럼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지만, 학문적 혹은 이론적 연구 모임은 아니었다. 인간 삶의 유기적 관계성을 의식하는 가운데 더불어 천천히 살아가는 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생활해나가는지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불광사 창건주 광덕스님의 표현대로 하면, 나와 너가 연결되어 있고 나와 우주가 한몸으로 엮인 ‘반야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국제포럼에서는 일곱 개 나라의 초종파적이며 영성적인 종교공동체 지도자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취지, 운영 내용 등을 차분하게 소개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홍보 부족 탓이었는지 그런 흐름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대 탓인지 일반 언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운 당시의 분위기를 대강이나마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자리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발표되었다.

 

1. “틱낫한 스님과 조화롭고 깨어있는 수행 공동체 플럼빌리지”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시작한 프랑스의 대표적 수행공동체

틱찬팝캄플럼빌리지 아시아생활불교연구소 소장 발표

 

2. “생태적 기업과 나눔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쇼케 공동체”

상좌불교와 대승불교 정신을 수용해 최소한의 물질만으로 ‘복짓기’ 정신을 실천하면서 자급자족하는 태국의 공동체

피쿨 와니차피차트태국 송콜라 국제불교대학 집행위원 발표

 

3. “퀘이커 공동체 펜들힐의 정신: 신의 임재와 세상의 치유”

대표적 영성적 평화운동 공동체인 미국의 퀘이커 연구센터

스티븐 A 스미스클레어몬트 메캐나대학 명예교수 발표

 

4. “떼제 공동체와 젊은이들: 희망과 의미를 찾아서”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교적 일치를 강조하며 내적 평화를 추구하는 프랑스의 공동체

앤써니 수사서강대 명예교수 발표

 

5. “성운대사의 인간불교 이념과 특징”, “승가와 재가의 평등을 지향하는 불광산사와 불광회”

붓다의 가르침을 ‘인간불교’로 규정하고서 도덕적 불교로 승가와 재가의 평등성과 구성원 모든 이의 보살도를 구현하려는 대만 불광산사

먀오광대만 불광산사 국제부장, 먀오판불광산사 인간불교연구소 연구원 발표

 

6. “승가와 재가가 함께 만드는 세계적 수행공동체 마하시 명상센터”

위빠사나 수행법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구현하는 미얀마의 공동체

담마나나마하시 명상센터 국제불교포교학교 교수 발표

 

7. “한국의 불교공동체와 불교의 미래”

한국 사회에서 생태적 정신에 입각한 불교적 마을공동체의 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길상사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및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조화시키고 있는 정토회

유정길전 에코붓다 대표 발표

 

8.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역할: 승가의 현대적 모델을 위한 모색”

사부대중이 다 함께 다른 종교도 포용하며 뭇 생명을 구제하는 종교공동체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

조성택고려대 교수 발표

 

 

 

무언의 공통점

 

전체적으로 불교적 생활 및 수행 공동체에 대한 소개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리스도교적 수행 공동체에 대한 소개도 적절히 조화를 이룬 자리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원칙, 방식, 소소한 일상사 등이 비교적 소상하게 발표되는 과정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들 공동체의 공통점도 드러났다.

 

첫째, 이들은 기본적으로 초종파적 생활공동체였다. 공동체의 토대는 특정 종교적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개별 종단의 이념을 넘어 다양한 종교인들을 포괄하며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은 내적 평화를 이루고 그것을 사회화하는 데 종단이나 종파가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한결같았다.

 

둘째, 외형적으로는 200여 명의 불자가 청중으로 참석했던 불교적 행사였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언어가 법당을 메울 때도 참석자들은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종교나 종파와 관계없이, 영성 혹은 내면의 평화적 종교성을 지향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공감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명상 등을 통해 내적 영성을 심화시키려는 수행 공동체였다.

 

셋째, 이들은 영성 공동체이면서도, 자체적 노동과 생산을 통해 먹거리와 생필품을 자급하는 생활 공동체이기도 했다. 인간이 생산한 물건으로부터 인간 스스로 소외되어버리는 현대사회에서 이들은 먹거리와 같은 생필품을 구성원들이 직접 생산하면서 공동체 단위의 작은 경제 시스템도 구현해나갔다. 이 점에서는 태국의 아소케 공동체가 돋보였다. 이들은, 재일 공공철학자 김태창의 언어를 빌리면, 함께(共) 일하는 공동체共動體였다.

 

넷째, 무한 경쟁으로 팽창만 거듭하는 현대사회의 위기는 기존 삶의 흐름을 늦추거나 멈출 때에야 진정될 수 있다는 것을 육성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생산된 물건의 공동 소유라는 원칙이 이들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었다. 멈춤과 나눔의 힘이 공동체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영성적 혁명

 

신약성서에는 예수가 한 아이가 내어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가 초자연적 기적을 행했다는 선전물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들의 멈춤, 앉음, 나눔에 있다. 실제로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앉고는’ 다른 사람들도 ‘앉으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오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앉자’ 떡과 물고기를 들어 축사하고는 사람들에게 떼어 ‘나누었고’, 그 ‘나눔’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번 포럼 발표자들도 달리지만 말고 걷고, 걷지만 말고 앉으며, 앉아서 깊이 명상하는 데에서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내적 영성이 계발된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인간에 대한 공감적 감수성으로 나눔의 평화적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체험적 증언도 내놓았다.

 

무한 경쟁으로 급격히 팽창해가는 세계 질서 속에서 진정한 변혁은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제자리를 찾아 앉는 데서 시작된다. 앉아야 보인다. 종교적 혁명은 차분하게 앉는 데서 시작된다. 일어서서 하는 혁명에는 총칼이 필요하지만, 종교적 혁명은 멈추어 앉음, 성찰하며 나눔에서 시작된다. 그럴 때에야 자신이 보이고, 세상이 걱정되며,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사는 것이 옳겠는지도 확연해진다.

 

고려시대 많은 사람들이 들野에 단壇을 쌓고 앉아 불법法을 가르치고 듣는 자리席가 있었는데 그것이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려면 먼저 앉아야 한다. 일상의 분주함을 잊고 고조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귀를 기울여 내적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법을 되새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식의 종교적 혁명은 횃불을 드는 봉기보다도 차분히 내면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번 포럼의 발표자들은 이러한 삶만이 결국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며 직간접적으로 증언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 좋은 얘기만을 던져놓았고 좋은 이야기만 토론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취지와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여럿 모인 곳이라면 문제점도 있기 마련일 테니 그런 것은 뭐 없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고, 그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다른 이들의 질문이나 추궁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들은 이상적 비전에 따라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다는 차분한 자부심이 더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들이 어두운 구석을 숨기려 했다기보다는 공동체적 삶에서 느끼는 만족과 자부심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자부심을 진정성 있게 전하려는 마음이 대단히 커 보였다. 하긴, 좋은 이야기 전할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나쁜 이야기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었을까. 불교적 행사였지만 불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오랜만에 실속 있는 포럼을 경험했다.

 

댓글[0]

열기 닫기

사단법인 모심과살림연구소 대표자 : 황도근 사업자 등록번호 : 201-82-08260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운로 19 (서초월드오피스텔) 3층 (06732) 전화번호 : 02-6931-3604 팩스 : 02-6715-0818 이메일 : mosim@hansalim.or.kr

  • 전체 : 378932
  • 오늘 : 63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