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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모던 파머와 킨포크 라이프
2016-07-30 14:07:00

* 『모심과 살림』 4호(2014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모던 파머와 킨포크 라이프

- 농農과 식食, 라이프스타일

 

김현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주말 저녁 안방 브라운관에 귀농 청년들이 등장했다. 미드도 일드도 아닌 ‘청춘 유기농드’. 그 주인공은 이른바 ‘배추값 2년 주기론(한 해 걸러 한 차례씩 폭등과 폭락을 반복한다는 가설)’에 대한 확신 속에 농사를 결심하고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청년들이다. 여기에는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좇는 만년 공시생, 갖은 설움을 견디며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비정규직 인턴사원 등 “배추애벌레만큼의 희망도 없는” 도시 청춘들의 삶이 현실적 배경으로 존재한다.

 

농촌 또한 이 ‘모던 파머’들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다. 마을에는 “귀농이 무슨 유행인 줄 알고” 시골로 들어온 청년들이 못마땅한 토박이 농부가 있고, ‘쌀 수입 반대’를 내건 삼보일배 행진 등 위태로운 우리 농업과 농민의 현실도 있다.

 

대개 중장년층을 주 대상으로 농촌 생활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온 이전의 농촌드라마와 달리, 이처럼 2014년 판 ‘농드’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는 청춘들의 무모함, 그 덕분에 좀 더 젊고 발랄해진 농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배추밭에서 록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모습은 드라마 속 연출에 불과하겠지만, 낭만과 꿈을 찾아 농촌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만큼은 2014년 오늘, 주목해 볼 만한 ‘실제 상황’이다.

 

 

, ‘트렌드’가 되다

 

‘도시를 떠나 삶의 터전을 마련한, 폼 나는 남의 일보다 궂어도 내 일을 원하고 정신과 육체노동의 조화를 추구하는 20, 30대’를 칭하는 ‘고루유족’(Go Rural in Youth)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만큼, 귀농귀촌은 더 이상 은퇴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기회를 찾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출구가 되고 있다. 30대 이하 귀농 가구는 5,060가구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높지 않지만, 해마다 뚜렷한 증가를 보이며 지난 3년 사이(2010년 761가구) 7배가량 늘었다.1)

 

세대를 불문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은 귀농귀촌을 결심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청년들의 귀농에는 그것에 더해 도시의 경쟁적 관계와 생존을 위한 치열함 속에서 소모되기보다 스스로 자기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선택하는 경향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전의 삶에서 농촌과 농사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청년들에게 오히려 ‘선입견’과 ‘두려움’ 없이 농촌의 삶을 새롭게 그려보게 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부모세대와 달리 가난한 농부, 고된 농사일이라는 이미지는 어떤 청년들에게는 그리 큰 장애물이 아니며, 따라서 굳이 안정된 노후 생활을 보장할 만큼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귀농을 유예하지 않고 바로 지금, 실행에 옮긴다. 특히나 ‘먹고사는’ 걱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진 시대를 살아오며 경제적 풍요로움보다 농적·생태적 가치와 자급자족의 삶이 주는 ‘다른’ 풍요에 눈뜬 청년들은 도시의 편리함과 소비문화로부터 과감히 등을 돌리고 있다. 이들의 귀농귀촌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존재하는 농촌, 고향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담긴 기성세대의 그것보다 어쩌면 더 근원적인 ‘돌아감’일지도 모른다.

 

귀농 열풍의 이면에는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U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2), 특히나 경제적 기반과 공동체적 관계에 익숙지 않은 청년 세대의 경우 농촌 마을에 정착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체적인 자기 선택에 의해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들이 ‘농’을 전승하는 주체이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농사 방식이나 관행들과 부분적 ‘단절’을 만들어내며 농업과 농촌에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데 있다. 소규모 자급농에 대한 지향, 또는 직거래 등을 통해 도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들은 그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귀농 이외에도 도농교류와 유통, 도시농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농農과 만나는 청년들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세련된 농촌, 스마트한 농촌, 재밌는 농촌, 농업 이런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귀농을 선택하게 됐다”3)는 한 청년 농부의 말처럼 감각적인 디자인과 소셜 네트워크라는 신新무기, 그리고 독창적인 ‘말 걸기’ 방식은 더 이상 새로움이 없을 것 같던 ‘농업’과 ‘농사’에서도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지만, 거꾸로 도심 곳곳에서도 ‘농 지향’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는 것은 경작본능. 서울시의 경우 2011년 29.1ha에 불과하던 도시텃밭 면적은 2013년 108.8ha로 늘었으며, 44만 명에 달하는 도시농부들 덕에 이미 많은 옥상과 마당, 도심 곳곳에서 ‘녹화綠化’가 진행 중이다.4)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구태여 ‘로컬푸드’의 의미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양하게 ‘식’과 ‘농’의 거리를 좁히는 경험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생산과 소비가 만나는 공간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직거래, 그 가운데에도 얼굴을 마주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파머스 마켓은 도심에서 즐기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맛’과 ‘멋’이 있고 ‘관계’가 있는 장터에서 사람들은 유기농 인증 마크 대신 그 속에 담긴 농부의 ‘이야기’를 믿고 기꺼이 값을 치른다. 이렇게 농農은 도시 안에서도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텃밭이 그것을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치유의 공간이듯 도·농이 가까워지는 일은 오랜 단절과 소외를 극복하는 ‘힐링’ 과정이다. 캠핑이나 짧은 시골체험 같은 프로그램들이 유행처럼 번져간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단지 여가와 유흥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서 농촌을 바라보는 경향은 뚜렷한 변화의 지점이다. ‘효리처럼’ 삶터를 옮기는 제주이민 행렬에서도, 떠나지 못한 이들의 부러움과 질투 섞인 시선에서도 도시 생활의 피로와 허기가 느껴진다.

 

도시에서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삶’을 찾는 사람들. 농촌과 시골에 대한 관심과 동경. 비단 귀농귀촌이라는 이주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한편에는 그것을 발 빠르게 읽어내고 충실히 반영하는 미디어가 있다. 농촌에는 문화가 없다고 하지만, 거꾸로 ‘농農’은 스스로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 가고 있다. 다시, 별 새로울 것도 없는 ‘농’ 이야기에 사람들이 눈과 귀를 열기 시작했다.

 

 

먹방의 진화와 밥상의 소외

 

최근 애그리테인먼트5)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한 예능프로그램은 삼시세끼 밥 짓기의 고단함을 화두로 삼았다. 시골 농가에서 펼쳐지는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는 농촌 생활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동시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대리만족과 힐링을 선사한다. 갖가지 채소들로 가득한 텃밭, 날마다 신선한 우유와 계란을 제공해주는 집짐승들, 장작 패는 수고로움에도 왠지 탐나는 아궁이까지, 모두 언젠가 누리고 싶은 전원생활의 낭만적 상상을 극대화하는 풍경들이다. 이제 먹방은 단순히 식욕을 자극하는 ‘먹는 행위’를 보여주는 것에서 집밥과 ‘요남자’가 등장하는 요리먹방을 거쳐, 직접 수확하고 거두어 먹는 데까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밥 먹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밥을 뜻했던 ‘집밥’이 소셜다이닝 모임에서 시작해 방송 프로그램,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에서 두루 쓰이며 2014년의 핫 키워드로 새삼 재조명되었는가 하면,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상의 의미는 거꾸로 ‘혼밥’6)이라는 또 하나의 경향을 통해 아이러니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과잉영양시대, 끊임없는 다이어트와 식욕의 변주 속에 어쩐지 늘 허기지고, 그래서 더 ‘먹는 일’에 관심과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 하지만 밥 먹는 일과 요리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은 삼시세끼 아닌 하루 한 끼도 내 손으로 차려먹지 않(못하)는, 자기 밥상에서의 소외를 경험한다.

 

우리나라 음식점 수는 인구 1000명당 약 12곳으로, 이는 일본보다 2배 이상 많고 미국보다 6배 많은 수준이다.7) 간이식당의 역할을 겸하는 편의점도 밤낮없이 성업 중이며, 대표적인 즉석밥 제품의 생산량은 출시 첫해 2천 톤 수준에서 2013년 15배 늘어난 3만 톤을 기록했다.8) 간편식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 가는 것은 통계 수치9)에서 확인될 뿐 아니라 체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음식을 요리하기보다 사 먹거나 간편조리를 택하는 경향, 음식을 조리할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쁜 삶을 살거나 혹은 끼니 해결에 들이는 시간을 절약해 다른 일에 투자하려는 삶의 태도는, 애그리테인먼트와 먹방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 ‘밥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밥 짓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계속해 밀려나는 현상에서 삶의 조건과 방식, 가치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바쁜 도시인들에게 요리는 이제 일상이 아니라 취미 혹은 이벤트가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언젠가부터 저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듯, ‘밥 짓는 풍경’이 사라진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요리를 하고 함께 먹는 미디어 속 장면을 통해 삶의 허기를 메우고 있는 게 아닐까.

 

 

킨포크 스타일과 일상의 재발견

 

갈수록 속도 경쟁은 심화되고 여유는 줄어드는 삶 속에서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다른’ 욕망은 분명 존재한다. 젊은 층 사이에 힙한 트렌드로 부상한 킨포크KINFOLK 스타일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만큼은 일정 부분 그러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래 ‘킨포크’는 친족 또는 가까운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로, 최근에는 동일 제호의 잡지가 입소문을 타면서 널리 알려졌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여유,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식탁의 모습을 감각적인 사진과 글로 표현해낸 이 잡지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30여 나라에서 출간되어 많은 ‘추종자’들을 낳고 있다. 킨포크의 지향에 공감하며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킨포크족族’이라 칭하며, 세계 곳곳에서 킨포크 디너라는 이름으로 소셜다이닝 모임이 열리고 있다.

 

잘 차려진 음식 사진과 유용한 레시피로 가득한 요리책이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는 많지만, 킨포크가 단지 ‘그 중 하나’로 분류되지 않는 그만의 독특함은 바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시선에 있다. 즉 우리 삶의 특별함을 비일상적 이벤트에서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로 옮겨오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화려한 파티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친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고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 삶이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잘 알고 있다. … <킨포크>에 실린 글과 사진들에는 일상의 기쁨이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우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장소를 만드는 수고로움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다시 살아 숨쉬게 하는 치유라고 믿는다. <킨포크>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전시장인 동시에 가족, 이웃, 친구, 연인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정신이다.” - 『킨포크』

 

단순소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메시지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발적 가난’, ‘월든’ 등의 책은 오래 전부터 느리고 단순한 삶에 대한 영감을 주어 왔다. “문명의 맵시와 지저분한 가난이 뒤섞인 도시의 삶을 떠나 시골에서 더 단순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의 길”을 걸었던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나 ‘느림의 미학’을 전파한 슬로 라이프 운동 또한 모두 그처럼 느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것으로의 ‘삶의 양식’의 전환을 담고 있다.

 

하지만 “매스컴이나 대기업이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떠받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 생산·대량 소비·대량 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fast economy’”10) 라는 쓰지 신이치의 지적처럼, 어떤 슬로건이나 트렌드도 자본에 공략당하는 순간 그것이 본래 담고 있던 지향과는 관계없이 쉽게 소비주의로 귀결되곤 한다. 이미 북유럽 풍의 인테리어와 빈티지한 테이블 장식, 심플하면서도 멋스러운 식기들이 ‘킨포크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킨포크스러운 상차림과 사진을 연출하는 테크닉이 일종의 ‘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에코백과 텀블러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었듯, 내 일상을 구성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들에 대한 미적 취향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특정한 지형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아래 글에서처럼 “본질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라는 킨포크식 라이프스타일은 감각적인 이미지와 결합해 감성을 자극하고 삶에 영감을 준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소한 삶’을 모토로 살아가고 자신들의 직업을 창조적으로 영위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 한 냄비 주변으로 친구와 가족과 이웃을 모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멋진 장식이나 비싼 식기, 호화로운 산해진미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초대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 『킨포크 테이블』

 

앞서 언급한 ‘슬로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킨포크 또한 또 다른 소비를 낳는 트렌드로서 그리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럼에도 후자에 무게를 실어, 느림과 여유라는 가치가 속도와 소비문화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고 다른 삶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관계의 빈곤과 정서적·감성적 허기를 채우는 일이 일상의 재발견으로부터 가능하리라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물론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 역시 아주 소소하고 느린 것일지라도.

 

 

식食과 농農, 라이프스타일의 전환

 

여전히 ‘제도’에 갇힌, 혹은 제도가 독점하는 유기농은 그 이름(라벨)의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유기농 문화’처럼 농사 방식이나 먹을거리 범주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 수사로 쓰이는 유기농은 이제 보다 넓게 생활과 삶, 내면의 건강함과 자연스러움 같은 것을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것이 사회 전반에서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낸 데는 이른바 ‘유기농 라이프’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지향이 존재했다.

 

‘무엇을 먹을까’라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까’와 실은 다르지 않은 질문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를테면 유기농 먹을거리에서 유기농 라이프로, 식食과 농農으로부터 삶(lfe)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러한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요리사의 주방이나 요리책 속 사진에서만 구현될 것 같은 복잡한 레시피 혹은 요란스런 접대용 상차림이 아니라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일상의 음식이고 일상적인 관계이다. 식과 농을 다시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 거기에는 당연히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수고로움이 요구된다. 그를 위해서는 삶의 다른 부분을 그만큼 덜어내고, 삶 전체를 조금씩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삶의 변화, 문화의 변화는 그 과정에서 더디지만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도시의 삶에서도, 농촌행을 선택하는 데에서도, ‘당위’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출발하는 전환의 조짐이 발견된다. 잡지 속 사진이나 유명인의 블로그처럼 우리의 식탁과 일상을 비춰줄 조명도 연출도 박수도 없는 우리 삶에서,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더불어 함께 나누고픈 ’맛‘과 ’멋‘을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1) 2013년 한 해 귀농귀촌한 인구는 32,424세대로 전년도(2만7008세대)에 비해 20%가량 늘었다. 2011년은, 10,503세대, 2010년은 4,057세대로 해마다 큰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몇몇 농촌 지역에서는 새롭게 유입되는 귀농귀촌인들의 숫자가 미약하나마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충남 청양군의 경우 줄곧 감소하던 인구가 2013년말 기준, 50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2) 2013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1년 수입이 1000만원도 안 되는 농가가 60%에 이른다. 여유와 풍요를 기대하고 떠난 농촌에서 ‘귀농푸어’로 전락하는 것이다. (““귀농? 귀농푸어?” 시골로 갔다 도시로 ‘유턴’하는 이들” <머니투데이>, 2014. 11. 28)

3) <청년 농부의 코멘터리>, 2014대안농정 상영 다큐멘터리.

4) “서울시 ‘도시농업 원년’ 선언 그 이후 성과는?” <뉴시스>, 2014. 2. 16 참조.

5) agritainment: 농사(agriculture)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말로 농사를 통해 놀이의 즐거움을 얻는 문화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도시농업을 꼽지만 최근에는 농사를 소재로 삼은 TV 예능프로그램 등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6) ‘혼자 먹는 밥’을 뜻하는 말로, 1인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만들어낸 신조어. 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친구나 식구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것으로 드러났다. 혼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대학생 72% 하루 한 끼 이상 ‘혼밥’”, <뉴스와이어> 2014. 3. 27)

7) “한국 음식점 수 미국보다 6배 많다”, <헤럴드경제> 2014. 9. 15

8) “CJ, 햇반으로 2018년 즉석밥시장 2배로 키운다”, <연합인포맥스> 2014.11.2

9) 최근 3개월 내 간편식 구입 경험은 72.6%로, 2012년 55.3%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간편식을 이용하는 이유로는 1순위 응답 기준 시간 절약(34.8%), 직접 조리보다 저렴(24.5%), 직접 조리보다 간편(11.7%), 맛(9.2%) 순으로 나타났다. (「2014 가공식품 소비자 태도조사 보고서」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4.12)

10) 『슬로 라이프』, 디자인하우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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