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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청년과 농農이 만났을 때
2016-07-30 14:40:00

* 『모심과 살림』 5호(2015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청년과 농이 만났을 때

 

* 6개 민간연구소·단체(녹색사회연구소, 모심과살림연구소, 문화연대, 전국귀농운동본부,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희망제작소)가 함께 진행하고 삼선재단이 후원한 ‘청년 귀농·귀촌 지원방안 공동연구’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보완한 원고. 본문에서 인용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는 연구 과정에서 진행한 내용임.

 

김현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농촌으로 삶터를 옮기는, 혹은 옮기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농사를 짓고 농부의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삶을 위해’, 또는 ‘생태적 가치를 추구해서’라는 동기에서 볼 수 있듯 농촌을 대안적인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1) 그런가 하면 ‘도시에서는 농農적 삶이 불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당당히 ‘No’를 외치는 청년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청년과 ‘농’이 만나는 공간과 방식이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귀‘농’ 아닌 귀‘촌’을 택한 그들

 

지금껏 농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농촌으로 이주하는 가장 큰 목적이자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었다면, 지금 시대 청년들이 농촌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으며, ‘농’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서도 다름이 드러난다.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수식하는 단어로 ‘귀농’보다는 좀 더 폭넓은 의미에서 ‘귀촌2)’이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기도 하다. 앞 세대 귀농자들이 농업에 대한 강한 의미 부여와 함께 농사에 근거해 자립하고자 했던 성향을 보였던 반면, 농사가 아닌 다른 일과 삶의 욕구를 가지고 농촌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 농업의 현실에서 비롯한 것으로, 또한 일정 부분 이전 세대와 다른 청년세대 고유의 성향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귀농해서 농사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우선은 농지 확보에서부터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귀농희망자들은 귀농 인구가 많은 지역을 선호하는 반면 그러한 지역은 땅값이 큰 폭으로 올라 신규 귀농인 유입이 쉽지 않으며, 정보 접근에 대한 제약도 농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판로와 낮은 농업소득 또한 전업농으로의 귀농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1980년대 후반 귀농한 진천의 박기수 농민은 “논농사가 기본”이었고 “절기에 맞는 농사”였던 당시 농촌 풍경을 회고했다. 하지만 농업 현실은 “하우스 등 시설재배” 위주로 급속하게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이전 세대 귀농자들이 공동노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농사일과 공동체를 경험했다면 지금은 그러한 두레농사를 경험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더불어 농사가 기계화·규모화되는 사이 노동은 개별화되고 품앗이보다는 용역(고용노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나는 모판 날라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농사를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구현석 농민(90년대 초반 횡성으로 귀농)의 말처럼, 지역공동체 내에서 자연스럽게 농사를 배우고 농민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은 지금의 농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3년 전부터 청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귀농자(31세, 남)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고 출하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기반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초기 비용이 더욱 컸던 것이다. 지역 생산공동체에 소속돼 생협으로 물품을 출하하면서 판로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게 되었으나 시설 비용 등으로 안정적인 소득과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귀농 인구가 증가하고 고수익을 창출하는 사례들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한편 소농의 기반과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청년들에게는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 또한 ‘농사로 소득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농촌으로 가더라도 농사 외에 다른 일을 선택하려는 경향 을 보인다.3) 청년들의 경험과 욕구가 다양해지고 농촌이라는 공간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농사 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흐름도 있다. 완주의 임경수 박사도 농업 소득보다 농외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농림부의 전업농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농민들에게 두 번째 직업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에는 토지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농지를 임대해 자급자족 수준의 농사를 짓더라도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농하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앞 세대의 시각이 청년들에게 보다 유연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는 까닭

 

귀농해서 전업농으로 정착하기에는 이처럼 많은 진입장벽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저마다의 다양한 배경과 동기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소득을 위한 농사보다 식생활의 자급 또는 경작 자체에 의미를 둔 농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적은 소득에도, 혹은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들이 농사를 짓는 것은 주로는 소박하고 생태적인 삶, 자급의 삶을 추구 하는 경향으로 설명된다. 즉 농사를 통한 ‘실천적 삶’의 실현이다.

 

“도시의 삶 자체가 순환의 고리 안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단절시키는 느낌을 주는구나.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게 똥이 돼서 다시 밭으로 가고, 그런 순환의 느낌이 있잖아요, 환경적인 면에서도 채식하면서 도시락 싸서 다니고 손수건 쓰고 텀블러 쓰고, 이렇게 하는데 그게 되게 부차적인 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근본적이지 못한 느낌을 계속 받아서, 일단은 내가 내 먹거리를 자급하는 것부터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 년 농사를 겪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변산(공동체)에 갔어요.”(26세, 여, 남원)

 

“원래 시골에 살고 싶었던 마음이랑, (환경단체) 활동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근본적으로 자연을 지킬 수 없는 활동인 거예요. 내가 도시에서 손을 놔야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도시의 소비문화를, 파괴적인 문화를 놔야 지만 4대강 공사든 새만금 간척사업이든 다 멈추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빨리 시골에 가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요.”(35세, 남, 봉화)

 

도시 생활에서 ‘한계’를 느끼고 귀농한 청년들에게 이러한 가치 지향은 농적 생활이 주는 성취감, 만족감과 결부되어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연과 함께하고 생태적인 삶을 살고자,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귀농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유기농업, 생태농업 또한 자연스런 귀결이다. 하지만 농민들과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기존에 농촌과 농업을 대상화해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다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생겨난다. 농사를 먹을거리 자급의 관점에서 볼 때 개인적인 삶에서 농사를 통해 자급을 실현하는 것이 곧 전체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농촌 현실을 맞닥뜨리며 더욱 단단해진다. 이렇게 스스로 하나의 롤 모델이 된 청년들은 이전 세대의 농민운동과 다른 방식과 속도로 농촌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드러나지 않지만 곳곳에서 생태적으로 자급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처음엔 기계 쓰는 것까지도 막 배척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희가 설 자리도 없는 거예요. 그렇게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어야 도시 사람들도 다 먹고 살았던 거잖아요. 그분들이 지금 약 치고 비닐 치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 있는 분들이 더 많이 자기가 먹을 거를 농사를 지어야 그분들이 그렇게 안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저희처럼 한두 명씩 계속 자기 먹을거리 자기가 하고 그분들이랑 같이 바꿔 나가야 되는 것 같아요.”(32세, 여, 봉화)

 

“(농촌은) 젊은이들이 없는 현장에서 모든 것을 기계화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고 불가피하게 석유에너지를 다량으로 사용해야만 유지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현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생태! 친환경! 만을 외쳐댈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땅으로 내려오고 스스로 농사를 짓고 자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34세, 남, 장흥)

 

그런가 하면 농사가 개인적인 삶에서 갖는 의미도 작지 않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만큼 청년 농부들은 지속가능한 농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계속 농사를 짓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농사일 자체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고 있다.

 

“농사 계속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을 수 있는 게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농사를 지을 거예요. 해본 일 중에 농사짓는 게 제일 즐겁긴 해요. 너무 힘든데 다음날 되면 그래도 갈 수 있게 되는, 회복이 제일 빠른 것 같아요.”(36세, 남, 괴산)

 

“(농사를 지으면)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작물에 애정을 가지면 땅이 돌려줘요. 농사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씨 뿌리는 날, 김 매는 날, 나에게 맞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날씨 좋을 때 밭에서 풀 뽑고 이런 게 좋아요. 처음에는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게 좋았고, 육체적인 노동이 주는 기쁨이 있어요.”(36세, 여, 해남)

 

“농촌의 이미지를 각인하게 된 것은 대학 때 농촌봉사활동을 통해서였어요. 한 가지씩 자신의 상처들이 있는데 어떤 작업에 몰두하면서 무념무상에 빠지면서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를 가졌던 것 같아 요. …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 먹거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해지고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그런 자연을 만나 고, 먹거리를 직접 기르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26세, 여, 홍성)

 

도시화와 산업화의 한 세대가 지남에 따라 삶에서 농사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청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농활 등의 경험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절기의 변화와 함께하며 심고 거두는 과정, 땅을 밟고 생명을 길러내는 데서 오는 충만함 등 농農이 갖는 고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농사와의 접촉면이 보다 많아지고 넓어진다면 탈도시, 탈임노동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의미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적 가치’에 기반해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과 삶

 

‘농’의 가치는 농사를 짓는다고 저절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듯 거꾸로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촌과 도시에서 다른 방식과 형태로 농적인 삶, 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우선은 일(노동)의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농업과 관계 맺는 청년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농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관사업의 가능성 이 많다”고 말한다. 청년들의 욕구가 다양한 일자리를 필요로 한다면, 농촌 지역에서는 농산물 가공이나 홍보, 유통, 체험사업까지를 포함하여, (기존에 비중이 높지 않았던) 농업에 기반한 일감이 우선적으로 넓어질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특히 귀농귀촌한 지역에서도 이전의 경험과 기술과 능력을 살려 일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볼 때, 농업이라는 영역 안에서 청년들이 가진 능력으로 농민과 상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갈 수 있다. 이처럼 청년들의 진입은 농촌 지역 안에서 기존에 취약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삶의 전 과정에서 ‘농’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교육농’이나 ‘농진로’ 등의 개념도 그러한 배경에서 등장했다. 오랜 기간 (풀무) 학교라는 형태를 통해 농민을 길러온 홍성 지역에서는 그러한 형태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교육농 프로그램과 청년 농진로·농창업 플랫폼 등의 활동을 통해 접촉면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또한 주목할 관점은 ‘농’의 가치를 공간적 의미에 국한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귀농귀촌 했다 도시로 돌아온 청년 들을 ‘실패’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그러한 경험은 이후의 삶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농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계기이자 자산이 되기도 한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혹은 도시에 살더라도 ‘농’을 삶의 중심 가치로 두고 살고자 하는 태도 또한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귀촌 경험을 가지고 현재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은 자연과 단절된 삶, 농촌/도시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성찰을 통해 경계를 허물 고 소통·교류하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공간’이 아닌 ‘인식’과 ‘태도’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도시에서도 ‘농적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농적 가치가 농촌에만 있는가?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농적 가치가 자연과 하나 돼서 남과 함께 협업하면서 사는 것이라면, 이 가치대로 살지 못한다고 할 때 무대가 농촌인들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공동체적 삶, 유대감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가진 삶, 그런 걸 추구하는 데 농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34세, 여, 서울)

 

“도시적 생활과 농촌적인 생활이 같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요. 왔다갔다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도시)에서 텃밭으로 농촌을 만들던가, 아니면 농촌에서 도시문화를 만들던가요. 서로 끌어당기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놓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36세, 남, 서울)

 

농촌과 도시를 오가거나, 도시에 살지만 농촌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주 거지를 옮겨 농촌에 사는 등 삶에서 농적 가치를 구현하는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회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젊은 세대에게서 그러한 ‘농’ 지향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북돋우고 확산하기 위해서 그 경로를 다양화하고 접점을 늘려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그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2000년대 초반에 ‘반농반x’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 ‘반농반x연구소’ 시오미 나오키 대표가 표방하는 반농반x는 “농사를 조금 지으며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나머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일이나 직업의 범주가 아닌 삶의 방식과 태도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도시의 텃밭 농부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이제 직업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의 농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주목해야 할 때다.

 

 

청년의 농사가 지속가능하려면

 

우리나라 전체 농가 경영주 가운데 40세 미만 가구는 1만 명이 채 안 되는 숫자로, 전체의 0.9%에 해당한다.4) 농업의 세대 계승에 대한 고민 속 에서 선배 귀농인들의 경우 자연히 청년들에게 ‘농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주문하기도 한다. 점차 규모화·산업화되는 농업 현실에서 자본 기반이 없이 소규모 농사를 짓고자 하는 청년들의 진입을 돕는 것은 곧 전체 농업 정책이나 구조 변화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며, 따라서 직업과 생계 수단으로서 농사를 선택하는 청년 농부들의 농사가 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과 뒷받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는 기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대안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스 템 자체를 고민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청년 농부에게 농지와 기본소득을

 

농지 문제는 삶의 터전으로서 주거와 함께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귀농한 청년이나 지역 내에서 모두 그 지원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후계농을 고민하거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을 지지·격려하는 선배그룹에 의해서, 무엇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선례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나, 이는 개인적 관계나 선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특수한 경우로 인식된다. 농지은행에서 진행하는 농지임대수탁사업이나 2030농지지원제도 같은 지원책도 생겨나고 있으나 조건과 기준이 까다로워 활용이 어렵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처럼 그 실효성에 대해 물음표가 많은 실정이다. 반면 생산자 단체나 지역사회 안에서 은퇴 생산자들 의 농지를 보전·활용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5) 청년과 농민의 필요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제도화하는 지역/단체 내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농지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보존하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 또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농사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 개념으로서 농민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전면적인 기본소득을 위한 장기적 구상에 있어서 농지와 자산 기반이 가장 취약한 청년 귀농인의 경우 우선적으로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취농지원금6) 정책 등도 검토할 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농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합의에 앞서 제도의 필요성과 가능성, 농업의 가치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 가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작은 단위의 공동체적인 해법 또한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산공동체 등에서 청년 귀농자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소득 보장 등의 방식으로 뒷받침해주는 방안이나, ‘청년 농산물’을 브랜드화해 생협 등을 통해 유통함으로써 초기 정착을 돕는 등의 방안 등이 제시된다. 개인적 관계 내에서의 판매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소농 귀농인들의 경우 생협 등 안정적인 판로와 관계망은 큰 도움이 되며, 단순히 생산물을 판매하는 관계를 넘어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려운 여건에서 농사를 계속해 나가는 데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 농부를 위한 ‘비빌언덕’

 

농사가 점차 ‘개별화’되는 흐름 속에서도 많은 농부들은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경험을 갖지 못한 청년들의 세대적 특징이 있는 만큼, 이들이 자연스럽게 농사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 공동체농장, 협업농장 등의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농촌이라는 공간이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넘어 사람과 관계 맺고 그 속에서 함께 공동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공동체와 공동농장은 청년들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교육 농장의 성격을 갖고 있는 홍성의 ‘젊은협업농장’은 지역 내에서 사람을 길러내고 또 유입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농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교육과 활동, 다양한 농적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청년 귀농인들에게 협업농장은 농사를 배우고 농촌에 적응하는 데 있어 좋은 ‘완충지’이자 ‘비빌언덕’이 되고 있다.

 

“맨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니까 농사의 기초를 배우려고 했어요. 수확할 때 까지 1년을 하겠다고 하고 온 거예요. 농장에 있으면서 기초는 배운 것 같아요. … 농장을 못 떠나고 안 떠나는 건 배울 게 아직도 많이 남아서이기도 하고, 우선은 수입도 있어요. 또 지역에서는 소속된 곳이 있어야 도움도 청할 수 있고 교류도 할 수 있어서, (관계를) 길게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요.”(37세, 여, 홍성)

 

자급과 자립을 위해 농사를 지으며 청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는 해남 미세마을에서는 지역에서의 삶을 꿈꾸는 젊은이를 지원하는 울타리가 되고자 미세농부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처럼 농촌에 머물면서 농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청년들의 유입을 용이하게 하기도 한다. 귀농 초기 ‘변산공동체’에서 농사와 생활을 경험한 20대 청년 귀농인들도 ‘배움과 삶의 터전’으로서 공동체의 의미가 있으며 무엇보다 “농사일을 배우고 같이 일을 하고 어울리는 게 좋았다“고 당시 경험을 술회했다. 현장에서 1년 농사의 ‘실제’를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정착의 기반이 없는 청년들이 농부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 공동체농장이 갖는 중요한 의미이며, 그 경험이 축적되고 이어짐으로써 자연스럽게 농업과 농사, 공동체의 문화를 이어간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모델의 지속·확산을 대안으로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청년들이 농부가 되고 농부로 살아가는 것을 돕는 일임과 동시에 농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도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1) ‘귀농귀촌을 생각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귀농자와 귀농희망자 모두 ‘경쟁/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 는 응답이 가장 높았으며, 뒤이어 ‘생태적 가치를 추구해서’, ‘시골이 좋아서’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10개 항목, 중복 응답)

2) 통계청에서는 “전원생활 등을 목적으로 농촌으로 이주한 자(단, 회사원, 교사 등 별도 직업이 있는 경우는 제외 됨)”를 귀촌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괴산군 귀농인 육성 및 귀촌인 정착지원 조례>에서는 ‘귀촌인’을 ”타 지역 에서 군으로 전입하여 농어업 이외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와 직업이 없는 자“로 명시하는 등 귀농인과 구분 하고 있다.

3) 귀농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찾거나 병행하고자 하는 의사가 확인되었다. 귀농희망자들의 경우 농사만으로 경제활동을 하겠다는 응답은 12.5%에 불과했으며, 대다수 는 ‘농사와 다른 일을 함께’(67.9%) 하거나 ‘농사는 하지 않고 다른 일로 경제활동을 하겠다’(12.5%)고 답했다. 농 사를 할 경우 그 형태 또한 ‘농사로 소득을 얻기 위한 정도’(33.9%)보다는 자급을 위한 농사 혹은 텃밭 농사를 하 겠다는 응답이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귀농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농사와 다른 일을 함께’ 한다 는 응답이 59.7%로 높게 나타난 반면 농사만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응답은 13%에 불과했다. 농사형태에서도 ‘농사로 소득을 얻기 위한 정도’는 37.7%로, 특히 20대에서는 17명 중 1명에 불과했다.

4) 전체 농가 경영주 1,120,776명 가운데 40대 미만은 9.947명이며, 40대는 82,329명(7.3%), 50대 252,507명(22.5%), 60대 331,083명(29.5%), 70대 이상 444,910명(40.0%)으로 집계됨. (통계청, 2014)

5) 한살림 생산자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은퇴 후 후계자 유무’에 대한 질문에 64.7%가 ‘없다’고 답했 으며, ‘후계자가 없는 경우 기존의 경작 농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한살림의 농지보전에 활용하도록 한다’는 응답과 ‘귀농자에게 임대’, ‘한살림 공동체 또는 작목반의 공동경영에 위탁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모심과살림연구소, 「2014 한살림 생산자회원 현황 및 의식조사 보고서」, 2014)

6) 45세 미만을 대상으로, ‘취농자의 연수를 최장 2년간 지원하거나 농사를 시작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최장 5년간 연 150만엔을 지원한다. 이러한 정책으로 신규 취농자의 감소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책 도입 직전에 비해 이후 2년가 6% 완화되었으며, 만 39세 이하 신규 취농자 비중이 2006년 18.2%에서 2013년 26.3%로 상승 했다. (「일본의 신규취농자 지원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농협경제연구소. NHERI 주간 브리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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