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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위기에 대응하는 그리스 먹거리 협동조합과 연대 경제
2016-07-30 15:31:00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그리스 먹거리 협동조합과 연대 경제

 

*원제: “Responding to the crisis: food co-operatives and the solidarity economy in Greece”. (Anthropology Southern Africa, 2013, 36(3&4)) 저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 수록함.

 

 

테오도로스 라코풀로스(Theodoros Rakopoulos. 베르겐 대학 사회인류학과 박사후 연구원)

번역 박준식(프리랜서 연구자·번역자)

 

 

이 글은 그리스 경제 침체와 긴축 상황에 대응한 반작용으로 2013년 그리스 서부 지역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소개한다. 풀뿌리 수준에서 시민들의 먹거리 유통 운동은 생활세계의 위기를 자율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과 함께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된 생산과 소비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식품 유통 체계에서 중간 유통 상인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시장 시스템과 다르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여 직접 거래하는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이러한 상호 조직화와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욱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참여자들의 인식 변화, 활동가들의 직거래 시장 운영과 이후 발전 방안에 대한 고민은 기존 시장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성장의 모색과도 맞닿아 있다. (편집자 주)

 

 

그리스에서는 외압에 의해 긴축과 불황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많은 대중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 논문은 그런 사례 중 하나를 살펴본다.1) 구체적으로 이 논문은 아테네 교외지역의 중간상인 배제운동(anti-middleman movement)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이 논문은 현재 그리스가 처해 있는 위기를 더 큰 시각에서 살펴보면서, 이 풀뿌리 운동의 참여자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활동 범위를 식품 유통 너머로 확장시켜 그리스의 현행 지배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경제행동과 상호작용을 꿈꾸기 시작했는지 설명한다. 아테네 중간상인 배제운동 참여자들의 활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나는 그리스 사회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들의 야심만만한 정치 프로젝트를 살펴볼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일상에서 수행하는 평범한 활동(긴축재정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테네 한 지역 주민들에게 먹거리를 유통하는 일)을 더 자세히 살펴볼수록, 그들의 정치관이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을 더 잘 알게 된다. 위기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반응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해보면, 거시적 수준(사회적 수준)에서 진행되는 정치 논쟁과 투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그리스 위기가 거시경제적 현상이고, 따라서 거시 차원의 해법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내 연구의 주체들은 과도한 식품가격에 대한 실용적인 대응과 그리스의 현재·미래 위기탈출 방법에 관한 야심찬 비전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으며, 이는 이 문제에 관해 다른 접근법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테네에서 중간상인 배제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현장연구를 진행한 결과, 나는 이 글의 말미에서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 언론은 이 운동의 즉각적이고 쉽게 보여지는 측면에만 집중하고(별로 주목하지도 않지만 그럴 경우에도 이렇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커다란 정치적 야망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스 위기

 

그리스 부채 문제는 2010년 초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경제학자들은 이를 ‘국가부채위기(sovereign debt crisis)’로 규정했다. 그리스 국가와 국민이 책임지고 쌓인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자 그리스 정부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긴급대출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대출의 목적은 그리스 정부가 지출을 축소하여 재원을 확보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소위 ‘3총사(troika: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가 이 대출을 제공했으며, 대출 조건으로 그리스 정부가 구조조정을 실시하도록 했다. 첫 번째 대출은 위기선언 몇 달 뒤에 지급되었으며, 1,100억 유로였다. 두 번째 대출은 2011년에 지급되었으며, 1,300억 유로였다. 이 엄청난 액수의 빚 역시 미래에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인은 이 대출로 그리스의 국가부채 위기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옛날 빚은 고사하고 새로 빌린 자금조차 갚기 힘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처방이 병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3총사’가 요구한 구조조정 때문에 2010년 구조조정 실시 이후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이는 2차대전 이후 어떤 유럽국가가 겪은 것보다 더 단기간의 성장후퇴였다. 이제 주류 언론은 그리스를 ‘쓰러진 돼지(grounded PIIG)’2)라고 조롱하고 있다. 구조조정 이후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폐업했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2013년 중반 총 노동인구의 28%가 실업상태였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68%였으며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의료와 교육에 대한 공공지출은 급감했으며, 그 결과 대다수 그리스인이 기초적인 의료서비스에조차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3) 한편, 소비자 물가는 2010년 이래 계속 상승하여 모든 계층(중산층, 노동자층, 실업상태의 빈민층)의 구매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강요된 긴축정책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4)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는 행정부가 네 번 바뀌었으며, 극우파-중도좌파 연정, 기술관료(technocracy) 정부 등 여러 방식이 실험되었다. 시리자SYRIZA(급진좌파연합)는 2012년 총선에서 득표수와 의원 수를 크게 늘렸다. 한편 신나치정당인 황금새벽당(Golden Dawn)도 원외 소수 과격파를 졸업하고 다섯 번째로 의석수가 많은 정당이 되었다.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음 선거에서는 황금새벽당의 의석수가 두 배로 늘 수도 있다. 경제위기로 정치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해졌으며,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많은 풀뿌리 정치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중간상인 배제운동의 탄생

 

최근 들어 위기의 각 측면에 대한 여러 대응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5) 예를 들어 2013년 6월 그리스 정부가 지출 절감을 위해 국영방송국(ERT)을 폐쇄하자 수천 명의 아테네 시민이 방송국 건물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시위도 많이 일어났다(대규모 소요사태로 커진 것도 몇 건 있고, 심지어 폭동 수준에 이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일부는 보다 지속적인 풀뿌리조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한 가지 예가 위기로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 아테네 등의 도시에 있는 버려진 건물이나 사용하지 않는 건물에 침입하여 ‘무단거주지(squat)’를 만든 것이다. 이런 무단거주지 중 일부는 비공식 사회복지센터 역할도 겸하게 되어, 구조조정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인근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구조조정이 초래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던 사회적 대응 양식과 유사하다.6)

 

이 논문의 현장연구는 리투폴리Lithoupoli에서 진행되었다. 리투폴리는 아테네 서쪽구역에 있는 인구 밀집지역으로, 주민 수는 약 8만 명이며 노동자층이 주로 산다. 많은 주민이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실업률이 상승했으며 특히 젊은층의 실업률은 무척 높다. 그 실업자와 노숙자 청년 몇 명이 식물원(Botanic Gardens) 근처의 한 건물을 점유하여 단순한 무단거주지를 넘어 사회복지센터 역할까지 하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현재 이곳은 보타닉 스쾃Botanic Squat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공간을 기반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풀뿌리 사회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젊은이들은 RAME7)라는 이름의 비공식그룹을 결성하여 먹거리 유통을 조직한다. 보타닉 스쾃 근방에 있는 공원이 매주 두 번째 일요일마다 먹거리 유통장소로 바뀌는 것이다. 리투폴리 내 모든 동네 사람들이 먹거리를 사기 위해 언덕길을 올라서 버려진 공원에 모인다. 주민들은 시골농장에서 상경한 농민들에게 물건을 직접 구입한다. 농민들은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야채를 차에 실어 가져오며, 기름값은 자신이 부담한다. 농민들은 판매대를 설치한 후 주문받은 과일과 야채를 담고,8) 임시변통한 금고에서 잔돈을 거슬러준다. 그리고 RAME 활동가들은 이 모든 과정을 돕는다. 그들은 이 시장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농민들이 받을 수 있는 돈보다 더 싸게 구입해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중간상인들의 고리를 끊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판매할 농민은 RAME 활동가들이 선정하여 섭외한다. 또한 그들은 이날의 경험이 자신들과 고객들에게 즐거운 것이 되도록 노력한다. 장이 끝날 무렵이 되면 활동가들은 보타닉 스쾃에 있는 본부로 슬쩍 빠져나가서 술 몇 병과 플라스틱 컵을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시장 참여자들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저녁 늦게까지 있도록 유도한다.

 

RAME은 2013년에 35명으로 시작되었다. 몇 명은 실업상태에 있는 젊은이로 현재 보타닉 스쾃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리투폴리 내 여러 곳에 거주하고 있다. 시내거주자 중 일부는 정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보타닉 스쾃에 살고 있는 멤버들에 비해 나이가 많으며, 오래 전부터 좌파정치, 특히 시리자 같은 좌파정당을 통해 좌파정치에 참여해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RAME 자체는 제도권 정치의 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의회에 진출한 좌파정당조차 문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RAME 활동가들 사이에서 점점 더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터에서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RAME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이런 견해를 표출했다. 이런 토론이나 보타닉 스쾃에서 열리는 회의는 활기찬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웅변과 열띤 논쟁을 특징으로 하는 그리스 정치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참석자들에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최근 들어 자신의 임금과 연금이 얼마나 줄었고, 그 결과로 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먹거리를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 설명한다. 그들은 정부와 의회를 모두 비판하며, 의회의 모든 정당이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의무를 잊은 것 같다는 의견을 자주 피력한다.

 

시장터 토론 참석자 중 대학졸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교육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이 현재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거기에 바탕을 두고 RAME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야기하기 때문에, 참석자 모두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열띤 논쟁의 장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사람들에게 청중들이 찬사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농민들은 주로 아테네에서 먼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모임에 별로 참석하지 못한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농민들이 처한 어려움에 관해 그들을 대신해서 소비자들에게 길게 이야기한다. 활동가들은 도매업체나 소매체인 같은 중간상인들이 농민에게 농산물 가격을 낮게 지불하기 때문에 많은 농민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모임에 참석한 젊은 활동가 한 명은 이렇게 주장했다. “여러분은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들은 낮은 가격을 받습니다. 공통점이 뭘까요?” 그는 이렇게 묻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제시했다. “중간상인이 자신의 몫을 크게 챙기기 때문입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적이 아닙니다. 양측이 연대의 정신으로 협력해야만 합니다. 협력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런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좌파 활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지는 않다. 머뭇거리며 이야기하는 태도로 볼 때, 나는 이들 중 다수가 지금까지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한 적이 없거나 정치문제에 관한 온건한 해법을 지지해왔다고 확신했다. 이런 사람들은 좌파들에 비해 보통 말이 적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의견을 피력하는 데 필요한 어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요된 긴축정책으로 자신들의 일상 생활이 큰 영향을 받게 되자, 중간상인 배제운동과 그 운동 참여자들이 열을 올리는 아이디어들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젊은이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중 일부는 저에게 꽤 새로운 내용이에요.” 시장 한가운데에서 한 활동가가 짧은 대중연설을 하고 나자, 내 곁에서 연설을 함께 들었던 한 할머니가 금방 산 조그만 과일봉지를 손에 쥐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오랜 세월 동안 ‘동네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에서 쇼핑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속인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하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슨 설명이 있어야 해요. 제 연금은 줄었지만, ‘슈퍼마켓’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정말로 나 같은 사람에게 신경을 안 쓸지도 모르죠.”

 

 

먹거리 유통에서 더 큰 목표로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현장연구를 위해 내가 참석했던 시장에서 대충 세어본 결과, 시장이 열리는 날마다 천 명에 가까운 소비자가 모였다. 시장에 모인 소비자 각각이 다른 가구를 대표한다면, 이 시장으로 리투폴리 주민 5~10%가 혜택을 보는 셈이 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실험으로서는 꽤 성공적인 결과이지만, RAME 활동가들은 지역 내 서비스 범위를 늘리기 위해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또한 그들은 가난한 아테네 동네에서 먹거리를 유통하는 자조조직을 결성하는 것보다 훨씬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활동가 중 한 명인 불라Voula는 중년 교사로, 시리자에 대한 정치적 확신과 실용적인 필요 때문에 이 운동에 합류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경제 전반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길거리 경제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진짜 이유이지요.” 이어서 그녀는 내가 마치 자신의 학생인 것처럼 선생님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조직하는 시장은, 사람들이 그리스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녀는 그리스 정부에 긴급대출을 제공한 ‘3총사’, 그것을 받아들인 정치인들,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조언을 한 경제학자들이 위기에 관해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국가가 빚이 많지만 그렇게 엄격한 일정으로 빚을 상환하도록 강제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그녀의 주장은 이렇다:] ‘게다가 국가 부채와 그것을 절대적으로 상환해야 한다는 점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결과, 그리스 경제에 존재하는 위기의 다른 차원에 대해서는 관심을 돌리게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층층이 존재하는 ‘기생충들’(그녀의 표현이다)이다. 이런 중간상인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지불하는 비용보다 훨씬 과도하게 상품과 서비스의 최종가격을 높이고 있다. 중간상인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그리스 경제가 처한 위험한 상황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농민 같은 생산자들은 농산물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소비자들은 구매력 저하로 그것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중간상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생산적이지도 않고 그 가치가 과대평가 되어 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상인들은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자신들이 받는 이윤 폭을 줄이지 않는 입장을 끈질기게 고수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중간상인이 배제된 공원 시장을 이용하는 많은 리투폴리 주민들에게는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이야기이다. 주민들은 이 시장이 근처 슈퍼마켓이나 다른 소매점에 비해 가격이 훨씬 싸다는 점 때문에 이곳에 왔지만, 왜 그렇게 가격이 차이가 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RAME 활동가들은 이 시장에서 값싼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자신들의 핵심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농민들의 판매대 설치와 물건 판매를 돕는 것과는 별도로, 활동가들은 중간상인에 관한 RAME의 주장을 담은 전단지를 소비자들과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활동가들은 이 두 가지 활동을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두 개 팀을 조직했는데, 그들이 ‘생산팀’이라 부르는 팀은 시장 실무를 돕고, ‘선전팀’이라 부르는 팀은 사람들을 교육하는 임무를 맡았다.

 

장날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선전팀 팀원들은 판매대를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RAME의 ‘성명서(communique)’를 읽어주었다. 그들은 농민들이 몰고 온 트럭 화물칸에 올라가서 메가폰을 잡고 5분짜리 짧은 연설도 했다. 그 내용은 농산물 판매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 경제상황에서도 중간상인들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리스의 보통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금 이 시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선정된 생산자들과 리투폴리 소비자들이 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익명의 시장 참여자에서 벗어나 서로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통해 이런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RAME의 목표라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장날 동안 내가 들었던 모든 연설의 메시지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보타닉 스쾃 시장이 일상의 경제생활을 대안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은 이런 대안의 건설에 이미 참여한 셈이지만, 그것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대안을 보타닉 스쾃 시장에서 좀 더 완전하게 발전시켜 경제생활의 다른 영역들로 확장하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 연설자의 연설은 ‘이런 사업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와 그리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애고자 합니다.’라는 말로 끝났으며, 주변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시장이 끝난 뒤에 커피와 술을 마시며 진행된 토론에서는 이런 주제들에 관해 좀 더 심층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이런 토론에 몇 번 참석한 결과 나는 RAME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운동을 (현재의) 비공식적인 활동가 그룹에서 가까운 장래에 정식 협동조합으로 전환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시장을 통해 서로 만나는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공식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공식조직은 연대의식에 기반을 두고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개인적인 이익만을 쫓는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나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고 서로의 안녕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될 것이었다.

 

RAME 활동가들은 나에게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2012년 피에리아Pieria(아테네에서 약 400km 떨어진 소읍)에서 열린 회의가 분명히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회의에는 그리스 전국의 중간상인 반대운동 그룹들이 모였으며, RAME 활동가 몇 명도 이곳에 참석하여 비슷한 비전을 가진 여러 그룹이 전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돌아왔다. 참여한 활동가 중 한 명인 코스타스Kostas는 실직상태에 있는 건축가로 오래 전부터 좌파정치에 참여해왔다. 그는 나에게 이 회의 덕분에 이제는 ‘어딘가에서 계획이 진전되고 있으리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모든 그룹은, 각 그룹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으며, 중간상인 배제운동 그룹들을 하나로 묶는 전국적인 상위조직을 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또 다른 RAME 활동가인 안나Anna는 30대 초반의 여성 실업자이다. “연대의 실천과 사상을 나누고 유통시키는 일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것을 발전시켜 더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지요. 지역화된 연대경제들이 서로 만나게 하면, 주류경제에 맞선 총체적인 저항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체 활동과 다른 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RAME 활동가들은 현재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체계와는 다른 대안적인 경제체계에 관한 비전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대운동(dissent movement)을 분석한 2명의 인류학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주변부 지역활동가들은 스스로를 국제적인 저항운동의 일부로 생각한다.”9) 시장이 끝난 후에 열리는 회의와 보타닉 스쾃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그들은, 수평적인 조합들의 네트워크로 그리스 경제의 많은 부분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그들은 이런 내용을 정리하여 시장에서 배포하는 전단지로 만들었다. 이 전단지에는 RAME 활동가들과 다른 중간상인 배제운동 참여자들이 이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핵심이라고 믿는 원칙들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 원칙 중의 하나가, 중간상인 배제운동이 단순한 선의나 자선을 위한 것이라는 관념을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참여자는 계속 주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계속 받는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농민들의 생계가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합니다. 협동조합의 소비자들은 현재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어야 하구요. 한쪽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코스타스는 설명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협동조합이 활동가 몇 명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RAME 활동가들의 신념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어려운 시기에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의 생계 보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활동을 조율하는 사람들의 생계보장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주장은 그리스의 열악한 고용상황과 RAME 핵심활동가 중 일부가 실업 상태 젊은이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형태의 중간상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은, 현 경제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경쟁과 개인적 이익이라는 천박한 원칙 대신 연대의 이상이 살아 숨 쉬는 구조 속에서 자신들이 일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든다. 코스타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비결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상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으로 보게 되면, 자신의 요구를 적절히 알아서 조절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중간상인이 탐욕스럽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생산자에게 이야기할 때 그들은 소비자가 진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깁니다. 소비자에게 이야기할 때는 생산자가 진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요.”

 

RAME이 가진 이상주의의 또 다른 측면 역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극우정치나 이민자를 적대시하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서약에 서명하는 농민들만 시장판매자로 초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농민들은 필요할 경우 이민자를 농장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데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그 목적 중 하나는, RAME이 펼치는 활동과 신나치정당인 황금새벽당이 펼치는 활동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황금새벽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배분하는 사업을 조직했지만, 수혜자를 그리스 시민으로 한정시켜 외국인을 배제했다. 또 다른 목적은 앞에서 이야기한 자선을 피하자는 것과 관련된다. RAME 활동가들은 나에게, 황금새벽당은 먹거리를 공짜로 배분하여 자신들을 가난한 그리스 시민의 수호자로 자리매김 했다고 이야기했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기존 시장처럼 사람이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에 완전히 잘못된 접근법이다. RAME은 인종주의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이라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자신들이 그리는 그리스의 모습 속에서는 인종주의가 발붙일 자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활동가들은 주장했다.

 

 

인간경제를 위하여: 변화로서의 협동조합주의(co-operativism)

 

나는 RAME 활동가들의 목표에 공감한다. 그들이 시장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많은 토론에서 RAME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그리스에 중앙통제경제(command economy) 비슷한 것을 건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들에 따르면, 20세기 동안 중앙통제식 생산과 유통에 관한 많은 실험이 진행되었지만 보통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는 겉으로만 이런 이상을 내걸고 실제로는 위계적인 원칙에 따라 조직되어, 대중들의 희생으로 엘리트들만 득을 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현재 그리스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자유시장체계와 마찬가지로, 중앙통제경제 역시 인간의 자유와 평등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런 점에서 RAME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협동조합과 시장이 호혜적인 관계로 존재하는 경제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 간의 연대를 증진하는 구조 속에서 시장이 작동하도록 만들면 시장이 협동조합에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런 구조 중의 하나가 국가로, 국가는 법적 틀을 통해 서로 연결된 조합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국가사회주의는 국가경제 전체를 하나의 큰 조합으로 바꾸려 했던 시도라 할 수 있지만, 그 필연적인 결과로 봉사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그런 조직의 운영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나와 이야기했던 활동가는, “공통의 관심사에 의해 연결되어 있으며, 절대적인 소유권과 사적인 자유가 아닌 연대를 향한 인간의 성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정된 법에 의해 안정화되는 일련의 자율적이고 사람들과 가까운 지역화된 협동조합들이 훨씬 낫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법은 재산권과 사적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기보다는 인간에게 연대를 지향하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 있어야 한다.

 

RAME 활동가들은 협동조합운동의 역사, 특히 20세기 유럽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에서 무척 아쉬운 점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협동조합들이 기업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 체계에 포섭되는 일이 많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협동조합주의의 이상 자체에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불라Voula가 선생님 같은 어투로 이야기했다.

 

대충 이 정도가 RAME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전단지, 성명, 토론, 나와의 대담을 통해 밝힌 그리스의 새로운 미래에 관한 비전이다. 그들이 자신들끼리는 이보다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초래한 최근의 위기로 인해 협동조합운동이 보통 때에 비해 더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10) 협동조합운동의 비전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천가들로부터 태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11) 세계 여러 지역의 농업협동조합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에서도 이 점이 자주 지적된다.12) 다른 곳의 동료들처럼, RAME 활동가들 역시 보타닉 스쾃 시장을 유지·확대하고 협동조합을 건설하고 그리스 내 다른 협동조합들과 연결망을 구축하는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미래 비전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실천과 계획은 함께 가는 것이며, 실행 전에 종합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방식은 그들에게는 낯선 접근법이다.

 

이런 ‘실천가식 접근법(practitioner’s approach)’은 장점도 많지만 약점도 있다. RAME 활동가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알아차린 한 가지 약점은, 그들이 특정한 시장의 실천적인 디테일에 전력투구하다보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점에서는 그 말이 맞다. 내가 아는 한, 리투폴리에 있는 보타닉 스쾃 근처의 공원에서 중간상인이 배제된 시장을 연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연한 ‘현재중심주의(present-ism)’에는 약점이 있으며, 특히 내가 이 글 서두에 밝힌 질문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언론은 리투폴리 시장 같은 사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유통하는 사업, 즉 개별 사안에 초점을 맞춘 ‘단순한’ 활동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언론인들이 이런 활동 뒤에 있는 원대한 비전에 주목하더라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서 적당한 권위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권위를 가진) 불라 같은 사람이 언론에서 취재를 올 때마다 현장에 있지는 않기 때문에, 버려진 무단거주지에 사는 소수의 실업자 젊은이들의 의견에 언론인들이 크게 무게를 실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런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활동이 전례 없이 새로운 것이라는 (부정확한)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경제학자들은 현재 그리스 위기의 본질과 그 해법에 관해 자신들의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있다. 반면 리투폴리 무단거주지에 있는 활동가들은 현재 위기의 원인이 국가부채만큼이나 중간상인들의 약탈 때문이며, 협동조합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조건 부채를 갚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자신들의 반대의견을 뒷받침해 줄 권위가 거의 혹은 전혀 없다. (따라서) 언론인들은 이런 주장을 젊은 몽상가들의 유토피아적인 환상이라고 쉽게 무시한다.

 

하지만 RAME 활동가들이 탐구하고 있는 주제는 이미 탐구된 적이 있다. 그들이 알든 모르든 그들의 아이디어는 중요한 지적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들은 여기에서 자신들의 비전에 힘을 실어줄 권위를 찾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과 연대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모스Mauss13)나 폴라니Polanyi14)같은 학자들의 사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이런 학자들이 RAME 활동가들과 현재 그리스 전역에 존재하는 이들의 동료들이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관해 상당히 정교한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모스와 폴라니는 ‘자유시장(혹은 시장사회(market society))’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13)부정적인14)영향에 관해 극히 비판적이었지만,15) 시장을 없애고 상품과 서비스를 유통하는 임무를 관료제에 넘겨주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들은 시장과 관료제를 산업복합체 시대의 불가피한 특징으로 보았지만, 인간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그 둘이 작동하는 방식을 길들일 필요가 있으며, 인간의 물질적·사회적 웰빙well-being이 사회의 주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을 달성하는 주된 수단으로 두 학자는 협동조합운동을 주창했으며, 모스가 ‘실리 사회주의(practical socialism)’라 부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시장, 국가, 협동조합을 어떤 식으로 결합시켜야 할지에 관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제공했다. 최근 들어 모스와 폴라니의 저작이 가진 중요성을 학자들에게 일깨우려는 진지한 노력이 진행되었다.16) 하지만 이런 노력은 다른 식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이들의 저작이 많은 RAME 활동가들에게 유익하리라는 점은 내가 보기에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이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활동가들이 협동조합운동을 출범시키는 방법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모스, 폴라니 개론’ 같은 짧은 강좌를 들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런 생각은 이 활동가들을 모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설립에 관한 실천을 실리 사회주의 출현의 열쇠로 본 모스의 생각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1900년에 열린 ‘제1회 전국·국제 사회주의 협동조합 총회(First National and International Congress of Socialist Co-operatives)’에서 모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미래 사회가 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미리 맛보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혁명과 관련된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서를 쓰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의 한가운데에 사회주의 자본의 진정한 무기고를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상인 배제운동 활동가들이 유명한 학자들이 이미 같은 고민을 했으며 실리 사회주의를 확립하려는 모든 시도가 기업 자본주의에 의해 간단히 포섭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비전에 관해) 확신을 가지도록 도울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모스나 폴라니 정도면 경제학자들이 경제위기에 관한 시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권위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이며, 이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걸맞을 정도의 관심을 언론에서 받으려면 이들의 이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류학자들은 연구대상자의 행동과 말을 그냥 기록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활동가들의 목적에 공감하기 때문에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연구대상에게 없는 특별한 지식이나 통찰을 연구자가 가지고 있다는 부당한 주장을 펼치지 않으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리투폴리 연구에서 내가 중간상인 배제 시장 운영이나 협동조합 설립 계획에 있어 그들보다 훨씬 경험이 적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맞춰진 경제를 창조하는 방법에 관한 실천적인 교훈을 주며, 이 교훈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인간경제(The Human Economy)’라는 이름의 연구 프로젝트에 무척 중요하다. 아마 다음번에 아테네로 현장연구를 갈 때에는 내가 모스와 폴라니를 공부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서 그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존 샤프John Sharp와 테드 파워스Ted Powers의 도움에 감사하며, 논문심사를 맡아준 익명의 두 학자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2) PIIGS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이들 국가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다[발음이 pigs와 같다 - 역자 주]. 이 EU 국가들(주로 남유럽 국가)이 무분별하고 비효율적이고 부패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통해 이들 국가의 방만한 공공부문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유로존 축출 가능성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밖에 없다(악명높은 소위 ‘grexit(greece+exit)’)

3) Stuckler and Basu, 2013.

4) Varoufakis, 2011.

5) Herzfeld, 2011; Theodossopoulos, 2013.

6) Sitrin, 2012.

7) RAME이란 약자명은 이 그룹의 실명을 숨기기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다. 실제 약자명은 그리스어로 ‘부수다(to break)’를 의미하며, 전체 이름은 그리스어로 ‘중간상인 부수기(breaking the middleman)’를 뜻한다.

8) 주문은 미리 한다. 주민들은 RAME 활동가들에게 전화, 이메일, 직접대화를 통해 대량으로(벌크) 먹거리를 주문하며, RAME은 아무런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다.(역자 주)

9) Theodossopoulos and Kirtsoglou, 2010: 1-19.

10) Macpherson, 2008.

11) Whyte, 1999.

12) Vargas-Cetina, 2005.

13) 마르셀 모스Marcel Mauss(1872~1950): 프랑스의 학자이자 정치인 혹은 활동가. 모스는 사회학의 학문체계를 정립한 에밀 뒤르까임Emile Durkeim의 조카이자 ‘정신적 아들’로 여겨질 정도로 그와 함께 학문의 길을 걸었다. 결사체사회주의자이기도 한 모스는 레지스탕스의 리더이자 정치인 쟝 조레스의Jean Jaures 오른팔이었으며, 동시에 열렬한 협동조합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였다. 인도종교철학을 전공한 모스의 대표적인 저서는 『증여론(Essai sur le don)』(1925)으로 이 작은 책에서 모스는 시장과 계약의 기원을 밝히기 위하여 로마법전부터 근대의 인류학과 민속학 등 방대한 자료를 연구한 업적으로 당대의 사회과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북대서양 및 인도양의 원시부족에 대한 연구 결과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경제적 인간이 아니며, 인간사회는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세 가지 의무’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그래서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역사에서 아주 짧은 아주 최근의 현상으로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근거한 개인의 이익의 극대화라는 경제의 목적을 반박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증여론』은 이상률의 재번역으로 한길사(2002)에서 발간되었다.(편집자 주)

14) 칼 폴라니Karl Polanyi(1886~1964):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 저자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빈에서 출생한 유대인이다. 『거대한 전환』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시장사회로 규정한다. 즉, 시장이 사회를 벗어나 독자적인 조절양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기반이 된 것이 토지와 노동과 화폐의 상품화이다. 그러나 애초 이 세 가지는 자연(토지), 사람(노동), 교환의 상징(화폐)에 다름 아니며 시장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허구적 상품’이라 칭했다. 또한 폴라니는 『사람의 살림살이』, 『초기 제국시대의 교역과 시장』(1957) 등에서 시장과 경제의 기원을 찾고 그 원리를 설명한다. 현재 우리가 경제라고 쓰면서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데, 하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자원의 대안적 할당’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여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이는 시장경제에만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긴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의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oikos(가사)와 nomia(규칙)가 결합된 oikonomia로서 이는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살림’의 의미가 된다. 또한 경제의 통합원리는 시장의 교환(exchange)과 더불어 사회관계를 기반으로 한 호혜(reciprocity), 중심성을 가진 재분배(redistribution)라는 세 가지가 있으며, 모든 사회는 이 세 가지의 통합원리가 다른 비중으로 존재함을 밝혔다. 『거대한 전환』은 홍기빈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길(2009)에서 발간되었다.(편집자 주)

15) Bura, 2007.

16) Sigaud, 2002; Hann, 20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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