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모심의눈 모심과 살림 읽기

모심과 살림 읽기

게시글 검색
[6호] 역사를 함께 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
2016-07-30 15:47:00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역사를 함께 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

- ‘한일 시민이 함께하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 10년을 돌아보다

 

나카츠카 아키라 (中塚明,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1960년대 초반부터 일본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조선문제’의 중요성을 자각, 반세기에 걸쳐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사 연구 등 역사적 사실 규명에 진력해 왔다. 정년퇴직 후에도 동학농민혁명 및 청일전쟁에 관한 역사적 진실 규명에 매진함으로써 ‘일본의 양심’이라고 일컬어지며,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한일 시민이 함께하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에 안내자로 함께했다. 근대 한일관계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인들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증진시켰던 공로가 높게 평가되어 2014년 전북 고창군이 시상하는 ‘제7회 녹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번역 조성환(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06년부터 해마다 진행된 ‘한일 시민이 함께하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이 올해 2015년, 10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0년에 걸쳐 일본에서 연인원 250여 명이 참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한살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마련한 한일 시민 교류회에는 그동안 1천여 명이 넘는 한국 참가자들이 함께했습니다. 동학사상과 동학농민군의 활동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을 넘어 마음을 나누는 풀뿌리 차원의 교류 장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박맹수 교수(원광대)와 함께 이 기행을 이끌었던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로부터 그 의미와 성과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본 원고는 편집부에서 사전에 질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제가 처음으로 전북 고부에 있는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을 찾아간 것은 2001년 5월이었습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 차에서 내려 위령탑에 가까이 간 순간, 저는 그만 몸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주탑 주위에 우뚝 선 화강암 돌기둥, 거기에 새겨진 농민의 얼굴, 얼굴, 얼굴… ‘효수’를 당한 형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다음날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의 21세기적 의미’ 국제학술대회에서 「1894년 농민전쟁 기념조형물의 역사상歷史像」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박준성 선생은 이 위령탑에 대해, 봉기 100주년이 되는 1994년 9월에, ‘사발통문’1)이 발견된 이곳에, 정부나 지방공공단체가 아닌 이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세웠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저는 1960년 무렵부터 청일전쟁을 연구해 왔습니다만,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진도까지 몰고 가서 몰살시킨 뒤 지도자를 효수형梟首刑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것은 1995년 홋카이도대학 문학부에 있는 후루카와古河 기념강당의 어느 연구실에서 여섯 개의 두개골이 발견되고 나서였습니다. 그 두개골 중 하나에는 “한국동학당 수괴의 수급(首級=목을 벤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의 돌기둥에 새겨 있는 얼굴은 하나같이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 무명의 농민상 앞에 서서, 청일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민주화 흐름 속에서 심화하는 한국의 역사인식

 

위에서 언급한 박준성 선생의 발표에서 더욱 놀랐던 부분은, “이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이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많은 기념비 가운데 유독 뛰어난 조형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 그것은 농민전쟁에 참여한 여성과 어린이들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리는 내용이었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이 항일전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건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정부군이나 각지의 보수 군대와도 싸웠다는 조선 사회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94년 농민전쟁을 기념하는 조형물은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거듭해 왔다. 앞으로 농민전쟁 기념조형물을 만든다면 이 기념탑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조형물이 두 번 다시 정권을 정당화하는 상징조작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업적과시용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 좌우균형의 무거운 수직탑에서 탈피하여, 생존권과 생활권을 토대로 계급 모순, 민족 모순을 해결하려고 한 투쟁 정신과 농민이 염원하고 있었던 수평적 인간관계를 형상화해서 표현해야 한다. … 올바른 역사를 성립시키는 일은 과거의 기억을 단순히 재구성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이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박준성 선생이 말했듯 지금의 한국인들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 실상을 체험하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고부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일본 내에서 형성된 주체적 조건

 

물론 저 혼자서 이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실현시킨 것은 결코 아니고, 제 제안을 받아준 일본에서의 주체적인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한국·조선관에는 여전히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제국주의’ 시대와 다름없는, 이른바 ‘고질병’처럼 보이는 편견이 지금도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조선 침략사 연구에서는 1945년 이래로, 야마베 켄타로山.健太.(1905~1977)에 의한 선구적인 연구와 그 성과가 있었습니다.2)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살리는 실증적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의 경복궁 점령사건에 대한 실증적 연구3)나, 홋카이도대학에서의 ‘한국동학당 수괴의 수급’ 문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홋카이도대학의 이노우에 카츠오井上勝生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인 역사가들의 활약이 그러한 예입니다. 특히 이노우에 카츠오 선생의 『메이지일본의 식민지 지배』4)는 한국에서도 꼭 번역되어 읽혔으면 하는 저술입니다.

 

또한 일본의 민주주의 운동이 축적해 온 힘, 특히 1949년에 결성된 이래 민간 교육운동으로 이어져 온 ‘역사교육자협의회’의 활동이나 교직원조합에서의 교육연구집회 등은, 여전히 한국·조선 문제에 있어 여러 약점을 갖고 있지만, 문제가 지적되고 관심이 일어나면 그것에 부응할 만한 힘을 또한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 인본주의, 녹색(Peace·Humanity·Green)’을 모토로 하는 후지富士여행사에서도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어 지난 10년 동안 협력하며 함께 해올 수 있었습니다.5)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 나섰던 길

 

첫 번째 여행은 2002년 여름, 5박 6일 일정으로 ‘나라 현奈良. 역사교육협의회’, ‘어린이와 교과서 나라奈良네트21’, ‘나라현 퇴직교직원 모임’이 공동주최한 ‘한국 역사와 평화의 여행’이었습니다. 그 여정을 차례로 소개하면, 서울(경복궁, 탑골공원 등), 강화도(초지진 포대 등), 천안(독립기념관), 전주(동학농민혁명 역사 탐방), 고창(전봉준 생가 등), 정읍(사발통문모의탑,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고부관아, 황토현전적지·기념관, 마항시장(말목장터) 유적지, 만석보 등), 부안(백산성), 김제(벽골제), 마지막으로 공주(대둔산·우금치 전적지)까지, 강행군이라 할 만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넷째 날 저녁 한국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분들과의 교류회에서는 다시금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여정은, 서울 경복궁 견학에서 시작해 처음 2년간은 진도에서 전주를 향해 북상하는 길을 택했으나, 2008년부터는 둘째 날 보은이나 익산 혹은 대구나 광주에서 교류회를 갖고, 전주 근교의 동학농민군 전적지를 탐방한 뒤 삼례·대둔산으로 이동, 마지막에는 우금치에서 끝나는 것이 거의 정해진 경로가 되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주요행선지5)

 

한일시민 풀뿌리 교류의 길을 열다

 

2002년 나라 현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여행단의 방한에 즈음하여 박맹수 선생을 비롯한 한국 측에서도 빠르게 응대해주었습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한살림 활동가 16명이 일본을 방문해 나라와 고베 등지에서 일본 시민들, 생협 활동가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졌고, 다음해인 2004년에는 삿포로를 방문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의 사회복지단체인 삼동회 일행이 나라와 교토의 사회복지시설을 견학하러 왔고, 2012년에는 한살림 일행을 교토로 초대하고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참가자들도 일본 각지에서 모여 교류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일본인 여행단을 맞이해 서울과 전주, 보은, 대구, 광주 등 각지에서 시민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한일 양국의 참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교류모임이었습니다.

 

 

역사 인식, 미래로 나아가는 문

 

‘한국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일본에서의 ‘역사수정주의’ 운동이 나타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 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1997년에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조선인에 대한 민족차별·인권차별을 공언하는 헤이트집단 재특회在特會가 거리로 나온 것이 2007년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풍조 속에서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근대에서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는 역사인식을 심화시키는 여행이었습니다. 이 영향은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중 하나로 이 여행 참가자 구로다 다카코田貴子 씨가 집필에 참여한 중학 사회(역사) 교과서6)에 제2차 봉기를 포함한 동학농민봉기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었고, 2015년 교과서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일본의 의무교육인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동학농민군의 항일전쟁이 기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 여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2015년 여름 전남대 명예교수인 송기숙 선생의 『이야기 동학농민전쟁』을 동경의 배나무집(梨の木舍) 출판사에서 『동학농민전쟁을 알고 있습니까? - 봉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것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자인 송기숙 선생은 ‘광주항쟁’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전남대학교에서 해직되었던 시기에 동학농민군의 전적지를 돌면서 대하소설 『녹두장군』(전12권, 1994)을 완성시킨 작가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한국아동문학의 번역과 연구로 알려져 있는 나카무라 오사무仲村修 선생의 번역으로, 일본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아시아에서의 전쟁 이야기를 출판했다는 점에서도 출판사 측의 남다른 열의가 전해지는 책입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베 신조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존재입니다. 이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고의로 왜곡하고, 과거를 허심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에게 미래로 향하는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추진해 온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역사를 보아왔습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길을 각자의 마음속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계의 내일로 향하는 길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2015년 기행의 마지막 장소, 공주 우금치 전적지에서

 

일본인 참가자, 평화의소녀상과 함께 (2015)

 

 

1)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엎어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명단을 빙 둘러가며 적은 통문으로, 본문에서는 동학농민군들이 작성해 이후 발견된 것을 일컬음.(편집자 주)

2) 대표적인 저작으로 『한일병합소사(韓日倂合小史)』, 岩波書店, 1966)가 있다.

3) 나카츠카 아키라, 『역사의 위조를 바로잡다』, 高文硏, 1997. (『경복궁을 점령하라』, 박맹수 역, 푸른역사, 2002.)

4) 東京: 岩波書店, 2013.

5) 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한혜인 역, 모시는사람들, 2014, 136쪽.

6) 배움터,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 靑木書店, 2015.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