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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베네수엘라의 풀뿌리정치와 협동조합운동, ‘아직은’ 미완성
2016-07-30 16:08:00

* 『모심과 살림』 6호에 실린 글입니다.

 

베네수엘라의 풀뿌리정치와 협동조합운동, ‘아직은’ 미완성

*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지원하는 2015 생명·협동 연구공모사업에 선정된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운동’ 보고서에 기초해서 쓰인 글입니다.

 

하승우(땡땡책협동조합 땡초)

 

 

국내에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군인 출신의 독재자부터 21세기의 위대한 정치인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 만큼 차베스 개인의 성향이나 생각을 평가하는 것보다 그의 집권 시기 동안 베네수엘라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듯하다. 이 글은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살피고자 한다.

 

간단한 인상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사회를 아래로부터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19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뒤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차베스는 많은 자원을 지역사회로 보냈고 주민조직화를 지원할 각종 제도들을 마련했다. 하지만 15년의 시간도 기득권이 장악한 사회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고, 자기 삶과 사회를 바꾸려는 주체와 그 주체들을 연결하는 촘촘한 조직들, 기득권층이 장악한 권력을 와해시키고 전환시키는 대대적인 실험이 잘 맞물려야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 같다.

 

 

베네수엘라, 바닥에서 시작하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하 베네수엘라)은 남한의 아홉 배 정도 되는 땅에 2,60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사는 나라이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치면서 백인과 원주민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가 전체 인구의 67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 종교는 가톨릭이 다수이다.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빈민촌(barrio)에 산다.

 

베네수엘라의 주요 산업은 석유산업으로 국내총생산의 1/3 이상,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베네수엘라를 ‘석유-국가체제’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체제가 형성되던 시기는 부패한 독재자였던 후안 빈센테 고메스 장군Juan Vicente Gomez(집권기간:1908∼1935)의 통치기간과 겹친다. 고메스 정권은 외국 초국적기업의 석유탐사와 발굴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외국자본의 진출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고메스가 죽은 뒤 집권한 메디나Isaias Medina Angarita(집권기간:1941~1945) 정권은 이런 석유산업의 이권을 회수하기 위해 외국기업의 수익에 로열티를 부과하고 세금을 대폭 높이는 탄화수소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공산당을 합법화하고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등 개혁정책을 폈다. 하지만 민주정부는 군사쿠데타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Marcos Perez Jimenez(집권기간:1952~1957)는 다시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독재를 펼쳤다.

 

1958년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민주행동당(AD)과 기독교사회당(COPEI)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사법부, 군부, 선관위 등의 공직을 서로 나눠 갖는 ‘푼토피호(Punto Fijo) 협정’을 체결하고 번갈아 권력을 장악하는 체제를 완성한다(이로서 베네수엘라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선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이 푼토피호 체제는 차베스가 5공화국운동(MVR)을 결성하고 선거에 승리했던 1998년까지 40년 동안 유지되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이 야합체제의 위기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에서 비롯되었다. 1978년부터 석유수입이 감소하면서 국내총생산(GDP)도 같이 하락했고, 국내총생산은 1977년부터 1985년까지 24.2%나 감소해서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부채의 급증과 국제 금융시장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 자본의 해외도피 및 일련의 인플레이션 억제 조치들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983년 2월 통화위기와 함께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1) 이로써 석유산업에 기반한 부드러운 독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경제위기와 더불어 벌어진 또 다른 위기는 바로 식량 문제였다. 원주민들과 농민들은 대지주에게 땅을 빼앗겨 경작을 하지 못하자 농촌을 떠났고, 석유산업을 비롯한 기간산업 중심의 산업화는 이들을 대부분 비공식부문의 도시빈민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농민과 농촌이 붕괴되면서 베네수엘라는 식량수입국이 되었고 만성적인 식량위기에 시달렸다.

 

1982년과 1983년, 남미에 외환위기가 있었고,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남미에 개입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남미의 다른 국가들처럼 베네수엘라에도 신자유주의 도입을 요구했고, 그 여파로 1인당 국민소득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빠르게 증가했다. 1989년 2월 페레스Carlos Andres Perez(집권기간:1982~1993년) 정권은 구조조정을 포함한 ‘신경제종합정책’을 발표한다. 이에 1989년 2월 27일 수도 카라카스Caracas에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도시빈민들의 봉기, 소위 카라카소Caracazo가 일어난다. 저항이 전국으로 번지자 페레스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서 시위를 유혈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3백 명에서 3천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 시위의 여파로 1992년에 반미, 반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우고 차베스Hugo Chavez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감옥에 갇힌다. 1993년 부패 혐의를 받던 페레스가 사임하고 권력을 잡은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집권기간:1993~1998년) 정권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내세웠지만 1996년 4월 국제통화기금의 14억 달러 차관을 받는 대가로 다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에 맞선 우고 차베스가 19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다.

 

 

아래로부터의 힘, 어느 정도일까?

 

협동조합, 새로운 살림살이를 위한 디딤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차베스가 연방정부의 권력을 장악했지만 베네수엘라의 다른 핵심권력들은 여전히 기득권의 손에 있었다. “민주행동당과 기독교사회당의 양대 정당 정치인들은 연방의회, 주 정부와 시 정부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들을 장악하고 있었고, 사법부와 행정 부처 고위직들뿐만 아니라 사유 언론사들, 국유 석유회사를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과 베네수엘라상공업협회(Fedecamaras) 등 사용자단체들, 가톨릭교회들과 베네수엘라노동자총연맹(CTV) 등 시민사회 권력기구들에도 예전의 집권 세력이 포진하고 있었다. 차베스는 구舊지배 세력의 권력에 포위당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연방의회가 있었다. 이는 차베스가 제4공화국과 푼토피호 체제를 극복하고 대안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권력구조였다. 차베스가 선택한 전략은 헌법 제정을 통해 권력체계 자체를 재편하고 장기적으로는 구지배 세력 구성원들의 권력자원들을 박탈하되, 당면한 정책들을 수립·집행하고 정책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를 직접 수렴함으로써 의회를 우회하는 것이었다.”2) 베네수엘라노동자총동맹을 비롯한 전통적인 노동운동 조직들도 차베스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석유산업에 기반한 산업구조를 바꾸려는 차베스의 정책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베스에게는 베네수엘라 사회의 전환을 지지할 정치세력과 기득권층이 장악한 경제체계를 전환시킬 전략이 필요했다.

 

차베스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헌법이었다. 차베스는 정치권력을 통해 사회·경제권력을 전환시켜야 했고, 그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1999년 4월, 차베스는 제헌의회 소집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86%의 지지를 얻는다. 그리고 6월 25일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고 차베스는 의회의석 총 131석 중 119석에 자기 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제헌의회는 신속하게 새로운 헌법을 논의해서 그해 11월 17일에 396조항의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12월 16일 새로운 헌법을 비준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71.21%의 지지로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새로운 헌법은 사회경제를 지지했는데, 관련된 주요 조항들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3)

 

제 118조 노동자들과 공동체가 협동조합, 저축금고, 상호신용금고, 그 외 여러 형태의 사회적이고 참여적인 성격의 단체를 발전시켜나갈 권리를 인정한다. 이들 단체들은 법률에 부합하는 한 어떤 종류의 경제활동이든 전개해나갈 수 있다. 법률은 이들 조직들이 갖는 특성, 특히 협동조합, 협동노동, 공동이익의 창출 등과 관련된 특성을 인정한다. 국가는 서민 대중의 경제대안체제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 단체들을 장려하고 보호한다.

 

제 300조 사회적, 경영적 활동의 실현을 위해 기능적으로 분권화된 단체를 창설하기 위한 조건은 법률로써 규정한다. 상기 단체는 그 활동에 투자될 공공 재원의 경제적, 사회적, 합리적 생산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운영된다.

 

제 307조 ……농민과 그 외의 농산품 생산자들은 관련 법률에 기록된 사례와 형식에 따라 토지소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농업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의 조합적(associative), 개인적 소유 형식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

 

제 308조 국가는 중소기업, 협동조합(cooperatives), 신용금고, 가족소유기업, 소기업, 그리고 노동, 저축, 소비를 위해 형성된 모든 지역자치회를 보호하고 발전시킨다. 위와 같은 지역자치회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근거를 두며, 국가의 경제발전을 강화할 목적으로 운영되며 직업훈련, 기술협력과 적시의 자금 조달이 보장된다.

 

새로운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른 경제활동을 장려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경제체제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발전과 공동체를 위한 위엄과 존엄성”의 확보이다.

 

물론 차베스 등장 이전에도 베네수엘라에는 협동조합들이 있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예수회 사제들이 빈민사목활동의 일환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다 히메네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많은 협동조합들이 탄압을 받으며 사라졌고, 1960년대부터 다시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다. 1966년 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민간의 자율적인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고 18개의 지역협동조합연맹(CECO)과 협동조합네트워크(CECOSESOLA)가 196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75년에는 전국협동조합연맹(CECONAVE)이 설립되어 민간의 운동을 돕는다. 이 협동조합들은 차베스 집권 이후 ‘전통 협동조합(traditional cooperatives)’이라 불리며 민간의 자율성을 유지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에 전국협동조합연맹에 등록된 협동조합은 762개, 소속된 조합원은 40만 명이었다.

 

차베스는 이런 협동조합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렸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서 협동조합을 정치적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처음으로 정부계약 대신에, 서로 간에 무역이 이루어지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2006년 무렵, 전국엔 10만 개의 협동체가 있고 7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그곳에 몸담고 있다. 지역사회에 운영권을 맡긴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시설, 고속도로 정비, 의료 클리닉 같은 기반시설들이 대부분이다. 정부 아웃소싱의 역발상이라 하겠다. 국가의 일부를 대기업에 입찰로 넘겨 민주적 통제권을 상실하는 방식이 아니다. 정반대로 자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관리할 권한을 넘겨준 것이다. 최소한 이론적인 면에서만 봐도 일자리와 더욱 책임감 있는 공공서비스를 창출할 것이다.”4) 나오미 클라인N. Klein은 이런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며 기대감을 품었다.

 

그리고 안태환은 바로 이런 정책들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변혁시키려는 정책들”이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조하는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집단적·공동체적 이익과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고 장려하는 정책”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협동조합을 통해 “주 정부 또는 시 정부의 기능이 이전된 분권화된 공공서비스(건강, 교육, 주택, 문화, 스포츠, 환경, 공단유지, 주민치안 등)의 운영에 지역공동체가 적극 참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5) 즉 협동조합은 단순히 경제조직의 수를 늘리거나 일자리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서 그동안 수동적으로 살아온 시민들과 지역사회가 능동성을 갖도록 지원하고 보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초국적기업과 기득권이 장악한 석유산업과 주요한 기간산업을 재구성하는데, 차베스는 국유화나 전면적인 몰수보다 사회화와 점진적인 인수를 추구했고 이를 담당할 주체들을 기르기 위해 협동조합, 코헤스티옹cogestion(노동자기업관리)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노선이 추진되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들이 주요한 기업들을 국유화시키고 직접 관리했다면, 차베스는 중요한 기간산업들을 직접 국유화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함께 관리하는 실험들을 진행했다. 특히 차베스 정부에 맞서 자본가들이 공장을 폐쇄하자 노동자들이 공장을 다시 점유하고 통제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구했고, 차베스는 적극적으로 공동관리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코헤스티옹은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적극적인 전략을 고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협동조합운동은 이런 전략과 맞물려서 진행되었다.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한 구조 전환

그렇지만 이런 전환은 길고 어려운 과정을 밟아야 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민중의 습관을 바꿀 물질적인 기반을 만들기 위해 차베스는 2000년부터 빈민지원사업으로 알려진 ‘볼리바르2000Plan Volivar 2000’사업을 실시했고 군인들이 마을로 가서 가전기기를 수리하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교육하며 집도 지어주었다. 그러면서 수천 개의 학교와 병원, 보건소, 주택, 공원이 세워졌고 2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의료혜택을 받았다.

 

2000년 11월, 차베스는 신속한 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1년 동안 특별입법권을 가진다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 권한으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49개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으로 석유산업을 통제하는 탄화수소법이 개정되었고 경작되지 않는 땅을 정부가 수용해서 빈농이나 협동조합에게 낮은 이자나 무이자로 빌려주는 토지법 개정, 도시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비공식부문의 노동을 공식노동으로 흡수하기 위해 5인 이상의 협동조합 설립을 허용하고 자금/교육/구매 등과 관련해 협동조합을 지원하며 모든 협동조합의 세금을 면제하는 협동조합특별법, 이를 지원할 소액대출신용법 등의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기득권층이 이런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다. 2002년 4월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차베스가 감금되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고, 그해 12월에는 노동조합까지 가세한 자본가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때 베네수엘라국영석유회사(PDVSA)의 생산량은 평상시의 10% 수준으로 떨어졌고,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은 -9% 정도로 떨어졌다. 2004년 8월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져 실업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하지만 민중들의 시위로 쿠데타 세력에게서 풀려난 차베스는 볼리바르2000보다 훨씬 더 개혁적인 프로그램인 미션을 2003년부터 추진하는 것으로 맞섰다. 문맹퇴치를 위한 미션 로빈슨Mission Robinson I·II, 나이에 상관없이 교육을 하고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주는 미션 리바스Mission Ribas, 고교 졸업자들에게 대학 교육을 실시하는 미션 수크레Mission Sucre, 쿠바와 연대하여 무상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sion Baro Adentro I·II,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공급하는 미션 메르칼Mission Mercal,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교육시키는 미션 부엘반 카라스Mission Vuelvan Caras, 토지를 공동소유하고 빈민과 원주민의 인권을 강화시키는 미션 과이콰이푸로Mission Guicaipuro, 집 없는 사람들에게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미션 하비타트Mission Habitat 등의 미션들이 추진되었다. 플랜 볼리바르2000이 군대를 동원했다면, 미션은 국가가 재원을 지원했다. 미션을 추진하기 위해 차베스는 국영석유회사가 ‘사회와 경제발전을 위한 기금(FONDEDPA)’을 조성하도록 해서 사회경제개발은행(BANDES)이 기금을 운용하도록 했고 정부 예산의 40% 정도를 미션에 투자했다.

 

특히 ‘고개를 돌려라’ 미션(부엘반 카라스)은 직업이 없거나 미숙련 임시고용직인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자기 삶을 변화시키도록 지원했다. 이 직업교육을 통해 2004년 12월부터 2005년 5월 사이에만 약 26만 4천 명의 학생들이 기술과 농업, 건설, 관광과 관련된 주제로 반년 혹은 1년 단위의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매월 100달러의 장학금과 의료, 주거 조건을 제공받았다.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들 경우에는 우선적인 정부지원을 받았다. 2007년까지 67만 명이 이곳을 졸업했고 1만 개의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처럼 빈민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고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미션과 더불어 차베스는 기득권이 장악해온 지방정부 대신에 지역사회를 아래로부터 다시 조직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제를 맡은 것이 바로 주민평의회Consejos Comunales이다. 도시의 경우 200~400가구, 농촌의 경우 20~40가구가 주민평의회를 구성해 정부에 프로젝트를 신청하도록 했다.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주민들이 기획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하고 법률적 검토만 했다. 그러자 주민주도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2006년에 주민평의회 수는 1만2천 개에 달했고, 매년 15억 달러라는 많은 예산을 집행했다. 주민평의회는 지방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중앙정부와 연계되어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관료조직이나 기득권층의 활동을 감시했다.

 

주민들의 자존감과 자치를 되살리기 위해 주민평의회는 민주적인 내부구조를 갖추고 있다. “공동체 내 15세 이상 성인들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시민총회를 구성하고, 집행기구는 공동체 내 보건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들의 대표들로 구성한다. 공동체위원회는 중앙정부로부터 자원을 직접 수령하며 자원의 운영방식은 시민총회가 결정한다. 지역사회의 주요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주어진 자원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결정해 해결하며, 쓰레기 수거에서 학교 건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역사회 현안들을 다룬다.”6) 주민평의회는 비공식적인 정부, 주민들이 운영하는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을 만든 셈이다.

 

안태훈은 이런 주민평의회를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 양식”이라 부르면서 “대중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참여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7) 주민평의회는 시민을 관객의 위치에서 정치무대로 직접 끌어올린다. 주민평의회는 건강, 교육, 주택, 문화, 스포츠, 환경, 공단유지, 주민치안 등의 공공서비스를 직접 관장하고 이를 해결할 조직으로 협동조합을 주로 선택했다.

 

2006년 4월에 차베스는 주민평의회 법률을 공포하고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주민평의회를 확산시켜 2009년에는 그 수가 3만 개에 달했다. “주민평의회는 주민들이 원하는 공공건설 등의 대중의 요구를 아래에서부터 받아들여 직접 예산을 지방에 조직되어 있는 ‘대통령 직속 대중권력위원회’를 통해 제안한다. 구체적인 제안들은 주택문제가 가장 많고 상수도 건설, 도로, 전기, 스포츠, 학교 건설, 공원과 광장 건설 등의 순이다.”8)

 

또한 차베스는 기득권화된 정당을 통하지 않고 주민들의 정치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볼리바리안 서클Circules Bolivarianos(CB’s)을 조직했다. 볼리바리안 서클은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등이 새로운 헌법의 정신에 따라 운영되도록 지원하는 민간기구로 7~11명 단위로 구성되었다. 2003년 중반까지 220만 명이 볼리바리안 서클에 가입했고, 이 서클은 단위 볼리바리안 서클-지역 볼리바리안 조정자-광역 볼리바리안 조정자-전국 지도부라는 체계를 갖췄는데 수직적인 관리보다 수평적인 조절을 추구했다. 차베스의 친위대로 불리기도 하는 이 볼리바리안 서클은 시민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다양한 조직들을 고려하면 그동안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개인이 부각되었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힘이 아래에서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실험은 “미션.주민자치위원회.볼리바리안 서클이 삼위일체가 되어 주민 직접 참여형 개혁으로 전 국민적 범위에서 전 분야에 걸쳐 착수”되었고, 특히 미션은 “민중이 하부로부터 참여하고 조직하여 그들의 삶을 바꾸는 진정한 개혁 프로그램이었다.”9) 협동조합은 이런 체제전환과 맞물린 실험이었다.

 

 

왜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어려운가?: 풀뿌리 실험에 대한 평가

 

베네수엘라의 거시 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차베스의 실험이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가상승률은 떨어지고 석유산업 비중은 줄어들고 취업률은 높아지고 빈곤가구 비율도 줄어들었다.

 

<표 1> 베네수엘라 거시 경제 지표의 연도별 변화10)

 

 

하지만 이런 경제지표만으로 실험의 성공을 증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차베스 정부가 노동조합과 갈등하면서 실질적인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았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부문의 노동조합 조직화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차베스 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진행하면서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합의하는 것보다 위에서 위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고질적인 식량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11)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정부의 비효율과 부패가 여전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란더Edgardo Lander는 베네수엘라의 실험이 연금국가(rentier state) 모델과 레닌주의 수직구조(Leninist logic of verticality)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코뮨의 실험들도 자율성과 참여민주주의를 낳지 못했고, 다양한 미션들이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지만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결핍에 직면한 사람들은 연대보다 개인주의와 경쟁에 의존했다는 것이다.12) 베네수엘라의 공동체들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조직구조를 갖추지 못했고, 사람들은 공동체보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국가보조를 이용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풍부하고 그것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사람들의 상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협동조합운동에 대해서도 정부지원을 염두에 둔 유사협동조합의 난립과 정부의 급속한 정책 추진, 기업처럼 운영되는 협동조합, 상품을 판매할 통로 또는 시장의 부재, 협동조합 간의 협동 부재, 협동조합의 자치권 부족, 사회적경제 방향의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13)

 

그런데 이런 비판들이 베네수엘라만의 문제일까? 먼잔트Elvy Monzant는 브라질의 협동조합 수가 2만 개를 넘고 아르헨티나가 1만 개를 넘고 콜롬비아가 1만 개가 안 된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이 수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통 협동조합,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생활을 바꾸는 혁신 협동조합(Innovative Cooperatives), 코헤스티옹을 비롯한 혁신적인 기업들과 함께하는 공동관리 또는 연합 협동조합(Co-managed and Alliance Cooperatives)으로 협동조합 활동이 세분화된 것도 베네수엘라의 장점이라고 본다. 2008년도를 기준으로 활동하는 협동조합에서 자율적인 협동조합이 44%, 공동체은행이 34%,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협동조합이 14%, 공동관리 협동조합이 5%, 신용조합과 전통 협동조합이 각각 1%이다. 그리고 협동조합 조합원은 전통 협동조합이 68만 명, 자율적인 협동조합이 6만2천 명, 국가관리 협동조합이 5만2천 명, 공동관리 협동조합이 4만8천 명, 혁신 협동조합이 3만1천 명으로 모두 합치면 87만3천 명이다.14) 적지 않은 숫자이고, 협동조합운동이 실패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기 어려운 숫자이다.

 

더구나 베네수엘라 협동조합운동은 사업영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당연히 다른 경제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인 화폐와 기금이 활성화된다. 또한 협동조합만이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미션과 주민평의회, 코헤스티옹 등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존 벨레미 포스터J. Bellamy Foster는 2012년 10월 20일의 연설에서 차베스가 ‘코뮨 국가(communal state)’를 주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15) 사회주택과 소농, 중소기업, 공동체가 관리하는 교통수단과 고속도로 등은 사회주의를 향한 차베스의 실험을 뜻한다. 물론 이런 각각의 단위들이 얼마나 충분히 소통하고 조율되고 있는지는 점검되어야 하겠지만 그 지향은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차베스의 주장을 포퓰리즘populism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태환은 차베스의 정치적인 이분법과 포퓰리즘이 정치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대중과 기득권층을 나누는 이분법은 극단적이지만 “많은 대중에게는 강력한 정치적 통합력”을 행사하고 “그동안의 사회적 배제를 보상할 수 있”게 한다. 즉 “가난한 대중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자주적 참여와 정치적 조직의 경험은 그들 가운데에서 커다란 문화적 변화 즉, 탈식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비록 개념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차베스혁명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변화이다.”16)

 

아즐리니Dario Azzellini는 2013년에 쓴 “코뮨국가: 코뮨평의회와 코뮨, 작업장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과 구성된 권력(constituted power)의 대립으로 해석한다.17) 시민들의 구성권력과 기득권의 구성된 권력이 대립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국가의 구성된 권력을 활용하는 이중전략(a two-track approach)이 필요하고 국가 자체를 코뮨 국가로 서서히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헌의회, 국민투표, 미션, 협동조합, 사회주의노동자평의회, 주민평의회, 코뮨들을 이런 전환을 만드는 힘으로 본다.

 

2013년 3월 차베스는 사망했지만 그의 뒤를 이은 마두로Maduro 대통령은 2014년 9월 ‘다섯 가지 대혁명’이라 부른 계획을 선포했다. ①사회생산(social production)을 증진하는 경제혁명, ②교육과 문화, 과학을 강조하는 지식혁명, ③사회주의 건설에 중요한 사회 미션, ④‘부르주아 국가의 찌꺼기’를 없애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와 코뮨 국가의 수립, ⑤‘새로운 생태사회주의 모델’을 요구하는 ‘지역사회주의(territorial socialism)’ 혁명이 그 계획이다. 그리고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2015년에는 코뮨을 위한 예산을 62% 인상했다. 마두로는 코뮨을 “민주주의의 가장 발전된 표현”이자 “사회주의 그 자체”라고 부른다. 코뮨 국가라는 차베스의 꿈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도 차베스와 같은 인물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떤 정치인이 등장하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 아래로부터 자치의 힘을 만들고 기득권화된 사회구조를 동시에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즐리니의 주장처럼 이중전략이 필요한 셈이고, 베네수엘라의 실험은 우리의 반면교사이다.

 

 

1) 조돈문, 『베네수엘라의 실험: 차베스 정권과 변혁의 정치』, 후마니타스, 2013, 24쪽.

2) 조돈문, 앞의 책, 31쪽.

3) 김병권 등,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시대의 창, 2007. (‘부록: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헌법’에서 발췌)

4) 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 김소희 역, 살림Biz, 2008, 578쪽.

5) 안태환,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 이담북스, 2012, 121쪽.

6) 조돈문, 앞의 책, 40쪽.

7) 안태환, 앞의 책, 119쪽.

8) 안태환, 앞의 책, 170쪽.

9) 김병권 등, 앞의 책, 74쪽.

10) 조돈문, 앞의 책, 63쪽 정리.

11) 안태환, 앞의 책, 58쪽.

12) Venezuela’s fabric of solidarity has become an individualistic and competitive black market: Interview by Hugo Prieto in Contrapunto.com (https://www.tni.org/en/article/venezuelas-fabric-of-solidarity-has-become-an-individualistic-and-competitive-black-market, 검색일: 2015. 10. 12)

13) 하만조, “협동조합 붐이 끝난 뒤: 베네수엘라의 경험을 중심으로”, 『모심과 살림』 2호, 2013.

14) Elvy Monzant, “Diagnosis and Perspectives of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of Venezuela”, (http://venezuelanalysis.com/analysis/6443, 검색일: 2011. 8. 25)

15) John Bellamy Foster, “Chavez and the Communal State: On the Transition to Socialism in Venezuela”(http://monthlyreview.org/2015/04/01/chavez-and-the-communal-state/, 검색일: 2015. 10. 30)

16) 안태환, 앞의 책, 90쪽.

17) Dario Azzellini, “The Communal State: Communal Councils, Communes, and Workplace Democracy”

(https://nacla.org/article/communal-state-communal-councils-communes-and-workplace-democracy. 검색일: 201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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