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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사회적경제의 관점에서 본 한살림선언
2016-08-30 16:43:00

 

사회적경제의 관점에서 본 한살림선언

 

김신양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모든 나라에 탄생신화가 있듯이 어떤 조직 또한 그것을 만든 탄생철학이 있다. 단군신화가 한국의 탄생신화이듯 한살림의 탄생철학은 <한살림선언>이다. 정도전은 ‘민 民’이 ‘본 本’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선을 건국하였고, 그의 사상과 철학은 <조선경국전>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여 독립을 갈구하던 열사 33인은 <기미독립선언문>에 조선의 독립과 세계평화를 위한 염원을 담아 만방에 선포하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살림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데는 한살림선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올해는 1986년 12월 한살림농산이 인적이 드문 제기동에 문을 연 지 30년이 되는 해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한살림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에서는 사람들의 ‘생각의 역사’로서 한살림선언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익히 보아왔던 방식을 벗어나 세계사적인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사람과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를 사고하였던 사회적경제의 관점으로 한살림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한살림의 탄생철학 ‘한살림선언’

 

혹자는 한살림선언이 한살림 조직과 구성원들의 ‘헌법’이라고도 한다. 헌법이란 개념은 역사적 발전 과정과 사회적 접근 방법에 따라 다르게 분석되거나 정의되지만 어쨌든 법이란 ‘제도’이지 ‘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언의 성격과는 다르다. 또한 헌법이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국가의 구성·조직·작용과 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적 원칙을 규정한 근본법이며 최고의 수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한살림선언이 한살림의 사람과 조직의 머리 위에 존재하며 전권 全權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한살림협동운동조직은 바로 사람들의 결사체이므로 그 안의 사람들이 최고의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살림선언은 법이 아니라 탄생철학이기에 사람과 조직을 지배할 수도, 억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것을 잊고 산다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고, 부정한다면 버려질 수도 있다.

 

“한살림선언은 헌법이 아니라 탄생철학이다.”

그러나 탄생철학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잊혀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묘한 힘이 있다. 그 이유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직 또한 탄생이란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며, 생명이란 바로 ‘생生의 명命’이기 때문이다. 생의 명이란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놓치는 순간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특히 어떠한 조직이나 집단이 탄생철학을 가질 때, 그것은 각기 처지와 조건이 다른 사람들이 ‘운명공동체’로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진다. 운명공동체를 영어로 ‘shared destiny’, 불어로는 ‘communaut e de destin’이라고 한다, 영어의 의미는 ‘공유한 운명’이란 뜻이며, 불어는 우리말과 똑같은 ‘운명공동체’이다. 사회적경제의 저명한 학자인 벨기에의 드푸르니J. Defourny 교수는 사회적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집단적인 정체성’ 혹은 ‘운명공동체’ 정신이라고 한 바 있다. 1) 많은 이들이 협동조합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조직이라 하며, 필요가 있어야 모이고 일이 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협동운동을 추동하고 발전시킨 힘은 단지 ‘필요의 조건’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Mondragon Cooperative Complex, MCC) ’가 대표적인 예이다. 몬드라곤이 오늘날 거대한 협동복합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스크족의 집단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운명공동체의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선언은 운명공동체의 표현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산당 선언』만큼 전 세계에 널리 읽히며 또한 현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정치적 문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가 작성한 이 문서의 프랑스어판은 1848년의 6월 반란 직전에 파리에서 출판되었으며, 최초의 영역본은 1850 년 런던에서 간행되었다. 이리하여 『공산당 선언』은 국제적 노동운동 및 혁명운동에 관한 지침으로 또한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로서 불멸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1959년까지 8개 국어로 출판되었다는 보고가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존재 양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이 선언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까닭은 아마 그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만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말했기 때문이며, 그들의 해방을 예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방의 무기는 총칼도 아니요 자본도 아닌 ‘단결’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였고, 그 이념의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미 인정되었기에 『공산당 선언』의 저자들이 가진 사상의 옳고 그름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은, 선언이라는 것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 그리하여 나 하나가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나의 열망이 실현될 수 있는 친구를 얻게 하는 것. 그러한 의미에서 한살림선언을 다시 보며 그 의미를 새기는 것은 단지 낡은 족보를 뒤적거리는 선비의 향수어린 습관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30년 역사가 지난 이 시기에 한살림선언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나는, 우리는 어떤 명 命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그 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왔는지, 지금 내게 그 명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새롭게 할 것인지’ 그렇게 살아있는 정신으로 물어보기 위함이다.

 

한국에 한살림선언이 있었다면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탄생한 프랑스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이미 많은 지식인과 실천활동가들이 협동조합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며 선언을 공표하는 전통을 가졌다. 특히 협동조합운동의 실천을 바탕으로 연구를 축적해갔으며, 그러한 탄탄한 이론적·실천적 성과를 토대로 선언의 형식을 통하여 분명한 사회변화의 전망을 제시해왔다.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적인 변화와 전환의 시기, ‘프랑스 대학과 지식인의 협동조합 선언문’은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어떻게 미래 사회의 평화공존에 기여하는 사회경제조직으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1920년대에는 『협동조합공화국 』 2) 이라는 이상을 담은 서적이 출간되어 많은 정치적 공화국의 실현에 더하여 경제에서의 공화국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대학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다음과 같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선언문은 218명이 서명하여 1921년 세계 최초의 사회적경제국제리뷰인 RECMA지 1면에 실렸다.

 

 

프랑스 대학과 지식인의 협동조합선언문 (부분 발췌)

 

프랑스에서 공권력은 협동조합에 공적인 권한이 부여되고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협동조합에 특정한 통제권을 부여했다. 가격상승에 대처하고 국민의 식량보급 및 피해지역 재건, 철도와 우체국의 건설을 담당하고, 심지어 알코올중독과 빈민굴을 일소하기 위하여 제도화된 대부분의 자문위원회의 몇몇 의석은 소비자대표자들에게 할당되었다.

 

그러나 여론도, 언론도, 경제학자들도 협동조합운동에 이 선언의 서명자들이 표명한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협동조합운동을 강점과 약점을 가진 여느 상업조직과 동일하게 여겼을 뿐, 협동조합운동이 거둔 현실적인 성과를 넘어 사회재구축울 위한 종합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다음과 같은 지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침이라고 한 이유는 엄격한 틀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말하듯 협동조합은 헌법이 아니라 운동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기업도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불가피한 조건, 즉 이윤 추구와 경쟁의 압박을 벗어나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협동조합기업은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기 때문에 이윤이라는 흥분제 없이 일하며, 경쟁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연합을 구축하고 통합함으로써 경쟁을 대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윤 그 자체가 사라지는 날 더 이상 이윤을 위한 경쟁은 필요 없어질 것이며, 그때엔 다만 서로 협동하기 위한 경쟁만 남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발전이 되는 경우에 한해 보호주의 형태의 경제 국수주의에 대항하며, 제국주의에 다름 아닌 국제주의에도 대항할 것이다. 30년 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을 창설하면서 협동조합은 ‘국제연맹 (the Ligue of Nations)’3)을 앞질렀으며, 현재로서는 이윤 추구를 위한 투쟁이 되어버린 국제교역이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각국의 자원을 활용하기로 정한 국민들 간의 협동이라는 본래의 형태로 돌려놓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 원칙의 대립만 수립할 뿐, 인간적 적의나 계급투쟁을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소비협동조합 내에서는 이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눈부신 성공을 거둔 소비협동조합은 거의 대부분 노동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만약, 참 바람직하게도, 모든 소비자가 동시에 생산자가 된다면 자신의 내부에서 이 대립되는 이해를 구별하고 중요성을 따지는 법을 배울 것이고, 보편적인 것을 위해 개인적인 것을 희생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비협동조합이 소비자에게 매일 가르치는 교훈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파하고자 하는 경제교육이자 도덕교육인 것이다.

 

 

한살림선언의 시대적 배경 및 취지

 

한살림선언이 발표된 시기는 1989년이지만 이 선언의 공동집필자들은 1980년에 「원주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러니 한살림선언은 거의 10여 년의 고민 끝에 세상에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주보고서에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큰 방향을 세웠다면 한살림선언에서는 이러한 방향에 길을 내어 주며 운동이 되기 위한 원칙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80년대였을까? 그 까닭은 70년대라는 커다란 문명의 전환 시기를 겪은 후에 오는 각성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70년대는 73년에 발생한 ‘오일쇼크 oil shock ’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시작된 시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이미 68년의 베트남전쟁 및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진 ‘68혁명’에서 그 징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의 역사에서 보면 70년대는 석유문명의 위기를 겪은 후 생태적 각성이 일어나고 만연된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부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경제 운동인 ‘연대의 경제’가 탄생한 시기이다. 또한 남부국가에서는 독립 후에도 무역을 통한 경제적 종속이 지속되어 산업화된 북부국가의 성장모델이 아닌 다른 개발모델을 추구하며 ‘민중경제’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70년대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격변의 시기였으며 문명사적인 전환의 시기이기도 했으나 그 전환의 흐름은 80년대에 접어들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기형적인 문명으로 정착되었다. 1981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더 이상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 선언하며 신자유주의의 시작을 선포하여 그 나라의 협동조합지원조직이 구조조정되기 시작했다. 대륙을 건너 미국에서는 그의 정치적 파트너이자 쌍생아인 레이건 대통령의 집권이 시작되면서 비영리단체 (NPO)들의 보조금이 삭감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협동조합과 비영리 영역에서 벌어진 일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시작된 ‘세상의 상품화’의 단면일 뿐이다. 세상의 상품화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시장의 계약관계에 의해 지배되고,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다 시장에서 팔기 위한 상품이 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리하여 과거 사회적으로 성취한 무상의 영역인 교육, 보건 의료, 교통 등이 민영화(시장화)되었으며, 문화와 전통도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되지 않고 팔기 위한 상품이 되지 못하면 버려지게 되었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에서는 개발로 원주민의 삶이 붕괴되고, 전쟁과 더불어 투기자본에 의해 경제가 붕괴된 지역의 노동자들이나 식량난민들은 전 세계를 떠도는 값싼 노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 지구의 다른 한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던 사람들이 저항이 본격화되었다. 그 시기, 민주화운동의 중심인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 원주에서 ‘원주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운동을 예고하는 문서(일명 ‘원주보고서’)가 발간된다.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제호가 붙은 이 문서는 1980년에 원주캠프에서 진행된 사회운동인 민주화운동과 지역개발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작성되었다. 1980년 9월에 김지하 시인에 의해 초고가 작성된 이후 무위당 장일순 선생 등이 함께 읽고 토론하며 1981년 상반기에 완성되었다. 한살림의 선구자들은 80년대 초, 세상이 죽임의 문명으로 치닫고 있을 때 살림의 문명을 열망하며 뜻을 세우고 대규모 협동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첨단 산업문명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시작되던 시절, 기계를 돌려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낫과 호미, 쟁기를 들고 땅을 일구는 농업살림을 택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성장사회가 열리던 때,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로 밥상살림을 이루고자 했으며, 쓰고 버리는 일회용 시대에 생산과 소비와 유통이 순환되고 자원이 순환되는 생명살림의 원칙을 세웠다. 사람의 노동이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 거래됨으로써 이윤에 지배되는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시절,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 거래되는 시장이 팽창하던 시절, 공업 대신 농업을, 이윤 대신 생명을, 돈 대신 사람을 가치로 삼는 사회의 싹을 틔웠던 것이다.

 

선언이 가지는 의미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발표된 시기와 운동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했는가 하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죽임의 장이 전장만이 아니라는 것, 정치제도가 아니라 산업(경제)이 죽임의 장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농약을 쓸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정부가 이를 장려하는, 살림의 정치가 아닌 죽임의 정치가 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죽임의 정치에 대항한 운동이 정당운동이나 문화운동의 형태가 아니라 대규모 협동운동이라는 ‘살림’운동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살림선언은 생협운동의 선구자 역할에 제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관계의 변화, 생활정치의 필요성, 살림의 공간의 재정치화의 과제를 제출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문제인 ‘이윤에 희생되는 생명의 위기’를 알린 전조가 되었다는 점은 선언의 의미가 현 시점에서 더욱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다.

 

 

선언의 구성과 해석

 

‘한살림모임’ 명의로 발표된 선언은 ‘생명협동운동선언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선언의 초안이라 할 수 있는 원주보고서의 제목이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었고, 선언의 발간 취지문에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이에 입각한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를 위한 대중적 협동운동을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하게 펼쳐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산업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2장에서는 그 문명의 사상적 토대인 ‘기계론적 모형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며, 3장에서는 이에 대응할 사상적 토대로 ‘전일적 全一的 생명의 창조적 신화’를 설정하였으며, 4장에서는 ‘인간 안에 모셔진 우주생명’이라는 생명사상을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세계관의 확립에 기초하여 협동적 생존을 구현하기 위한 ‘한살림’운동의 전망을 밝힌다.

 

선언 전체를 해석하기엔 지면의 한계가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선언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1장에서는 산업문명의 위기를 사람의 비참한 노예상태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사회적경제라는 학문이 처음으로 탄생했을 당시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샤를르 지드Charles Gide 는 산업혁명 후 임금노동사회로 인하여 사람과 사회가 비참한 상태에 놓였으나 기존의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진단으로 사회적경제라는 학문의 등장을 설명한다. 4) 마찬가지로 한살림선언은 사회의 변화를 노예상태로 변한 사람의 존재로부터 진단하고, 생명의 의미의 변화를 문명의 위기로 본 것이다, 혹자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발전하고 신분제가 폐지된 평등사회에서 노예상태라고 진단한 것이 과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 신분제도에 기반한 노예가 아니라 아렌트Arendt5)적 의미의 노예, 즉 자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치행동 (action)이나 문화를 만드는 작업 (work)을 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생계를 위하여 노동 (labour) 이라는 활동을 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은 정치를 담당하고 생계는 노예가 담당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사는 삶은 노예에 다름 아닌 삶으로 간주되어 ‘노예상태’라고 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투표권 획득 등 정치제도의 측면에서는 자유로운 시민권을 누리고 있고 보편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자유로운 삶의 선택이 가능한 듯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적인 문제에 예속되어 있고, 소비의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간주하는 인간이 되었기에 이는 경제의 노예에 다름 아니라는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로 중요한 개념은 ‘생명’에 대한 성찰이다. 3장에서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무엇보다도 생명은 ‘정신’이다, 라고 해석한다, 선언에서 생명의 개념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저자인 함석헌 선생의 ‘뜻’과 상응하며, ‘전체’는 사회, 세상, 역사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명은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에서 비롯된 ‘씨알’사상과도 조우한다. 그리고 생명의 각성은 씨알사상에서 말하는 전체의 자리에 선 인간, 즉 역사적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이고, 아렌트의 의미로 해석해보면 진정 자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인 행동(action)하는 인간인 것이다.

 

다섯 번째 장은 취지문에서 밝힌 대중적 협동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한살림운동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며,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고,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다, 이 세 가지의 각성으로부터 출발하는 한살림운동은 결국 생명(나)-사회(공동체)-자연(생태)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를 연결해 보면 ‘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지구를 넘어 우주적 존재이니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며, 그 ’나‘가 모인 사회는 이기적인 개인의 집합이 아닌 운명공동체로서 살아가며, 그 운명공동체의 삶의 터전은 개발의 대상이나 자원이 아니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귀하고 소중한 생태로서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다.’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한살림운동이 본래 지향했던 바는 사회적경제의 이론적 토대가 된 마르셀 모스 Marcel Mauss 의 사상이나 칼 폴라니 Karl Polanyi 의 이론과도 상통한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하우hau’라는 마오리족의 용어를 빌려 재화와 서비스의 순환구조를 설명한다. 하우란 ‘주어진 것의 영혼, 최초 증여자의 영혼’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물, 주체와 대상 간 확연한 구분이 없으며, 사물이나 자연 또한 인격화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선물을 줄 때 “내 마음이야”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줄 때는 그것을 주는 나의 마음을 받아달라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뿐 아니라 시험을 보는 이에게 쩍쩍 달라붙는 엿이나 철썩 붙는 찹쌀떡을 선물하는 것도 합격하기를 바라는 주는 이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나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은 칼 폴라니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는 경제의 기원을 살펴보면 ‘사람의 살림살이 (the livelyhood of man) ’로서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존하고, 사람과 자연이 상호작용’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살림은 폴라니의 살림살이로서의 경제와도 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한살림선언과 사회적경제

 

한살림선언에는 동학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동학은 동양학의 전통과 서양의 기독교의 영향을 고루 받은 사상이므로 한살림선언에서 언급하는 동학의 주요 개념은 사회적경제의 관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앞서 한살림운동의 다른 이름을 생명협동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선언에서 보인 주요한 개념을 통해 생명협동운동의 원칙을 정리해보자.

 

첫째는 무위이화 無爲而化이다 . “우주와 인간은 협력하고 동역 同役함으로써 창조적 진화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장일순 선생은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한다. “우리가 여기 모두 소비자인데 농사짓는 사람이 없으면 먹고살 수 있어요? 또 소비자가 없으면 농사꾼이 생산할 수 있어요? 바로 그런 관계다 이 말이야. 이게 없으면 저게 없고, 이게 있으면 저게 있고. 우주의 모든 질서는, 사회적인 조직은 그렇게 돼 있다 이 말이야. 그러니 누구를 무시하고 누구를 홀대할 수 있느냐 말이지.” 6) 그래서 “예전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이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관계 속에 존재하니 그 본성이 협동일 수밖에 없다. 그 협동은 사람과 사람을 넘어, 자연과의 상호작용에까지 이르는 크고 넓은 협동이다,

 

두 번째는 불연기연 不然其然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니다. 그렇다’인데 이는 우리가 반대라고 여기는 것의 의미를 뒤집는 논리이다. 예컨대, 우리는 ‘알다’의 반대말이 ‘모르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옛날엔 나는 너를 몰랐는데 지금은 너를 안다’에서 보듯 시간의 차이를 두고 보면 ‘몰랐다’는 ‘아직 알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요즘 우리가 흔히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잘못 쓰는 경우처럼, ‘알다’와 ‘아직 알지 못하다’는 반대라기보다는 시간에 따라 상태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 시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변화발전하는 시간과 공간, 관계 속에서 바라보면 대립이나 반대의 시각이나 옳고 그름의 이분법이 아닌 ‘다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처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의 원리로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개념은 향아설위 向我設位이다. 조상이 아니라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라는 뜻이니 언뜻 보면 역사의식이나 전통을 무시하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나의 부모님은 또 나의 조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니 내 안에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의 유전자와 DNA가 이어 지는 것이기에 내 안에 그들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는 나의 존재를 역사 속의 존재로 인식하고, 나를 모신다는 것은 나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이다. 이러한 인식은 결사체 운영원리의 핵심으로 나의 자발적인 의사에 기반하여 너와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지, 내가 없이 우리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 자유自由이니 향아설위는 결사체의 토대가 되는 주체의 자유함이라 할 수 있다.

 

1. 무위이화無爲而化 . 협동의 원리

“우주와 인간은 협력한다.

 전일성의 자각은 관계 속의 나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2. 불연기연不然其然 .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원리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이고 다양성이다”

 

3. 향아설위向我設位 . 행동의 주체인 나의 자유함

“역사적 인식 속에서 나를 세운다”

 

 

다시 써야 할 한살림선언

 

한살림선언의 의의는 한살림생협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언은 한국 사회운동이 저항의 운동에서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전환의 운동이 되기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 호소는 미래에 보편화될 운동의 예견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살림선언은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료가 된다. 정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고, 이를 위해서는 생활세계에서 살림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임을 일깨웠다.

 

그런데 한살림의 많은 조합원들이 한살림선언은 읽기 어렵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언은 많은 학문과 사상을 아우르고,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어려운 개념들이 곳곳에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한살림선언이 살림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나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자각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한살림선언은 대중운동을 이끄는 지침서가 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운동이란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해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법, 소수가 이해했었지만 생활과 실천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사람에서 사람으로 계승되고 전파되어 왔던 것이다. 그 힘은 결국 사람에 있었으니, 한살림선언이 한살림운동이라는 결사체의 토대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여전히 지나간 시대의 인식과 소수 전문가의 화법으로 서술된 이 선언문을 붙들고 새로운 운동의 좌표를 설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선구자들의 과오가 아닌 후세대의 몫으로 두어야 할 과제이다. 향아설위라 하지 않았던가? 선언에 담긴 생명협동운동의 원칙은 선구자들, 선배들을 향해 잔을 들 것이 아니라 내게 잔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상을 모시듯 한살림선언을 모셔둘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살아 있도록, 새로이 창조하는 주체는 ‘나’여야 한다. 나는 그 탄생철학을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 한살림선언 다시쓰기가 살림운동의 길을 안내하는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1) Defourny, J, “L’economie sociale au Nord et au Sud( 남부와 북부의 사회적경제 )”, De Boeck & Larcier s.a., 1999.

2) 한국에서는 1985년에 선진문화사에서 『협동조합공화국 -협동조합 경제학』 (아르네스트 포이즌 저, 진흥복 역)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어번역본과 불어 원본을 비교해보니 전문이 번역된 것이 아니며, 많은 부분이 누락이 되어 있어 번역본이라기보다는 편역본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진흥복 역은 원본이 아닌 일본어판을 편역한 것으로 보인다. 원제는 협동조합공화국La Republique Cooperative 이며, 저자는 에르네스트 뿌아종Ernest Poison이다. 뿌아종은 1920년 당시 프랑스소비자협동조합연합회 사무총장이었다.

3) UN의 전신

4)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의미」, 김신양, 2009.

5) 한나 아렌트Hanna Arendt의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의 세 유형을 참조할 것.

6) 최성현, 『좁쌀 한 알, 장일순』, 도솔출판사, 2004, 35~36쪽.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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