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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무너지지 않는 일상의 중요성
2016-11-29 15:29:00

 

무너지지 않는 일상의 중요성

 

 

『요리활동』 (이영롱 씀, 서해문집, 2016)

 

주수원 (땡땡책협동조합 이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훌륭한 말과 글에 비해 실제 인격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종종 본다. 아니 더 나아가 자신이 평소 얘기하는 사상과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스로도 그렇다. 큰 정의를 꿈꾸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자그마한 선행을 베풀고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다.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하지 않았어야 할 행동들을 하며 매번 그렇게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사실 옳은 말만 하는 사람, 더 나아가 옳은 행동만 하는 사람은 괜시리 정이 가지 않는다. 영화 <시빌 워Civil War>에서 아이언맨이 캡틴 아메리카의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에 반박은 하지 못하면서 “가끔은 너의 잘난 면상을 치고 싶다”는 대사를 하는 기분이랄까. “나만 이렇게 모순적이고 볼품없지는 않잖아, 우리 모두 조금씩은 다 모자라고 불완전하잖아.”라고 동의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한때는 위선을 가장 혐오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대학 학회나 동아리 세미나 때 오고갔던 무수히 많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들은 공중에서만 떠돌아다니고, 혁명을 꿈꿨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먹고사니즘’에 묻혀 지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건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며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혹자는 협동조합을 5명이서 각자 100원씩 총 500원으로도 너무 쉽게 만들 수 있게 해줘 ‘좀비 협동조합’이 무한정 양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하는 그 법이다. 하지만 내게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의가 얘기되는 과정이 감동스러웠다. 지금과 조금은 다른 사회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힘을 모은다면 변화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대학교 교직원으로 안정되게 일을 하다가 협동조합 일이 하고 싶어 이직을 한 가장 큰 계기는 작은 선의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던 것 같다. 불완전하고 모순된 개인이지만 이 사람들이 모여 작은 선의를 모아내서 우리 주변에 자급자족하는 생활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내어 먹고사니즘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인가. 대학생협학생위원을 하며 협동조합에 들떴던 기분이 다시금 살아났다.

 

물론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았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인데 이 둘 모두를 다 잘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조합원들 간 갈등, 지역사회의 필요와 수요에 맞지 않는 사업 아이템 선택으로 인한 사업 실패, 자본의 부족, 이사장의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인한 갈등 등등. 그동안 협동조합 상담과 교육으로 만난 분들의 사연만 모아 봐도 인생극장이 따로 없을 듯하다. 그렇게 힘들게 모인 작은 선의는 암초에 부딪혀 금세 흩어지고 다시금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협동조합 일로 이직을 하고 3년 6개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렇기에 작은 선의와 더불어 일희일비하지 않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요리활동』은 이 꾸준함이 일상에서 나온다고 얘기한다. 땡땡책협동조합 활동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저자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전업 활동가이다. 낮에는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대표로서, ‘지역 꼬뮌학교 동동’의 진행자 등으로 바쁘게 일을 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이 밖에도 땡땡책협동조합 이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 삶과환경 분회 사무장 등 여러 활동들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개인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도대체 잠은 자고 생활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하는 비결을 이 책에서는 ‘요리’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요리는 일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그만의 비결이다.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생성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11쪽)이 요리를 통해 일상을 재구성하는 이유이다.

 

또한 요리라는 일상으로부터 그만의 활동에 대한 철학이 나온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살펴보자. 50인분가량의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준비하면서 ‘양념을 망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에 휩싸인다. 잔뜩 긴장을 한 채 요리를 하면 하는 사람도 피곤하고 즐거움도 사라지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얘기한다. “내 감을 믿는 것이다. 그래야 요리가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내게 힘을 준다. 요리의 첫발은 함께 먹을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의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29쪽)고. 사실 함께한다는 것은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실수투성이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내 감을 믿으며, 책임을 지며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더 나가보는 것이 공동체를 만드는 비결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자세히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요리와 관련한 경험과 추억을 나누고 자기만의 생각을 툭툭 던져놓는데, 거기에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노하우와 오랜 활동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그만의 비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요리를 통한 활동이고, 요리와 활동의 결합이다. 요리라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활동이라는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영역과 결부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마저도 인위적인 구분이다. 일상이 곧 활동이고, 활동이 곧 일상이기 때문이다. 유린기를 소개하며 그는 다시 얘기한다. “아홉 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야 본연의 맛이 나는 유린기 소스처럼, 삶 본연의 맛도 다양한 경험과 공부와 관계 속에서 우러나는 게 아닐까?”(174쪽)

 

협동조합은 사회적경제의 한 방식이다. 내가 이해한 사회적경제란 요리활동처럼 우리의 일상을 바탕으로 한 사회의 변화이다. 각자도생으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사회를 이루고 같이 경제활동을 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의 일상이 변해야 한다. 그러한 일상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말과 글은 시간이 지나면 공허해지고 저자의 말대로 “아집과 때로는 타협과 배반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얘기를 다른 책에서도 보게 된다. 『심야인권식당』(류은숙, 따비, 2015)에서 저자는 인권연구소 ‘창’을 운영하면서 회의와 공부모임 등이 열릴 때마다 밥때에는 밥을, 술때에는 술을 대령하며 술방의 주모 역할을 자처한다. “술방의 주모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요한’ 일에 대한 나의 판단 때문이다. 나는 일상성에 중요한 것이 묻혀 있고 일상에서의 움직임에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먹고 마시고 치우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일들이 내겐 멋진 글을 쓰고 발언을 하고 특별한 자리에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15쪽) 최근에 본 영화 <트럼보>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로마의 휴일>로 잘 알려진 트럼보는 당시에도 잘나가던 시나리오 작가였으나 1940년대 후반 미국 사회를 뒤흔든 매카시즘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도 잃게 된다. 이후 B급 영화 제작사에 가명으로 다량의 대본을 쓰며 입에 풀칠을 하고, 같은 처지의 동료 작가들까지 구제한다. 하지만 오로지 싸우기 위한 대량 대본 생산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가족들마저 등을 돌리게 한다. 그는 “내면의 초라한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계속 싸웠고 너무나 두려워서”였다고 진술한다. 그를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은 건 가족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일상의 회복이었다.

 

작은 선의를 지탱케 하는 건 결국 일상에서의 작은 관계와 움직임이다. 일찍이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라고 얘기했다. 작은 선의를 지킬 수 있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다. TV 속 스타 쉐프에 대한 동경이나 ‘먹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요리활동을 통해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 『모심과 살림』 7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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