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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 참여 경영
2017-01-18 17:27:00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 참여 경영

 

우미숙 (월간 『살림이야기』편집위원. 『협동의 도시 볼로냐를 가다』(공저), 『공동체 도시』를 펴냈으며, 성남사회적경제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조합원 2천 세대를 목표로 달려온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료사협)이 목표지점 바로 앞에 다다랐다. 2012년 2월 의료생협을 설립할 당시 348명이었던 조합원 수가 2016년 11월에 6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4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올해 치과 개원과 공간통합 이전 등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규모를 키워올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

 

교육모임에 참석한 어느 조합원은 이렇게 묻는다. “‘살림’이 이렇게 굴러가는 힘은 뭔가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조합원은 “‘살림’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다 해도 될 것 같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 힘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살림의료사협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조합원들이라고 말한다.

 

조합원들은 진료를 받는 사람이면서 의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공간을 짜고 운영 원칙을 만들고 진료수가와 의료장비를 선택하고 결정했다. 그리고 의원을 개설하는 데 드는 비용을 오로지 조합원 출자금으로 충당해내는 힘을 보여주었다.

 

조합원 참여 경영은 협동조합의 특징이며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낼지는 협동조합 모두에게 숙제이기도 하다. 그 숙제를 살림의료사협은 어떻게 풀어왔는지 지나온 과정을 통해 살펴본다.

 

평등 평화의 건강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의료생협으로 건강마을 공동체 만들기

 

“평등·평화·협동을 지향하는 여성주의자, 의료인, 은평구 주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창립하였다.”

 

2012년 2월 의료생협 설립 당시 작성한 정관의 첫 문장이다. 살림의료사협은 특별히 여성주의를 강조한다. 이는 백인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의료체계나 투약원칙에 대한 문제제기다. 살림의료사협의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며, 평등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여성,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건강마을공동체를 꿈꾼다.

 

살림의료사협은 2008년 추혜인 원장과 유여원 상무이사가 의기투합하면서 시작한다. 올해 살림치과를 맡은 박인필 원장은 그 다음해에 합류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은평구 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3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2012년 2월에 348명의 조합원과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살림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한다. 살림의료생협은 은평시민회를 비롯한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은지네(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의 활동에 열심히 결합하면서 은평지역과 하나가 되어 갔다.

 

의료 공공성을 실현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전환과 살림치과 개원

 

의료는 단지 소비재일 뿐인가. 그렇게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림의료생협은 의료가 공공재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었고, 이를 잘 담는 틀로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이는 의원 사무장들이 개인적으로 개설한 유사 의료생협의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도 있었다. 2014년 2월, 살림의료생협은 조합원의 동의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비조합원도 이용할 수 있지만 50% 이상은 조합원이어야 한다.

 

살림의료사협은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이후 두 번째 의원을 개설하기로 결의한다. 조합원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치과의원이다. 의원 개설을 위한 ‘개원애벌레’ 회의를 거쳐 2016년 8월에 살림의원과 운동센터 다짐, 개원한 살림치과를 한 공간으로 합치는 통합이전을 했다. 공간을 새로 마련하고 의원을 개설하는 데는 꽤 많은 비용이 든다. 이 모든 것을 지역민들과 조합원들이 ‘생각과 노동, 자본의 협동’으로 이루어냈다.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견제안과 반영이 이루어지는 운영

 

조합원과 조합의 첫 만남 ‘살림파티’에서 마을모임과 조합활동으로

 

조합원이 조합과 첫 인연을 맺는 곳이 신규조합원을 맞이하는 ‘살림파티’다. 말하자면 신규 조합원교육모임이다. 살림의료사협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의원 문을 여는 순간 맞이하는 의원 공간이며, 의료진이다. 하지만 조합원으로서 조합의 식구로 마음을 다지는 순간은 ‘살림파티’다. 조합원들의 자치활동기구인 교육나눔위원회 위원들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테이블과 의자, 공간을 따뜻하게 꾸민다. 오고가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을 위해 모니터 화면에 말을 글로 옮겨 적는다. 이러한 소박하면서 정성스러운 파티 분위기는 조합의 주인이 바로 조합원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낯선 만남이 금세 친숙한 관계로 바뀌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조합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묻고 참여 의사를 밝힌다.

 

조합원과 조합의 첫 만남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소모임에서, 나아가 특정 주제로 활동하는 위원회로 이어진다. 살림의료사협에는 은평구 지역 동모임이 구성돼 있다. 동모임은 지역주민 7~10명 정도가 참여하며, 혈압을 재는 건강 체크와 함께 조합 운영방향을 설명하고 당장 추진할 계획 등을 논의한다. 소모임은 열여섯 개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매달 한 번 모여 반찬을 만들어 서로 나누는 ‘밥앤찬’ 소모임은 의료생협 당시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모임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의 축제의 장인 총회, ‘건강의 안부를 묻는 사람’인 대의원

 

협동조합의 최고 의결기구는 총회다. 현재 살림의료사협은 대의원총회로 이루어지며 총회를 열기 전에 두 번에 걸쳐 대의원 설명회를 연다. 대의원을 선출하고 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은 이사들이 맡는다. 이사들은 2015년에는 대의원 선거를 기획하는 ‘마을모임 기획단’을 구성해 대의원 선거를 준비했다.

 

살림의료사협은 대의원을 “건강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러기 위해 대의원의 자격을 정하는데, 이를테면 대의원 신청서 양식에 “가입한 지 1년이 넘고, 증자활동에 참여하고, 각종 위원회나 소모임 등 조합 활동에 참여한 경력을 적는다. 마지막에 ‘조합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하는 자신의 결의를 적는다.

 

총회에 참여하는 대의원은 100여 명. 민앵 이사장은 총회가 조합원들의 축제의 장이 되기 위해 “우리들이 함께 했던 활동을 잘 드러내고 그 수고를 기억해주고 기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직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이사회와 위원회의 자치활동

 

조합원을 대표하여 조합의 사업과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이사회는 모두 16명으로 구성돼 있다. 마을주민대표, 여성학자, 법조인, 간호사, 직원대표, 의료진 등 조합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조합원으로만 구성되며 사외이사는 두지 않는다.

 

살림의료사협에서 이사는 조합의 조직활동가다. 이사들은 살림의료사협에서의 많은 활동 경험과 폭넓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활동을 담당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각종 TFT를 구성할 때, 대의원 선출과정과 설명회, 조합원 토론회와 관련해 조합과 조합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특징적인 활동 중 하나로, 대의원이 모여야 할 때 이사들이 5~10명 정도의 대의원에게 참여를 독려한다.

 

위원회는 모두 5개로, 임원과 직원, 조합원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 건강마을위원회, 교육나눔위원회, 함께운동위원회, 소통과참여위원회가 있다. 소통과참여위원회는 ‘건강마을 살림이’라는 소식지를 발간하며, 교육나눔위원회는 신규조합원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이사회는 올해 처음으로 상임이사제도를 마련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일이 많아졌고, 조합 경영을 집중하여 고민하고 집행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사회에서 상임이사제도와 관련해 4개월간 논의한 것은 “민주적 운영과 경영 전문성을 함께 가지는” 문제였다. 상임이사는 경영 전문 역할자다. 협동조합에서의 경영전문가에 대해 민앵 이사장은 “경영 역량이 있으면서 협동의 관점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상임이사만이 아니라 이사진들 모두 같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이며, 지난 4개월이 그런 인식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대의원총회 모습 (사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의 생각·노동·자본의 협동이 돋보이는 참여 경영

 

조합원 참여 경영은 살림의료사협이 처음부터 내걸었던 운영 원칙이고, 협동조합 민주적 운영의 상징이다.

 

협동조합에서 조합원 참여는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경영하고 이용하는 조합원 중심 조직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조합원은 일정한 금액의 출자금을 내 자본 형성에 기여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일을 해결하고자 조합을 설립한 만큼 조합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운영에 관여할 책임을 갖는다. 그 의무와 책임은 조합원의 최고 의결기구인 총회, 조합원 대표로 구성된 의결기구인 이사회, 그리고 여러 조합운영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조합원은 조합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그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조합의 생명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살림의료사협은 조합원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내도록 하고 그것을 실제로 반영함으로써 조합원이 조합의 주인임을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 사례가 의원 개설을 앞두고 열린 조합원 토론회 ‘개원애벌레’와 증자운동인 ‘출자 캠페인’이다.

 

의원 개원을 앞두고 열린 ‘개원애벌레’ 회의

 

‘개원애벌레’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원 개설을 앞두고 열린 경영회의다. 꼭 의원 개설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조합의 중대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원애벌레’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이 제시되고 실제 운영에 반영되었다.

 

‘개원애벌레’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추혜인 원장이다. 의료생협 창립 이전, 일본의 미나미의료생협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조합원들의 토론장인 ‘천인회天人會’에서 영감을 얻었다.

 

일본 미나미의료생협의 천인회는 낡은 의원을 리모델링하는 문제를 주민들이 논의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상징적으로 ‘천인회’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대체로 매번 100여 명 이상 조합원이 모였다. 의원을 세우기까지 5년간 45회 회의를 했다. 디자인부터 의원에서 일할 사람, 의원의 위치, 의원을 건설할 자금 마련 방법까지. 디자인 하나하나부터 주민을 위한 의원이었다. 미나미의료생협의 의원은 마을과 지하철역 사이에 세워졌다. 마을 사람들이 의원에 오고가는 게 편하도록 디자인했다. 이 모든 게 조합원들의 아이디어였다. 미나미의료생협의 천인회는 백인회부터 시작해 육만인회로 이어졌으며, 2010년부터 매월 공개로 열리는 육만인회(당시 조합원 수 6만 명을 조금 넘는 규모였다)는 앞으로 50년간 자치 협동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갔다.

 

살림의료사협의 첫 개원애벌레는 2012년 의료생협 창립 이후 살림의원 개원을 위한 조합원 토론모임이었다. 임원과 직원을 비롯해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관심을 보인 조합원들과 함께 의원을 세워보자고 결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어떤 의료가 필요한지 논의하고, 주민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가정의학과를 개설하기로 했다. 지역민의 의견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기획하고 실행했으며, 의료공간 디자인까지 조합원 토론에서 결정했다.

 

개원애벌레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의원 개설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협동자본 만들기’ 캠페인을 기획하고, 조합원을 만나 가입을 권유하고 출자 증자를 안내하는 실습을 했다. 6주간의 출자캠페인 기간에 2억2천만 원, 개원 준비 기간 전체에 걸쳐서는 3억 원이 넘는 금액을 모아냈다. 개원애벌레에 참여한 어느 조합원은 “이렇게 조합원의 의견이 모여 의원이 만들어지는구나. 정말 조합원이 만드는 조합원들의 의원이구나” 하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한다.

 

2014년 말 살림의료사협은 ‘돌아온 개원애벌레’라는 이름으로 조합원 대토론회를 부활했다. 운영진과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 조합원이 한데 모여 의원의 주요 경영 현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토론 주제는 의료수가 재조정 문제로, 임대료와 인건비가 상승하고 약품과 의료용품의 원가 변동이 있는 상황에서 비보험 진료항목의 수가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안건이었다. 이날 모인 조합원 60여 명은 사안별로 꼼꼼하게 토론을 벌여나갔다. 이날 ‘돌아온 개원애벌레’ 토론회에 참여한 어느 조합원은 “조합원들이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직접 거수하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고 말한다.

 

2016년 살림치과 개원과 공간통합 이전을 앞두고 열린 일곱 번의 개원애벌레에는 더 많은 조합원이 참여했고 기대 이상의 성과도 이루었다. 개원애벌레 회의를 열기 전, 이사들이 동모임과 소모임, 위원회에서 앞으로 추진할 개원애벌레 의제를 설명하고 함께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지역주민에게도 개원애벌레 참여를 제안하는 안내문을 냈다.

 

개원애벌레 회의가 시작된 후에도 회의 내용을 공유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동모임과 소모임, 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이렇게 2016년 3월부터 8월 살림치과 개원식까지 일곱 차례 개원애벌레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동모임 소모임 등 다양한 조합원모임에서 나온 요구 11가지를 정해 순위를 정하고, 입지 선정과 조합원 모으기, 자본금 조달 계획 등 어떤 의제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토론을 이어갔다. 7월에 열린 5차 개원애벌레 회의에서는 조합원 지원 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의견이 쏟아지며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회의는 스케일링 조합원수가 결정, 아말감 사용 여부, 고가진료 할인 정책, 조합원 지원율 등 치과 운영을 둘러싼 격렬한 토론의 장이었다.

 

“원가 이하의 금액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경영상의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케일링 비용을 적게 책정해서 나중에 적자에 허덕여서는 안 된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금액에는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비조합원이 조합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고, 조합원도 혜택을 받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차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협동조합이 우리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해서 조합활동에 참여하냐 마냐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지역사회 기여를 위해 동일하게 가격을 책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합이 잘 안되면 조합원이 함께 그 위험을 지는 것이지 않은가.”

 

“살림은 협동조합이면서 공공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이를 두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처럼 보일 수 있다. 차이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면 좋겠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이어지는 토론. 비록 끝나는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토론을 충분히 하자는 의견이 많아 마지막 표결에 이르기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격론이 오고간 이후 마지막 표결. 조합원 지원율(할인) 3%로 정하고 예방진료는 살림의 가치를 담아 20% 지원으로 결정했다.

 

개원애벌레는 조합원들의 토론 광장이면서 세세한 사항을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격식 없는 분위기와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돋보이는 개원애벌레는 참여한 조합원에게 토론이 길어지는 데서 오는 지루함보다 자신의 조합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책임 있는 발언과 결정의 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개원애벌레 회의 모습 (사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빚 없는 개원을 위한 출자 캠페인

 

“빚 없이 치과를 세운 일도 기쁘지만, 어느 조합원 한 사람도 치과의원 개설과 공간통합 이전을 몰라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전 조합원에게 전화를 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살림의료사협 민앵 이사장은 이번 치과 개원 과정에서 보인 성과를 이렇게 표현한다.

 

조합원들이 필요로 하고 원했던 치과와 의료사협 공간을 만들어낸 것뿐 아니라 3억 4천만 원이라는 자본금을 조합원들이 직접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를 둔다. 6주간 출자 캠페인 기간에 560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3억 4400여만 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전체 조합원의 3분의 1이 참여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수도 1,800여 명으로 늘어나 올해 말이면 2천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출자캠페인은 개원애벌레에서 조합원 가입과 출자 권유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정도 목표를 세울 것인지 함께 머리 맞대고 기획을 한 후에 시작했다. 목표가 큰 만큼 부담이 컸지만 캠페인 마무리 시점에 모아진 자본금 액수는 조합의 임원과 직원, 함께 참여한 조합원을 놀라게 했다.

 

 

※ 치과 개원을 향한 조합원 십계명

(자료 출처: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1. 부지런해야 한다.

2. 의료사협 의원 개원과정에 열심히 참여한다.

3. 동네에서 의료사협 개원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부풀려놓는다.

4. 조합원들이 최대한 쉽게 갈 수 있는 곳으로 입지를 선정한다.

5. 개원할 동네에 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들려준다.

6. 개원을 전후하여 동네분들을 보시고 의원에 수시로 들락거린다.

7. 의료사협에 동의하는 친절하고 실력있는 의사를 구한다.

8. 의료사협의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9. 개원 후에는 나의 주치의가 생겼다고 동네방네 자랑한다.

10. 의료사협 의원의 재무구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

 

 

자원활동단 ‘좋아랑’ 운영

 

조합원들의 자원활동모임인 ‘좋아랑’은 2012년 11월에 결성됐다. “좋아서 자원활동 하는 사람들이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좋아랑’은 일반 소모임이나 위원회 활동과 달리 조합 운영의 사소한 살림살이를 돕는 활동을 한다. 공간 청소나 조합원 가입 안내, 의원 개원식 때 행사준비를 돕는다.

 

좋아랑은 활동단장을 중심으로 1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며 자원활동단 성격인 만큼 고정적으로 구성원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규모가 작고 활동이 활발하지 않지만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조합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기회다.

 

대다수 조합원 참여와 동의 없는 조합 경영, 지속하기 어려워

 

조합원들이 공통으로 하고자 한 일, 꼭 필요한 일을 해내기 위해 공동의 노동과 자본을 모아 만든 것이 협동조합이다. 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힘과 자본을 보탠 조합원이 그 운영의 책임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대개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참여와 결의를 한데 모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조합원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부 임원들이나 경영책임자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오히려 조합원의 지지기반을 잃어버린다. 조합원이 운영의 주체로 참여하고 조합 경영에 협동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조합 운영의 안정과 경영 성과에 얼마나 기여할까.

 

살림의료사협 민앵 이사장은 이 질문에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답한다. 임원진이나 의료진, 직원과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 모두 이 대답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난 5년 가까이 이어온 활동 과정에서 증명된다.

 

살림의료사협은 그동안 두 개의 의원과 운동센터 ‘다짐’의 개설, 조합원 확대, 조합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자본금 확보라는 큰 성과를 이뤄냈다. 여기에는 은평구 지역주민들의 남다른 문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살림의료사협의 운영과 활동원칙에 특별함이 있었다.

 

첫째, 살림의료사협의 모든 일은 조합원이 직접 만들어내고 실천한다는 원칙을 지켜갔다. 구체적인 사업의 진행에 앞서 벌어지는 오랜 기간의 조합원 의견수렴과 토론, 한 가지 의제를 결정하기까지 몇 개월간 지속하는 의결회의. 살림의료사협에서 그 같은 긴 시간은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소중한 잉태 기간과 같다. 지루할 수 있고 소모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과정이 살림의료사협에서는 조합 운영의 필수 조건이었다.

 

둘째, 조직활동가로서 임원진과 위원회의 활동도 조합원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했다. 임원 한 사람당 5~10명의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총회나 개원애벌레, 마을모임 등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해냈다. 신규조합원이 참여하는 ‘살림파티’ 때는 교육나눔위원회 위원들이 신규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초대한다.

 

셋째, 조합원 토론 과정에서 제안된 의견을 충실히 반영함으로써 조합원에게 든든한 믿음을 주었다. 심지어 의원 개설 전 리허설 모임에서 의원 내부 공간의 동선과 안내판, 시설과 관련해 꼼꼼하게 지적한 조합원의 의견을 즉각 반영한 것은 조합원에게 조합활동의 재미뿐 아니라 이용자로서 운영의 주체로서 자긍심을 갖게 한다.

 

조합원의 참여는 협동조합의 기본 전제이며 생존의 원천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다. 만약 대다수 조합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사업을 추진한다면 그 성패는 정해져 있다. 시작은 그럴듯하게 할 수 있을지언정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수많은 협동조합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조합원 참여는 협동조합이 가장 어려워하는 숙제다. 모든 성과는 애쓴 만큼 얻어지는 법. 살림의료사협이 그 이치를 잘 보여주었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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