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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단상
2017-02-21 14:34:00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단상

 

김성오

90년대 초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편역하여 한국에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90년대 중반부터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협)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으로 협동조합을 창립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다.

 

 

요즘 새삼스럽게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뽑아놓은 5년 임기의 대통령이 투표에 참여했던 국민들로부터 거의 심정적 탄핵을 받아 휘청거리고 있다. 약 4년 전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들은 자기의 판단이 옳았음에 안도하면서 분노하고 있고 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국민들조차 자기의 손가락을 노려보면서 분노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는 게 맞는가 아니면 물러나는 게 맞는가?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국가사회나 어떤 집단에서의 그것과 같이 다층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가 논의되는 지점은 매우 다양하며 그에 비례하여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성격을 갖는다.

 

첫 번째 층위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원칙으로 정해놓은 ‘민주적 관리’의 문제다. 여기에서 논의되어야 되는 지점은 조금은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인 것이다. 대개 그것은 매우 혁명적인 ‘1인1표의 원칙’과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협동조합의 원초적 단점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은 1인1표 원칙에 의해 민주적인 대신 기업의 주인인 조합원들끼리 빈번하게 싸우면서 경영의 속도가 늦어지는 원초적 단점을 가진 기업체가 되었다.

 

두 번째 층위는 단위협동조합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다. 여기서 주로 문제 되는 지점은 선출권력과 임명권력 간의 관계 문제와 대의원회 구성이나 이사회 구성 및 운영에서의 대의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이다.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세 번째 층위는 협동조합연합조직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다. 여기서 주로 다뤄지는 내용은 앞의 것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조합들의 차별화된 대표성과 관련된 문제-이것이 꼭 민주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를 포함한다-와 연합조직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경우 단위조합 조합원들의 권력 약화가 필연화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글에서는 위의 각 층위별로 민주주의 문제를 검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의 미래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 제위의 문제의식이 조금 더 깊어지고 더 나아가 어떤 층위에서든 부딪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단초를 마련해보기를 희망한다.

 

 

협동조합 원칙에서 민주주의 문제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 원칙의 두 번째 개정 작업을 벌여 그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개정은 1966년에 이루어졌다. 그보다 30년 앞선 1937년 국제협동조합은 처음으로 협동조합의 7원칙을 선포한 바 있다. 이 두 번의 개정작업을 통해 어떤 원칙은 폐기되고 모양이 바뀌었다. 또 새로운 원칙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두 번의 개정작업을 통해 꿋꿋이 원칙의 반열에 남아있는 것은 네 가지인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주적 관리(democratic member control)’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실 1844년에 문을 연 로치데일협동조합의 원칙에서 천명된 이래 지금까지 약 170여 년 넘게 이어온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서의 의미

이 원칙은 184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세계 시민사회에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원칙이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볼 때 여성참정권이 보장되기 훨씬 이전부터 협동조합은 여성조합원이 1표를 행사하는 혁명적인 조직으로서 역할을 했다. 협동조합이 여성참정권 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에서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 원칙에 의해 경제적 약자들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 기업의 주권자로 등장한 것인데 이는 지금도 매우 혁명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위 경제민주주의에서 이것은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협동조합이 경제민주주의의 모델 내지 첨병이 되는 이유다.

 

혼란스러운 기업으로서 협동조합과 그 해결책

이 원칙은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던 협동조합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단점을 잉태하는 것이기도 했다. 몇몇 대주주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던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은 좀 시끄럽고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기업체가 되어 버렸다.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는 기업, 사실 이것은 협동조합의 원초적인 단점이자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배 협동조합주의자들뿐 아니라 현재의 협동조합주의자들에게도 이 문제는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머리털 빠지는’ 고민거리다. 그동안 찾은 해결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동등한 주권자들이 모여 그들 스스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정해놓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의 정관과 규약, 규정 등이다. 정관은 헌법에 해당되고 규약은 법률, 규정은 시행령 같은 것이다. 이것을 정해 놓고 동등한 주권자들은 그 규칙 안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게 되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가 일반화된 것과 비슷한 원리이기도 한데, 어쨌든 이러한 해결책이 나오고 나서 협동조합 안에서의 혼란은 거의 90% 정도 사라졌다. 협동조합 원칙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이처럼 “제도화된 민주주의”로 정착되었다.

 

파생된 원칙, ‘교육 및 정보제공의 원칙’

민주적 관리의 원칙은 1840년대부터 ‘교육의 원칙’을 파생시켰다. 기업의 주권자들은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조합의 경영 상황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언제나 조합의 경영 상황에 대해서 듣거나 아니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문제는 1840년대 조합원들의 90% 정도가 까막눈이었다는 점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과 숫자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주권자인 조합원들의 권리를 위해 그들에게 글 공부와 숫자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원칙’이 정립된 가장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문맹률이 매우 낮아진 오늘날 ‘교육 및 정보제공의 원칙(education, training and information)’이 계속 유효한 이유는 약간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보통 주식회사에서는 대주주가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가 생각하는 기업혁신을 쉽게 이룰 수 있다. 소액주주들은 무시되거나 직원들의 의사 또한 별로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뛰어난 경영 능력과 혜안을 가진 경영자라 하더라도 그의 주장을 조합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협동조합의 혁신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조합원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지식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 주식회사의 수준은 대주주나 그가 임명해놓은 경영자의 수준과 비례하지만 협동조합의 수준은 경영자의 수준이 아니라 조합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파생된 원칙, ‘자율과 독립’의 원칙

1960년대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죽고 나서 흐루시초프가 등장했다. 그는 겉으로는 매우 유화적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결국 ‘프라하의 봄’이 상징하듯 스탈린과 다름없는 무자비한 권력자로 판명되었지만, 어쨌든 그가 등장하고 나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그와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소련의 협동농장과 협동상점들이 국제협동조합연맹에 가입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1966년 1차 개정을 통해 그동안 유지해왔던 ‘정치적, 종교적 중립의 원칙’을 폐기했다. 소련의 협동조합들은 공산당이 유일지배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상당기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의 협동조합들 중 상당수가 정부 주도의 협동조합이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농협이 있었다. 이 협동조합에서 민주적 관리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장은 농림부장관이, 단위조합장은 농협중앙회장이 임명했던 것이다. 소련의 협동조합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물론 한국의 농협은 1988년부터 조합장을 조합원들이 뽑기 시작했고 중앙회장은 조합장들이 뽑기 시작했다. 소련은 붕괴되었고 소련의 협동조합들은 기로에 서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은 ‘자율과 독립의 원칙’을 추가했다. 협동조합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업이고 그것은 유일하게 조합원주권이 작동하는 자율적인 기업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견제하는 원칙인 동시에 당시로서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관리 원칙을 보위하기 위한 원칙이었다.

 

 

단위협동조합 운영에서 민주주의 문제

 

정관과 규약을 잘 갖추어 놓은, 즉 민주주의가 잘 제도화된 단위 협동조합들에서도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특히 규모가 아주 커진 협동조합에서 그것은 훨씬 빈번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문제

조합원들은 총회에서 이사진과 이사장을 선출한다. 이들은 선출권력이다. 그런데 이사회는 보통 전무나 상무로 불리는 실무책임자를 임명한다. 이들은 임명권력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권한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핵심은 실질적으로 임명권력의 권한이 선출권력의 그것을 압도하거나 능가하는 경우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곳은 신용협동조합이었다. 신협의 선출권력들은 대개 임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임명권력들은 수십 년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명권력이 오히려 선출권력에 대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뽑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에 따라 실무책임자가 20여 년 이상 권력을 놓지 않고 그를 견제하는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은행 지점장을 같은 사람이 수십 년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상당히 많은 혼란과 부패가 발생하였다.

 

한국의 몇몇 생협도 비슷한 조건에 처해 있다. 이사장이나 이사 등 선출권력은 동네의 주부활동가들인 경우가 많은 반면 전무나 상무는 대개 경영능력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단위조합의 실질적인 권력은 이들 실무책임자들에게 넘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반대 방향에서의 문제가 왕왕 제기되기도 한다. 즉 전문성과 경영능력이 부족한 선출권력이 권한을 가질 경우 과연 단위조합의 경영이 잘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단위농협의 경우 중앙회가 임명하는 상임이사제도를 통해 이를 보완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생협에서는 매장을 연합회가 자회사를 조직해 직할로 운영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더 원칙에 가까울까? 단위조합마다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전문성과 경영능력이 있는 선출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이상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인가?

 

대의제도의 문제

규모가 큰 협동조합일수록 조합원총회는 대의원총회로 갈음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조합원의 참여 동력이 떨어진 협동조합에서도 이 제도를 선호한다. 문제는 높은 참여의지를 갖는 조합원들이 대의원에 선출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들은 조합 경영에 참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단위농협에서 이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단위농협의 대의원은 상당한 권한을 갖는 사람들로서 그 마을의 지도적 위치를 갖는 조합원이 대의원으로 선출된다. 농협개혁의 열의를 가진 조합원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규모가 커진 일부 생협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들었다.

 

선출권력의 권한범위에 대한 문제

조합의 규모가 크든 작든 선출권력이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제도화된 민주주의에서 이 문제는 늘 다툼의 여지를 남긴다.

 

보통 이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한다. 첫 번째 방법은 감사를 잘 뽑아서 선출권력을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감사가 있을 경우 선출권력의 남용은 견제되기 힘들다. 협동조합의 감사는 주식회사의 감사와 달리 실질적인 경영감독관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규약이나 규정 등 협동조합의 규칙에 선출권력이 행사하는 권한을 명확히 정해 놓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사장의 집행한도와 권한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해놓을수록 이런 문제가 덜 발생한다. 규칙을 정하는 것은 조합원의 몫이다.

 

 

협동조합연합조직에서 민주주의 문제

 

협동조합연합조직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민주주의 원칙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매우 제한된 민주주의가 작동되는데, 이로 인해 이런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단위조합에 대한 차별적 투표권 배분과 정치원리의 작동

협동조합연합회는 단위조합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 단위조합의 발언권은 동등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연합회는 회원조합의 규모나 분담금 액수에 따라 차등투표권을 부여한다. 단위조합 사이에서의 1인1표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위조합의 조합원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기는 하다. 규모가 큰 조합의 조합원과 작은 규모 조합의 조합원은 1조합1표 원리에 비해 어느 정도 균형 잡힌 권리를 보장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표의 등가성 측면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연합조직에서는 단위조합에서보다 훨씬 복잡한 정치원리가 작동한다. 연합조직은 보통 몇몇 단위조합으로 구성된 덩어리 조직들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권력을 창출하고 작동시킨다. 이런 이유로 연합회장 선거는 매우 경쟁적인 국면으로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냥 조용하게 치러지는 것에 비해 이것이 훨씬 효율적인 경영에 근접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패배한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의 영원한 논쟁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협동조합연합조직의 활성화는 1966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 원칙 1차 개정 시 추가된 ‘협동조합 간 협동’의 원칙에 힘입은 바 크다. 당시 협동조합 진영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의 등장으로 인해 이들과의 시장경쟁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법은 두 가지, 단위조합의 규모를 키우거나 아니면 연합조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중 후자의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연합조직을 활성화시킨다는 원칙을 정한 것은 본래 ‘집중’보다는 ‘민주’를 중요시하고 ‘효율성’보다는 ‘분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협동조합의 조직원리를 약화시킬 수 있음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연합조직이 구성되고 전체 권력의 상당부분이 연합조직으로 이동하면서 단위조합 조합원들의 의사결정 권한은 침해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감수하면서 시장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이라는 조직원리상의 과제는 앞으로도 언제나 토론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곳은 바로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에서였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은 1956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는 느슨한 연대조직을 갖추고 집중보다는 민주, 효율보다는 분산의 조직원리를 지켜왔었다. 하지만 유럽시장의 통합과 글로벌 경쟁의 격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니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기업집단으로의 통합작업을 진행하여 1990년대 초반 몬드라곤협동조합복합체(Mondragon Cooperative Complex)라는 기업집단, 즉 컨글로머릿conglomerate(복합기업)을 만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적이고 분산적이었던 협동조합운동 전체가 효율과 집중을 원리로 하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집단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기업집단으로 바뀐 후 몬드라곤그룹은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해외시장 개척을 전개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전환 과정은 심각한 논쟁을 동반했다. 수많은 협동조합원리주의자들이 이것을 비판했으며 지금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과정이 매우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이 없었다면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운동사에서 이미 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가 보기에 협동조합연합조직은 경쟁기업과의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합조직이 권한의 분산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배려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좀 이상하다. 행여 경쟁기업과의 경쟁에서 지거나 실패할 경우 연합조직은 민주주의를 확대했다는 칭찬보다는 효율경영에서 실패했다는 주권자 조합원들의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궁극적 권력의 담지자인 조합원들은 자신의 권리를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효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미래와 민주주의의 미래

 

협동조합의 역사적인 자산 중 민주주의만큼 큰 자산은 없다. 그것은 협동조합을 다른 조직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국면에서 많은 문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다루었던 주제들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방향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평소에 “기업지배구조는 진화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주식회사의 기업지배구조는 나라별로 모두 다 다르다. 미국의 주식회사는 주식소유권이 없는 전문경영인들을 잘 관리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반면, 한국의 주식회사 대기업은 가문계승자들이 갖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핵심문제다. 독일의 주식회사들은 주주와 노동자들이 권력을 나눠가지는데 어떻게 그 둘의 이익을 조정할지가 핵심이다. 스웨덴의 재벌기업은 전혀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주식회사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다 다르고 그 핵심문제가 변화하기도 한다.

 

협동조합의 기업지배구조 또한 일률적이지 않다. 따라서 거기에서 작동되는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양상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측면이 이 진화에서 우성인자로 작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우리가 겪고 있는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문제, 혹은 권력의 작동 문제에서 어떤 것이 더 미래지향적인 것일까? 혹은 어느 것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그 구체적 결과가 어찌되었든 협동조합이 원칙으로 가지고 있는 ‘민주적 관리의 원칙’ 자체는 기업지배구조의 진화에서 우성인자인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고 있고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정보의 양이나 질에서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후손들이 기업지배원리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일 개연성은 훨씬 높다.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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