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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세 번째 겨울 앞에 서 있는 우리 - 세월호 이후, 생명과 존엄의 연대
2017-03-15 15:28:00

 

세 번째 겨울 앞에 서 있는 우리

- 세월호 이후, 생명과 존엄의 연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권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기록 활동도 한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밀양을 살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등을 함께 썼다. 

 

 

세 번째 겨울을 맞는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겨울은 추위가 두려운 계절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는 절망이 두려운 계절이다.

 

2014년의 겨울은 특별법을 남겨놓았다.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피해자 가족들의 제안에 650만 명의 국민이 서명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제정된 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과 권한이 제한된 반쪽짜리 특별법이었다. 2015년 시행령 논란 끝에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세월호 인양도 결정되었다. 그러나 위태로운 특조위와 인양이었다. 그해 11월에는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라는 해양수산부 문건이 발견되었다. 정부와 여당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특조위를 방해하며 무력화시키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래도 2015년의 겨울은 특별조사위원회를 남겨놓았다.

 

2016년이 되자 정부는 특조위 활동기간이 종료되었다며 특조위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7월에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호언하던 정부는 올해 안에 인양이 어렵다고 말을 바꿨다. 세 번째 겨울,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아있는가.

 

 

세월호 참사와 우리들의 죽음

 

세월호 참사는 배가 침몰해서 사람들이 죽은 사고가 아니었다. 정부가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배가 침몰한다는 최초 신고 이후로도 90분의 시간이 있었고, 헬기와 함정이 도착한 후로도 50분의 시간이 있었다. 퇴선 안내만 있었다면 10분 안에 모든 탑승객이 탈출할 수 있었다. 둘라에이스 호가 인근에서 탈출한 탑승객들을 옮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해경이 빼어난 능력을 갖춰야 겨우 구조할 수 있는 악천후나 이례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기본만 지키면 구할 수 있는 사고였다.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히 교신하면서 안전 조치를 취하고 구조 활동을 벌이면 탑승자들은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 아래로 배가 기울어 잠기는 동안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다. 딴짓만 했다. 청와대는 영상을 보내라고 닦달했고 해경 지휘부는 구경만 했고 현장의 해경들은 선장과 선원만 구했다. 사고일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이기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참사였다. 사건의 규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탑승자들이 배에 갇힌 채 수장되던 그때 언론은 일제히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수백 명이 죽은 사실을 언론이 ‘없는 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국민들이 알아버렸다. 저녁 무렵에는 보험금을 얼마 받느니 하는 보도가 이루어지더니 여기저기에서 막말들이 등장했다. 실낱같은 생환의 기다림을 우롱했고 가족 잃은 사람들의 비통함을 모욕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탐문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자 ‘허위사실 유포’라며 겁박했다. 노란 리본을 달고 애도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길을 막았다. 정부와 언론은 ‘유병언 몰이’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며 진실의 길을 막았다. 온라인에서 떠돌던 악성 댓글들은 광장에 ‘폭식 투쟁’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지우기 어려운 상흔이 새겨졌다. 참사의 한가운데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에게는 더욱 깊은 상흔이었다. 배가 침몰하던 마지막 순간 손을 놓친 기억은 죄책감이 되어 생존자들의 시간을 짓눌렀다. 유가족들은 마지막 통화의 기억을 곱씹으며 탈출하라고 말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해경이나 정부는 구조하지 않은 잘못을 사죄하지 않았다. 구조해서 살릴 수 있었다. 침몰도 막을 수 있었다. 출항도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막을 수 있었던 순간들에 대한 진실을 숨기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조차 위로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날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4월 16일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목격한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힘을 모았다. 유가족이 용기를 주었다. 유가족은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전국적인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국회가 움직이지 않자 유가족은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도 시작했다. 진상규명 요구를 가로막는 정부에 항의하며 더욱 많은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도 단식을 시작했다. 해 가릴 천막 하나 없어도 자리를 만들었다. 안산에서 서울까지 걷기도 했다. 생존학생들이 걸었고 유가족이 걸었다. 곁에 서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났다. 정부는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하고 국회는 무력했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의 연대로 진실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 Korea.net

 

견고한 죽음의 질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더뎠고 험난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깨우쳐준 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터워졌다.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사람들은 다시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고, 2016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쟁점이 되었을 때 ‘안방의 세월호’라 했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굴러가는 세상은 누군가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 중에는 선박 연령 규제 완화가 있었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선령제한 완화를 대통령에 건의했을 때 국토해양부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당시 보고서는 선령 제한을 개선할 때 경제적 이익이 있지만 동시에 만약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듬해 1월 선박연령을 30년까지 완화했다. 국내 첫 메르스 감염이 확인되고 온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정부는 전염의 핵심 경로인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서로 정보를 보태며 ‘메르스 시민지도’를 만들 때 오히려 허위사실 유포 운운하며 협박을 했다. 병원의 체면과 수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는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대응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피해 사례가 접수된 후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을 하고 해당 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금지시켰다면 피해자가 1천 여 명을 넘어가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은 한둘이 아니었다. 올해 9월 한반도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이 땅을 흔들었다. 다행히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지진으로 지연 운행되던 KTX 열차에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야간 선로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였다.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을 때처럼 사측은 하청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했다. 한 장애인은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사무실에 갔다가 깨진 컵을 보고, “나도 저런 컵이 될 수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죽음은 평등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때 강남의 부유한 집 아이들이었다면 구하지 않았겠냐는 말이 나온 건 억측이 아니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이윤 놀음에 누군가가 더 희생당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목숨이 덜 값진 것으로 취급당했기 때문에, 죽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가만히 있다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세월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조끼를 건네주며 서로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처럼, 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함께 살자는 목소리와 외침들이 있었다. 먼저 죽어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혐오에 목숨을 위협당하는 여성들이 끊임없이 위험 신호를 타전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안간힘을 다해 막았다. 작년 11월 민중총궐기가 열릴 때에도 그랬다. 집회시위 금지를 통고하고 갑호비상령을 선포했으며 사람들이 광화문 인근에 이르자마자 물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죽음의 질서를 지켜왔다. 정부가 자유를 질식시키고 평등을 내버리는 만큼 우리의 생명이 스러지고 있었다.

 

생명과 존엄의 연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지난 9월 돌아가셨다. 민중총궐기 이후 317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집회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천여 명 넘게 소환했고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도 체포했다. 국민들의 요구로 청문회가 열렸지만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사과할 수는 없다는 무례함을 고집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자 검경은 부검영장을 들고 나왔다. 그때껏 진상규명을 해태하던 자들이 사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공권력을 동원했다. 한 치도 어김없이 그대로다. 사람이 죽었는데 미안한 줄도 모르고,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호소는 짓밟히고, 오히려 유족을 욕보이며, 책임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달라졌다.

 

세월호 가족들이 말했다. 세상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가 달라지지 않았냐고. 달라진 우리는 똑같이 당하지 않는다.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고, 구의역에서 한 노동자가 죽었을 때 발 빠르게 진상조사 활동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과 귀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백남기 농민에게 칼을 겨눈 부검영장을 시민의 힘으로 막아냈고 그치지 않는 저항들로 박근혜 정권의 치부가 하나둘씩 까발려지고 있다. 죽음의 질서를 견고하게 지탱하던 권력의 카르텔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겨울, 우리는 적어도 외로움이 두렵지는 않다. 두텁게 확인된 이 세계의 진실만큼이나 이 세계를 살아내는 우리의 연대가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지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이제 세월호만의 과제가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기대며 돌볼 줄 아는 사회를 만들자는 열망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약속에 담겨 있다. 죽음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우리 스스로 그것을 해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진실의 길을 열어왔고 앞으로도 이 길의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가족과 국민들의 힘이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활동을 하기 어려워진 지금, 국민조사위원회 구성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무엇을 조사하며 어떤 활동을 벌이며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간담회를 거치며 분명해지겠지만 이미 분명한 것이 있다. 가족들도,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감시하며 미수습자 가족들의 애절한 기다림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의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모으고 정리하는 기억저장소도 있다. 참사의 현장이기도 했던 단원고 교실은 지키지 못했지만 기억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와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추모와 기억을 위한 416재단 설립도 준비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길이 달리 있지 않다. 연대하고 협력하며 누군가의 고통과 기억을 고립시키지 않을 때 함께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연대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정치적 책임이자,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권리다. 겨울은, 절망이 두려운 계절만은 아니다. 끝까지 진실을 밝힐 ‘우리’를 깨닫는 계절이기도 하다. 함께 길을 만들어오면서 우리가 발견한 인간의 존엄은, 놓칠 수 없는 삶의 이유다. 내일도 4월 16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슬픔과 좌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인 만큼 세월호 참사 이후의 다른 사회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멈출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이 선포되었다. 아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가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세월호들의 침몰 속에서 다시 닥쳐온 재난이다.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참혹하게 드러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의를 짓밟고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에 침을 뱉고 참사의 진실을 덮으며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이 땅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다시 살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멈출 수 없었다. 팽목항에서,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애통함이 뒤덮인 또 다른 거리에서 우리는 함께 마음을 졸이고 아파했다. 눈물을 흘렸고, 이야기를 했고, 광장에 나섰고, 길을 걸었다. 흔들리면서도, 박해받으면서도 우리는 함께 싸우며 우리의 존엄을 회복하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모욕은 존엄을 밀어낼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하다.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다. 안전은 통제와 억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 속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안전의 기초이다. 우리의 존재가 오직 이윤 취득과 특권 유지의 수단으로만 취급되고 부당한 힘이 우리의 권리와 삶의 안전을 위협할 때 우리는 이에 맞서 싸울 것이다.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협력하여 싸울 때 쟁취하고 지킬 수 있다. 권리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길이며, 곧 민주주의 투쟁이다.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위협하고 박탈하는 세력들에 맞서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겠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시작한 이 싸움은, 모든 이들의 존엄을 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다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

2. 자유와 평등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억압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3. 연대와 협력 모든 사람은 연대할 권리를 가진다.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지켜질 수 있다.

4. 안전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5. 구조의 의무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조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6. 진실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재난을 초래한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진다. 진상조사를 위한 기구에는 충분한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어떠한 은폐와 왜곡도 용납될 수 없다.

7. 책임과 재발방지 재난의 해결은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자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벌해야 하며, 유사한 재난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정부와 사회는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8. 피해자의 권리 피해자는 부당한 해를 입었고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정부와 책임 있는 대표자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피해자는 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9. 치유와 회복 피해자는 재난 발생 즉시 필요한 구제와 지원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10. 공감과 행동 모든 사람은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재난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를 가진다.

11. 기억과 기록 공동체는 피해자를 기억하고, 재난과 그 해결의 전 과정을 기록하여야 한다.

12. 저항할 권리 정부, 기업, 언론 등 권력기관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침해하고 안전을 위협할 경우,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방어하고 연대하여 투쟁할 권리를 가진다.

13.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 모든 사람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선언한다. 우리는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실천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내고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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