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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공동체에 대한 제도적 규정의 불편함
2017-05-15 12:23:00

 

공동체에 대한 제도적 규정의 불편함

- ‘지역(마을)공동체기본법’을 중심으로 -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상임연구위원. 도시빈민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도시빈민연구소와 한국도시연구소에서도 일했다. 처음부터 줄곧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통한 사회와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왜 마을공동체인가?

 

우리 사회에서 마을과 공동체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이유는 이를 만들거나 복원하기 위한 ‘사업’들이 정부 정책으로 채택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데 이는 잘 고안된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다. 정부의 관련 정책은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던,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을 수용한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흐름은 대안적인 사회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공동체가 파괴된, 각자도생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 대한 성찰의 결과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려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부모로부터 강요받는다.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그 치열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승진하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동료와 친구, 이웃들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 도대체 우리는 왜 사는 걸까?

 

그러다보니 이제 우리의 삶은 각자도생을 넘어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경쟁’ 상태의 사회에서 허우적대며 유지된다. 99:1의 사회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경쟁에서 탈락한 그 99%가 생존을 위해 채택한 것은 서로 도와가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 1%에 포함되기 위한 무한경쟁에 자신을 집어넣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지만 우리 중 99%는 여전히 흙수저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그 가장 깊은 곳에 이런 바탕이 있다. 이로 인해 그간 인류가 힘겹게 구축해 온 배려와 포용의 문화는 사라지고, 야만의 문화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SF 영화들은 한결같이 인류문명이 파괴된 야만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게 단지 공상과학영화의 상상일 뿐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과거 우리가 봐온 SF 영화의 상상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이 됐다.

 

그래서 공동체라는 대안은 우리에게 매우 절실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치열한 경쟁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상호 호혜적 관계망으로 우리와 사회, 그리고 세상을 재편하는 것만이 우리 삶에 행복이라는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을로 표현되는 근린 지역 중심의 공동체운동을 요청하고, 자연스레 공동체운동이 주목을 받는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활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데에도 이런 사회적 배경과 대안 추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물론, 최근 생활협동조합 등이 공동체를 통한 일상과 사회, 그리고 세상의 재구성이라는 지향을 여전히 강력한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지는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세력이 커질수록 유혹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혹은 여러 가지 차원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중에는 자신들의 활동을 안정되게 만든다는 명분으로 추진하는 입법 활동도 포함될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을 하는 이들은 이미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한 경험을 갖고 있다. 아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도 이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민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를 제도로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는 대안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인식이다.

 

이런 활동과 운동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면,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법이란 이름 아래 시민들의 자율적 결사체인 공동체와 대안적인 운동을 일정한 규정에 맞추려는 시도는 심히 우려스럽다. 이는 우리의 대안‘운동’을 ‘사업과 활동’으로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지역(마을)공동체기본법’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동체운동의 확산과 중간지원조직의 성장

 

최근 지역사회에서 강조되는 활동 중 하나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 등으로 표현된다. 어차피 마을이라는 것은 근린 지역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렇듯 마을을 공동체로 바라보면, 이 운동의 시작은 우리 사회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최근의 경험으로도, 70년대 후반에 생겨난 철거민들의 집단정착촌 ‘복음자리’ 마을은 마을공동체를 만든 전형적인 사례다. 지금은 형태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가난한 철거민들이 시흥시 신천동으로 집단 이주하며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실제 건설했다. 무형의 관계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공동체 마을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신용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한 각종 협동조합 건설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은 대안운동으로서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우리의 일상과 세상을 재구성하기 위한 운동의 결과물이자 흔적들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마을만들기란 용어가 사용되고 최근 확산된 데에는 이런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부에서도 이 운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살기좋은 지역만들기’가 정책적으로 추진되었고,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도 급격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지원 정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다. 그 한 가지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공모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중간지원조직인 소위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자치단체마다 속속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원센터는 행정이 직영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민간위탁 방식이다. 필자가 2015년 말에 <한국마을만들기지원센터협의회>의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국 지원센터의 수는 27개에 달했다. 여기에 비슷한 성격의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합하면 그 수가 훨씬 더 늘어난다.

 

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설립 추세는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설립되면서 절정을 이뤘다.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센터로는 당시 최대 규모의 인원과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그 후로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가 그 정도의 규모로 설립되는 등 지원센터가 확산됐다.

 

이런 지원센터들은 현장의 주민 주체들과 행정의 사이에서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그 운영 및 사업 비용을 전적으로 행정에 의지하기 때문에 많은 한계도 뒤따른다. 지원활동에 있어서 현장의 욕구만이 아니라 행정의 욕구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행정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업 중심이다. 일정한 재원을 투자한 사업이 얼마나 가시적 성과를 거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동체를 형성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민간의 활동은 단지 단기적 사업의 결과로만 그 성과를 측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를 ‘운동’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적절한 긴장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건강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지원센터들의 위상이 불안정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자치단체장이 누구로 바뀌느냐에 따라 기존의 지원센터가 없어지거나 그 활동이 변화하는 불안정성이 계속 문제로 제기됐다.

 

2013년에는 수원에서 개최된 ‘마을만들기전국대회’를 계기로 두 개의 관련 단체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들이 참여하는 <한국 마을만들기 지원센터협의회>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만들기 지방정부협의회>다. 이런 단체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나름의 장점도 있지만 우려할 지점도 있다. 필자는 특히 전자의 지원센터협의회 결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가뜩이나 돈과 인력을 기반으로 현장에 대해 그 주도성을 강화해가던 중간지원조직이 자신들의 주도성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중간지원조직은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마을만들기운동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현장의 중간에서 이 둘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할 과제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재원 전부를 행정에 의존한다는 나름의 약점이 있다. 따라서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의 접점에서 나름의 독립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장의 조직된 목소리와 힘에 기대야 한다. 이런 목소리와 힘은 제대로 된 현장지원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자칫 중간지원조직의 주도성이 너무 커지면 오히려 현장을 행정의 입맛에 길들이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중간지원조직들은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려는 조직의 본능을 스스로 조절하기 위한 적절한 노력이 필요하다. 센터협의회도 그런 차원에서 고민됐겠지만, 독자적 사무국이 생기면서 자기 사업들을 만드는 과정은 우려스럽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지원센터협의회가 사회적협동조합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으로 새롭게 변화되면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독자적인 사무국을 갖는 연합체로의 변화는 독자적인 사업을 벌일 가능성을 그만큼 높이기 때문이다.

 

계속 반복하는 바이지만, 지원센터의 고유한 활동은 현장을 지원하는 것이지 중간지원조직 자체의 강화가 아니다. 하지만 중간지원조직들 간의 네트워크로서 시작된 모임이 협의회에서 연합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이 보다 강화되는 것이라 의심할 만하다. 물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간지원조직 그 자체가 나름의 독자적 위상을 확대해 가는 데 대해 우려하는 까닭은, 현장의 필요에 조응하기보다는 현장을 중간지원조직의 이해에 동원하거나 꿰어 맞추려는 경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의 두 사례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첫째는 지난 2015년에 불거진 ‘마을선언’ 작성과 관련한 논란이다. 이 선언문은 마을운동에 대한 교육 자료를 만들고자 하는 긍정적 취지가 있었다. 하지만 사전에 이 작업에 대한 현장의 의견과 합의가 충분치 않은 채 센터협의회가 일방적으로 주도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빚었다.

 

 

마을공동체 주체가 참여하지 않은 마을공동체기본법

 

또 한 가지는 현재 문제가 되는 ‘(가칭)마을공동체(지역공동체) 기본법’이다. 이 역시 현장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채 센터협의회가 주도해서 민간안을 만들었다. 2016년에 있었던 지방정부협의회 포럼 당시에도 이 법안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여전히 민간안으로 남아 있다. 이 법안에 대한 민간 주체들의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단지 몇몇 민간 활동가들이 법안 작성을 위한 TF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법안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공동체주의자들이 수세기 동안의 공동체운동 경험을 통해 성찰한, ‘목적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과정도 공동체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법안을 민간측 법안으로 규정하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현장의 많은 활동가들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를 민간 법안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니 이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문제는, 이 법안 추진 과정에서도 역시 현장보다는 중간지원조직들의 주도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많은 지원센터들이 억울해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법안은 센터연합이 전국의 지원센터들과 긴밀히 소통하지 않은 채 주도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원센터들 간의 연합체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을공동체(지역공동체) 기본법 관련 쟁점

 

먼저, 이 법안의 위상에 대해 간략하게마나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 법안은 아직 공식적인 법안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지, 한국지역진흥재단 산하 마을공동체발전센터가 <전국 마을만들기 네트워크>와 <한국마을만들기지원센터협의회(현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관계자 몇 명과 한국정책학회 등 전문가 몇 명으로 TF를 구성해 만든 안일 뿐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 법안은 <마을만들기 지방정부협의회>에 제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협의회에서도 이 법안이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또한 행정자치부에서는 별도의 법안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은 그냥 폐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이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일일이 그 쟁점 등을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법안의 취지와 전반적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제기하고자 하는 쟁점은, 이 법안이 진정 민간의 안인가 하는 점이다. 민간에서 합의되지 않았고 충분한 의견수렴조차 거치지 않은 법안을 민간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심지어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이 법안을 만든 주체로 명기된 TF 참여자들조차 이 법안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전에 법안의 내용을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추후에 이 법안이 민간이 만든 안이라는 위상으로 행정자치부에서 만든 법안과 절충하는 하나의 안으로 혹시라도 사용될까 하는 점도 심히 우려스럽다.

 

두 번째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을 갖는 법안이 복잡한 행정체계를 규정하고 있으며 의무와 권고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 법안에서는 행정자치부 장관과 광역자치단체장이 매 5년마다 지역공동체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법안 제7조와 제8조). 물론 광역자치단체의 기본계획은 기초자치단체의 기본계획을 기초로 수립할 수 있다는, 밑으로부터의 원리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공동체 역시도 마을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법안 제9조). 한편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지역공동체위원회’를 두고 각급 정부의 관련 사업에 이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안 제13조). 이에 조응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공동체 지역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법안 제14조). 이런 조항들은 시민들의 자율적 결사체인 공동체에 대한 관점보다는 행정체계에 대한 관점이 강하게 녹아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이러한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안은 지난 2013년 안전행정부에서 만들어 폐기된 법안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폐기된 안에 비해 지역 현장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배려가 오히려 더 많은 규정과 절차를 넣게 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명칭에서도 기존 폐기된 법안은 지원법이고, 새로이 만든 법안은 기본법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복잡한 체계를 갖춘 법이 만들어졌다.

 

세 번째는 지원을 위한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조건은 ‘등록’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하는 지역공동체는 해당자치단체장에게 등록을 신청해야 한다(법안 제10조). 마찬가지로 이 활동을 핵심적으로 수행하는 주민 등의 지도자와 활동가들이 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장에게 등록을 신청해야 한다(법안 제15조). 이 조항들이 들어간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히 정부 또는 행정으로부터 세금으로 조성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당당히.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나 개인이 일정한 공적 신분을 취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진정 이 운동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라 여긴다면(최소한 민간은 그런 차원에서 마을운동을 해왔다.) 행정이 민간의 자율적인 활동과 운동이 이뤄지는 곳을 찾아와 그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게 맞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이 할 수 없는 자율적 공동체운동 현장을 직접 찾아가 지원하기 위한 기구다. 그런데 법안은 이런저런 지원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공동체는 행정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민간에서 만든 안이라면 이런 기본 원칙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결사체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자율적 결사체를 행정에 등록해야 하고, 또 정부의 규정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는 실질적으로는 통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통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지원의 조건으로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 규정에 따르거나 또는 그것을 운영할 권력자가 자신의 권한을 시민들에게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율적인 시민들의 결사체를 하나하나 세부적인 법 규정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그리고 권력자의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권력을 시민들과 진정으로 나누려는 정치지도자를 우리 주변에서 당장 찾기란 어렵다. 간혹 그런 정치지도자를 발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거 결과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선거’에 묶어두는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선거 결과에 물론 영향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자율적 힘으로 꾸준히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이런 법안의 내용들은 충분한 통제 가능성을 열어 놓은 조항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와 같은 법안의 내용은 현재 여러 지역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광주 광산구에서 지방의회가 중간지원조직의 예산을 전액 삭감해 위기에 처했던 사례나 인천광역시 지원센터가 새로 선출된 시장에 의해 어려움에 처했던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런 영향들 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내용들을 넣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대처하려는 시도는 대안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마을공동체는 통제가 아닌 자율적 기운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운동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잘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을공동체라는 사회적 대안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우리의 가치와 대안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드러나는 이런 문제점들은 우리가 안고 싸우고 극복해 가야 할 과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법의 강제 규정으로 해결하려 접근한다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기본적으로 행정은 ‘사업’을 시민사회는 ‘운동’을 지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지원을 받고자 하는” 이라는 전제가 있으므로, 지원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는 활동의 경우 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민사회가 정부와 행정에 적극적으로 포섭되도록 하는 유인책일 뿐이다. 가뜩이나 마을만들기와 관련해 행정의 재정지원이 이뤄지면서, 그 돈을 받지 않으려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행정의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이들로 취급받는 상황이다.

 

왜 우리 스스로 이런 당근을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채찍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 물론, 그 당근이 채찍의 고통을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운동의 장기적 전망을 고려하면 이는 일시적인 고통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법안에서 등록을 승인이 아닌 신고로 규정했다는 점은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정부나 행정이 임의로 등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협동조합기본법’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 역시 공동체적 관계를 통한 대안경제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체다. 하지만 이 법이 협동조합 또한 하나의 사업으로 전락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이 모여 정관도 자유롭게 합의할 수 없다. 정작 대안경제와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수다와 실험 대신, 행정에서 요구하는 각종 규정을 맞추기 위해 조합원들과 자유로운 수다를 떨 여유가 없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는 본질적인 문제로, 우리가 기꺼이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애초 이 운동의 취지를 왜곡시키는 것일 수 있다. 마을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 이렇게 왜곡돼서는 더 이상 그곳에서 대안적 가치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과연 기우일 뿐일까?

 

 

제도권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한 제안

 

공동체운동이 우리 사회의 토대를 건강하게,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제도와 예산의 지원은 당연하다. 이는 결코 정치지도자의 시혜가 아니며, 이러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정치와 행정,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도모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행정과의 협력적 관계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행정의 일방적 지원에 종속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참여자들의 자발적 결사체다. 이러한 기본적 성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주민들이 스스로 또 주체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강화시켜 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질적 변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행정의 지원, 특히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경우에도 그러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실상 그 재정은 우리의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을운동이 그 당당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원에 대해 때론 의연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율적 결사체인 공동체가 외부의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마을만들기가 대중화된 데에는 행정의 지원이 결정적 작용을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지원 여부에 따라 사업 진행 여부가 결정되는 현상도 점점 더 강해지는 현실이다. 이는 마을공동체운동이 제도권과 만나 그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되면서 생긴 어두운 그림자다. 행정의 지원에 의지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종속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운동이 제도권과 항상 별개로 독립되어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적절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때론 협력하지만 때론 갈등하기도 하는 긴장관계는 우리 운동이 제도권에 일정 정도 편입되는 상황에서도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 긴장관계를 통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이 공동체운동이 대안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이 운동을 하는지, 그래서 지금의 문제가 진정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방향성을 새로이 설정해야 하는지 또는 유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다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최근 필자가 여기저기서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익명의 많은 주민들이 이웃주민들과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누구도 이들 모두를 알고 있지 못하다. 여기저기서 자기의 필요에 의해, 또는 그냥 하고 싶고 좋아서, 때론 그렇게 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한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로 이런 활동들이 이뤄지는 현장은 생활의 일상 속이다. 따라서 이런 공동체운동을 대안운동으로 보다 성숙시키고 한 걸음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원해 줄 테니 와서 이런저런 요건들을 갖추자고 하는 대신, 그곳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지원센터가, 행정이 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 줄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계속 반복하지만, 우리에게 와서 이것을 하면 무엇을 주겠다는 방식은 정말이지 공동체적이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대안운동으로서의 공동체운동을 폄하하고 훼손하는 효과만 낳는다.

 

그렇다고 마을공동체운동의 현장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제도의 내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렇게 다양한 장치와 과정을 규정하기보다는 좀더 간단한 제도를 만들었으면 한다. 즉, 간략하게 지원의 근거를 담은 ‘지원법’이나, 현 ‘지방자치법’에 지원의 근거를 규정한 조항을 삽입하는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시민사회의 자율성, 주체성, 건강성에 대한 믿음에 맡기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대안을 만들고 실현하려는 시도에 우리의 힘과 역량을 집중하자. 그것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가치로서 공동체운동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주장이 폐쇄적인 공동체, 자족적인 공동체에 기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실상 수 세기 동안 공동체에 대한 실험과 탐구를 해 온 공동체주의자들은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만의 자족적인 것이 되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성찰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즉,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사회적으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지향을 강하게 실천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공동체적 지향과 과정을 보다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공동체를 만들고 강화하는 운동도 정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는 선거로 누구를 뽑느냐, 뽑힌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매우 협소화된 정치의 모습일 뿐이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와 지향을 실현하려는 일체의 활동들을 의미한다. 결국 정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힘을 모으고 행사하는 것이다. 공동체운동이 필요로 하는 힘은 행정의 지원에 의존하기보다 이런 정치적 힘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할 때 공동체운동이 지닌 현재의 어려움도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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