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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삶는 소리
2017-05-26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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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는 소리

- 공부중독에서 공부해독으로

 

정은정

농촌농업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치킨, 라면, 떡볶이 등으로 우리의 먹고 사는 모습을 풀어내고 있다. 넘쳐나는 음식들 속에서도 더욱 어려워지기만 하는 농업농촌의 지금과 여기를 적는 일을 하고 있다. 

 

『공부중독』

엄기호·하지현 씀, 위고, 2015

 

 

11월, 스러져가는 가을을 애달파할 겨를도 없이 대통령 하야 이야기까지 오가는 대혼란의 정국이다. 비선 실세로 일컬어지는 최순실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지상파 뉴스는 물론 인터넷 포털까지 모든 언론의 머리말을 낚아채고 있다. 아마도 연말까지는 얼추 이런 뉴스가 오르락내리락대지 싶다. 하지만 그날들 중에서도 딱 하루, 이날만큼은 뉴스의 주인공이 61만여 명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들일 것이다. 대다수의 직장은 이날 수능 지각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 출근 시간도 늦춘다. 초중고 12년, 아니 그 이전 조기교육의 이름으로 20년 가깝게 공부에 올인한 삶을 많은 이들이 안쓰러워하고 위로하려 든다. 수험표를 가져오면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영화관, 화장품의 할인은 물론이고 각종 소매업에서 작은 물건이라도 사면 사은품까지 턱턱 얹어주며 그간의 고생을 치하한다. 본격 소비세대로 편입할 20대의 청년들에게 미리 침 바르는 일일 뿐 위로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저열한 전략이라고 말하기엔, 국민 모두가 공부의 괴로움에 공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국가 단위의 대단위 입시시험이 치러지는 나라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이날 단 하루로 20년 공부의 성과가 결정 나고, 희비 수준을 넘어 ‘생사’의 쌍곡선까지 그려진다. 실제로 수능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한강다리의 순찰을 더욱 강화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죽을 만큼 붙고 싶다! 다만 그 대학의 순서가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라는 것.

 

공부꾼들의 눈에 비친 ‘공부’의 현 주소

 

알아주는 공부꾼, 저자들이 원한 타이틀은 아니었겠지만 ‘뉴 파워라이터’로 꼽히는 문화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공부중독』은 공부의 최고 정점을 찍고, 또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저자들이 나눈 공부에 관한 대담집이다. 엄기호와 하지현의 ‘공부론’이라 함부로 언명을 하였다가는 부모 세대들이 지나치게 혹할 것만 같다. 어쩐지 공부중독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공부중독 시대를 탓하면서도 자신들의 노하우를 살짝 흘려주지 않을까 하는 1그램의 기대랄까. 하지만 먼저 읽어본 내가 미리 못 박아 두는 편이 낫겠다. 이 책을 읽는다고 내 아이를 쌈박하게 공부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공부중독 상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의 해법은 묘연해지고 오히려 삶은 더더욱 식민화되는 세계를 다룬 두 공부꾼의 한탄을 들으면서 함께 답답해질지도 모른다.

 

세계화(신자유주의)의 거침없는 파도에 휩쓸린 한국에서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천착해 온 문화학자 엄기호는 그간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교육의 가능성’이 아닌 ‘교육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해왔다. 공부란 사람의 성장을 전제로 한다. 성장은 낯설고 타자와의 부딪힘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학습과 경험 속에서 면역력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래도록 교육 현장 속에서 부대끼며(혹은 시달렸다고도 할 수 있다) 살아가는 저자 엄기호는 자신이 현장에서 목도한 ‘성장의 불가능성’을 착잡하게 토로하고 있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공부란 ‘세상과의 대면 속에서 열심히 성찰을 해서 나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표출되는 과정은 ‘이견’의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그런 이견을 견딜 수가 없다. 세상은 질서정연해야 하고 대응 가능한 매뉴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므로 그 어떤 오류와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가 지금의 공부의 실체다. ‘1 더하기 1은 2’의 세계여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변수들이 끼어드는 삶의 실재를 마주칠 때 오히려 그것은 삶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오래도록 교육 현장에 머물러왔던 엄기호가 겪어온 공부의 실체는 삶의 문제를 푸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삶을 허약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탈출구로 삼은 교육은 더욱 혹독한 학원화(자격증 부여) 현상에 휘말려 있을 뿐이다.

 

공동저자이자 대담을 주고받은 하지현은 정신과 전문의로, 공부로 상처 받은 청소년과 부모에 관한 풍부한 임상사례를 통해 한국의 공부중독 현상을 꼼꼼하게 진단한다. 의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이력을 바탕으로 청소년과 부모 문제에 관한 여러 저서가 출판되어 있기도 하다. 편집자가 뽑은 발문에서 하지현은 ‘현미경’을 갖다 대는 대담자의 역할을 맡았고, ‘망원경’ 역할로 빗댄 문화학자 엄기호는 넓은 시야로 현재의 교육 현장의 골격을 그려낸다. 그 골격에 하지현이 공부의 블랙홀에 빠져 몸과 영혼 모두 상처 받은 이들을 만나고 조언한 사례가 만나 『공부중독』이란 굵직한 서사를 만들어 낸다.

 

대안과 해결을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도 하지현은 거스르지 않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이 나라에서 공부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투기인 상태이고, 이 도박에서 이길 수 있는 승자는 ‘아랍 왕자’로 비유된, 판돈이 무한정 많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이다. 스스로 공부의 정점, 그리고 계급의 정점인 의사라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지라 여염의 부모들이 이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나 싶지만 그 의심도 미리 짚어 적절하게 깨트려준다. 교육을 통해 계급이동이 가능했던 시기는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로, 공부를 통한 계급이동(출세)의 신화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변호사도 의사도 망해가고 있고 그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임을, 외려 다양한 ‘팩트’를 대어가며 설명해 준다. 비록 망해가더라도 그 설국열차의 끝 칸이라도 올라타길 바라는 것이 아이 키우는 엄마의 솔직한 심정이긴 하지만.

 

공부해독으로 가는 길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공부 중’이란 말이 삶을 유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삶의 현장에 나아가지 않고, 취업과 연애(결혼)를 포함해 삶의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늘도 자신은 ‘공부 중’이란 말 뒤에 숨어버리는 현상을 짚는다. 공무원이든 기업 취업을 위한 것이든 ‘공부 중’인 상태는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말은 취준생과 공시생 현상으로 대표되지만, 결국 너는 준비가 덜 되었으니 제대로 된 노동 대가(임금)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환원된다. 즉 권력과 자본의 통치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익스큐즈 상태, ‘좀 더 준비하고 오겠습니다.’라는 말의 상징성은 한 세대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구조의 취약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는 자칫하면 꼰대의 정서로 비화될 위험, 즉 ‘세대론’으로 퉁 쳐지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너희 세대’의 허약성은 동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세대’의 허약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며, 이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면 ‘너희’와 ‘우리’가 동시대인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삶의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공부는 삶을 황폐화시키고 식민화한다. 이 현상이 ‘공부중독’이다. 책에서는 ‘픽업아티스트’라는 신종 학원의 사례를 들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는 삶의 과정마저도 사설 학원에 내맡기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는 세상에서는 배우고(學), 익히는(習) 과정의 연결이 깨어지고 오로지 배우는 데만 몰두하다, 익히는 과정은 간단하게 삭제당한다. 하지만 배움 밖의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강박으로 지금의 생을 갉아 먹는 증세가 ‘공부중독’이다. 좀 더 비싼 학원을 끊어줄 부모가 있다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두 저자는 한국에서 ‘공부’라고 착각하는 것이 사실상 좀 더 고급스런(비싼) 사교육에 대한 투자, 위계화되고 매뉴얼화된 ‘교육 중독’ 현상이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동시에 오히려 공부의 본래 의미를 적극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공부 디톡스(해독)의 방법임을 역설하고 있다. 공부중독에서 ‘공부 디톡스’로 나아가는 과정은 단 하나뿐이다. 성장하고 부대끼며, 매뉴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많은 질문 속에서 만들어지는 ‘말’의 복원. 즉 삶에 꼭 필요한 도구로서의 공부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공부꾼들의 절망 속에서 부르는 낮은 읊조림은 솔직히 힘이 없다. 그 누구도 이 폭주기관차에서 감히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의외로 저자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단 한 명이라도 이 공부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삶을 선언하기를 말이다. 가볍게 스치듯 조언하지만, 교육을 통해 망가지고 쪼개진 삶의 틈새에 복지가 상징하는 ‘사회’의 회복이 스며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삶는 소리는 곧 삶의 소리

 

저자 중 엄기호는 연합 동아리 선후배로 오랜 인연이다. 치기 어린 시절 장난삼아 ‘삶의 소리’라는 동아리 소식지를 패러디한 ‘삶는 소리’라는 지라시를 만든 적이 있다. 내용은 별거 없이 동아리 사람들의 연애질부터 온갖 기행들을 코믹하게 적고 우리끼리 돌려보며 낄낄대는 ‘잉여짓’의 끝판왕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삶의 소리는 삶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삶는 기술은 곧 삶의 기술이니까. 내가 원하는 계란 한 알, 반숙과 완숙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삶의 기술을 체득하는 순간, 그것은 곧 요리라는 거대한 세계에 발을 디뎌 놓는 일이다. 요리책에서 계란의 물성을 이론으로 배우고 지필고사에서는 100점을 받는 ‘배움(學)’의 단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나아가 실제로 내가 먹고 싶은 삶은 계란, 여기에 더해 타자가 먹고 싶어 하는 계란을 능수능란하게 삶아 내어 대접하는 것, 가스불과 모닥불에서 계란 삶기의 차이를 꿰뚫는 것, 이는 삶는 소리이자 삶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공부중독』이 삶는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작은 응원을 보태줄 수 있을 것이다.

 

 

1)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시립대를 일컫는 앞글자로 수도권의 상위 대학의 순서(성적순)이기도 하다. 속칭 이 대학 외에는 ‘서울 잡대’라 하고 지방 국립대를 포함한 지방대는 ‘지방잡대’ 혹은 ‘지잡대’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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