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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몽골, 이 작은 환대
2017-05-31 14:26:00

 

몽골, 이 작은 환대

 

글 진용주

오랫동안 편집자, 기자, 기획자 등 출판과 관련된 일을 했다. 일본과 몽골에 혼자서 또 사람들과 같이, 여행하고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지역 미술관을 소개하는 『일본 미술관 기행(가제)』을 곧 낼 예정이다.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좋아하고 아파한다. 그 사랑과 연민을 미술이나 건축, 현대사, 정치적 공정함 등의 ‘틈’으로 들여다보는 책을 계속 작업하고 싶다. 

 

 

2007년에 처음 몽골을 여행했다. 첫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그때 막 마흔이 되었을 때였는데 ‘사십 대의 모든 여름에 몽골에 오리라’ 생각했었다. 그때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저 광막한,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일체의 것들이 어우러져 풍성한 그런 모순적 풍경이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 그러니까 몽골 사람들이었다. 불쑥 찾아든 객들에게 환하게 웃음 짓고, 차와 먹을 것과 자리를 내어주고, 잠시 시간을 내 함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그이들에게 그만 홀딱 빠지고 말았다.

 

사십 대의 모든 여름에 몽골에 가리라는 결심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러 번 갔다. 2008년, 2009년, 2011년에는 두 차례, 2013년, 2015년, 2016년. 여덟 번 다녀왔고, 두 번을 빼고 모두 서몽골 쪽이었다. 그 몽골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다시 만났고, 어떤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인연이 된다면 또 만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있으니 급할 것은 없다.

 

몽골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순간들에는 기쁨과 즐거움만 있지 않다. 그 속에는 슬픔과 아쉬움의 자리도 분명하다. 이것이 결국은 사라질 문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수천 년을 이어져왔지만, 이제 세상의 다른 모든 곳에서 그러했듯 몽골에서도 이 유목과 환대의 문화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몇 집, 몇십 집, 몇백 집은 그래도 살아남을 것이나, 산업적이고, 그래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까지 의미를 갖는 ‘유목’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지켜보고 기억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몫이 되겠구나 생각한다. 한 문명이 쓸쓸히 퇴장하고 있는 것을, 그렇지만 그 문명이 가진 따스함과 부드러움과 검소함과 친절함과 유머러스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경험하는 것이, 내가 받은 환대에 대한 작은 응답일 것이다.

 

 

떠날 때를 아는 것, 유목의 핵심

 

사전에서 ‘유목민’을 찾아본다. 다음 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가축이 먹을 만한 물과 풀밭을 찾아 주기적으로 떠돌아다니며 사는 민족.” 네이버 사전도 비슷하다. “목축을 업으로 삼아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민족.” 네이버의 한자사전에는 “목축牧畜을 업業으로 삼아 수초水草를 따라 이동移動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다. ‘수초水草를 따라’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이 물가에 난 수초는 아닐 것이다. 위의 풀이에서처럼 물과 풀일 것이다. 어쨌든 ‘민족’이라는 단정보다는 ‘사람들’이라는 느슨한 규정이 더 마음에 든다.

 

유목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비중과 의미를 차지하던 많은 나라들에서 유목은 이제 사양산업과 같다. 인구 중 적은 수만이 유목에 종사할 뿐이며 그것이 산업에서, 국가의 경제지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자유로이 이동하고 가축들에게 맘껏 풀을 먹일 수 있었던 초원은 이제 누군가의 소유지가 되었다. 그것이 개인이건, 공공기관 혹은 국가이건, 소유자들은 지도에 그 땅을 경계를 가진 땅으로 기입한다. 경계에는 담과 울타리가 세워진다. 혹여 물리적인 차원의 담과 울타리가 없더라도 거기에는 ‘법’이라는, ‘(배타적) 소유권’이라는 담과 울타리가 굳건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드넓은 초원을 분할하고 종횡한다. 경계선의 가장 높은 형태인 ‘국경’은 또 어떠한가. 정치적 적대가 한 생활권이었던 초원을 동강낸다. 분단은 초원 세계에서 빈발한다. 아니, 사실 초원은 그 자체로 사라지고 있고, 위협받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초원을 잠식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사막화는 초원을 지우고 있다.

 

국가 단위에서 유목이 의미를 갖는 곳은 이제 몽골 정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서몽골은 유목민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이십 몇 만으로 추정되는 인구 중 대다수가 유목에 종사한다. 남한의 근 두 배에 달하는 면적에 서울의 한 구 인구보다 적은 수가 산다. 1제곱킬로미터에 한 사람 조금 넘는 꼴이다. 유목을 위해 광대한 배후지가 필요하다면 서몽골이야말로 그 조건에 적합하다.

 

유목민을 끊임없이 방랑하는 이들로, 제멋대로 이동하는 이들로 여기는 건 오해이다. 농부가 절기에 따라 할 일을 정하고 그에 맞춰 살듯 유목민들 역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며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삶의 방식을 따라 산다. 농사일에 순서와 단계가 있듯 유목도 마찬가지다. ‘이동’은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계절이 있지만, 크게 보면 겨울과 비-겨울 두 개의 계절이 번갈아 순환한다. 길게 잡아 3월부터 10월에 이르는 비-겨울의 계절에 유목민들은 봄집, 여름집, 가을집을 차례대로 돌며 이동한다. 그 안에서 또 몇 번이나 이동할지는 각자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다.

 

이동을 통해 가축들에게 신선하고 풍부한 물과 풀을 제공한다. 양과 염소, 야크, 낙타, 말. 이렇게 중요한 다섯 가축들에게 물과 풀은 생명이다. 그리고 유목민들에게는 저 다섯 가축이 바로 생명이다.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들이 택한 방식이 바로 ‘이동’이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수록 황폐해지고 다음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기꺼이 길을 떠난다. 계절이 순환하듯 땅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해에도 어김없이 풀들이 돋고 초록의 생명력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 단순해서 더 강력한 믿음. 그 믿음이 유목의 핵심이다.

 

 

조립식 삶, 또 하나의 삶의 방식

 

대략 3월 중순쯤이라고 해두자. 그해의 첫 번째 이동이 시작된다. 게르가 아니라 건물로 지어진 겨울집에서 겨울을 난 후 봄집으로 이사를 한다. 봄집, 여름집, 가을집은 특정한 ‘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에 사는 지역 혹은 공간 속의 장소를 말한다. 봄에 가는 초원, 여름에 가는 초원, 가을에 가는 초원이 모두 다르다. 봄집으로 이사를 나와서는 그 뒤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에서 한 달 반 사이 바투 간격을 두고 이사를 다닌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 가을집으로 옮겨 10월까지 보내고, 10월 말이 되면 겨울집으로 옮긴다.

 

몇 개의 숫자들을 적었지만, 시기도 간격도 정해진 것은 없다. 어느 정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유목민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이클과 패턴을 가지고 움직인다. 어느 가족은 한 장소에 두 달이고 석 달이고 머무르기도 한다. 심지어 비-겨울 내내 한곳에 머무르는 이들도 있다. 가축들에게 풍성한 물과 풀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모두 다른 것이다.

 

게르 하나를 해체하는 데 드는 시간은 20여 분. 이는 물리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주변 정리며 청소며 이런저런 잡일들까지 마치자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게르 한 채를 세우는 데는 해체 때보다 조금 더 걸린다. 해체 때는 부러 힘을 줘야 할 필요가 없지만, 세울 때는 당분간의 삶을 의탁할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튼튼함에는 힘을 들이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집을 하나 허물고 짓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모두 자기의 몫이 있다. 여기엔 방관자가 없다. 아이들은 덩치에 따라 자기보다 작은 아이를 돌보거나 청소를 돕거나 가벼운 몸무게를 이용해 게르 위로 올라가 이런저런 지시 사항을 따른다. 조금만 나이가 들면 어른과 똑같은 일을 제 몫으로 맡아 한다. 부족한 건 힘이 아니라 경험이다. 노인들은 힘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일의 순서에 대한 이해나 변수에 대처하는 노하우는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자기의 몫으로, 제 달란트로 참여한다. 저가 사는 집에는 자기의 수고가 더해져야 한다. 집만이 아니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생활, 삶에는 모두의 노동과 수고가 더해진다. 입시를 위해 왕이 되는 아이도 없고, 감 놔라 대추 놔라 입만 갖고 남을 부리려는 웃어른도 없다.

 

게르만이 아니라 침대도 화로도 옷장도 모두 허물었다 새로 조립한다. 부피도 적게 차지하고 힘도 덜 든다. 그러니 설령 식구가 적은 집이라도 시간이 걸릴 뿐이지 가족들의 힘으로 이사를 마칠 수 있다. 레고 블록처럼 빼고 더하고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가능한, 조립식 삶이다. 이런 방식에서는 단단한 외형의 무엇을 가지는 것이, 아니 무엇이든 많이 가지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지 모른다. 삶을 삶답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로 유지 가능한 삶. 굳이 ‘무소유’를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닮을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지만, 담아두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 유목은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가치를 전달하는 것

 

몽골의 전통적인 상속 방식은 말자(末子) 상속이다. 막내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살다 그 재산을 물려받는다. 가장 늦게 태어났으니 그만큼 더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손위 형제들은 결혼하거나 따로 분가할 때 게르와 약간의 짐승을 선물받는 것으로 상속의 권리(와 부양의 책임)에서 벗어난다.

 

2011년 가을에 서몽골로 취재 여행을 갔다. 참바가라브 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조슬랭 초원에서 가을 이사를 앞둔 카자흐족 가족 여럿을 만났다. 한 달 전에 여러 친구들과 왔었을 때는 초원 계곡 가득히 수백 채의 게르들이 서있었는데, 그새 많이 사라지고 없다. 몇 남지 않은 이들도 오늘내일 이사 준비로 분주했다. 막내아들 에르갈룸이 부인 들다쉬와 함께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르에 들렀다. 당시 78세였던 할아버지 아스한은 인근에서 유명한 독수리 사냥꾼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해 외국 잡지나 방송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할머니 에르쌀다도 75세지만 아직 정정했다. 독수리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미 10년이나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식구라고 해도 될 테다. 가축인 건 말할 것도 없고. 1살짜리인 다른 독수리는 잡아온 지 석 달 되었다고 했다. 아직 훈련 중이었다.

 

게르 안은 많이 비워져 있었다. 이미 반쯤 짐을 꾸려 놓았다. 내일은 남은 세간을 마저 싸고 게르만 해체하면 된다. 일이 적어서인지 보드카를 자꾸 권한다. 아무리 미리 일을 많이 마쳐 놓았다고 해도 내일 큰일이 남은 건 본인들인데, 객의 사정을 걱정하며 술자리를 잇는다.

 

짐승들은 가을집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낙타에 짐을 매달고 이동하던 때라면 보조를 맞출 수 있지만, 지금은 짐 이동을 트럭이 대신하기 때문에 간격을 두어야 한다. 낙타와 트럭. 말과 오토바이. 여전히 낙타와 말은 긴요하지만 확실히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렇지만 트럭과 오토바이 같은 것들의 속도가 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광막한 규모도 그렇지만 울퉁불퉁하고 장애물이 많은 초원의 외피가 속도의 힘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짐승이 얼마나 되냐 물으니 양과 염소가 1,000여 마리, 말만 해도 60여 마리라고 한다. 수가 제법 되어 놀라는 척을 했더니 은으로 된 트로피인 ‘먕간말치드’를 꺼내 보여준다. 몽골 정부가 인정한 ‘올싱사인말친’에게 주는 트로피이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갈음하면 부농일 텐데, ‘부농’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유목민’이라는 말 사이에는 거리가 조금 있을 것이다. 우리말 ‘부농’은 오로지 그 부, 재력만이 오롯하다. 결국 그게 그거라고 해도, 이 감각의 차이는 기억해두자.

 

이들 가족이 사는 게르는 만들어진 지 40년이 넘었다. 에르갈룸은 이 게르에서 태어났고, 부인을 맞았고, 세 아이를 이곳에서 낳았다. 아직도 튼튼하다. 족히 십수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 두 딸 클라라와 가우사르도 여기서 시집을 보낼 것이고, 어쩌면 막내아들 카샤한이 이 게르를 물려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가 태어나 자란 집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것. 담과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간을 굳세게 점유하고 있는 부동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우산 같은 집을 물려준다는 것. 그건 단지 ‘집 한 채’를 물려주는 재산 상속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앞 세대가 지켜왔던 생활 방식을 뒤 세대에게 가르치는, 혹은 공유하는 것이지 않을까. 유목이라는 참으로 오래된 생활양식(혹은 경제 시스템)을 지키는 방법으로서 말이다.

 

 

밤의 인사들

 

무라트와 비비굴은 서른여덟의 동갑내기 부부였다. 열다섯 살의 큰딸 굴다리아와 열두 살 먹은 하나트, 아홉 살 먹은 엘익크 형제 등 1녀 2남 세 아이를 두고 있었다. 둘은 스물네 살 때부터 같이 살았다. 50킬로미터 떨어진 이웃 마을에 살았는데 부모님 소개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로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같이 살았을 수 있지만, 그래도 첫만남에서 서로에게 반했으니 좋은 인연이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비비굴이 환하게 웃었다. 무라트네는 노모와 함께 사는 막내아들네, 중간 남동생네와 여동생네까지 전부 열아홉 식구가 네 채의 게르에 나뉘어 살고 있다. 이사 전날이라 먼저 세 채의 게르를 걷었고, 나머지 한 게르에서 모두 함께 잠을 잤다.

 

비-겨울철에 이들 식구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0시쯤에 잠자리에 든다. 해가 늦게 뜨는 겨울엔 8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취침한다. 일어나 제일 먼저 비비굴은 차를 끓이고, 무라트는 말에 안장을 얹는다. 아침은 많이 먹지 않는다. 동물의 젖과 물, 소금, 차를 넣고 끓인 수태차와 더불어 작은 빵 몇 개로 간단히 해결한다. 염소와 양 등 가축을 몰고 나가 풀을 먹이다 1시에서 2시 사이에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그 사이에 가축을 지키는 것은 개들의 몫이다. 이웃 게르도 있고 목동들도 많아서 따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은 있어도 소용이 없다. 휴대전화 전파도 잘 잡히지 않는 지역이니 텔레비전 전파가 잡힐 리 없다. 설령 잡힌대도 전기를 많이 먹는지라, 축전지에 의지해 사는 여름 생활에서는 사치일 뿐이다. 그래서 저녁 시간에 대접 받는 건 라디오다. 정보가 생활양식에 특별한 변화를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 소식을 모르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은 솔롱고스, 무지개가 뜨는 곳인 한국에서 손님이 왔으니 라디오를 잠시 밀쳐둔다. 뉴스나 드라마나 모두 거기서 거기, 재탕 삼탕뿐이니 손님보다 우선순위가 밀린다.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저이들이 우선 궁금한 것은 호칭이다. 자신들 사이의 관계를 한국말로 어떻게 부르냐고 물어본다. 여동생, 남동생, 매제 등의 말을 가르쳐주었다. ‘매제’라는 말을 너무 쉽게 따라 해서 깜짝 놀랐다. 졸지에 열린 한글 교실. 굴다리아가 딱 하나 알고 있던 한국말은 ‘오빠’였다. ‘오빠’는 이제 국제어인 것일까. 실험하고 분석하는 데 관심이 많은 굴다리아는 대학에서 생화학을 배운 뒤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꽃바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 굴다리아가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음식 이름 등 몇 가지 카자흐 말을 배운 후 마지막으로 문장 하나를 배워 인사했다. 작스 데말! 안녕히 주무세요! 평온과 안식의 시간을 기원하는 인사말이다. 밤을 함께 보내야만 할 수 있는 인사말. 서로를 친구로 대하며 건네는 악수 같은 말.

 

 

다시 와요, 밥 해줄게…

 

참바가라브 산 권역에서 내려오니 아직 여름이었다. 호수 세 개가 연달아 이어지는 대호수 권역에서는 더위와 모기의 이중고였다. 이름을 미처 묻지 못한 몽골계 두르브드족 노부부를 하르우스 호숫가에서 만났다. 호숫가라 짐승들 울타리도 갈대로 엮었다. 할아버지는 자랑거리가 많다. 프로판 가스를 연결해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도 자랑하고 싶고, 우유 등을 휘젓는 용으로 자식들이 사준 교반기도 자랑거리다.

 

문명은 조용하게 유목 속에 스며들어 있다. 게르의 디자인은 천수백 년 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아니 생활방식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초원에서 사고로 죽는 것의 첫 번째 이유는 교통사고, 두 번째는 낙뢰 시 핸드폰을 통한 감전 사고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몽골 소주를 자꾸 권한다. 몽골식 막걸리라고 할 수 있는 마유주를 증류해 만든 것이다. 설날에 쓰는, 고운 문양 들어간 치즈까지 안주로 내주면서 한사코 술을 권한다. 고역이면서 반가운, 술 환대이다.

 

하르우스 호수 옆은 하르 호수, 그 옆은 도르곤 호수이다. 하르 호수에는 하치트 할머니가 산다. 하치트 할머니네는 1년 내내 호수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다. 11월말, 거진 서울만한 이 호수가 꽝꽝 얼면 호수 안에 있는 섬으로 건너가 겨울을 나고, 3월쯤 봄 유목지로 나와서 짧은 간격으로 이동하며 비-겨울을 보낸다. 할머니는 고기 써는 것만 며느리에게 맡기고 직접 불을 피우고 야채를 썰어 야채고기수프를 끓여준다. 수저도 밥그릇도 그저 손에 든 행주로 대충 닦고는 거기에 수프를 한가득 담아준다.

 

뭉크하이르한 산 깊숙한 안쪽에는 오랑카이족인 몽크툭신 삼남매의 여름집이 있다. 몽크툭신이 마흔, 한 살짜리 남자아이의 엄마인 나간차즈랄이 스물, 점심으로 야채볶음밥을 해주었던 막내 소열마가 열여덟 살이었다. 몽크툭신과는 산 위에서 만났었는데 통역이 없으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담배 한 개피를 권했더니 맛있게 피우고 내려갔다.

 

산을 내려와 다시 몽크툭신을 만났다. 우리가 차를 세우고 식사를 청했던 곳이 그이 가족의 게르 앞이었다. 다시 만난 몽크툭신은 웃음을 터뜨렸다. 10월 20일경 산에서 내려가 저지대에서 생활한 후 6월 15일쯤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몽크툭신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언제든 밥을 해줄 테니 꼭 다시 오라고. 2013년에는 산의 다른 쪽을 가느라 들리지 못했고, 2015년에는 같은 자리에 갔는데 아직 날씨가 좋아지지 않아서인지 혹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그 가족은 올라오지 않고 게르 자욱만 동그라니 남아있었다. 보고 싶은 이들이 남긴 자리 위에서 한 밤을 보내고 왔다. 다음엔 몽트툭신에게도, 나간차즈랄에게도, 소열마에게도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혹은 ‘잘 자!’라고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초원은 친구로 가득하다

 

손님은 적일 수도 있다. 그러니 미래의 적대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환대의 전통으로 이어졌던 것일 수 있다. 또는 손님은 메신저이기도 했을 것이다. 손님은 이야기를 갖고 오는 사람이다. 이야기 중 어떤 것은 정보이고, 어떤 것은 여흥이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보상이 손님에 대한 환대로 나타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뭐든 상관없다. 지금의 이 환대를 보라. 책 말고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이 환대를 보라.

 

차, 빵, 버터, 치즈, 밥, 국수, 수프. 우리말로 간단히 줄이면 ‘밥 한 그릇’이다. 그릇도 수저도 지저분하고 게다가 이미 더러울 대로 더러운 행주로 쓱쓱 닦아 건네준다. 음식을 만들고 건네주는 손도 매한가지다. 이곳에서 ‘위생 관념’은 사전에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관계였다면 불편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그저 밥 한 그릇이 아니라 환대의 마음이자 태도이고 또 몸에 익은 실천인 걸 안다. 지나다 불쑥 찾아온 손님까지 기꺼이 맞아주는 따듯한 영접. 진심으로 반가이, 온기로 맞아주는 마음. 환대는 조건이 없는 환영이다. 일부러 초대한 이를 대접하는 것이야 뭐가 새롭겠는가. 불쑥 들어선 이를 손님으로 맞아주는 것. 차, 빵, 버터, 치즈, 밥, 국수, 수프…. 사정이 되는 대로 내어놓는 그 밥 한 그릇 같은 마음들이 눈부시다.

 

환대 받아본 이는 그 반가움을, 고마움을, 기쁨을 마음과 몸에 새긴다. 누군가를 환대할 수 있는 태도를 그렇게 배운다. 이런 생각이 과장일지도 모른다. 사람 귀한 땅에 문득 찾아온 이방인을 살갑게 대하는, 그저 약간의 친절일 뿐인 걸 거창하게 과장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재고 따지는 셈법을 내려놓는 걸 여기에서 배운다. 문과 담에 갇혀 있는 정주민의 상상력이 여기서는 통용되지 않음을 배운다. 불쑥 찾아온 이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배운다. 그것은 나/우리도 손님이라는 생각 때문인 게 아닐까. 이 세상에, 이 광활한 초원에 우리도 잠시 초대된 것일 뿐이라는 생각.

 

손님으로 온 세상이다. 초대받아 온 삶이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인연들 역시 초대받아 온 것이 아닌가. 손님으로 오는 인연들이지 않은가. 나를 손님의 자리에 두고 나니, 다른 이들에게도 손님의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쉽지 않다. 한 번 배웠다고, 한 번 감동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나는 익혔다. 그것은 1:1의 관계가 아니다. 에르갈룸과 무라트와 몽크툭신과 하치트 할머니. 그리운 이름들이고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이지만, 마음은 꼭 그렇게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호의와 선의에는 문패가 없다. 방향도 없다. 다른 이들에게 향해도 된다. 무수한 난반사들이 일어난다. 에르갈룸과 무라트와 몽크툭신과 하치트 할머니를 잠시 서로 손님이자 친구로 만난 것이듯이, 또 다른 에르갈룸과 무라트와 몽크툭신과 하치트 할머니를 만날 것이다. 초원은,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다는 이 믿음. 다음 여름에도, 또 이곳에서의 친구들과 함께, 저곳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것을 내 작은 환대의 첫걸음으로 삼는다.

 

 

 

* 『모심과 살림』 8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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