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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1세기 농촌의 삶과 앎
2017-09-07 11:14:00

 

21세기 농촌의 삶과 앎

 

 

박영선

마을학회 일소공도의 공동운영위원장이고 사진가이다. 한국 예술가들에게서 근대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연구 중이다.

twoframe@naver.com

 

 

 

 

 

문명사적 실마리

 

21세기는 인류 문명의 축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대전환기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그 새로운 곳은 과연 어디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떠나와서 어디로 도착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인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인류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논쟁,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기술 시대에 대한 ‘새’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 온갖 ‘새’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왜, 어떻게, 옮겨가는 중인지를 잘 알 수는 없다. 사회연결망은 고립된 개인들이 날마다 새로운 불안의 끈으로 연결되어 출렁인다.

 

문명의 축의 이동, 인류의 진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스마트시대의 도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것들은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를 기술혁신을 통해 재강화하고 자본과 상품의 도시 공간을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과 선진 제국이 발명한 허구가 아닐까? 이것은 신지식과 신기술의 모습으로 위장한 상품의 거창한 광고 문구에 불과하지 않을까? 기술혁명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과 그로 인해 급변하는 현실은 어쩌면 소수 자본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너무 빠르고 격렬한 문명의 전환을 이미 겪어왔다. 한국의 근대화는 화학적 변화라기보다 갑작스런 물리적 단절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수천수만 년간 이 땅에서 이어져왔을 농경 문명과 문화를 갑자기 버리고 ‘근대’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문명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대혼란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긴 농경 문명의 전통과 농경적인 역사의 시간과 기억을 스스로 부정하고 폄하하고 망각해왔다. 진정한 전통도 진정한 근대도 없는 혼란의 와중에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근대’를 수용해야 하는 겹겹의 문명적 곤경에 우리는 처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곤경이 문명사라는 큰 규모에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문명들이 충돌하고 교류하며 오래된 것들이 새롭게 반복되고 순환하는 거시적 과정을 살피면서, 이제 다시 사람의 위치, 그 삶과 앎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가를 질문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도시, 농農과 마을

 

자본주의 문명은 강대국, 대도시, 산업, 전문가 중심의 개발과 발전 논리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도덕과 비윤리적 태도도 때때로 용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소국, 지방, 농어촌, 마을, 보통사람은 일방적으로 무시되고 희생되었다. 강자와 약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사이의 나눔과 차별이 이윤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당연시되었다. 자본주의적 이분법에 바탕한 이 불균형한 발전의 논리는 심각한 폐해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상품으로 가득 찬 대도시에 뿔뿔이 흩어져, 신상품을 구매할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하는 이기적인 소비자가 되어갔다. 자연과 환경은 자본주의적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제한으로 개발되고 파괴되었다. 이제 농촌과 도시, 지역과 국가를 가릴 것 없이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 고에너지 생활로 인한 대기오염, 폭력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학자들은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결정적으로 파괴될 것이며 인류라는 종은 절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학자들의 경고가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그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이 초래한 이 중대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분리와 효율, 속도에 몰두함으로써 초래된 위기를 성찰하며 통합, 다양성, 연결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실험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문명에서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무시되어온 농촌 공동체, 마을에서의 삶과 잊힌 전통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변두리’로 치부되었던 농어산촌, 지방, 시골, 마을이 지금의 문명적 위기를 해결하고 21세기의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 구현할 ‘살아있는 장場’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고 작은 것들,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평등하고 생태적인 공존과 통합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노력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주제들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오래된 농경 문명의 기억을 되불러낸다. ‘농農’이라는 오래된 글자는 우리에게 열린 공부, 온전한 삶이 무엇인지 새롭게 기억하도록 이끈다. 농農은 ‘때맞추어辰 밭田을 갈며 노래曲하는 삶’과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윤리성을 그려내고 있다. 문명의 축이 바뀌는 21세기에 요청되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가치가 ‘농農’이라는 이 오래된 한 개의 글자 안에 움트고 있다. 이 하나의 문자를 통해, 21세기에 요청되는 가치가 생생하게 자라는 삶의 터전이자 장소로서 ‘농의 마을農村’을 다시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문명적 상상을 통해, 우리는 ‘농의 일農事’을 이윤을 생산하기 위한 ‘1차 산업 노동’, 즉 농업으로 간주해온 근대 자본주의적 분류법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농사를 사람다운 삶의 바탕을 만드는 살아있는 공부의 총체적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실마리, 농촌에서 공부하기

 

지난 세기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보다 잘살기 위해 도시로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대도시는 발 디딜 틈 없어졌고 농촌은 텅 비어갔다. 농촌은 도시인들의 소비재를 생산하는 고달프고 썰렁한 1차 산업노동의 현장이 되어갔다. 이러한 몰림과 버림으로 인해 대도시 역시 발 딛고 살기 고달픈 일종의 지옥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도시에서의 공부는 생명과 지식의 관계를 단절시킨 근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폭력적 논리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이제 농촌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만들어갈 큰 공부를 하는 살아있는 학교로 상상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농촌은 오랫동안 농의 일이 벌어져왔던 터전이기 때문이다. 농의 일, 농사에서 삶과 앎은 하나다. 농촌의 공부는 일하는 사람 따로 공부하는 사람 따로 있는 전문성과 우열나누기에 바탕한 모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미 연결되어 있음을 몸으로 익히고 누리며 살아가는 둥근 공부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본주의 문명이 초래한 이 곤경을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농촌은 도시인이 소비할 먹거리를 생산하는 ‘1차 산업 현장’이 아니라 오래된 문명과 새로운 문명이 만나는 깊고 넓은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비록 자본의 논리에 시달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지만, 농촌의 땅 속에는 농경 공동체의 오랜 기억과 역사의 파편들이 묻혀 있고, 이름 모를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흙이 아직 남아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흙의 생명력을 느끼며 일구던 손과 마음의 삶을 다시 기억해내고 새로운 문명적 가치를 상상할 수 있다. 근현대적 시민 평등과 절제와 부조의 생태적 공존 가치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전통을 다양한 구체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다. 21세기가 요청하는 공생과 통합의 삶을 공부할 최적의 환경이 농사짓는 마을, 바로 농촌農村이다. 분명 농촌에서의 삶과 공부는, 도시에서의 삶과 공부가 어떻게 조정되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제 농촌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건들을 때맞추어 기록하며, 마을의 삶과 앎을 아우르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다. 공부의 과정과 결실을 잘 정리해서 여러 이름 모를 마을들과 나눌 때다. 마을마다 쌓아온 특수한 경험과 조건을 나누고 배워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지속 가능한 보편 경험으로 넓혀나갈 때다. 자본주의가 초래한 닫힌 마을, 닫힌 지역들의 고립과 문명적 위기를 넘어 21세기의 열린 마을, 열린 지역들의 살아있는 연대와 새로운 삶을 농촌에서 모색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21세기적 현실과 한동안 망각된 농農의 가치를 다시 연결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간의 단절되고 편향된 관계를 넘어 함께 공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진 앎을 여투고 짜고 퍼뜨려서 농촌과 도시, 모든 마을의 삶으로 되돌려야 한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 최근 충남 홍동면에서는 일과 공부가 하나인 21세기 ‘농農’의 삶과 앎을 위하여 ‘마을학회 일소공도’를 창립하였다. ‘마을의 학회學會’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오래된 앎을 나누고 새로운 앎에 이르기 위해 마을에서 짜임새 있게 운영되는 ‘공부모임學會’이다. 마을학회 일소공도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때맞춰 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삶과 앎의 열린 밭田을 일구려 한다. 이 같은 되살림과 되돌림의 과정을 통해 마을의 공공성과 자치력을 북돋워갈 수 있을 것이다.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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