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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자본주의 너머 탈성장사회로 가는 길
2017-10-23 16:47:00

 

자본주의 너머 탈성장사회로 가는 길

 

홍덕화

서울대 SSK 고령사회연구단 전임연구원. 핵산업, 에너지운동 등을 연구하고 있고, 최근에는 탈성장과 도시, 고령화와 생명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deokhwa.hong@gmail.com

 

『포스트 자본주의: 과학·인간·사회의 미래』

히로이 요시노리 씀, 박제이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정권 교체, 시대 교체, 적폐 청산… 촛불시위를 통해 분출된 변화의 열망이 다양한 구호로 표출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 청년배당, 육아휴직 3년, 탈핵 등 그동안 이슈화가 잘 되지 않던 사안들도 대선 공약으로 언급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거대한 변화의 기로 위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변화의 나침반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특히 탈성장의 시각에서 볼 때, 변화의 열망이 단지 ‘더 나은 성장’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국민성장이든 공정성장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표현이든 지금 제시되고 있는 비전은 결국 ‘더 나은 성장’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차가 해소된 공정한 사회가 어떻게 환경적으로 지탱가능할 것인지, 질문을 한번 더 던져야 하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청산해야 할 과거의 폐해가 산적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나아간 질문일지 모르지만 피해갈 수도 없는 질문이다. 히로이 요시노리의 『포스트 자본주의: 과학·인간·사회의 미래』(이하 『포스트 자본주의』)를 눈여겨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장과 성숙의 갈림길에서 선 자본주의

 

먼저 시대 진단을 살펴보자. 『포스트 자본주의』에서는 인류 역사가 에너지 이용 방식과 자연 착취 방식에 따라 확대·성장과 정체화를 반복해왔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공업화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한계점, 다시 말해 새로운 물질적 확대·성장의 길과 아직 가보지 못한 성숙·정체의 길 앞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흥미로운 점은 『포스트 자본주의』가 성장의 생태적 한계를 지적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성장의 한계가 어떻게 복지정책, 고령화 같은 문제들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이다.

 

우선 서구사회에서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복지국가를 지탱해주던 사회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서 추가 이윤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일자리 축소의 딜레마를 복지국가는 경제성장을 통해 풀었다. 즉 생산성 상승의 속도보다 경제성장의 속도를 빠르게 함으로써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복지국가는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연결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다. 복지국가의 이상은 일자리를 보장함으로써 대다수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 가까웠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속도가 둔화되면서 자본주의적 기술혁신으로 인한 일자리의 감소를 대체할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공적 부조, 사회보험, 완전 고용의 형태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온 복지국가의 기반도 허물어지고 있다. 복지국가는 한때 살 만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드는 듯했으나, 이제 새로운 고도성장의 길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복지 모델을 찾아야 하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에도 주목한다. 20세기가 급격한 인구 증가의 세기였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인구의 정체·감소기, 인구 고령화의 세기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인구 감소는 탈성장의 시각에서 심각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정체화로 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고령화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따라서 고령화로 촉발될 수 있는 사회위기를 정체화의 계기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포스트 자본주의』는 과학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정체·성숙사회로 가는 이행의 징후로 해석하고 있다. 히로이 요시노리에 따르면, 인류는 정체기에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발전시켜왔다. 농업사회가 정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지에서 불교, 유교, 구약사상, 그리스철학 등 보편 사상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구 윤리’의 출현은 변화의 씨앗이 싹트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사고를 우주로 확장해서 생태적 한계를 극복하는 길 이외에 자연·생명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통해 지구 안에서 지역적으로 ‘겸허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전환의 키워드 : 생태, 지역, 복지, 시간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로부터 벗어난 성숙·정체사회로 가는 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포스트 자본주의』가 체계적인 전환의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는 있다.

 

우선 정체화의 기본 방향은 커뮤니티 경제1)에 기초한 녹색복지국가이다. 눈여겨볼 것은 커뮤니티 경제가 녹색복지국가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포스트 자본주의』는 호혜성에 입각한 커뮤니티와 재분배 원리를 기초로 한 국가, 교환이 지배하는 시장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다만 자본주의가 커뮤니티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시장으로 확장을 추구한다면 정체화는 지역으로 착륙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성숙·정체사회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사회도, 무분별하게 지구적으로 확장된 사회도 아니다. 시장경제를 커뮤니티와 자연의 테두리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되 필요에 따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제가 실현가능한 정체사회의 모습에 가깝다. 예컨대 먹거리나 돌봄서비스는 가능한 지역 안에서 생산·소비하지만 공업제품의 생산과 소비는 더 넓은 지역 단위에서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지식과 정보는 지구적 차원에서 생산, 유통, 소비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전환의 출발점인 재지역화는 단절된 지역화가 아닌 다차원적인 교류에 기초한 지역화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생태주의의 원칙을 떠올려도 좋을 듯싶다.

 

한편 생태적 복지 모델은 경제성장과 노동시간 연장의 덫으로부터 벗어난다.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는 기존의 복지 모델과 달리 생산성 향상을 임금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적극적 계기로 삼는다. 이를 통해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 ‘시간 그 자체를 향유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고자 한다. 따라서 정체화를 위해서는 “시간 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시간 환경 정책은 느린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 환경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1차적으로 시간의 단축이 에너지·자원 소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이 통상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더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는 자원을 더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동사회는 단축된 시간을 또 다른 노동을 위해 사용할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가족, 공동체와 삶을 나눌 여유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계기로 바꾸는 것이 바로 시간 환경 정책이다. 이와 같은 시간 환경 정책은 복지 정책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평등지향적일수록, 사회적 안전망이 탄탄하게 갖춰질수록 경제성장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 환경 정책은 ‘다른 복지 모델’을 구성하는 기본 원칙에 가깝다. 시간 환경 정책에 기초한 생태적 복지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탈성장사회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커뮤니티 경제의 활성화와 시간 환경 정책의 실시는 고령사회를 넘어 안정된 정체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던 곳에서 행복하게 늙고 삶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이웃이 필요하고 노인 돌봄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다케다 하루히토가 『탈성장신화』에서 지적하듯이, 일하는 사람이 아동과 노인 등 일하지 않는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은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고령화는 “자녀를 키우는 사회”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한다.2) 즉 사회 전체적으로 자녀 양육에 쓰던 시간과 돈을 노인 돌봄을 위해 써야 한다. 문제는 노인 부양 사회는 자녀 양육 사회에 비해 가족 돌봄의 끈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출산으로 줄어든 자녀 양육 부담을 고령화로 늘어난 노인 돌봄을 위한 자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사회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포스트 자본주의』가 제안하는 방안은 “고임금-고부담 사회”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커뮤니티 차원에서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돌봄노동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로서 돌봄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이다. 여기에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늘어난 자율시간을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 안에서 쓸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 추가된다. 지역 차원에서 비시장적인 돌봄 영역을 확대해야 화폐적 부담을 줄이면서 더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족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부터 돌봄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돌봄체계를 재구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재분배 구조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탈성장의 정치화

 

사실 커뮤니티 경제 자체가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시간 환경 정책으로 이름 붙인 노동시간의 문제도 많은 사람들이 천착해온 문제다. 『포스트 자본주의』가 흥미롭다면 다소 익숙한 탈성장 담론을 복지정책이나 고령화와 연결시켜 성숙·정체사회로의 전망 속에 배치한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인간의 사회적·생태적 관계가 파괴되면서 물질적 풍요가 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락함도 주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문화적 탈성장주의가 제도적 조건과 대면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포스트 자본주의』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읽어야 더 흥미롭다. 예컨대, 커뮤니티 경제는 낯설지 않지만 커뮤니티 경제와 결합된 노인 돌봄체계는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제법 역사가 오래된 원주 노인생활협동조합이나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한살림어르신방문 돌봄센터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사례도 드물다. 하지만 노인 돌봄체계는 먹거리와 육아에서 시작해서 일자리로 확장된 사회적경제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갖추기 위해 피해갈 수 없는 영역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경제는 노인일자리나 복지서비스 제공을 넘어서 어떻게 성숙·정체사회로 가는 길을 고령친화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더불어 커뮤니티 경제와 녹색복지국가의 결합은 지역, 도시, 국가의 관계를 되묻는다. 그리고 닫힌 지역화의 문제를 제기한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지적하듯이, 자율적이지만 파편화된 지역은 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권력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3) 그렇다면 열린 지역화, 달리 이야기하자면 마을과 지역, 도시와 국가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서울시 등 몇몇 도시들이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y로의 탈바꿈을 위해 보행자 중심의 거리, 녹지 공간의 확충 등을 추진하는 것은 커뮤니티에 기초한 돌봄체계, 국가적 차원의 복지 재분배와 연결될 수 있을까? 아니라면 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는 성숙·정체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포스트 자본주의』는 영감을 제공하는 만큼 질문을 던진다.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확대·성장에서 성숙·정체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방안에 관한 것인데, 아쉽게도 탈성장의 정치화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21세기에 무한한 확대·성장과 성숙·정체화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 전망하지만 어떻게 대결이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성숙·정체화의 대략적인 방향을 보여줄 뿐이다. 이로 인해 성숙·정체화의 전망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류 문명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역, 도시, 국가, 나아가 지구적 차원 간의 경합적 관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절충적이고 낙관적이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커뮤니티 경제에 기초한 녹색복지국가의 구체적 사례로 서유럽의 몇몇 도시가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시 자본주의 안에서의 탈성장의 가능성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몇몇 예외 사례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절대적 탈동조화decoupling될 수 있을까? 아마도 답변은 부정적일 텐데,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혹시 하비가 비판하는 대로, “작은 지역 차원의 활동이 마법처럼 조화를 이루어 지방이나 지구적 차원에서 유효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에 기대어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포스트 자본주의』가 비켜간 가장 어려운 문제는 탈성장의 정치화 전략이다. 탈성장 담론을 제도적 차원으로 한걸음 끌어내렸으나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정치 이념일 수 있으나 현실 정치세력으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탈성장주의의 문제가 다시 등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커뮤니티 경제에 기초한 녹색복지국가를 나침반 삼아 걸으며 찾는 수밖에! 탈성장의 비전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노동시간 단축, 육아휴직, 기본소득, 최저임금 등 지금 논의되고 있는 쟁점들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뮤니티 경제를 규정하는 커뮤니티 밖의 정치로 탈성장의 정치가 확산될 때 성숙·정체화의 길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1) 커뮤니티 경제는 지역 단위의 사회적경제라 할 수 있다.

2) ‌일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크게 늘었지만 0~14세 인구의 비율이 줄면서 전체 인구에서 15~64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 폭은 지난 수십 년간 10% 내외였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취업자 비율의 변화 폭은 더 적었다. 한국은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전반적인 변화의 추세는 유사한 점이 많다. 다케다 하루히토, 『탈성장신화: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일본 경제의 장래』, 여인만 옮김, 해남, 2016, 5장.

3) 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장.

 

 

* 『모심과 살림』 8.5호(2017 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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