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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탈핵국가 선언의 의미와 탈핵운동의 방향
2017-10-23 16:10:00

 

탈핵국가 선언의 의미와 탈핵운동의 방향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정의로운 탈핵 에너지전환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연구하고 있다.

hanclk@hanmail.net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국가 선언

 

한국 산업화를 뒷받침했다고 평가되는 고리 1호기가 지난 6월 19일에 40년의 기계생機械生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면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연설하였다. 이 연설을 “탈핵 국가” 선언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선언이 갑작스럽지는 않다. 대선 기간 동안 그는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여 “40년 뒤 원전 제로”를 약속하였다.1) 사실 그 외에도 여러 후보들이 적극성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한 방향의 공약을 제시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까지도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의 원칙적 불허 및 원전의 점진적 축소”를 공약하였다.2)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탈핵 공약을 제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2060년 탈핵을 약속한 바 있으며, 2015년에는 탈핵을 민주당 당론으로 정리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탈핵국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탈핵을 주장해온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핵발전을 우려하던 많은 국민들은 이 역사적인 선언을 크게 환영하였다. ‘촛불항쟁’을 거치고 치른 대선의 승자에게 시민들이 기대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가 ‘탈핵’ 정책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원자력 산업계와 관련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보수 정치인과 언론들은 이 탈핵 선언에 크게 반발했으며 심지어 ‘제왕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결코 쉽지 않는 향후 과정을 예고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국가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글을 통해 새 정부 탈핵 국가 선언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들을 살펴보면서, 이후 탈핵운동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탈핵국가 선언의 내용과 의미

 

이번 탈핵 국가 선언은 국내외의 두 가지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나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이다. 이 사고 이전까지 일본은 원자력 안전 신화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거대한 핵재앙이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고로 “총 1,368명이 사망했고, 피해복구 비용이 총 220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였다.

 

한편 많은 이들이 세월호 사고의 비극을 접하고 난 뒤, 곧바로 핵발전소를 쳐다보았다. 국민들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그리고 정권의 안위를 우선시해왔던 지금까지의 관행들이 세월호 비극을 낳았다면, 핵발전소에서 그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굳은 약속”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공약했다. 그리고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라고 선언했다. 세월호 사고의 교훈이 적절히 적용된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이런 사건들이 국가 에너지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단지 이 두 사건의 충격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와 사회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기에 개발도상국 시기의 한국은 “낮은 가격과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값싼 발전단가를 최고로 여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에 두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고려도 경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제수준이 달라졌고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따라서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확고한 사회적 합의로 자리 잡았”다고 단언하였다. 여기에는 핵발전소가 밀집된 부산·울산·경주 지역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하며,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가) 너무 치명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는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 그 우려를 부채질했다. “고리원전은 반경 30km 안에 부산 248만 명, 울산 103만 명, 경남 29만 명 등 총 38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월성 원전도 130만 명으로 2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안전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 탈핵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은 자연스러우며 또한 합리적이다.

 

이 연설에서 선언한 대로 ‘탈핵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연설문에서 탈핵 정책은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라고 정의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며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 가동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또한 현재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건설에 들어간 신고리 5, 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것을 약속했다.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고 노후된 것은 폐쇄한다면, 전력 공급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는 전력 생산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약 30%에서 2030년까지 18%로 낮추고, 대신 액화천연가스LNG의 비중을 현재 약 20%에서 37%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현재 5%에서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선언에서도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비롯한 깨끗하고 안전한 청정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핵발전을 대신하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 세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도 효율적으로 바꾸”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편하여 산업부분에서의 전력 과소비를 방지”하겠다고 공언한 데에는 단순히 에너지원原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전력 소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한편 이번 선언은 탈핵만이 아니라 탈석탄 방향도 함께 밝히고 있다. 기후변화와 파리협정 그리고 미세먼지 문제 등과 관련하여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노후된 석탄화력발전소 10기에 대한 폐쇄 조치도 임기 내에 완료”하겠다고 공언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을 위해 탈핵과 탈석탄 로드맵을 빠른 시일 안에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탈핵 정책 그리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둘러싼 논쟁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지금껏 정부에서 나온 어떤 내용보다 혁신적이다.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성장을 외쳤지만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임기 막판에는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승인해주었다. 그 선례에 비춰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기존 에너지정책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에 가깝다. 그는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은 에너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탈핵운동과 시민사회 진영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겠지만, 지금까지 에너지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던 한전과 원자력계 등에게는 실망스럽고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연설문 곳곳에서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정치적 수사가 발견된다. “지금까지 고리 1호기가 가동되는 동안 많은 분들의 땀과 노력”을 잊지 않겠다는 예의를 보여준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3)

 

그러나 단지 예의바른 수사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연설문에는 대선 공약으로부터의 명백한 후퇴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의 백지화를 공약했고, 이는 언론을 통해서 공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대책위들과 맺은 협약에서 재차 강조되었다. 하지만 해당 연설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을 “사회적 합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운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주민들과 약속했던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신한울) 1, 2호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사실상 건설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미 공사에 들어갔거나(신고리 5, 6호기), 거의 완공에 다가서고 있다(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는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전과 후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6월 19일의 연설 이전, 이미 원자력계는 새 정부의 탈핵 공약 이행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230명의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은 탈핵 공약 이행을 “소수의 비전문가가 속전속결하는 제왕적 조치”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정책 패러다임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국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핵발전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과도한 불안감으로 원자력계에 징벌적 조치를 가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탈핵 정책은 “원자력계 모두의 사기와 공든 탑을 허물고 나아가 국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원자력 산업에서 국가를 위하여 매진하는 다수의 의견을 경청”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은 잘못된 정보와 과도한 불안감에 의존하여 비전문가들이 수립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 경제발전, 고급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복지”에 기여해온 자신들, 즉 원자력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4)

 

문재인 대통령은 원자력계 교수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고리 5, 6호기의 경우 백지화가 아닌 사회적 합의 대상으로 연설문에 등장한 것을 보더라도 원자력계의 반발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일시 중지하고 ‘사회적 공론화’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국무조정실장은 종합공정율이 28%이며 매몰비용이 2조 6천억 원에 달하는 점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들어, “5·6호기 건설 공사를 공약 그대로 중단하기보다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5) 정부는 공론화 방법으로 중립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의 주관하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배심원들이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공론조사’는 3개월 안에 끝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신고리 5, 6호기 사회적 공론화를 둘러싼 논쟁은 찬핵-탈핵 정치의 최전선을 형성하게 되었다.

 

원자력계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이 민생부담 증가,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국부 유출, 에너지 안보 위기 등을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즉, 값싼 전원電源인 핵발전을 포기하면 전기요금이 상승하여 국민들과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며, 계획된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을 경우에 전력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값비싼 LNG 발전에 대한 의존 확대로 더 많은 연료 구입 비용이 해외로 유출되고 에너지 안보에 취약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핵 진영은 현재 한국의 핵발전 비용은 폐로 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 사고시 피해복구 및 보상 비용 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렴하게 보이는 것일 뿐, 진짜 발전단가는 지금보다 훨씬 비싸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의 값싼 전력요금은 미래세대에게 그리고 현세대의 취약한 계층과 지역주민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으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LNG 발전의 경우도 과도기를 거쳐 빠른 시일 안에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면 보조적인 전원으로 남게 되어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이나 비용 증가 문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논쟁에서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는 시민배심원들이 판단할 몫으로 남겨져 있는 셈이다.

 

또한 원자력계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는 탈핵국가 선언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쟁점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신고리 5, 6호기의 공론화 작업은 성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신고리 5, 6호기만을 별도로 공론화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반핵운동 진영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즉, 핵발전 정책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 이외에도 기왕에 진행되고 있는 ‘국책사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까지 부가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공론화의 쟁점이 너무 복잡하며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결론의 해석을 두고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즉, 만약 공론화의 결과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진행으로 나왔을 때, 이것을 탈핵정책에 대한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이후 구성될 공론화위원회가 충분히 검토해야 할 사항이며, 반핵운동 진영에서도 숙고가 필요한 일이다.

 

한편 신고리 5, 6호기의 공론화에 대해 원자력계가 “통탄을 금치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데에는 ‘비전문가’인 시민들을 참여시키고 의사결정권을 주는 데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자신들을 배제하고 “비전문가이면서 향후 책임도 질 수 없는 소수의 배심원단6)”에게 결정권을 맡긴다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전문가들이 독점해온 에너지정책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해당 전문가들은 인구 밀집 지역에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하여 위험을 가중시키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해왔다. 그들은 고리 핵발전소에서 노심용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전원 상실 사고를 은폐했으며 원자력연구소에서 불법으로 방사성 폐기물을 방출·폐기한 사실도 숨겨왔다. 게다가 여러 원자력 연구자들은 원자력 관련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도 실패했다. 전문가 집단이라면 이해관계를 떠나 최고의 지식과 객관적인 태도로 최선의 결정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 에너지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 중심의 대규모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선호하고 그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환경·보건·사회적 부정의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가치 절하하는 편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문가들에게 계속 특권적 권위를 부여할 이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원자력계는 민주주의, 특히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개인들의 삶 그리고 집합적인 사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관련된 시민들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그 결정을 전문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겨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문가들에게 기대하는 결정에 뒤지지 않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숙의민주주의’와 관련된 많은 실험들이 그렇다. 북유럽 지역에서 발전된 ‘합의회의’와 같은 여러 숙의적 시민참여 모델들이 에너지, 교통, 생명공학과 같은 복잡하고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사안을 다루는 데 활용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실험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2004년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개최한 ‘전력 정책의 미래에 관한 시민 합의회의’ 경우, 시민 패널들은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 패널들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청취하고 상호 토론한 후에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하였다. 시민 패널의 대다수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회의를 후원했던 원자력문화재단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토론 진행 과정을 지켜봤기에 시민 패널의 합리적인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에 기초해보면,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두고 비전문가들의 무책임한 결정이 될 것이라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비난은 무지의 소산이거나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되는 데 대한 반발로 여겨질 뿐이다. 오히려 이번 공론화 과정을 시민과 전문가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강한 민주주의와 좋은 전문성”의 결합이 필요하다.

 

 

탈핵운동의 전망과 과제

 

당분간 탈핵운동 진영의 대다수 역량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활동에 대응하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 정책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회적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핵발전의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한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배심원단을 설득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공론화 과정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설계하고 추진할 책임을 지는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후 어떤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지, 그리고 전문가들이 어떤 내용으로 시민 패널들에게 설명하게 될지에 대해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결국 이런 ‘싸움’은 핵발전의 진짜 비용, 대안(LNG와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전력요금의 인상 가능성과 폭, 재생에너지 확대 가능성, 안정적 전력수급의 가능성 등의 세부 쟁점을 두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덧붙여 공사가 진행 중인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둘러싼 쟁점들-예를 들어, 매몰 비용과 지역경제에 대한 영향 등-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하라고 언급했는데, 자칫 공론화에서 다룰 쟁점이 기술적(위험성) 측면, 그리고 경제적 측면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도 핵발전이 미래세대 그리고 특정 지역 및 계층에게 전가하고 있는 위험과 비용에 관한 사회·윤리적 측면과, 한 발전단지에 다수의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소위 ‘다수호기’ 문제에 대한 평가 없이 건설 승인이 이루어졌다는 법적 쟁점까지 폭넓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공론화 과정과 별개로, 정부는 8차 전력수급계획과 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에서 탈핵·탈석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역 반핵단체를 중심으로 반핵운동 진영의 일부는 신고리 5, 6호기 외에도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던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에 대한 공론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 저감을 위한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지도 논의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핵발전 및 석탄화력발전 중심의 기존 전력 시스템을 벗어나는 장기적인 에너지전환에 관한 사회적 토론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당장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너머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1) “19대 대선 뒤 신규원전 건설은 중단될 듯”, <한겨례신문> 2017. 5. 3

2) 위 기사.

3) 이상에서 필요한 언급이 없는 인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6월 19일 연설문의 일부임.

4) 이‌ 6월 1일에 발표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의 성명서에서 인용함.

5) 국무조정실, 2017. 6. 27

6)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2017. 7. 5

 

 

  

모심과 살림 9호(2017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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