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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탈성장 사회의 구상 - 자본주의, 사회주의, 생태학의 크로스오버
2017-01-17 14:43:00

* 『모심과 살림』 4호(2014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탈성장 사회의 구상

- 자본주의, 사회주의, 생태학의 크로스오버

 

일본 <아젠다 프로젝트>1)에서 발간하는 사회문제를 생각하는 계간지 『아젠다AGENDA - 미래를 위한 과제』 제41호(2013년 여름)에 실린 글을 번역·게재함.

 

글 히로이 요시노리(広井良典, 치바대학 교수)

번역 이미란(한살림성남용인 활동가)

 

 

 

들어가며

 

‘아베노믹스’나 ‘리플레이션론’이 시끄럽다. 1)2)

 

이러한 주장은 여전히 기존과 같은 고도성장의 연장선상만으로 ‘풍요로움’을 기대하거나, 향후 사회를 구상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변함없이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세대의 최후의 소동은 아닐까?

 

필자는 1980년대와 2001년을 합해 3년을 미국에서 지냈으나, 그곳을 떠올리면 ‘생활의 풍요로움’은 없었다. 생활 수준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거리 중심부는 황폐하고, 게다가 완전한 자동차 사회인 까닭에 걸어서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환경에 대한 의식은 더없이 낮고,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가 사회 기조를 이루고 있다. ‘총銃 사회’로 상징되듯이, 공격성과 ‘힘’에의 의존이 항상 잠재해 있다.

 

따라서 일본에 아직 ‘아메리카 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깊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미국은 ‘강한 성장과 확대 지향, 작은정부(저복지, 저부담)라는 특징을 가진 나라이다. 오히려 사회보장과 환경에 축을 두고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또는 ‘녹색 복지국가, 복지사회’로 불리는 성숙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유럽 쪽에서 훨씬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다.

 

한편 일본 사회 전반을 돌아보면 고도성장기가 끝난 뒤에도 역대 정권은, 90년대에는 ‘공공사업’으로, 2000년대 고이즈미 정권에서는 ‘규제 완화’를 통해 경기 회복을 꾀해 왔다. 그것이 모두 기능하지 않자 이번에는 통화량을 늘린다는 위험한 방법까지 포함한 성장을 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20년 동안 막대한 재정적자를 누적시켜 그것을 젊은 세대와 차세대에게 짐 지워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묻고 싶다. ‘이런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게 되어 있는가?’라고.

 

우리는 이제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존과 같은 확대·성장의 연장선상에서가 아닌, 오히려 그것과는 다른 발상을 통해 사람들이 진심으로 풍요롭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고 그 원리와 정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도쿄 지하철 안에서 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고 피곤해 보이고,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닫혀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건이나 정보가 이렇게 넘쳐나는 현재 일본 사회에 사회의 기어를 더욱 더 높이고 스피드를 가속시켜 확대·성장을 꾀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풍요로움을 높여 간다는 것은 더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다시 버블기 때처럼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 3)라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임금노동 시간을 좀 더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휴일을 좀 더 늘리고(이후 기술되는 ‘과잉의 억제’), 그로써 실업과 빈곤을 완화함과 동시에 사회보장을 통해 일정하게 재분배를 하고, 또 지역 커뮤니티 경제를 활성화시켜 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 따라 새로운 풍요로움의 형태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상황

 

조금 더 역사적인 시점에서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거시적 상황을 살펴보자.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지금 수백 년 만에 큰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은 2008년 가을의 리먼 쇼크와 선진국들의 만성적인 실업률을 통해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도 없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보건대 그것은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생산 과잉에서 유래했다. 일본의 연도별 실업률 추이를 보여주는 <표 1>에 따르면, 10대에서 30대의 젊은층의 실업률은 고령자 층보다도 높게 나타난다.

 

애당초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원인은 고용의 총량이 확대를 계속한다는 고도성장기의 전제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용이 의자 뺏기 게임이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선진국이고, 그렇게 되면 퇴출자가 없는 한 고용의 의자는 생기지 않으며 따라서 그 악영향은 고용시장에 진입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치게 된다.

 

또한 현재 고용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데 대한 근본 원인은, 이 정도로 물건이 넘치는 시대에 수요가 포화하는 가운데 선진국들이 구조적인 생산 과잉이라는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 표 1 > 연령 단계별 실업률의 연도별 추이 (출처 : 노동력 조사)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재의 선진국에 의해 생겨난 것은 과거와 같은 ‘결핍에 의한 빈곤’이 아닌 오히려 ‘과잉에 의한 빈곤’, 결국 생산과잉 → 실업 → 빈곤의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대응 방향으로서 우리는 ‘과잉의 억제’와 ‘재분배’라는 양자를 정책 또는 사회시스템으로 전개해 갈 필요가 있다. 그로부터 전망되는 사회는 다음에 서술한 바와 같이,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주의, 생태학’이 융합한 새로운 사회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진화 – 시스템 중추부의 수정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지금까지의 흐름을, 조금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거시적으로 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여명기 이래 그 “수정”을, 말하자면 ‘사후적’, 혹은 체제의 말단 부분부터 점차 ‘사전적’, 혹은 시스템의 중추 부분에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해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우선 제1단계로, 당초에는 시장경제에서 낙오한 사람에게 공적부조 없이 생활보호라는 ‘사후적 구제책’을 적용하는 데서 시작했다. (1601년의 엘리자베스 구빈법 등)

 

계속해서 제2단계로, 공업화가 본격화한 19세기 후반에는 대량의 도시 노동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앞에 기술한 내용과 같은 사후적인 구제책으로는 적절하지 않아서) 고용노동자가 사전에 보험료를 지불하고 병이나 노후 등에 대비하는 구조로서의 ‘사회보험’이라는 보다 사전적 또는 예방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870년대 이후의 독일)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세계공황에 직면하고 사회보험을 전제로 하는 고용의 확보가 되지 않는 사태에 이르러, 케인즈 정책이라는 시장경제로의 직접적인 개입-수요 환기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정부에 의한 고용을 창출하는 정책-이 개시되었다. 이것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고 그 ‘확대’를 관리한다는(총수요관리 정책과 같은) 의미로 확실히 자본주의의 중추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게 ‘성장’을 유지해온 것이 20세기 후반의 자본주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의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 부단한 경제성장 또는 자원 소비의 확대라는 방향 자체가 근본적인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여기서 이상의 흐름의 총체를 ‘자본주의의 진화’라는 거시적 시점에서 다시 파악해보면, 각각의 단계에 있어서 분배의 불균등이나 성장 추진력 고갈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가, 그 대응을 ‘사후적’ 내지는 말단 수준에서, 점차 ‘사전적’ 내지 체제의 근간으로 거슬러간 것으로 확장해 왔다는 하나의 굵은 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제 또는 사람들의 욕망이 크게 확대·성장해온 최후 단계(로서의 정상형 사회)에 나타나는 것이 앞에서 기록한 자본주의· 사회주의·생태학의 융합이라고 부르는 사회 시스템의 모습이다. 여기서 자세히 기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시스템의 근간에 역행한 ‘사회화’ - 어린이와 젊은이들에 관한 ‘인생 전반의 보장’ 등 사전적인 재분재와 ‘스톡에 관한 사회보장(주택과 토지소유, 상속 등에 관한 사회화)’과 시장경제의 영역을 넘은 ‘커뮤니티 경제’의 생성과 발전이라는 방향을 그 내용으로 하게 될 것이다.4)

 

인류사 안에서의 안정형 사회

 

앞서 지난 수백 년의 자본주의 전개에 따라 향후 전망을 다루었다면, 여기서 더 한층 시야를 넓혀 ‘경제의 확대·성장과 정상화’라는 시점을 축으로, 인류 역사 안에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극히 장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인간의 역사를 `확대·성장`과 ‘안정화’라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세 가지 커다란 사이클을 발견할 수 있다.

 

①인류 탄생(약 20만 년 전)부터 수렵·채집시대 ②약 1만 년 전의 농경시대 성립 이후 ③약 300~400년 전부터 시장화 또는 산업화(공업화) 시대의 세 가지로, 이것은 인구 증가와 안정화의 사이클과도 겹친다.

 

그리고, 논의를 앞당겨 나 자신의 가설을 적자면, 각각 단계의 전반기가 ‘물질적 생산의 양적 확대’ 시대였다고 할 때 각각의 후반기는 ‘내적·문화적 발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전면에 나타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수렵·채집 단계 있어서는 대량 5만 년 전에 ‘마음의 빅뱅’ 또는 ‘문화의 빅뱅’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가공된 장식품, 회화나 조각 등의 예술작품 같은 것이 나타나게 된다. 생산의 양적 확대부터 문화적인 발전으로의 이행이라는 좋은 변화이다.

 

< 표 2 > 초장기적 관점에서 본 세계 GDP(실질)의 추이

 

또 농경 단계에 있어서는 지금부터 약 2,500년 전(기원전 5세기 전후)에 철학자 야스퍼스가 ‘추축시대’, 과학사가인 이토 타로伊東俊太郞가 ‘정신혁명’이라고 부른 현상, 결국 어떤 보편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사상이 지구촌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인도에서의 불교, 중국에서의 유교와 노장사상, 그리스 철학, 중동에서의 구약사상이다. 이들은 공통으로 인간에게 있어 내적 또는 근원적인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환경사 등의 연구를 볼 때 더욱 흥미로운 것은, 기원전 5세기 전후의 그리스나 중국 등에서 삼림파괴 같은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앞선 수렵·채집 사회의 ‘마음의 빅뱅’기까지를 포함하여 거기에서 일어났던 것은 ‘물질적 생산의 양적 확대로부터 내적·문화적 발전’으로의 전환이 아니었을까?

 

< 표 3 > 인류사 안에서의 안정형 사회

 

서두에서 지난 수백 년간 계속되어 온 자본주의 시스템 또는 산업화 사회가 어떤 종의 포화 또는 생산 과잉에 빠져 있다는 내용을 전개했다. 위 내용을 결합해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상황은 인류사 안에서 말하자면 “제3의 안정기”로의 이행이라는 커다란 구조 변화이다. (이상, <표 2>와 <표 3> 참조. <표 2>는 미국의 경제학자 테크론이 지난 수십만 년의 GDP의 추이를 추정한 것임)

 

이 경우, ‘안정’이라는 표현에서 “변화가 멈춘 지루하고 답답한 사회”라는 이미지를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여기서 인간의 역사가 나타내는 것과 같이 안정화기라는 것은 실은 오히려 ‘문화적 창조’의 시대인 것이다.

 

결국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안정화의 시대는 성장기에 있었던 ‘시장화·산업화·금융화’라는 하나의 커다란 벡터에서 해방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짜 창조성을 실현해 가는 시대로 될 것이다. 이 경우의 ‘창조성’은 흔히 말하는 ‘국제경쟁력’이라는 좁은 의미가 아닌 ‘브리콜라주(레비스트로스)’, ‘문화는 놀이에서 시작된다(호이징가)’, (핀란드에서 ‘생각하는 힘’, ‘할아버지의 창조성’이라고도 불리는) 고령자의 지혜와 세대 간 계승 등 보다 넓은 창조성의 재정의로 호응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성장·확대의 시대에는 세계가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늦어지고 있다”라는 ‘시간’의 좌표축이 우위였지만 – 예를 들면 “아메리카는 진행되고 있다. 도시는 진행되고 있다” 등– 정상기에는 각 지역의 풍토적·지리적 다양성과 고유의 가치가 재발견되어 갈 것이다. 감히 단순화해 말하면, 정상형 사회라는 것은 ‘시간’에 대해 ‘공간’이, ‘역사’에 대해 ‘지리’가 우위가 되는 사회이다.

 

마치며

 

가까운 학생들이나 젊은 세대를 보면 ‘로컬’적인 것으로의 지향과 지역 재생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내향적’이라고 비판하는 논의가 최근 많지만, 이는 한참 빗나간 진단이다. 무엇이든지 ‘해외’, ‘구미歐美’가 좋다고 생각하고 밖에 나갔다 온 결과가 현재의 지방 도시와 농촌의 피폐와 공동화가 아닐까. 젊은이들의 로컬 지향은 오히려 그것을 살리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앞에 나왔던 ‘인생 전반의 사회보장’과 함께 다양한 지원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인구감소 사회로의 이행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이념과 정책을 포함해 우리는 지금 ‘창조적 정상 경제’ 또는 ‘창조적 복지사회’라고 불리는 사회상을 구상해 가는 시기에 와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 감소 사회로 향해 가는 일본에 있어 지구적인 사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 /www3.to/agenda

2) 노리広井良典. 『정상형 사회(새로운 풍요로움의 구상)』 (이와나미신서, 2001), 『창조적 복지사회 -‘성장’ 후의 사회 구상과 인간·지역·가치』 (치쿠마신서, 2011), 『인구감소 사회라는 희망 – 커뮤니티 경제의 생성과 지구윤리』 (아사히신문출판, 2013) 참고.

3) 일본에서 출시된 에너지 드링크 regain의 광고 카피 - 편집자 주

4) 히로이 2011, 20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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