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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청년, 음식시민이 되다
2017-01-18 11:04:00

* 『모심과 살림』 5호(2015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청년, 음식시민이 되다

 

박세영

평화교육 진행자. 주로 먹거리와 비롯된 생태적인 감수성을 주제로 일상생활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
복, 그 외의 수많은 느낌과 생각을 타인과 자연에게 어떻게 배려하면서 나누어갈지 고민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도
록 하는 촉진 역할을 해오고 있다.

 

 

버릴 거면 나 주지

 

25세 청년인 필자는 현재 프리랜서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집이 없다. 또한 수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스스로 방세와 생활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워낙 요리와 식문화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베트남식당에서부터 브라질리안·하와이안·이탈리안·일식당, 그리고 빵집과 별다방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매달 일정하게 나가는 생활비를 충당하고 학비를 위해 저축까지 하기엔 적은 시급으로는 불안했다. 때로는 이른 아침부터 자정이 넘는 새벽까지 하루 14시간 꼬박 일을 하기 위해 학교 시간표도 아르바이트 시간을 피해서 넣어야 할 때도 있었다. 서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가끔 짬을 내 만나서, “공부하고 싶어서 온 학교인데 내가 지금 학생인지 노동자인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하는 서로의 모습이 안쓰러워 함께 울고 웃으며, 이럴 땐 먹어야 한다며 술과 안주로 위로하는 것이 달콤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이른 아침엔 커피숍에서 일하고 저녁엔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남아서 폐기하는 음식들을 몰래 화장지에 싸뒀다가 먹기도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빵과 가공식품을 쓰레기봉지에 넣고 봉지채로 냉동실에 얼려놓거나 학교로 가져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부끄럽지 않아?’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는 일이 (그것도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더 부끄러운 행동인 것 같았고, 쓰레기가 될 뻔한 음식물을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식비도 줄고 시간도 절약되고 빈곤 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뿌듯하고 당당했다. (물론 가끔은 도시락통에 옮겨 마치 내가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생활을 2년 남짓 해오던 어느 날부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각하지 않았던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빼먹기 시작했다. 나태해지는 것인지 피곤해서인지 그동안의 식생활 때문인지 몰라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듯했다. 아침에 먹은 빵은 저녁 즈음에나 소화가 되고, 몸도 부어 있고, 식욕도 공부할 의욕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친구들 또한 3학년이 되고 더 어려워진 수업 쫓아가랴, 일하랴, 취업 준비하랴 각자의 일로 바빠지는 시기였다. 만나면 돈이고,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공부해서 장학금 타야지…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충분히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니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고 해야 할까. 생활에서 웃음과 즐거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외로웠다.

 

봄 학기가 반 정도 지난 5월, 어김없이 지각한 어느 날,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장 휴학서를 제출했다. 밖을 나오자 적당히 따뜻한 햇살과 바람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졸업이 늦어진다고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난 행복해, 걱정 마요’라고 신나게 얘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휴학기간 1년 중 이미 반 학기 정도가 지났으니 사실상 9개월 정도 자유 시간이 생긴 것이다. 아르바이트와 인턴, 2개월 동안의 첫 배낭여행으로 시간의 개념과 윤리적 소비, 건강한 생명과 인간관계,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해보며 다시 학교로 돌아갈 자신감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뭐 먹고 살지?

 

근 2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섭취한 가공식품, 건강하지 못했던 식습관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반성하며 대안을 생각하고 있던 때, 2011년 3월 11일 일본 토후쿠 지역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한순간에 많은 이들이 생명과 생활 기반을 잃었고,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지구 환경과 먹을거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본 교토에서 유학 중이던 당시, 충격과 슬픔과 불안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방사능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미디어를 통해 들려왔고, 어류나 일본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보이콧 하자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이제 뭐 먹고 살지?’.

 

다행히 간사이에 위치한 교토는 피해 발생 지역과 8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어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슈퍼에서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생수가 제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먹거리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과 시각으로 지금 이 상황과 일본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워야만 했다.

 

사건 직후,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음식은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 먹어 보이는 등 그 안전성을 강조하며 다시 전국으로 유통이 되기 시작했다. 괜찮다는 이야기에 바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먹거리인지 조사하고 더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1년 전 허기를 견디던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푼 더 싼 것을 찾고 시간도 아끼려고 인스턴트 가공식품들을 주로 먹다 보니, 삶의 질과 생활패턴, 건강이 나빠졌고 병원을 다니며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도 쉬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안전한 먹거리를 어떻게 구하지?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차 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농사’였다. 어릴 적부터 벼농사와 감농사를 짓던 외갓집에 다녔던 기억, 부모님이 식재료상회를 해 시장통에서 자란 기억들이 ‘내가 직접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방 한 칸 집에 살며 땅도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라는 데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아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하고 우선 집안에 작은 화분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몰래몰래 학교 구석에 시금치 씨앗을 심기도 했다.

 

한편 후쿠시마 복원을 돕는 모금을 하기 위해 한 학기 동안 학교 앞에서 빙수를 팔기도 했는데, 그런 활동을 하는 중에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모금된 액수보다 찾아와주시는 분들과의 대화에서 용기와 즐거움을 얻었고 ‘정과 마음의 공유’를 통해 행복을 느꼈다. 또 피해자들이 더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기 위한 지원도 필요했지만, 모두가 떠나가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다시 농사를 재건하고 자급자족 하는 분들도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순간에 생활기반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피난을 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음에도, 힘들 때일수록 서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고 인정을 느끼기도 했다.

 

교토평화박물관(The Kyoto Museum for World Peace)에서 일하던 당시, 봉사활동으로 가이드를 하고 있던 한 일본인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심장병으로 큰 고비를 넘긴 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완고한 베지테리언이 된 그녀는 매번 후쿠시마를 오가며, 오사카로 피난 온 가족들, 특히 가장이 되어 4~5살 된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고, 직접 기른 혹은 지역의 안전한 식재료들로 채식 요리를 하거나 앞으로의 인생에 관해서 함께 담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급자족에 대해 그리고 음식이 가지는 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음식이란 단순히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는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고 서양에는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듯, 채소를 기르는 데도 기후나 때와 장소가 적합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자랄 수 없으며,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먹으면 내 몸 또한 영양부족이 되기 때문에 음식은 모든 사회적 요소들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르기 쉬운 채소들을 집안에서 기르는 것부터 시작하면서 식품 안전, 유기농 등을 주제로 하는 여러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먹거리와 관련된 행사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 참여하며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다양한 농업의 형태를 접하고 사람들과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NOWHERE

 

그러다가 나라奈良 이코마生駒 시 타카야마에서 사토야마里山 활동을 하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코마 시엔 대나무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가 많고 일본의 전통차를 만들 때 쓰이는 챠센茶.은 90% 이상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옛날엔 황금새가 왔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이코마 시는 도로와 철도 개발로 인해 생태계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한다. 사토야마란 본래 뒷산 혹은 도시의 경계에 있는 자연을 뜻하는 말로, 사토야마 활동은 그 생태계를 보존하는 활동을 칭한다. 소외되는 곳, 시골과 도시의 경계지점에서 지역 생태계와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활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 이야기와 사진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한두 명의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열 명 이상의 청년들이 왕복 다섯 시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매달 한 번씩 찾아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농사도 짓고 있다.

 

먹거리공부방, 한 달에 한번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우프코리아

게스트하우스의 텃밭 채소들로 미각교육을 진행한다.

 

사토야마에서의 활동을 계기로 관심과 활동 범위가 점점 더 넓어져 미에三重 현에 있는 아카메赤目에서 자연농법으로 쌀을 재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상업화된 농업 현실에서 많은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 유전자조작 씨앗을 사용할 때, 가와구치 할아버지는 거기에 끝까지 반대하여 가족들마저 떠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과 같은 (20대의 청년들을 포함해) 오랜 제자들이 있고, 매월 두 번째 일요일에 배움의 날이 있어서 전국에서 자연적인 방법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법을 배우러 온다. 저녁엔 오래된 산장에 가서 직접 수확한 식재료로 밥을 해먹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1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지내며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에 관한 인문학 강연도 열어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고 먹는 것에 대해 지구인적 관점에서 얘기를 나눈다. 농사일을 끝내고 몸은 피곤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자정이 넘어 있다.

 

우프코리아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는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활동들을 보다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한옥집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점심시간에는 자유롭게 요리를 해서 먹었는데, 식재료는 생협을 이용하고 가끔 호스트 농가에서 보내 주시기도 한다. 마당 작은 텃밭에 심은 쌈채소와 허브, 토마토 등을 따먹으며 되도록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한 달에 한 번 먹거리 공부방을 열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우리가 먹는 먹거리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우리 식탁으로 오는지, 안전한 식탁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텃밭 견학과 간단한 샐러드 만들기 등 작지만 평소에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대안활동을 모색해 갔다.

 

제철 맛워크숍, 직거래로 구입한 자연농법 황매실로 집마당에서

오순도순 먹거리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청을 담갔다.

 

또한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Slow Food Youth Network)의 멤버로 ‘건강한 먹거리를 어떻게 맛있고 즐겁게 잘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요리가무, 잇인(Eat-in), 몬산토 반대행진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요리가무는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다르고 못생기고 조금 상처가 났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뻔한 농산물과 식량을 구출해 공공장소에서 함께 요리하고 나눔으로써 먹거리 낭비에 대해서 알리고 함께 제철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을 전하는 활동으로, 청년들뿐 아니라 생산자와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함께하고 있다.

 

생태공동체마을(Eco-village) 야마우토山水人와 별에별꼴에서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산’, ‘물’,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야마우토는 1960년대 유행하던 ‘히피’ 스타일의 이벤트로 매년 8~9월 교토京都에 있는 산속에서 열린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큰 축제인 만큼 전 지역에서 ‘히피족’이라 불리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며, 화장실부터 주거 공간, 공동부엌, 무대 등을 직접 설치한다. 그리고 나면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유토피아가 눈앞에 펼쳐진다. 참여자들 대부분은 자급을 위한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경제적 욕심을 버리고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고 ‘깔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금산 산골짜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들과 밭 매러 가는 길.

 

청년들의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위한 도전은 충청북도 금산의 깊은 산속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청년 자립공동체 별에별꼴에서는 바쁜 도시에서의 생활 패턴과 잠시 거리를 두고 폐교를 주거공간과 작업실로 바꿔나가며, 개인의 꿈을 펼치는 개인작업 시간을 바탕으로 쌀과 콩, 채소, 두부 등으로 먹을거리도 함께 만든다. 이러한 생활의 즐거움과 보람을 더 다양한 청년들이 느낄 수 있도록 ‘식구체험날’과 ‘알고 보니 축제’ 등도 열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활동을 하면서 우리 시대에,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생명과 희망에 대한 감수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들은 빠르게 바뀌는 바쁜 자극적인 울타리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빙빙 돌면 칭찬을 받으니까 말이다. 목마르고 결핍된 애정을 물질로 위로하는 생활패턴으로 진화해 가고 있는 청년들이 짜고 달고 빨리 먹는 식습관을 가지게 되거나 생명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감수성은 이러한 일상화된 감각의 틀을 깨고 자동화된 의식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지금 이 순간 여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각 개인의 템포에 맞게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공간에서 감수성을 돌아보는 작게나마 ‘낯설게 하기’의 재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연상과 생각들이 창의적이고 독특한 묘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절호의 찬스!

 

각자가 있는 그곳에서 자연 문화와 나의 문화를 조화롭게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만 잘 먹고 잘 되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어떠한 한 생명체만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혼자’와 ‘스스로’는 의미가 다르다. 생명의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고, 각 생명체의 특색을 바라봐주고 돌보아주는 조화로운 삶을 먹거리로부터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그 계기를 물어보니, 대부분 3.11 이후 자신의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만의 사회구조와 먹거리 시스템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음식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누군가의 집에 놀러간 것이 언제 적인지, 요리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과 레시피를 공유하는 여유로운 주말.

 

취업 시장에 진출해본 경험이 없는, 사회로부터 때 묻지 않은 젊고 패기만만한 20~30대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을 수 있는 희망과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백수, 백조라고 불리는(회사시스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청년들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자기의 색깔을 찾으면서 사회를 더 건강하고 즐겁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러한 청년들을 위한 공간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 인도, 네팔, 이스라엘, 프랑스, 호주, 스페인,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평균적인 월급에 비해 수입이 적으니 함께 식사를 위해 불을 만들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버려진 집을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키고, 텃밭을 위한 생태화장실도 만들어보고, 각자가 스스로 재배한 먹거리와 기술을 서로 나누면서 배우고 교환하며 살아간다. 평화교육 진행자인 나는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고 먹을거리를 나눠 먹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비록 적은 수입이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땀과 지혜, 정성으로 만들어진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려 한다. 현재는 제주도에 거주하며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친환경장터인 마르쉐(개구럼비마르쉐)와 논농사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 나와 정말 다른 혹은 전혀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의 새로운 감성과 상냥함, 새로운 부드러움을 잘 관찰해 보고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그 연결고리는 끊임없는 생성과 창조의 능력으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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